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집사의 큐티 감사 일기
홍애경 지음 / 두란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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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바야흐로 영적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영성(靈性,Spirituality)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과연 우리의 영성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아니 개발이 가능한 것이기는 할까?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의 차이점 중 하나가 이 영성에 대한 시각일 것이다. 물론 기독교도 영성에 대한 신장 혹은 깊이에 대한 추구가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실력 향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진짜 기독교적 영성을 추구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실력의 향상보다는 나의 실력 없음을 인정하게 되고,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추구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에 힘쓰며, 심오한 진리를 깨닫기보다는 그 진리가 내 안에서 살아 숨쉬게 되어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기를 원하는 것이 기독교적 영성이다.

그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다. 저자는 장성하여 결혼을 앞둔 딸을 하나님 품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 딸을 잃은 상처가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원망하면서 오히려 그 상처는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확증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증하였듯이. 저자는 이 말씀을 붙드는 큐티야말로 가장 달콤한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임을 고백한다.

말씀을 묵상하는 이들은 많다. 이 분도 큐티에 대한 고백 그 자체만을 보면 별다를 것 없어 보인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다르다. 저자는 자신의 어떤 내공을 전혀 자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묵상해야 됩니다.’라고 외치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독자를 은근히 압박하지도 않는다. 말씀 묵상을 정말 잘하는 전문가라는 인상보다는 말씀 묵상을 정말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찐 팬’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더 그녀의 고백이 와닿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한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신부를 꿈꾸게 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주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는 큐티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소망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야말로 주님과 완전히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

요즘 우리 교회 공동체에 ‘감사일기’가 한참 유행이다. 한 철 유행이 아니라 계속되는 성령의 불길이기를 바란다. 말씀을 읽고 아는 기쁨이 자기 의가 되지 않게 하는 중요한 비법이 감사다. 감사는 나의 것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누릴 수 있음에 기인한다. 저자의 큐티 고백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든 큐티의 고백 맨 마지막에 위치한 이 문장이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날이다.’

이 ‘그래서’라는 말이 얼마나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른다. 종종 우리 공동체 감사일기 고백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맥락인데,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의 하나의 관용어구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일견 이해가 된다. 왜냐면 우리의 감사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감사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것은 감사가 아니라 합당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헤쳐나온 풍랑 감사’라는 복음송의 한 구절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삶의 실제 고백을 요구한다. 믿는 것이 아는 것보다 중요하지만, 그 ‘믿는다’고 고백하는 대로 실제로 살아내는 삶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그 시작이 감사다. 삶이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즐거워야 할 이유는 한참을 생각해야 나오지만, 힘들고 슬퍼할 이유는 너무도 찾기 쉬운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날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좋은 습관과 훈련이야말로 우리가 길러야 할 영성이 아닐까.

#행함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성경의 선포는 나 같은 모태신앙인에게는 너무나 두렵고 떨림이 되는 말씀이다. 왜 모태신앙인은 온실 속의 화초같은 존재 같을까.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큐티가 예수님의 신부됨을 위한 첫걸음이라면, 감사는 그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저절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내면의 변화, 시각의 변화일 것이고, 전도는 외적이고 실천적이고 직접적인 행함이 될 것이다. 구원은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과 관련이 있지만, 천국은 혼자 누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쉽지 않다.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영성에 대한 내 개념을 다시 재정립하게 된다. 이 책이 큐티에 대한, 말씀 묵상과 이해에 대한 전문적인 책은 절대 아니지만, 어떤 책 보다 영성이 깊어져가는 삶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충분히 말씀을 묵상하고, 충분히 감사의 제목을 일상에서 찾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전도의 영역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각자의 은사가 있을 것이므로 공식이나 법칙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겠다.) 교통사고가 난 날에도 견인차 기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쁨’이 저자에게는 존재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도전이 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술술 읽힌다. 저자의 겸손한 고백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한다. 그러나 이 책대로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 내 삶으로 실천한 만큼 책을 읽으라고 하면 채 10쪽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큐티를 은혜대로 하면 된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내가 받은 은혜대로 솔직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다짐을 해본다. 주님은 다른 누군가의 삶을 따라 가기보다 주님을 닮고 따라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좋은 도전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말씀 묵상을 하고 싶지만,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분들. (특히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묵상을 두려워하고 있는 분들)
- 말씀 묵상과 일상의 삶의 연결점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
- 전도에 대해 부담감만 많이 가지고 있는 분들

이 책을 통해 나와 진리의 말씀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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