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판사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 - 공적 광장에 선 기독교인의 소명
천종호 지음 / 두란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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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과 특수성, 공동체와 공동선
인간사의 모든 문제는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두 가지 명제 아래 나뉜다. 이 둘은 때로 대립적이기도 하고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정치/사회학적으로는 인간 개인의 권리나 자유라는 특수성에 초점을 두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보편적인 체제를 만들고자 하기도 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명제는 인간이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건강한 공동체를 꾸리는데 필수적인 것이 규범인데, 저자인 천종호 판사는 기독교 교회가 이러한 공동체적 규범을 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제인 ‘공동선’에 대한 논의를 이 책에서 펼친다. 공동선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의 대부분은 ‘선’과 ‘공동체’라는 두 개념에 대한 정의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내용 요약
1장에서는 서론으로 공동체와 공동선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인데, 기독교인은 아벨공동체(교회)와 가인공동체(국가)라는 두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 정의한다.

2장부터 6장은 본론에 해당한다. 2장과 3장은 선에 대한 정의, 4장과 5장은 공동체에 대한 정의, 6장은 공동선에 대한 제언으로 구성되었다.
2장은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선이 무엇이며, 선을 상실한 인간이 처한 상황을 신학적, 규범적으로 논증한다. 절대선이신 하나님과의 분리가 곧 악이며 이는 인간 공동체가 연대성을 잃고 개인의 개별성만을 강조하는 차원으로 변질되었다.
3장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의 선 질서의 내용에 대해 말하는데, 공동체의 선은 ‘공동체가 그 구성원 각자가 선을 이루도록 돕기 위한 탁월한 상태’라 정의한다.
4장에서는 저자가 공동체를 두 가지로 명명하는데,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아벨’공동체와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가인’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를 유지/존속하는데 필요한 것이 법이며, 다양한 법의 범주를 설명하며 기독교인이 법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설명한다.
5장에서는 대표적인 공동체의 유형인 가정, 국가, 지역 사회, 교회에 대해 논하며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는 사적 공동체도 아니고 단편 은혜적 공동체도 아니라 ‘공적 통전적 공동체’로, 공적 공동체로서의 성격과 은혜 통합적(일반+특별 은혜)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대표적인 예시로 보아스와 룻이 속한 베들레헴 공동체를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6장은 공동선에 대한 정의와 제언이다. 저자는 공동선을 ‘최고선과의 결합(연합 또는 통합)을 토대로 공동체 구성원 상호 간의 결합(연합 또는 통합) 및 연대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선’이라고 정의하며, 이는 현대의 ‘권리 우선적 사회’가 가지는 대립적 관계를 극복하고 하나님과 성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회복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소감 및 비평
요즘 세계관과 관련된 책을 많이 접하면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재능과 은사를 활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나누는 일에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힘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작업이 교회라는 기독교 공동체를 중심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때 그 효능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인 천종호 판사는 ‘법’이라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야 할 신학적인 접근을 더하여 ‘공동선’이라는 개념으로 이 일에 접근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좋은 예시가 되는 것 같다.

우리의 정체성은 직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속해 있는가에 우선적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신학적인 깊이나 진정성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저자의 박식함을 넘어서서 이런 논의에 이르기까지의 깊이 있는 고민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법이라는 분야가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전문적인 영역이긴 하지만,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법의 근원적인 제정자이자 최종적인 완성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성경도 ‘구약과 신약’이라는 언약(이것도 규범적인 개념이다)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성도가 하나님과 성도 간에 어떤 연합을 이루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별히 다원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 긴장 관계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공적 광장’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동선의 개념은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물론 이 책은 공동선에 대한 구체적인 용례나 제안보다는 그 개념적 정의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이것이 논의의 시작임을 의미한다. 이는 법학자의 몫만이 아니라 아벨공동체에 속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며 가인공동체와의 연대를 실제로 이루어 가야 할 세상의 모든 ‘빛과 소금’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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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집사의 큐티 감사 일기
홍애경 지음 / 두란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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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바야흐로 영적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영성(靈性,Spirituality)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과연 우리의 영성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아니 개발이 가능한 것이기는 할까?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의 차이점 중 하나가 이 영성에 대한 시각일 것이다. 물론 기독교도 영성에 대한 신장 혹은 깊이에 대한 추구가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실력 향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진짜 기독교적 영성을 추구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실력의 향상보다는 나의 실력 없음을 인정하게 되고,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에 힘쓰며, 심오한 진리를 깨닫기보다는 그 진리가 내 안에서 살아 숨쉬게 되어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기를 원하는 것이 기독교적 영성이다.

그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다. 저자는 장성하여 결혼을 앞둔 딸을 하나님 품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 딸을 잃은 상처가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원망하면서 오히려 그 상처는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증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증하였듯이. 저자는 이 말씀을 붙드는 큐티야말로 가장 달콤한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임을 고백한다.

말씀을 묵상하는 이들은 많다. 이 분도 큐티에 대한 고백 그 자체만을 보면 별다를 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다르다. 저자는 자신의 어떤 내공을 전혀 자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묵상해야 됩니다.’라고 외치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독자를 은근히 압박하지도 않는다. 말씀 묵상을 정말 잘하는 전문가라는 인상보다는 말씀 묵상을 정말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찐 팬’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더 그녀의 고백이 와닿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신부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주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는 큐티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소망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야말로 주님과 완전히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

요즘 우리 교회 공동체에 ‘감사일기’가 한참 유행이다. 한 철 유행이 아니라 계속되는 성령의 불길이기를 바란다. 말씀을 읽고 아는 기쁨이 자기 의가 되지 않게 하는 중요한 비법이 감사다. 감사는 나의 것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누릴 수 있음에 기인한다. 저자의 큐티 고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든 큐티의 고백 맨 마지막에 위치한 이 문장이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날이다.’

이 ‘그래서’라는 말이 얼마나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종종 우리 공동체 감사일기 고백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맥락인데,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의 하나의 관용어구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일견 이해가 된다. 왜냐면 우리의 감사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감사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것은 감사가 아니라 합당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헤쳐나온 풍랑 감사’라는 복음송의 한 구절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삶의 실제 고백을 요구한다. 믿는 것이 아는 것보다 중요하지만, 그 ‘믿는다’고 고백하는 대로 실제로 살아내는 삶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그 시작이 감사다. 삶이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즐거워야 할 이유는 한참을 생각해야 나오지만, 힘들고 슬퍼할 이유는 너무도 찾기 쉬운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날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좋은 습관과 훈련이야말로 우리가 길러야 할 영성이 아닐까.

#행함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성경의 선포는 나 같은 모태신앙인에게는 너무나 두렵고 떨림이 되는 말씀이다. 왜 모태신앙인은 온실 속의 화초같은 존재 같을까.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큐티가 예수님의 신부됨을 위한 첫걸음이라면, 감사는 그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저절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내면의 변화, 시각의 변화일 것이고, 전도는 외적이고 실천적이고 직접적인 행함이 될 것이다. 구원은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과 관련이 있지만, 천국은 혼자 누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쉽지 않다.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영성에 대한 내 개념을 다시 재정립하게 된다. 이 책이 큐티에 대한, 말씀 묵상과 이해에 대한 전문적인 책은 절대 아니지만, 어떤 책 보다 영성이 깊어져가는 삶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충분히 말씀을 묵상하고, 충분히 감사의 제목을 일상에서 찾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전도의 영역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각자의 은사가 있을 것이므로 공식이나 법칙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겠다.) 교통사고가 난 날에도 견인차 기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쁨’이 저자에게는 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도전이 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술술 읽힌다. 저자의 겸손한 고백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그러나 이 책대로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 내 삶으로 실천한 만큼 책을 읽으라고 하면 채 10쪽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큐티를 은혜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내가 받은 은혜대로 솔직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다짐을 해본다. 주님은 다른 누군가의 삶을 따라 가기보다 주님을 닮고 따라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좋은 도전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말씀 묵상을 하고 싶지만,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분들. (특히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묵상을 두려워하고 있는 분들)
- 말씀 묵상과 일상의 삶의 연결점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
- 전도에 대해 부담감만 많이 가지고 있는 분들

이 책을 통해 나와 진리의 말씀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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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 시카고 암 전문의가 만난 뜻밖의 하나님
채영광 지음 / 두란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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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예배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성도가 함께 모여 드리는 공예배와 가정과 일터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 이 두 가지는 구분되지만 실상은 연결되어 있다. 공예배는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영적 공급원이 되고, 삶의 예배는 공예배에서 얻은 은혜와 감사를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장이 된다. 오늘 소개할 책,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는 이 삶의 예배의 자리를 아름다운 꽃자리로 만들고 있는 의사 채영광 교수님의 이야기이다.

의사, 미국 대학병원 교수라는 직함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채워진 책의 제목처럼 책을 읽노라면 그의 스펙(spec)보다는 사람을 향한 사랑과 애통, 위로의 마음만이 가득 전해진다. 의술은 기술(skill)만이 아니라는 것은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향기와 같다. 환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의사, 아니 환자가 먼저 그에게 기도를 요청할 수 있을 만큼 환자를 ‘환자’가 아닌 귀한 한 ‘사람’으로 대우할 줄 아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는 강한 도전을 받는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런 삶이 가능한가?’라는 일종의 중압감이 주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특별함이 아닌,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부어짐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사실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날 제자들 생각을 하다가 내 안에 사랑이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39쪽)

‘나는 우리가 일 또는 장소로 부르심을 받았다기보다 관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는다. 마음의 안식을 주는 관계가 우리 회복력의 원천이 된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 속에서 환자가 안식을 누리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80쪽)

의사에게 환자가 있다면, 교사에게는 학생이 있다. 의사와 교사가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환자를 돌보고, 학생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나는 나의 제자들을 채 교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학생의 아픔에 공감하고 기도해줄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 부족한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내 안에 성령님이 주시는 사랑이 없이는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결국 나를 살리는 것은 ‘기도’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도 모임을 통해 연구실에 기도의 불꽃을 피우고, 북클럽을 통해 자신의 동료와 제자들을 주님의 제자로 키워내며, 병원을 질병의 치료의 장소를 넘어 마음과 영혼을 회복하는 장소로 업그레이드시킨 교수님의 능력은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임을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왜 채 교수님이 크리스천 의사로서의 정수를 보여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심금을 울린 ‘그 청년 바보의사’ 故 안수현 선생님의 배턴을 이어받는다는 평가를 받는지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공감하게 될 것이다. ‘시카고 바보의사’가 써 내려가는 시카고 사도행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가기를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두란노 #서평 #채영광 #당신을위해기도해도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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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어떻게 쓸까요? - 그리스도인의 돈을 다스리는 태도
임은미 지음 / 두란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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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모을 돈도 없지만) 나는 돈을 잘 모으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니, 돈을 잘 쓰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1주일 단위로 용돈을 받으면 용돈의 거의 대부분을 화요일 이전에 써버리곤 했다. 용도는? 친구들과 함께 간식을 먹는데 썼다. 그걸 아는 내 친구들은 항상 월요일과 화요일에 내 주변에 많았다. ㅎㅎ

흥청망청 써버리는 것은 물론 곤란하지만, 나는 ‘얼마를 벌 수 있을까?’ 혹은 ‘얼마를 모을 수 있을까?’에 대해 가치를 두지 않고 살아왔다. 나 혼자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함께 유익할 수 있는 데 돈을 얼마나 쓸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나에게 ‘부하지도 않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삶을 허락해 주셨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가장 육적인 것이지만, 성경에도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할 만큼 가장 영적이기도 한 이 돈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선교사님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간증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나님, 어떻게 쓸까요?’가 이 책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인에게 돈은 수입과 소유의 목적이 아니라 소비에 있다는 것이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고이 묵혀 둘 수 없고 흘려 보내야 하듯이, 돈도 마땅히 흘려보내야 한다. 내게 허락된 것은 모두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 아래 이런 태도가 가능하다.

두 번째는 이를 위해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것을 살까요 말까요’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돈의 사용법을 고민하고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선교사님의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의 원칙이 그런 점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십이조는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고 사용하고, 십삼조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쁘게 하는 데 쓴다는 것이다. 이는 비율의 문제라기보다는 태도의 문제다. 십이조와 십삼조의 원칙을 통해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을 마땅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도구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번 달에는 누구를 도와 주어야 하나 하고 이웃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33쪽)
‘오늘도 내가 십삼조를 통해 맘몬을 다스리고, 돈을 다스릴 수 잇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56쪽)

나는 이제껏 나의 삶에서 나를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 그 은혜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하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나의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나의 가진 것을 흘려 보내며 살아가기 원한다.

재정에 관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원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분량이 길지 않고, 선교사님의 삶의 간증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딱딱한 원칙보다 더 마음을 울리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 책에 인용된 중국 속담이 기억에 남는다.

‘꽃을 건넨 사람의 손에는 꽃향기가 남는다.’
무언가를 갖기 위해 손을 꽉 쥐기보다 손을 펼쳐서 향기를 떨치는 삶을 살고 싶다.

#하나님어떻게쓸까요 #두란노 #임은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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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듣다 걷다 -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어령 지음 / 두란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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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려면, 명사에서 동사로 – 이어령 지음, <먹다, 듣다, 걷다> 서평

내가 저자를 알게 된 것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으나 회심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가 가진 지성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성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모든 지식 위에 뛰어난 것이 하나님의 지혜다. 요즘에는 ‘꼰대’라는 말이 보여주듯 과거의 경험과 연륜으로 얻게 된 지식의 경륜을 다소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형석 교수님이나 이어령 교수님과 같은 분들의 혜안을 잘 본받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제 하나님 곁으로 떠난 저자의 메시지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있는 시점에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보통 글을 쓸 때는 본론과 결론을 쓰고 마지막에 서론을 쓴다. 본론과 결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도입부의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의 가장 핵심, 엑기스는 주로 여는 글에 있다. 그리고 나서 ‘어?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글을 읽게 된다. 이 책에서도 서론의 진가가 잘 드러난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대부분 명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예수님은 인간 가운데 우리의 일상 현실 속으로 성육신하시고 그로써 역사의 일부가 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생애는 대단히 역동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지요.’ (6~7쪽)

이제껏 교회는 ‘영생’, ‘빛’, ‘소금’ 등 예수님의 가르침을 압축적인 명사로 규정하게 되어 단지 도덕적인 덕목 중 하나로 축소되기 쉬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을 저자는 ‘먹다’, ‘듣다’, ‘걷다’의 세 가지 동사로 제시하고 있다.

먹는 것, 듣는 것, 걷는 것은 인간 생활에서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인간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이 변질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세계에서 많은 것이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뒤틀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어느 때보다 풍족하게 먹고 있으나 많은 이들이 풍요 속의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고, 먹고 주리지 않는 영의 양식은 취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의 내용 중에서는 ‘최후의 만찬과 혼밥’이라는 주제가 상당히 신선했다. 그래! 주님도 혼밥을 한적은 없지 않은가? 먹는 것은 단순히 육신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 이상의 문화적인 의미가 있고, 예수님은 이 먹는 것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또한 듣기보다 보기를 즐겨하여 스피커(speaker)는 많지만 리스너(listener)는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외로움에, 우울증에 시달린다. 많은 현대인이 내면에 임재해야 하는 성령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에서처럼,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걷다’는 사라지고 ‘타다’가 대체하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는 지적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수님은 평생 지구 한 바퀴를 돌만큼을 걸어다니셨다는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할 제자로서 나는 얼마나 실제로 걷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지를 돌이켜본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땅을 딛고 실제로 걸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현대인은 온전히 대지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며 맨발로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참 현대인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먹고, 듣고, 걷는 것’이라니. 어쩌면 너무 실없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까?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교제’라고 하니, 이 기본적인 삶의 패턴이 본질을 회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회복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될까?

교회의 사역이 생명력을 잃었다고들 평가한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하신 사역이 대부분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듣고, 함께 걸어갔음을 기억한다면 교회가 충분히 이를 따라해봄이 어떨까. 나도 내 삶의 영역에서 함께 먹고, 함께 듣고, 함께 걷기를 애써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는 분
- 이어령 교수님의 저작에 관심이 있는 분
-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기독교의 본질에 관심이 있는 분
- 지성과 영성의 접점을 찾고 싶은 분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예수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듣고, 걷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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