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름을 아는 지식 - 풍성하고 견고한 신앙의 비결
김신일 지음 / 두란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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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여러 모로 특별하다. 나만의 고유한 것이지만,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이름이다. 이름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이 짓지 않고 다른 사람(주로 부모)이 지어준다. 그래서 이름은 한 사람의 삶의 지향점을 나타낸다. 그러나 꼭 사람들이 이름대로 살지는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도 이름이 있다! 사람의 이름과 가장 다른 점은,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그런 하나님의 이름 중 9가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나열하고 그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불리게 된 배경과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깨닫고 적용할 수 있는 삶의 태도까지를 제안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8장. 주 되신 하나님, 아도나이]와 [9장. 목자이신 하나님, 여호와 라아]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아도나이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도나이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래서 아도나이 하나님을 고백하는 자에게 필요한 태도는 ‘순종’이다.

‘주, 아도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에는 우리의 순종이 당연히 전제되어 있습니다. (211쪽)
종은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 (219쪽)

주님의 주되심을 입술로 고백하지만 삶으로 순종하지 못할 때가 참 많다. 불순종으로 점철된 삶에서 ‘아도나이 하나님’을 계속해서 인식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내 삶이 더욱 순종으로 방향 전환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9장에서는 저자가 인용한 필립 켈러의 『양과 목자』에 언급된 ‘양이 눕는 조건’이 인상적이었다.

양들은 네 가지가 만족되지 않으면 절대로 눕지 않는다고 합니다. 첫째, 양들은 배고픔을 해결했을 때 누울 수 있습니다. 둘째, 양들은 두려움에서 자유할 때만 누울 수 있습니다. 셋째, 양들은 옆에 있는 양들과의 갈등에서 자유해야만 누울 수 있습니다. 넷째, 양들은 해충으로부터 자유할 때 누울 수 있답니다. (228쪽)

온갖 잡다한 생각과 자극적인 죄악들에 시험 든 사람이 중독에 빠지고 죄를 범하여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중략) 이것들이 원수 마귀가 집어넣은 해충들입니다. (중략) 바로 그 때 선한 목자 여호와 라아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기름으로 내 머리’를 바르십니다. (목자) 그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입니다. (239-240쪽)

사람의 이름은 다른 사람에게서 더 많이 불려지지만 그 이름의 방향성과 목적은 그 이름의 주인에게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것은 같지만 그 이름의 존재 목적은 바로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친히 이름을 알려주시고, 그들은 그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전하신 능력에 감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신앙을 고백한다.

그래서 저자가 서문에 밝힌대로, ‘그분의 이름을 묵상한다는 것은 우선 그 이름이 드러나고 주어지게 된 특별한 사건과 상황을 가지고 씨름하는 것’(14쪽)을 의미한다.

감히 어떻게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려주신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의 깊이를 더욱 알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책의 부제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지식은 곧 풍성하고 견고한 신앙의 비결이다.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하나님의 능력과 속성에 대해 잘 알고 그에 따라 기도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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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여정 - 인생의 흉년에서 온전한 안식으로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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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 중2병’, 이 모두 청소년기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뉘앙스는 조금씩 다르지만, 혼란스러움, 가치관과 정체성의 갈등을 겪는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는 주로 신체적으로는 2차 성징이 이루어지고, 사회적으로는 학업의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중고등학교 시기와 겹치다보니 이를 진로나 직업의 방향성과 연결 짓는 경우가 많고, 정서적으로는 가족(특히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권위에 대한 갈등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시기는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기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갈등하는 모든 시기는 사춘기적일 수 있다.

이규현 목사님의 근간 『회복의 여정』은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비유인 ‘탕자의 비유’를 통해 인간의 사춘기적 성향에 대해 다룬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은 사춘기적이다…타락한 인간에게 회복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한다(5,7쪽).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의 여러 비유 중 워낙에 유명한 비유라서 비그리스도인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부당하게 자신의 유산을 요구하는 아들, 그 아들을 탓하지 않고 그것이 잘못된 결과를 낳을 줄 알면서도 묵묵히 요구를 들어주는 아버지, 그리고 예상된 결과대로 인생의 쓴맛을 보고 모든 것을 잃은 채로 다시 돌아오는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을 다시 안아주고 품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 이렇게 예수님의 비유는 그 주체가 아들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다시 아들에서 아버지로 귀결된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과 같이,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중심인물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없다면, 이야기가 진행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3쪽)

팀 켈러 목사님도 이에 주목하여 아예 책의 이름은 『탕부 하나님』이라고 지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도 아들의 타락에 주목함이 아니라, 타락한 아들을 기다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인간이 얼마나 타락한 존재이며, 그 타락한 인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한지(1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이 어떠한지(2부), 왜 회개가 필요하며 회개한 자를 하나님은 어떻게 대하시는지(3부), 하나님의 용서란 어떠한 것인지(4부)를 차근차근 다루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는 어느 때보다 인간 자신이 삶의 주인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때일수록 인간의 범죄함을 강조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회개의 시작은 ‘내가 탕자이구나!’라는 탄식이 아닐까? 그래야 회개가 나올 수 있다.

“복음주의 신학자 데이비드 웰스는 ‘회심 없는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은 반드시 회심해야 합니다.” (158-159쪽)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서 회개 이후에 용서가 이루어진다고 하여 이 관계 해결의 키워드가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 모든 과정의 주관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우리를 먼저 용서하십니다.” (181쪽)
“용서받기 위해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것에 대한 반응으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195쪽)

죄의 고백과 용서는 성도의 삶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정이다. 구원을 받았다고 땡!이 아닌 것이다. 눈에 보이는 방황의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늘 여러 삶의 모양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곤 한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용서로 채워지는 것을 또한 경험하는 은혜를 누린다. 그리고 타자의 관점에서 탕자를 바라보면서 정죄하기를 즐기며 하나님께 불만을 제기하는 첫째 아들의 모습도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래서 탕자의 비유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은혜의 메시지이다.

천국은 아버지의 환대가 있는 곳이다. 누구보다 적극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기를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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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정석 - 불확실한 인생길에서의 승리 공식
이기용 지음 / 두란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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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서 『수학의 정석』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늘 집합만 열심히 보다가 말았던 기억이 있는 그 책 말이다. 실제로 ‘수학의 정석’ 책에는 많은 공식과 예제, 응용 문제들이 가득하다. 이것들만 잘 풀어낼 수 있다면 수학 정복이란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정복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책의 문제라기보다는 공부하는 학습자의 의지의 문제에 있을 것이다. (물론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책을 탓하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믿음의 공식을 그저 매몰차게(?)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재훈 목사님의 추천의 글에서처럼 “믿음은 지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내는 사람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직접 말씀하시기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선조들의 삶을 통하여 믿음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여러 모양의 그림으로 응답하신다. 이 책은 그러한 믿음의 여러 그림들의 핵심들을 추려낸 약간의 요약본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믿음의 본질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가졌던 20대의 끝자락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제 큰 인생의 짐을 벗어버리게 된 취업 첫 해에 나는 인생에 가장 큰 믿음의 시련을 겪었다. 내 삶에 펼쳐진 몇 가지 어려움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돌아보았을 때, 그 시간은 또한 나에게 귀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많은 믿음의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찾아왔고, 그 때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 책은 ‘믿음’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4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 믿음의 열매, 믿음의 연단, 믿음의 공식, 믿음의 방향이 그것이다. 믿음은 우리 삶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만드는 씨앗과 같다. 그러나 그 열매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그런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의 진정한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그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아뢸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의 방향 또한 나의 의와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사랑이 향하는 곳,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그 곳을 향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여러 고백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믿음에 관하여 논하는 이 글에서 ‘세계관’을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몇 구절이 있었는데 그 중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요나에 대한 언급이다.

“요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가치관, 고정관념) 때문에 니느웨로 갈 수 없었다.” (73쪽)

믿음은 결국 시선, 관점, 세계관의 문제다. 누구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세상의 중심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는 어떻게, 무엇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 결국 ‘너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 뒤에 나오는 모든 성경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은 결국 ‘너의 세계관을 바꾸라’는 말과 같다.

두 번째는, 믿음에 관하여는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믿음은 지식을 넘어서는 삶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삶의 출발점은 말, 고백에서부터 시작한다. 생각한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행동하기 때문이다. 언행일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지, 말 자체가 중요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가룟 유다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상당히 통찰력이 있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과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한 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 적이 없다. 서기관처럼 단지 ‘랍비여’라는 고백만 했을 뿐이다.” (160쪽)

물론 성경에 나오지 않았지만, 유다가 예수님을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다. 실제로 유다가 한 말이 성경에 많이 기록된 편도 아니다. 그러나 그 기록된 유다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과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을까 싶기도 하다. 결국 예수님에 관한 믿음의 고백 또한,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올바른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올바른 신앙 고백 위에 올바른 믿음의 삶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에 관한 구약의 약속의 말씀과 신약에서의 성취, 예수님께서 직접 밝히신 자신의 사역과 역할, 예수님의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과정들을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묻고 계신 듯 하다. “너도 이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겠니?”

네. 주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 삶의 보좌가 아니라, 그 보좌의 앞자리, 바로 십자가의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보좌에서 내려와서 나의 보좌에 주님을 앉혀드리는 매일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특별히 이 책은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며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고뇌와 하나님을 향한 처절한 질문 가운데 여러 모양으로 응답하신 하나님을 이 책을 통해 만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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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기독교시대 교회 - 왜 교회를 떠나는가, 어떻게 다시 오게 할 것인가
짐 데이비스.마이클 그레이엄.라이언 버지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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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기독교시대 교회 (The Great De-churching) 서평 [짐 데이비스 외 2명 지음, 두란노 펴냄]

“지금 교회는 건강검진이 필요하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탈봇신학교 학장 에드 스테처의 표현이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이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 새삼 와닿는다. 교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공동체 중에 가정과 함께 가장 유기적이고, 신비하며, 민감하다. 마치 우리 몸이 그러하듯이. 삼위일체적으로 보면 교회는 성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성자 예수님의 몸,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런데 그 교회가 지금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는다. 검진의 목적은 문제점의 발견이며, 그 후속 작업은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 교회의 현주소를 사회과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진단하며 신학적으로 대응책을 찾아나간다.

“우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종교적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 이 변화를 짐 데이비스와 마이클 그레이엄은 ‘대규모 탈교회(원제목 the Great Dechurching)’라고 부른다. 사회과학자인 라이언 버지의 도움으로 저자들은 지난 25년 사이에 교회를 떠난 무려 4천만 명의 미국인(미국 성인의 약 15%)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이 교회를 떠난 종합적이고도 상세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13쪽)

사회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이 책은 4가지 유형(명목상 크리스천, 한때 복음주의자, 교회 내 악행 피해자, 유색인종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소수자)의 이탈 교인(적어도 한 달에 1번 이상은 교회에 갔으나, 지금은 1년에 한 번도 교회를 가지 않는 사람)을 분석하고 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난 요인은 유형별로 상이하지만 주된 요인은 다음 몇 가지이다. 워낙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아서 인상적인 구절들을 최대한 추려보고자 한다.

1) 우선순위 :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의 급속한 변화

‘우리의 조사에서 교회를 떠난 주류 복음주의자들은 평균 40세이며, 대부분 코로나19 기간인 2020년 즈음에 교회를 떠났다.’ (87쪽)
‘우리는 사는 지역의 지리적 위치는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의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교회가 이 새로운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을까?’ (270쪽)

2) 불협화음 : 부모세대와의 소통 방식의 부재

‘그들에게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까다로운 질문들에 관해서 고민해 줄 부모가 필요하다. 그들은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할 뿐 아니라 답을 찾는 여행을 함께 해 줄 부모를 원한다.’ (207쪽)

‘이 공동 예배라는 선물을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 선물은 아이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삶 속에서 예배 모임을 중시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나중에 그렇게 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서 예배하는 시간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한다. 공동 예배는 우리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모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221쪽)

3) 믿음과 행위의 불일치 : 진리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교회 공동체
‘우리는 그들에게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복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들이 이전 교회에서 본 복음은 진짜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153쪽)

이 책의 내용은 워낙에 촘촘하게 분석되어 있고 내용도 많은 편이라 전체를 꿰뚫어 말하는 것은 내 수준이 아닌듯하다. 다만 몇 가지 느끼는 바가 있다.

먼저, 미국 사회의 모습에서 옛날 로마 제국의 모습이 엿보인다. 역사상 기독교가 가장 제도화되어 존속된 나라를 꼽자면 단연코 로마 제국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제국의 현대적 버전이 바로 미국이다. 20세기에 이룬 미국의 대내외적 영화가 점차 쇠퇴해 가는 과정이 로마의 그것과 사뭇 닮았다. 이 책에서의 진단과 예측대로 ‘나그네’로서의 기독교인의 삶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곧 올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로는 우리나라가 여러 면에서 미국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성장이 같은 궤적으로 이루어졌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것도 어제오늘의 분석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더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다음세대는 이미 복음화율 3% 이하의 ‘미전도종족’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는 먼저 믿은 자 된 나를 포함한 그리스도인이 이 나그네 인생길에서 적극적인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서문에서 켈러문화변증학센터 대표인 콜린 헨슨이 밝힌 바와 같이 바벨론에서 살지만, 좋은 이웃이었던 다니엘과 같은 역할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어야겠다. 그의 이 말이 내 마음을 울린다.

‘다니엘은 자신이 살았던 곳인 바벨론을 잘 알았다.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 지금 우리는 바벨론에서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 덕분에 언젠가 새 예루살렘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나그네 신세다. 하지만 곧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14-15쪽)

우리나라에도 목회신학연구소에서 여러 데이터들을 취합하고 심혈을 기울여 분석하여 한국 교회의 현재를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될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자료들을 잘 참고하여 교회가 더욱 교회다워질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그러나 이런 통계자료를 제시하는 사람들도 이런 자료를 절대시하지는 않는다. 통계는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의 계획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면 이러한 통계는 한낱 숫자놀음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교회가 당장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교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그 믿음을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신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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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 - 인생의 샬롬을 이루어 가는 21일 묵상
류인현 지음 / 두란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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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지만, 모순적이게도 상실감 또한 가장 크게 느껴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 목회자들은 이 기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죄성’에서 찾고 있다. 하나님과 멀어진 삶의 양식은 결국 그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 뉴욕의 한복판에서 사역하는 류인현 목사님의 책 『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는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사회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저자는 ‘느리지만 행복한 혹등고래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며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안에 속한 공동체에서 누리는 행복, 곧 ‘샬롬’이라고 주장한다. 샬롬이란, 월터 스토프의 정의를 빌리자면 ‘인간이 하나님, 자기 자신, 이웃,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의롭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룸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상태’이다.

그러면 이 샬롬을 우리는 어떻게 이 사회 가운데서 경험하고 누리고 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하나님의 샬롬을 누릴 수 있는 21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21일간의 묵상집 형태를 취하고 있는 『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은혜의 복음’이다. 죄로 물든 인간이 최종적인 샬롬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떠한 행동이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14일 이상을 반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21일간의 묵상집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바쁜 일상 가운데서 심호흡을 하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예수님의 복음을 되새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세 챕터로 이 책을 구분하며 사용한 수식어는 ‘느리게, 행복하게, 소박하게, 풍요롭게, 자유롭게, 용기 있게’이다. 은혜의 복음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이렇게 이끌어가신다. 이 책을 읽으며 존 마크 코머의 『슬로우 영성』이 오버랩되었다. 이 책에서는 ‘예수님의 삶을 경험하려면 그분의 삶의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복음은 지식을 넘어선 삶의 양식이다. 『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는 책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적절한 삶의 양식을 체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안을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한다. 이 단어는 결합하다, 연결되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우리가 주님과 연결될 때에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70쪽)

2024년을 은혜의 복음으로 충만케 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 마음의 참 평안을 찾기를 소망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두란노 #춤추는고래는행복하다 #21일묵상집 #류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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