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박지원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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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환상을 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에게 박지원은 결점 몇 가지는 눈감아줄 수 있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렇다면 아들이 본 박지원은 어떨까. 뭐 말할 것이 있을까. 박지원은 아버지로서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비록 큰 벼슬로 앞길을 터주지도 않고 재물을 왕창 물려주지도 않았지만 삶을 사는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예 등 남의 눈치 보지 않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모범을 보여주었다.  

백성을 돕고자 할 때는 도움을 받는 이가 모멸감을 느끼지 않도록 예를 갖추어야 한다며 백성과 똑같이 상도 없이 죽 한그릇을 비운 뒤에 구휼을 시작했다는 대목이나 살인용의자가 추운 날 홀로 감옥에 있게 되자 족쇄를 풀어주고 간수 방에서 지내게 해 감동하여 도망치지 않았다는 대목, 벌목이 금지된 귀한 소나무가 남았을 때 자신의 관을 짜려고 챙겨둔 다른 관리와 달리 백성을 위한 다리를 놓았다는 대목 등등 정치가로서도 훌륭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적을 때 박종채는 얼마나 흐뭇했을까. 하지만 말년이 되자 곁에서 맴돌던 사람이 모두 떠나고 오직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등만이 곁을 지켰다는 대목이나 낮잠에서 깬 뒤 갑자기 술상을 차리게 하고 홀로 얼마간 그 자리에 머물러 그 연유를 묻자, 꿈에서 친한 벗들이 나왔는데 모두 죽은 자들이었다 답했다는 대목 등에서는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과거시험 답안지에 그림을 그려냈다는 대목이나 바다와 산의 빼어난 경치가 1만냥의 가치는 되고 녹봉이 2천냥이니 봉록 1만 2천냥을 받고 일했다 말하는 대목 등에서는 그가 얼마나 유쾌하고 멋들어진 사람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까마귀가 나뭇가지에 앉자 '너희들, 반포하러 왔느냐?' 하며 고기 몇점을 던져주었던 박지원은 무리지어 나는 기러기는 형제에 비유되기에 먹지 않았고, 개은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다 하여 기르지 않았고, 타던 말이 죽어 묻도록 하였는데 하인들이 공모해 말고기를 나누자 크게 노하여 몇 달이 지난 뒤에야 용서했다는 대목 등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면도 느낄 수 있었다.(물론 말고기 일화에서 하인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에 하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묻기 아까웠을 테니.) 하나 궁금한 것은 박지원을 따랐던 박제가는 개고기를 무척 좋아했다는데 그걸 어찌 생각했을까 하는 점이다.  

어찌되었든, <열하일기>로 명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고초도 겪은 박지원은 뛰어난 문장가이면서 훌륭한 정치가, 좋은 아버지였으며 또한 책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박종채의 글에서 그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기뻤다. 동시에 나는 우리 아빠에 대해 어떻게 적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직하게 살아오신 아빠. 아빠와 대화가 된다는 점을 내가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시고 늘 해준 것이 없다 미안해하시는 분. 박지원과는 또 다른 점에서 내가 존경하는 사람. 살아계신데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아련해진다. 그러니 박종채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원문으로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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