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 마음을 담은 그릇
호연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바다를 낚았습니다'라는 말과 뒤이은 푸른빛 도자기 사진이 준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일본 오사카에 있다는 그 도자기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작은 목표를 갖게 해준 한편의 웹툰은 구구절절 설명 가득한 어느 책보다 깊은 향기가 났다. 

네이버에 연재되던 시절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본 사람은 계속 보게 했던 이 작품의 매력은 달항아리 같은 은근하고 여유로운 맛일게다. 리움에서 본 커다란 달항아리는 친근하면서도 설레게 하는 오랜 친구 같았다. 매끈하지 않은 엉성함이 마음을 편하게 했고 화려하지 않은 장식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여유를 느끼게 했다. 도자기에 대한 책들 중 가장 적은 텍스트를 가졌을 이 책도 그러한 느낌이다. 치밀한 고증이나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몇 컷의 손그림과 대사는 그 어느 작품보다 마음에 와닿고 오래도록 기억된다. 

내가 도자기에 대해 배웠던 강의나 스스로 읽었던 어느 책들도 이렇게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도자기의 향취를 느끼게 해준 것은 없었다. 작가가 겪은 일상 속의 소소한 에피소드나 나름의 생각들이 옛도자기와 만나 엮어낸 이야기들은 책에서 본 도자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며, 그 너머에 있는 다른 것들에게도 눈길을 주게 한다. 이 책을 보고 국립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그곳에 혼자 앉아 느꼈던 행복은 그 전에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전통문화를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 한 방향으로, 그것도 재미없는 쪽으로 치우친게 아닐까. 그런 결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사회 전반적으로 낮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금에야 과거지만 한때는 우리처럼 두근대는 심장으로 살았을 사람들의 삶은 교과서 속, 박물관 속에서 멈춘, 죽은 이야기가 되고만 것이다.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 전통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면서도 지은이가 그린 만화를 보여주자 탐탁치 않은 표정을 보였다는 교수들의 모습은 그러한 현실을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상력에 채운 자물쇠를 풀어준다면, 발상의 자유를 허락한다면, 알기 전에 먼저 즐길 수 있게 해준다면, 고루하다 여겼던 전통문화 역시 새로운 재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책인데 별 하나를 뺀 것은, 작품에 비해 사진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좀더 신경썼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세로로 길었던 웹툰이 몇 페이지로 분절되어 스크롤을 내리면 보았던 맛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따뜻함과 향기는 변하지 않았다. 재미와 감동 역시 그대로다. 아직 젊은 지은이가 또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애니북스에서 또 한편을 준비한다고 하고, 듣자하니 불교관련 책에 들어갈 그림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어떤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아직 알 수 없으나 그걸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