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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듣다 걷다 -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어령 지음 / 두란노 / 2022년 3월
평점 :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려면, 명사에서 동사로 – 이어령 지음, <먹다, 듣다, 걷다> 서평
내가 저자를 알게 된 것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으나 회심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가 가진 지성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성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모든 지식 위에 뛰어난 것이 하나님의 지혜다. 요즘에는 ‘꼰대’라는 말이 보여주듯 과거의 경험과 연륜으로 얻게 된 지식의 경륜을 다소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형석 교수님이나 이어령 교수님과 같은 분들의 혜안을 잘 본받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제 하나님 곁으로 떠난 저자의 메시지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있는 시점에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보통 글을 쓸 때는 본론과 결론을 쓰고 마지막에 서론을 쓴다. 본론과 결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도입부의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의 가장 핵심, 엑기스는 주로 여는 글에 있다. 그리고 나서 ‘어?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글을 읽게 된다. 이 책에서도 서론의 진가가 잘 드러난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대부분 명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예수님은 인간 가운데 우리의 일상 현실 속으로 성육신하시고 그로써 역사의 일부가 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생애는 대단히 역동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지요.’ (6~7쪽)
이제껏 교회는 ‘영생’, ‘빛’, ‘소금’ 등 예수님의 가르침을 압축적인 명사로 규정하게 되어 단지 도덕적인 덕목 중 하나로 축소되기 쉬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을 저자는 ‘먹다’, ‘듣다’, ‘걷다’의 세 가지 동사로 제시하고 있다.
먹는 것, 듣는 것, 걷는 것은 인간 생활에서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인간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이 변질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세계에서 많은 것이 문명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뒤틀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어느 때보다 풍족하게 먹고 있으나 많은 이들이 풍요 속의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고, 먹고 주리지 않는 영의 양식은 취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의 내용 중에서는 ‘최후의 만찬과 혼밥’이라는 주제가 상당히 신선했다. 그래! 주님도 혼밥을 한적은 없지 않은가? 먹는 것은 단순히 육신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 이상의 문화적인 의미가 있고, 예수님은 이 먹는 것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또한 듣기보다 보기를 즐겨하여 스피커(speaker)는 많지만 리스너(listener)는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외로움에, 우울증에 시달린다. 많은 현대인이 내면에 임재해야 하는 성령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에서처럼,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걷다’는 사라지고 ‘타다’가 대체하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는 지적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수님은 평생 지구 한 바퀴를 돌만큼을 걸어다니셨다는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할 제자로서 나는 얼마나 실제로 걷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지를 돌이켜본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땅을 딛고 실제로 걸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현대인은 온전히 대지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며 맨발로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참 현대인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먹고, 듣고, 걷는 것’이라니. 어쩌면 너무 실없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까?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교제’라고 하니, 이 기본적인 삶의 패턴이 본질을 회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회복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될까?
교회의 사역이 생명력을 잃었다고들 평가한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하신 사역이 대부분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듣고, 함께 걸어갔음을 기억한다면 교회가 충분히 이를 따라해봄이 어떨까. 나도 내 삶의 영역에서 함께 먹고, 함께 듣고, 함께 걷기를 애써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는 분
- 이어령 교수님의 저작에 관심이 있는 분
-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기독교의 본질에 관심이 있는 분
- 지성과 영성의 접점을 찾고 싶은 분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예수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듣고, 걷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