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 - 백년 믿음으로 바라본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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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라는 책을 읽었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여서(물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절망 중에 희망을 찾게 되는 계기였다. 그 책이 한국 기독교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교수님 본인의 삶을 토대로 기독교 신앙의 참 의미를 찾아보는 미시적인 책이라고 하겠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 본인이 밝혔듯이, 이 책은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내부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의 신앙에 대한 서술이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같은 위대한 저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모두가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이 서평의 제목으로 인용한, 저자의 서문 제목과 같이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각자가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바로 자기 자신의 주체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기독교 사회의 많은 문제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깊은 문제의식의 빈곤이며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무능력이다. 교회 건물의 크기나 교인 수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26쪽)

나는 교회 지도자들의 무능을 탓하기 이전에 개별 신자들이 자신의 믿음을 세우지 못하고 교회 지도자들을 맹신한 것에서도 문제의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고 남에게 자신의 신앙을 위탁했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의 흐름은 결국 이것에 대한 교수님의 성찰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지(1부), 그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지(2부), 믿음의 삶의 본이신 예수님(3부)과 그 주변의 사람들의 실제 삶은 어떠했는지(4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5부와 6부에서는 참된 신앙을 가진 자로서 살아야 할 삶의 실제에 대해 말한다. 마치 로마서 1~11장과 12~16장이 나누어지듯.

저자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참 공감이 된다.
‘나는 서서히 신앙이란 일생에 걸친 사명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중략) 신앙이란 내 생명보다 더 귀한 무엇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32쪽)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만큼 죽기 위해 이 땅을 사신 분이 없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누구보다 많은 생명(모든 생명이면 참 좋겠다.)을 살리셨다. 이것이 내가 닮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참된 스승은 문제의 답을 찾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 책도 믿음이 무엇인지 답을 제공하고 그것을 주입시키기보다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질문하고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100년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의 옵션이다. 100년을 산다고 꼭 교수님처럼 되겠는가. 예수님은 30년 남짓한 삶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이루셨다.

2021년이 하루 남았다. 매일이 당연히 나에게 주어지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살때가 참 많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인정할 때마다, 내게 주어지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는 더욱 나의 믿음을 주님 안에서 확증하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며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힘쓸 것을 다짐해본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혹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진정한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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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 거하다 - 광야 인생에게 건네는 가나안 일상 ㅣ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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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단순히 광야의 삶을 지나서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 거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이전 두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일반적인 ‘광야’와 ‘가나안’에 대한 성도의 일반적인 인식과 같을지도 모른다. 저자도 그것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래서 첫 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가 꿈꾸는 ‘그런 가나안’은 없다! 라니...
말씀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이 실제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은 아주 생소하면서도 놀라웠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경작지로 사용되는 땅은 전체 면적의 약 3퍼센트가 채 안된다고 한다.’ (28쪽)
‘예수님은 목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중략) 예수님은 목수보다는 석수에 훨씬 가까운 분이셨다. (중략) 이렇게 산은 많지만 대부분이 돌산이어서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곳이 바로 가나안이다.’ (34~35쪽)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은 land of promise가 아니라 promised land다. 하나님이 주기로 ‘약속하신 땅’이지,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약속의 땅’이 아니다.‘ (53쪽)

아... 내가 이제껏 알고 있던 가나안의 이미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깨어짐은 새로운 인식의 시작점이기에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진짜 가나안의 이미지를 정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다.

책을 읽으며 가장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라면 바로 ’광야‘와 ’가나안‘을 구분짓는 것 자체가 그렇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나안이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던 그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며, 오히려 광야의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고, 실제로 가나안 땅에는 광야가 많다는 사실은 결국 광야와 가나안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라는 것이다. 저자도 이것을 실제로 이렇게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광야와 가나안이 뒤섞여 있다‘ (123쪽)
’진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다.‘ (138쪽)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바로 ’성공‘이 아닌 ’승리‘하는 삶이다. 성경에 나온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승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승리한 사람을 영어성경에서는 ’overcome’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뜻은 Victory가 아니다. 잘 견뎌낸 사람들이다.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갈구하며 그것을 힘입어 삶의 여정을 잘 버텨낸 사람들, 믿음을 잃지 않고 떠내려가지 않은 사람들이다. 세상의 성공은 늘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의 삶이 결코 겉으로 보기에 만족함을 주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많지만, 그것이 우리의 진짜 삶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필요를 채우시는 은혜가 있기에 감사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나그네 인생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아니라, 천국이라는 진짜 가나안을 목적지로 두고 이 세상에서 산다. 누군가는 애굽과 같은 눈에 보이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소망하며 살겠지만, 성도는 그곳이 광야인지 가나안인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찬송가의 고백이 얼마나 위대한지! 광야 같은 인생길 속에서도 주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소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길은 위대한 여정이 될 것이다.

아래와 같은 분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 앞길이 보이지 않는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 나는 지금 주님이 주신 약속을 충분히 누리는 가나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은 그리스도인

이 책에는 각자의 상황이 어디인지를 따라 읽어야 할 성경이 다르다고 소개하고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 속에서 어디쯤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승리와 패배를 규정지을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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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말렉과 싸운다 - 나의 옛사람과 반드시 치러야 할 전쟁
이승희 지음 / 두란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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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이 구절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가슴이 뛰는가? 그렇다. 실로 이 선언은 가슴뛰는 선언이다. 마치 8.15 해방의 그 날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 나는 새로운 피조물인가? 나의 삶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내 삶은 달라졌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나의 옛 모습 또한 남아 있다. 그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잘 살아 있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도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을까. 그야말로 인류 최대의 난제다.

이 책은 새롭게 되었으나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것을 ‘아말렉’이라 이름지었다. 성경에 등장한 아말렉 족속의 정체성과 특징에 대해 논하면서 오늘 내 삶에 살아 숨쉬는 아말렉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섬세하게 밝히고 있다.

불신

이 책에서 지적하는 아말렉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불신’이다. 그리고 이 불신은 두려움과 연결된다. 두려워할 이를 두려워하지 않음이 불신의 중심에 있다.

‘아말렉은 우리 속에 있는 불신의 성향입니다. 불신의 성향이 있으면,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이끌어 주셔도 그곳에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43쪽)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를 불신하지 않는다. 자녀가 부모의 품 안에서 만족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자녀가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이 무엇일까? 바로 부모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가장 신뢰하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 자녀는 불안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것을 하나님 대신 의지할텐데 그것이 절대 그를 만족시키거나 안정감을 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신앙이 그를 두렵게 만들고, 그 두려움이 자신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기

아말렉과의 지난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로 저자는 ‘기억하기’와 ‘기억에서 지워 버리기’를 성경 본문을 근거로 말한다. 아말렉이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하라는 메시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적을 알아야 적과 싸울 것 아닌가. 그런데 ‘지워 버리라’는 말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의미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말렉을 기억하는 것은 문제의 예방 혹은 진단이 될 수는 있으나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묵상할 것은 하나님이 되어야지, 아말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날이고(Yesterday is his-story), 내일은 그의 약속을 이뤄가는 것을 누릴 날이며(tomorrow is my-story), 오늘은 그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백성에게 선물로 주신 날이다(today is a God-gift). 그러므로 현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So the present is present).’ (118쪽)

쿵푸팬더의 유명한 대사를 멋지게 바꾼 이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리스도인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근거로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누릴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나의 하루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지팡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도구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비유들이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말한다. 누구의 지팡이냐가 중요하다. 모세가 가진 지팡이는 흔하디 흔한 지팡이였으나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고, 기도함으로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가 가지고 있던 일상의 도구를 새롭게 탄생시키셨다.

나에게 모세의 ‘하나님의 지팡이’와 같은 것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모세가 자신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내고 또한 경험할 것인지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주체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심을 인정할 때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더욱 역사하실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숨쉬며 틈을 타서 공격하는 나의 옛 자아를 살펴보게 되었다. 때로 그것이 상처가 남긴 흉터마냥 내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모습인 듯 여겨질 때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성경은 분명히 이 지긋지긋한 아말렉을 지워 없앨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선한 싸움을 잘 싸워내기를 원하시고, 그러시기에 이 싸움을 이길 힘 또한 주신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의 고백이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축복한다. 아말렉을 기억하자. 그리고 아말렉을 지워 버리자.

구원의 감격을 얻고도 옛 자아, 쓴 뿌리로 인해 온전히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이것이 소모전이 아니라 이미 끝난 전쟁에서 도망가며 끝까지 발악하는 패잔병을 물리치는, 승리를 확정짓는 마지막 전투임을 기억하자. 주님은 참으로 우리의 승리의 깃발, 여호와 닛시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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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새롭게 읽기 -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에서 배우는 기독교 핵심
권해생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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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죽는가?

이 두 가지 명제는 사뭇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육신의 삶이 끝이 아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보내심에 따라 이 땅에 왔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다가, 부르심을 받고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가장 완전한 ‘참 인간’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인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사셨고, 무엇을 위해 죽으셨는지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의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주제는 바로 ‘십자가’다. 이 책의 지은이는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말씀하신 ‘가상칠언’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상칠언

이 책은 가상칠언이라는 주제에 맞게 예수님의 7가지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각 장에서 풀어간다. 구성상의 특징은 단순히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예수님이 언급하신 말씀의 구약적 배경과 함께 그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복음서 및 이후에 기록된 서신서와도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을 따라가다 보면, 구약과 신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핵심이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지은이가 인용한 존 스토트의 표현이 이를 잘 드러낸다.

“만약 십자가가 우리 종교의 중심이 아니라면 우리의 종교는 예수님의 종교가 아니다.” (25쪽)

각 장의 주제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구절들을 충분히 묵상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개요를 밝힌다.

1장 : 임마누엘을 위한 십자가 (마 27:46)
2장 : 희년을 위한 십자가 (눅 23:34)
3장 : 구원을 위한 십자가 (눅 23:43)
4장 : 믿음을 위한 십자가 (눅 23:46)
5장 : 새로운 가족을 위한 십자가 (요 19:26-27)
6장 : 목마름 해소를 위한 십자가 (요 19:28)
7장 : 새 창조를 위한 십자가 (요 19:30)

임마누엘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하자면, ‘임마누엘’이라는 의미가 더욱 확장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인 임마누엘은 주로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서 주로 소개되어왔는데, 사실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라는 것이다.

“사실 임마누엘이라는 주제는 마태복음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도 임마누엘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즉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버림받으신 사건이다.” (32쪽)

이 글을 읽으며 왜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고 말씀하셨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왜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하) 하셨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정말이지 예수님의 삶은 소름돋을만큼 정교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을 한 장의 글로 정리하기에는 나의 지식이나 글솜씨가 너무나 모자란다. 그저 성경의 모든 구절 하나하나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 자체가 성경에서 약속한 언약의 성취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 분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 밖에는.

패러독스

하나를 더 언급하자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주 역설적이라는 것이다. 당대에 가장 끔찍하고 저주받은 형벌이었던 십자가가 사랑의 상징이 된 것, 예수님의 처절한 고통과 탄식의 메시지가 우리에게는 가장 큰 복음의 메시지가 된 것 말이다. 그분의 버림받으심으로 우리가 버림받지 않게 되었고, 그분의 고통당하심으로 우리가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일까? 윤동주 시인의 싯구처럼 예수님은 참으로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 표현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역설을 따라 살아갈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제자도는 곧 십자가의 도다. 예수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마16:24)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러면 그런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그 일. 바로 생명을 위한 사역,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유언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199쪽)

예수님의 초점은 사람에 있었다.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고자 하셨다. 그래서 타락한 창조세계를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그것을 위해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사랑이며,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십자가만이 믿는 자의 바람이요 자랑임을 고백하며 그 길을 따라가고 싶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시작에 이 글을 쓰니 의미가 있다.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가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권해생 #십자가새롭게읽기 #두란노 #두포터11기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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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걷기 - 한민족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임경근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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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차매!

“한국 역사도 교회사적 의미가 있을까?”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소제목으로 담은 질문이다. 이는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나는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전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복음이 들어온 구한 말 이후의 암울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우리 가운데 드러났는지.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복음이 우리 민족에게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교’에 대한 기록이었다.

‘특히 당 시대에는 서양에서 전파된 기독교의 한 분파가 경교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다. 경교는 빛의 신의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있다. (중략) 네스토리우스가 세운 이 기독교 종파는 페르시아에 정착했다가 중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중략) 이때 경교는 당과 활발한 교류를 했던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31-32쪽 중에서)

그리고 함께 제시된 유물은 더 신선한 충격이었다. 불국사 경내에서 발견된 돌십자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공식적으로는 아기를 안고 있는 관음보살상이라 부른다)이 발견된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우리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졌다’는 일반 명제를 성립시키기는 무리겠지만, 기독교가 오래 전부터 동양권에 전해졌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복음을 가진 자로서는 어쨌든 복음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전파하는 것이 의무이지 않을까.

복음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구한 말의 과정은 더욱 스펙타클했다. 내가 대학교에서 배웠던 내용과 겉으로는 같았지만 속 사정이 너무나 달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까지의 그 어느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었던 순간이 없었다. 권서인과 매서인으로 대표되는 성경 번역 및 유입의 과정은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할 만큼의 감동이 있었다. 한국판 부림절 사건은 완벽한 에스더서의 한국어 버전이었다. 한글성경의 번역 과정에서 드러난 한글의 우수성, 네비우스 선교 정책으로 대표되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선교 연합 작전, 교과서에는 한 줄로만 설명되는 개신교 선교사님들의 눈물겨운 의료선교와 교육선교의 스토리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복음’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신사 참배 허용, 해방 이후 정치와 종교의 밀접한 연관 속에 이루어진 교단 내부의 갈등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큰 아픔으로 자리잡았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의 흔적이 아니라 교회의 생존과 번영을 둘러싼 힘의 논리가 우선순위가 되어버린 역사의 상흔이 상당히 안타까웠다. 쉽고 정확하게 설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교단 분열의 역사는 복잡했고, 그 복잡한 만큼 하나님의 마음 아파하심도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미국의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적 선교의 영향으로 종교개혁의 원리 원칙이 적용되지 못한 것이 오늘날 교회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지적은 오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의 제목을 접한 순간부터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교사로서 늘 마음속에 ‘우리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한국 교회가 걸어온 역사가 곧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 그 자체’라는 점이다. 이는 책에서 밝힌 ‘종교개혁적 관점’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날이 좋지는 않았다. 시대는 암울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빛줄기가 비친 날도 있었다. 반대로 교회는 성장하는 듯하나 영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걸어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한민족을 사랑하심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때가 차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한국 교회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제4차 산업 혁명과 코로나19를 겪으며 교회의 전반적인 환경이나 선교전략이 변화의 급물살을 맞이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일도 쉽지 않다.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위기는 곧 새로운 기회라고 하였고, 결국 중요한 것은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 아니라 그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했다. 출애굽을 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펼쳐진 것은 사사기의 혼란스러움과 이스라엘의 분열과 포로 생활이었다. 그렇다면 교회의 역사를 모르는 기독교인, 교회 공동체는 어떨까. 우리에게 역사는 단순한 교양 이상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편 교회, 그리고 개교회에 역사하심을 살펴보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앞으로 걸어갈 믿음의 걸음 걸음을 더욱 의미있게, 담대하게 만들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사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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