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드립니다 - 책 읽어 주는 여자, 김소영의 독서 치유 에세이
김소영 지음 / 두란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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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냥 어떤 커리어우먼이 자신의 외적 성공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병간호에 지극정성으로 힘쓴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간증 류의 에세이집은 내가 그다지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책을 펴들었다.

이 책은 내가 첫 문장에 소개한 대로, 유명 잡지사의 소위 잘 나가는 여성 CEO였던 저자가 자신의 우선순위를 자녀와 가족에게 두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인생의 2막을 펼쳐나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여기서 저자의 인생에 중요한 결단인 ‘퇴사’가 특별한 사건 사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진정한 우선순위를 점검해보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손에는 늘 ‘책’이 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인문학과 고무장갑’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살림꾼으로서의 두 정체성을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비결이었다.

‘인문학과 고무장갑’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하고 내게 행복을 안겨 주는, 죽는 날까지 절대 놓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는 소명의 도구이다. (79쪽)

불의의 사고로 13년째 병상에 누워 목 아래로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런 남편을 수발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2년째 ‘책을 읽어주는 딸’이 된 사연은 그렇게 이미 저자의 삶에서 준비되고 있는 듯했다.

책은 주로 나 자신을 위한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 자기 교양을 쌓기 위해서, 자신의 정서적 만족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 그런데 책을 읽어주는 것은 전적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에 기반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책을 남에게 읽어준 경험이 있다면, 십중팔구 어린 자녀에게 책을 읽어준 일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책을 읽어준다. 이것이 나중에는 자신에게도 유익이 됨을 느끼게 되었지만, 먼저는 부모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다. 그래서 저자가 인용한 애드거 앨런 포의 시 ‘애나벨 리’의 한 구절이 심금을 울린다.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사랑을 했다.) (256쪽)

저자가 읽어준 책의 목록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와 같은 소설에서부터 류시화의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마라」, 나태주의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의 시집, 손웅정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와 같은 에세이집,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같은 고전, 그리고 요한복음, 창세기, 출애굽기 등의 성경까지 다양한 장르로 가득하다. 그리고 저자가 아버지께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로마서까지. 저자가 가장 주고 싶었던 사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하게 된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우리를 위해 이렇게 두툼한 책인 성경을 주셨을까. 요한복음 1장의 말씀과 같이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하셨다. 자기 자신을 이토록 잘 설명할 수 있는 책이 세상에 과연 어디 있을까. 저자와 같이 나부터 이 말씀을 잘 읽고, 내 자녀에게 이 말씀을 잘 들려주어야겠다. 또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고전을 많이 읽혀주어야겠다.

책 읽기나 비블리오테라피(독서치유)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믿지 않는 가족을 전도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꼭 자신의 목소리로 책을 녹음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진심 어린 사랑의 표현을 전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 사랑은 말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요즘저는아버지께책을읽어드립니다 #김소영에세이 #비블리오테라피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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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의 A.D. 영어학습법 - 영어를 제2 모국어로 만드는
정철 지음 / 두란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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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어에 관하여서는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사람 중 한 명이면서, 자신도 인정하기를 수많은 나 같은 영어에 눈만 뜨인 사람을 양산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정철 선생님의 영어교육 터닝 포인트 간증문이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니 참으로 놀랍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새로운 영어학습법에 대한 소개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성경에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그래서 더 안정감이 있고, 근거가 있다. 온 땅에 언어를 흩으신 분도 하나님이며(창세기 11장), 그 언어를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사도행전 2장).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1) 영어(를 포함한 언어) 습득은 문법이 아닌 듣기와 말하기 중심이어야 한다.
2) 언어를 구성하는 주요 문법도 단어가 아닌 청크(Chunk, 묶음)로 접근해야 한다.

“영어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단어’가 아니라 ‘단어의 묶음 덩어리’라는 것이다. 영어 문장은 단어의 묶음 덩어리가 ‘궁금한 순서로 흐르는 것’이다. 이 단어의 묶음 덩어리를 영어로는 청크(Chunk)라고 한다.” (71쪽)

3) 영어를 익히는 데는 리듬이 중요하며, 이 리듬을 익히기 위해서는 원어민의 발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4) 영어 자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교과서는 성경(특히,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다.
5) 청크에 맞추어 그려진 삽화(그림)를 따라 암기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참고로, 이러한 언어교육에 있어서 가장 좋은 나이는 만5세~12세 사이라고 한다.

“만 5세쯤 모국어의 기본이 완성되는 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인종을 막론하고 똑같다. 유대인들이 만 5세부터 아이들에게 모세 5경을 암송시키는 쉐마교육을 시작하는 것도 이때 기본적인 두뇌와 언어능력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중략) 이것이 하나님이 말을 가르치시는 방법이다.” (30-31쪽)

“그때 내 영어를 터뜨려 준 핵심적인 활동이 바로, ‘원어민 소리와 똑같이 반복해서 읽는 것’이었다.” (118쪽)

한국어나 영어나 모두 성경을 암송해서 나쁠 것 하나 없다. 아니, 나쁜 것 없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라 말할 수 있겠다. 저자는 그래서 영어 공부의 비결을 이 일곱 글자로 표현했다.

朗誦 百僠 英字通
낭송 백번 영자통

영어교육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 저자의 열정이 놀랍다. 지천명의 나이에 정말로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저자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자신을 포함한 자녀의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학습법을 따라가다 보면 영어교육 뿐 아니라 신앙교육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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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출간 20주년 200쇄 기념) - 그래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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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을 3번 읽었다. 20대 때 처음, 결혼 후 러시아 비전트립을 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두 번째, 그리고 출간 20주년과 무려 200쇄(!)를 기념하여 새로 개정판이 나와서 이번이 세 번째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은 그 이유가 있다. 여러 번을 읽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게으름’이라는 은밀하지만, 반드시 물리쳐야 할 대적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며 변화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 책은 뼈를 때리는 맞는 말의 향연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삶의 지향점을 잘 실천하고 있음을 책을 읽는 곳곳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글에 더 힘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게으름을 단순히 삶의 태도의 한 측면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게으름의 반대가 바쁨도 아니다. 게으름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죄’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영어권 제목이 『Busy for self, Lazy for God』이다. 저자는 게으름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게으름은 단지 삶의 태도가 아니라 방향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분주하게 살아도 거룩한 목표가 없다면, 그것은 게으른 삶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바쁘게 사는 것은 부지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게으른 것입니다.” (39-40쪽)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을 저자는 잠, 열정 없음, 교만 등을 제시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잠이다. 20대 때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찔렸던 부분이 바로 잠이었다. 단순한 피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버거운 문제들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잠을 선택하곤 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한 가지 비유를 읽으며 헛웃음을 지었는데, 내용을 소개해 본다.

“하루에 한 시간씩만 필요 이상으로 수면을 취한다면, 1년이면 365시간이고 10년이면 2,650시간입니다. 그 시간이면 4년제 대학을 두 번 졸업하여 두 개의 전공을 마치고도 약 200시간이 남습니다.” (156-157쪽)

여기서 핵심은 시간이 아깝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라는 전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의 필요와 이유를 제시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사명이다. 이 사명을 다하면 우리는 천국으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지기로서의 삶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을 성실하게, 가능하면 최선을 다하여 유능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소개한 조지 휫필드의 명언은 나의 마음을 울린다.

“나는 썩어서 죽느니 닳아서 죽겠다. (중략) 사명을 다하기 전까지 우리는 죽지 않는다.” (122쪽)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어 바쁜 일상을 살지 말아야겠다. 푯대를 향하여 나의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믿음의 경주자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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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말하다 - 우리가 꿈꾸는 그 가정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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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은 말씀 안에 있다. 성도가 말씀을 읽는 주체가 되는 것이 종교개혁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비로소 말씀은 성도 안에 거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난 지금에는 제2의 종교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실제로 얼마나 살아내는가에 있다.

특히 코로나를 거치면서 기독교인의 민낯이 드러났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그간 얼마나 삶의 예배가 부족했었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어떤 프로그램이나 부서별 모임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의존하던 것이 무너지게 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짚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가정’이다.

이 책은 결혼, 부부의 역할, 자녀 양육, 가정과 교회의 역할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모든 주제의 핵심에는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첫 번째 공동체’임에 있다. 오늘날 인본주의, 개인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이 부분이 얼마나 흐려졌는지 모른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이미 현대인의 선택지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이 세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충분한 진단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결혼제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명령하신 바임을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중요하다.

‘결혼이란 무엇일까요? 결혼은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제도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문화나 사회적 관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성한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13쪽)

하나님께서 결혼을 허락하신 이유는 진정한 연합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셨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에 대해 한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리고 이것은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이어진다. 이것은 복음이 개별 가정만을 위한 ‘가족 이기주의’가 아님을 보여준다. 가정 안에서 복음이 제대로 채워질 때, 그것이 교회와 공동체로 흘러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부부의 진정한 연합과 상호 복종, 비판이 아닌 용납을 통해 가정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녀 양육 또한 가능함을 말한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자녀는 노여워한다. 그리고 자녀가 성장하면 교회를 떠나고 복음을 등지게 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는, ‘이것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다.’일 것이다. 가정의 회복은 지식의 여부에 있지 않다. 얼마나 그것을 위해 내 마음을 쏟고 기도하며 나를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죽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가정 안에서, 특히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부부 톡톡(talk talk)’이라는 코너를 매 과 끝에 두었다. 전체적인 구성도 4개 분야 16과로 나누어져 있어 결혼예비학교나 신혼부부를 포함한 부부 소그룹 사이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워크북의 형태를 띄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으셨다. 그래서 끊임없고 진실한 소통 가운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음 받았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듯이, 부부 간의 연합도 대화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가정으로는 모든 것이 채워질 수 없다. 복음은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열쇠이다. 건강한 가정이 교회 내에 세워질 때, 이 축복의 기름은 교회 공동체 전체로 저절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혹 가정에서 상처를 받거나 버림받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 회복되고, 또 그것이 새롭게 건강한 가정을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영적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삶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역이나 활동들보다 먼저 영적 가족으로 깊은 교감을 나눠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만 드리고 흩어지면 안 됩니다. 가족 공동체의 맛은 모여서 삶을 나눌 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공동체로 살아가야 합니다.’ (206쪽)

게리 토마스는 영성을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 정의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이 태초에 계획하신 가정 안에서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배우자를 열렬히 사랑함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맛볼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며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내의 교제를 통해 우리 몸 속에 흐르는 피보다 더 진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본질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에서부터 가정은 변화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역설한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사랑을’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어거스틴의 말은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와도 일치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이미 우리 가정에, 교회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모든 교회 공동체 구성원이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좋겠고, 특별히 예비부부나 신혼부부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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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에게 - 끝을 기억하는 삶, 진정한 오늘을 살다
토드 빌링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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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런데 이 죽음은 인간이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고, 경험한 사람에게 어떠한 증언도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미지의 세계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의도적으로 이 죽음의 영역을 우리 삶에서 격리시키고 있다. 그 결과 죽음은 이전보다 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청객이 되어 버렸다. 인류의 그 무엇보다 불편한 진실인 죽음,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신학자이자 선교사이면서, 다발성골수종이라는 불치성 암 말기 환자인 저자는 그에게 서서히 다가오는―그러나 실상은 인류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오고 있는―죽음에 대해 논하고 있다.

책의 내용 요약

죽음에 대한 첫 번째 고찰은 ‘스올’이라 불리는 히브리 전통에서 시작한다. 이는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에게도 스올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성전’의 정 반대 개념 즉, 하나님이 부재하시다 인식되는 장소나 상황이다. 유대교 학자 존 레븐슨은 이 대비를 이렇게 설명한다.

“스올에서 성전으로 이동하는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성전 바라보기를 갈망하는 것은 생명 자체를 갈망하는 일이다.” (45쪽)

그렇다면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학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란 하나님의 자비를 알아가게 하는 교훈적 성격이 있다는 이레나이우스의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은 죄의 결과로서 불합리한 참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인간의 삶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오히려 이러한 죽음에 대해 어떠한 관점으로 정의를 내리려는 발언권을 포기할 때, 우리 대신에 죽음을 맛보신 구원자가 필요함을 바라보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토록 우리 곁을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죽음을 인간 문화에서 의도적으로 격리시켜 버렸다. 이런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가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에도 아주 많이 퍼져 있다. 이것은 아주 큰 문제다. 죽음의 문 앞에서 의사가 목사를 대체했고, 인공호흡기가 기도서를 대신했다.

“죽음을 부정하는 예전에 맞추어 살다 보면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 매번 새롭게 호흡하는 일에서도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고 죽음 앞에서도 유일한 소망이신 생명의 주님을 철저히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진실을 회피하게 된다.” (178쪽)

저자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 즉 죽음의 기술로 알려진 기독교적 전통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아르스 모리엔디 전통을 회복하려면 제자도에서 일생의 특징인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지닌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죽어 가는 이들과 접촉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할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죽어가는 이들을 알게 되는 것을 환영하고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자녀들을 장례식에 데려가는 일을 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죽어 가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우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성경은 밝히 말하고 있지 않다. 신약의 여러 부분에 언급된 내용에 의하면 우리의 육신은 부패해도 개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를 통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암시하거나 분명히 가르치는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흥미로운 증언들이 현대 사회에 차고 넘친다. 1975년 레이먼드 무디가 그의 책 『다시 산다는 것』에서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신약학자 스캇 맥나이트는 그의 책 『천국의 약속』에서 임사체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임사체험에 근거하여) 천국에 대해 말하는 많은 내용에 회의적이다. (중략) 임사체험은 무덤 너머의 삶에 대한 안내문으로서 신뢰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체험이 아니라 죽음 ‘이전’ 또는 죽음에 ‘임박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277쪽)

결국 내세에 대한 소망 중 가장 신뢰할 만한 원천은 천국에서의 가족 상봉이나 임사체험이 아닌 성경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심과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이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진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은 영원히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다. 이것을 희미하게 구약 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으로 경험했다.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의 상인들을 쫓아내신 후, 자신이 죽음과 부활 가운데 친히 성전이 되실 것을 선언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일까? 시편 주석가 피터 크레이기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극도로 짧다. 그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모든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의 목적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354쪽)

감상평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죽음을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100세 시대를 외치며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외침은 많지만,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 죽음의 기술, ‘아르스 모리엔디’를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소유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이것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슬픔을 상쇄시켜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삶과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 삶에서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깊은 슬픔과 좌절을 느낌과 동시에 소망을 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얼마 전 교회 공동체의 사랑하는 집사님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삶과 죽음에 대해 내가 어떤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장례식의 과정을 통해 느낀 분명한 사실은 이 죽음의 문제를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경험해내느냐는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이 문제를 누구보다도 슬픔 가운데, 그러나 소망을 잃지 않고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본인도 죽음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책을 집필하였다는 점에서 한 구절 한 구절이 와닿았다. 절대 쉽게 쓰여진 책이 아님을, 단순히 자신의 신학적, 지식적인 견해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제된 지식이나 교리로 죽음의 문제로 슬픔을 당한 이들의 감정을 재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좌절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줄 뿐이다. 질병과 죽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지만, 기독교의 본질은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있다. 그리고 그 삶을 함께 누릴 우리의 자세가 최종적인 결론이다. 그래서 ‘스올’에서 시작한 책의 주제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을 사모하는 예배자의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공동체성경읽기를 하며 시편의 진면목을 더욱 알아가고 있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이 이 스올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은 반드시 감사로 마무리되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여겨지는 그 스올에서조차 하나님의 역사는 그치지 않았음을 그들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가 죽는다. 그러나 믿는 자는 다시 살아난다. 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아르스 모리엔디’를 습득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함께 즐거워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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