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배우다 - 리처드 포스터의 마지막 수업
리처드 포스터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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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리처드 포스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의 부제가 내 마음을 이끌었다. 기독교 리더십 중 영성의 분야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분의 ‘마지막’이라면 충분히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폈다. 리처드 포스터는 나와 아내가 지금도 가지고 있는 ‘레노바레’ 성경의 대표 저자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말씀을 적용할 수 있는 영성으로의 초대는 당시 성경을 읽고 묵상하던 나에게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민 마지막 인생의 키워드가 바로 ‘겸손’이다. 솔직히 말하면, 리처드 포스터와 같이 개인의 내면과 영성에 관심을 가지고 훈련을 한 분이라면 ‘겸손’에 대하여 재차 본인에게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는 이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이러므로 내게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47)

죄의 시작은 교만이다. 교만함의 반대가 겸손함이다. 하나님과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의 교만함이 더 눈에 띄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의 삶의 마지막 키워드가 겸손으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까.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를 가지고 있는 그가 미국 북부의 평원 부족이었던 라코타족의 달력을 가지고 1년을 겸손에 대해 묵상하는 책의 구성은 독특하면서도 삶의 통찰을 제시하는 듯하다. 인류 문명의 이기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섭리를 잊고만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진정으로 ‘말씀으로 돌아가는 삶’이란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저자가 사순절에 대한 현대의 관행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대목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평소에 나는 사순절을 둘러싼 현대의 관행을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다. 대개 민망하리만치 하찮은 그 관행이란 커피나 초콜릿이나 기타 똑같이 흔해 빠진 것을 끊는 식이다. 사순절과 관련하여 생겨난 여러 예배 전통들도 내가 보기에는 침울해질 만한 바른 근거도 없이 ‘일부로 침울해지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그래서 진지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은 유혹이 밀려올 때가 많다. 사순절에 나는 기도를 끊을 참이라고 말이다.” (43쪽 중에서)

그러고 보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도를 이렇게 ‘침울해지려는’ 노력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은연중에 많은 것 같다. 겸손=자기 부인 이라는 공식이 때로 너무나 어렵고 힘든 길로만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존 파이퍼 목사님이 강조하듯, 복음의 소식은 정말로 기쁘고 즐거운 일이 아닌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삶에서 침울하거나 수동적이거나 올해 유행했던 영화 제목과 같이 ‘어쩔 수가 없’이 울며 겨자먹기 식 선택지가 겸손은 아니지 않은가. 겸손은 그 무엇보다 사실 자유로운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자아에 매여 있지 않은 놀라운’ 자유다.

겸손이라는 하나의 주제 속에서 예수님이 삶에서 드러내신 많은 성품들을 찬찬히 연결해가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그리고 그것을 라코타족의 달력과 그들이 추구한 성품들로부터 펼쳐나가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라코타족의 열한째 덕목은 ‘찬데유케’, 즉 아량이다. ... 이 라코타어 단어는 ‘마음을 가지다’로 직역된다. ... 라코타족 사회에서 참된 아량은 늘 장려되고 예시되는 반면 재물의 축적은 극구 만류된다.” (190쪽 중에서)

사랑은 방향성에서 그 가치가 드러난다. 내가 사랑의 종착지가 되는 순간 그 사랑은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흘러갈 때 비로소 사랑은 생명력을 가진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정으로 이루어가는 방법이다. 겸손 또한 예수님께서 보이신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분의 겸손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저자의 마지막 권면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보자.
과감히 겸손을 배우자.
마음을 굳게 먹고 겸손을 배우자.
용기를 내서 겸손을 배우자.
긍휼의 마음으로 겸손을 배우자.

#ivp #ivp독서단 #겸손을배우다 @ivp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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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당전쟁과 문무왕 - 강대국과 싸워 승리하는 법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6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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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책이 아주 핫하다.
황윤 작가의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는 ‘일상’과 ‘고고학’이라는 사뭇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단어를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버무려낸 진국이다. 여행은 늘 답사여야 하는 역사 전공자인 나로서는 아주 반가운 책이다. 그간 많은 서평을 통해서도 보았지만, 답사 여행의 길잡이 no.1은 단연코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였는데, 황윤 작가의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도 그 반열에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어느 광고 카피처럼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여행지의 역사 이야기를 스리슬쩍 올려주는 공력이 남다르달까.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작가 특유의 혼자 읊조리는 듯한 TMI는 자못 전문적 역사 지식 가운데 매몰될 수 있는 가독성을 살려주는 감초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번 신간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 의식’을 잘 드러내었다는 점이다. 일단 ‘나당 전쟁’이라는 테마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상당히 신선했고, 그 지역만 방문해서는 알 수 없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전문적이지만 현대적 감각을 유지하는 스토리텔링이 일품이다. 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기나긴 삼국시대의 통일이 왜 7세기에, 그것도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의 손에서 이루어졌을까?’, ‘신라는 어떻게 당나라라는 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는데, 이 책의 이야기와 여행을 따라가면서 그 이유에 대한 좋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16개의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나혼자 ~ 여행’이라는 시리즈 명이 붙지 않은 것도, 나당전쟁이라는 큰 테마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다녀서일 것인데, 그만큼 한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으면서 여행의 묘미를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무열왕, 김유신, 원효, 문무왕 등 통일기를 주름잡은 굵직한 인물들의 삶을 요소요소에 배치해 둔 것도 작가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꼭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덕적도의 밤 풍경과 연천 호로고루 성의 탁 트인 임진강 뷰, 매소성(주장성)에서 들렸던 그 날의 말발굽 소리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7세기 한반도와 21세기의 한반도를 오버랩시켜보는 것은 보너스.

일단 걸어보자. 그러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시리즈도 빨리 읽어보고 싶어지는군. 하하.

#일상이고고학 #나당전쟁과문무왕 #강대국과싸워승리하는법 #황윤 #역사여행에세이 #책읽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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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할 용기 - 주저앉은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라영환 지음 / 두란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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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시 시작할 용기 (라영환 지음, 두란노 펴냄)

📖 p.58
"용기는 두려움에서 생긴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은 두려움이 가득할 때다. 용기는 위대하지만 두려움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넘어 순종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대 사회를 '불안사회'라고들 말한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불안하다. 사람들은 어디엔가 믿고 의지할 구석을 원하는데 '언제 어디서나' 믿을만한 존재는 없다고 여기기에 더욱 불안함을 느낀다. 구속이 없는 존재로서의 자유를 추구하고 갈망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만족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아름다움과 동시에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기독교 신앙은 이 점에서 특이하고 특출나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믿고 의지할 절대적인 대상,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용기는 순종을 요구한다.

청년 멘토이자 유명 강사인 저자는 성경의 여러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우리의 삶에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낙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성경적 해법을 제시한다.

인생은 누구나 한 번 산다. 10대든, 40대든, 70대든 그들의 인생에서 그 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날이다. 그래서 늘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처음이니 자신만만 할 수 없다. 때로는 너무 막막해서 두렵고, 때로는 너무 변변찮은 삶 같아 두렵고, 때로는 너무 혼자같아 두렵고, 때로는 너무 나를 돌보지 못해 두렵다. 하나님은 그런 나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실까? 알고 계신들, 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주실까?

이런 고민들을 때로 할 것이다. 그런 원망이 들 때, 이런 책을 펴 볼 마음이 든다면 두려움을 돌파할 한 줄기 빛이 비추이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 p.70
"참된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용기는 문제를 향해 돌진하는 그런 용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용기는 말씀에 순종할 용기다."

개인적으로 삶을 돌이켜 볼 때,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분명 내가 믿음의 선택을 할 때도 있었다. 모든 상황에 일반화시켜서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제보다 하나님께서 더욱 크신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관건은 그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와닿느냐는 것, 그동안 내가 만나온 하나님이 정말로 그러하다는 것을 삶으로 경험했냐는 것, 또 하나는 내가 그만큼 하나님 앞에 그 문제를 가지고 매달려보았냐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선 많은 성경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오미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노아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인물들의 표현에서 '하나님'을 제외해보자.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을 우리는 배울 수 있을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필요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충분한 응답은 주님 그 자체이시다.

인생의 여러 문제 가운데 고민하고, 때로 기도할 힘도 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숨을 한 번 고르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니,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읽는다면 더 좋겠다.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말이다.

#두란노 #도서협찬 #두란노서평단 #다시시작할용기 #라영환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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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경 형성기 - 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을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이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곽계일 지음 / 다함(도서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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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을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이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의 부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게 만들었다.
‘신경’을 뜻하는 헬라어 ‘심볼론’은 본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상거래를 마치면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거래에 대한 증표로써 나눠 갖는 물건을 의미한다고 한다.(220쪽 인용) 하나에서 여럿으로, 여럿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일치성과 다양성이 신경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도 신경’에는 익숙하다(물론 교단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은 채 타성적으로 외우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 대중적인 사도 신경이 그러할진대 ‘니케아 신경’은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도 역사를 전공하기에 로마의 기독교 공인 과정과 연계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이 책은 니케아 신경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파헤치는데, 그것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약간은 서사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니케아에서 시르미움을 거쳐 콘스탄티노플까지 이어지는 60여 년의 여정은 마치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광야를 빙글빙글 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보는 듯 하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성령의 역사로 초대 교회가 세워지고, 숱한 박해를 이겨내고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해내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과 갈등이 있었다.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성경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가 셋이 되고, 셋이 하나가 되는 신비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명이 완성된 적은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다.

니케아 신경의 형성기는 바로 이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며, 그러한 시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실제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다.

pp.215-216
「니케아 신경」은 성부-성자-성령을 계시한 성경에 대한 해석과 거기서 파생되는 신앙의 요약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성자 예수의 질문에 답한 고백이었으며, 동시에 다른 해석과 고백에 대한 교정이었다.

오리게네스, 아리오스, 아타나시우스, 에우세비오스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주장들을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분별해내기는 쉽지 않다. 또한 신경의 형성 과정은 단순히 신학적이지만은 않으며, 당대 로마 정치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복합적이다. 그러나 그런 점이 어쩌면 세상 권세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이후에도 수많은 공의회와 선언들이 등장하였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더 이상 새롭게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신경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의미가 어떠함을 드러낸다.

니제이 굽타도 「기독교, 로마를 뒤흔든 낯선 종교」(IVP 역간)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다’고 했다. 삼위일체야말로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것, 그러나 은혜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역동적이고도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진수를 누릴 수 있다.

성경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시96:1)고 명령한다. 신경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노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을 믿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선포할 수 있는 신경은 그 의미에 맞게 고백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신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기도문에 기도가 빠지면 주문이 되듯, 신경에도 믿음이 빠지면 한낱 경전의 문장이 되어버릴 뿐이다.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교리와 교리 교육 등에 관심이 있는 교회 교사들은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내용이 다소 어렵긴 하지만 장마다 저자의 친절한 요약과 함께 이해를 돕는 질문이 있어서 함께 독서모임을 하기에도 적절하다 생각된다. 물론 교회사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분이 모임을 인도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니케아신경형성기 #도서출판다함 #곽계일 #니케아신경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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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로마를 뒤흔든 낯선 종교 - 이상하고 위험하고 매력적인 1세기 그리스도인을 만나다
니제이 굽타 지음, 박장훈 옮김 / IVP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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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초대 교회.
현대의 교회가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단어다. 이 단어만 들어도 뭔가 가슴이 뛰고,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구약에 에덴 동산이 있다면, 신약에는 초대 교회가 있다.

일견 합당한 생각일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세상이 보기에 ‘심히 좋았’던 것처럼, 초대 교회는 성령의 역사 아래 역동성이 있는 교회였음에 분명하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두에서는 기독교가 ‘이상한’ 종교였음을 말한다. 제국의 통치 아래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낯설고, 이상하고, 위험했다. 내가 이 책에 끌리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저자가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초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다소 추상적이라는 것을 이 책을 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했다! ... 내가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고 말할 때는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18쪽 중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로마 제국의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왜 다신교를 수용하는 로마에서 ‘유일신교’라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의문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강조한 ‘믿음’의 파급 효과는 비단 종교개혁에서만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현대 문화에서 기독교를 대하는 자세와 로마 제국의 그것이 아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사람들이 보기에 믿을 수 없는 존재를 믿었다. 예배의 형식도 이상했다. ‘5무 교회’라는 키워드가 요즘 핫한데, 그 당시에 로마 사람들에게 기독교도 그랬다. 연기, 피, 제사장, 예배당까지도 없는 종교가 기독교였다. 로마 사람들은 신과 거래를 했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사랑을 입었다. 직업적 제사장이 아니라 공동체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제국의 위계적 신분 질서를 과감히 거부하고 모든 구성원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했다. 그것이 로마인들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졌고, 자신과는 다르면서도 확신에 찬 그들의 태도에 위협감을 느꼈다. 그것이 제국이 기독교를 핍박한 이유고,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최종적으로는 제국의 종교가 된 원동력이기도 했다.

우리는 합리적인 다수의 결정을 지지하던 시대에서 개인의 올바름이 기준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물밑에는 개인의 올바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다수’가 인정하는 역설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진리의 복음 안에서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정신과 강하게 부딪히고 있다. 어쩌면 이 지점이 우리가 견뎌야 하는 박해와 핍박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우려 섞인 표현처럼, 1세기의 그리스도인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는 낯설었고, 이상하고, 위협감을 줄 정도로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회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현실과 타협하고, 전혀 낯설지 않고, 위협은 고사하고 오히려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그래서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때로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이 있었고, 아담과 하와는 그 곳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령의 불같은 임재로 세워진 초대 교회도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그들의 교회는 결국 제국을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지만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약속된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 뒤에는 더 이상의 타락도, 실패도 없을 것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까지 부단히 힘쓰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믿는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힘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들 사역의 출발점이 가정이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가정에게 적잖은 위로와 도전이 될 것이다. 특별히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책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모두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ivp #ivp독서단 #ivp독서단21기 #기독교로마를뒤흔든낯선종교 #니제이굽타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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