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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 ㅣ 느림보 그림책 11
심미아 글 그림 / 느림보 / 2007년 10월
평점 :
잘 웃고 잘 울고 잘 먹고 싫증도 잘 내는 나는 감탄도 잘한다. 이번 생에 얻은 특기라면 특기인 것들이다. 감정의 오르내림으로 피곤할 때도 있지만 일상에서 기대하지 않은 반짝임을 마주할 때가 많으니 장단이 맞다고 생각한다.
<집에 가는 길>을 봤을 때는, 그런 장단으로 흘러온 인생의 작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해는 그저 매일 뜨고 질 뿐일 터인데, 어쩐지 그날의 노을은 곱고도 고와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오래도록 바라본 기억이 나에게도 있으니까. 더 생각해보니 그런 순간 하나하나가 내 과거를 촘촘히 채우고 있다. 넓고 넓은 하늘에 천천히 떠가는 커다란 구름, 모내기가 끝난 논 위로 비치는 하늘, 나뭇잎을 흔들며 바삭바삭 노래하는 동네 어귀의 커다란 나무, 오월 봄날에 흩날리던 아카시아 꽃잎, 태풍 오던 날 엄청난 소리로 울며 부딪히는 모습이 격렬한 춤 같았던 숲, 별똥별 떨어지는 새벽 하늘, 가족들과 돗자리에 누워 보던 까만 밤하늘... 사실 특별한 일들은 아니었다. 넓은 논이 있고 작은 개울이 있고 낮은 산들이 있는 시골에서 놀며 학교 다니며 살아가던 일상 속에서 마주한 것들이니까. 다만 그 짧은 설렘과 떨림을 느낄 수 있던 것은 특별하다는 생각도 든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 년이 지났고 이제 그 기억들은 더욱 아련해지면서 한편으로 미화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서울은 견디기 쉽지 않은 일들이 참 많은 곳이니까. 그렇지만 '정동진이 별거냐. 어디에 있든 어떤 마음으로 느끼느냐가 더 중요한 거'라며 우리 동네 뒷산에서도 새해맞이를 할 수 있다는 아빠 말에 실망하면서도, 막상 해 뜨는 광경에 가슴 벅차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도 밤하늘에서 별을 보고 기뻐하던 순간이 있었지. 공원에서 개구리 울음소리에 작은 민들레에 반가워한 기억도 있구나. 그래, 어디에 있든 해는 뜨고 꽃이 피고 아름다운 일들이 내가 모르는 순간 순간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시절이 괴롭고 가슴 답답하고 화가 나더라도 그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는 말아야지. 노을을 마주한 소년의 얼굴을 보며 살짝 눈물이 난 것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