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출간 20주년 200쇄 기념) - 그래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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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을 3번 읽었다. 20대 때 처음, 결혼 후 러시아 비전트립을 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두 번째, 그리고 출간 20주년과 무려 200쇄(!)를 기념하여 새로 개정판이 나와서 이번이 세 번째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은 그 이유가 있다. 여러 번을 읽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게으름’이라는 은밀하지만, 반드시 물리쳐야 할 대적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며 변화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이 책은 뼈를 때리는 맞는 말의 향연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삶의 지향점을 잘 실천하고 있음을 책을 읽는 곳곳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글에 더 힘이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게으름을 단순히 삶의 태도의 한 측면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게으름의 반대가 바쁨도 아니다. 게으름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죄’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영어권 제목이 『Busy for self, Lazy for God』이다. 저자는 게으름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게으름은 단지 삶의 태도가 아니라 방향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분주하게 살아도 거룩한 목표가 없다면, 그것은 게으른 삶입니다. (중략)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바쁘게 사는 것은 부지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게으른 것입니다.” (39-40쪽)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을 저자는 잠, 열정 없음, 교만 등을 제시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잠이다. 20대 때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찔렸던 부분이 바로 잠이었다. 단순한 피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버거운 문제들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잠을 선택하곤 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한 가지 비유를 읽으며 헛웃음을 지었는데, 내용을 소개해 본다.

“하루에 한 시간씩만 필요 이상으로 수면을 취한다면, 1년이면 365시간이고 10년이면 2,650시간입니다. 그 시간이면 4년제 대학을 두 번 졸업하여 두 개의 전공을 마치고도 약 200시간이 남습니다.” (156-157쪽)

여기서 핵심은 시간이 아깝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라는 전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의 필요와 이유를 제시해 주셨다. 그것이 바로 사명이다. 이 사명을 다하면 우리는 천국으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지기로서의 삶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을 성실하게, 가능하면 최선을 다하여 유능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소개한 조지 휫필드의 명언은 나의 마음을 울린다.

“나는 썩어서 죽느니 닳아서 죽겠다. (중략) 사명을 다하기 전까지 우리는 죽지 않는다.” (122쪽)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어 바쁜 일상을 살지 말아야겠다. 푯대를 향하여 나의 달려갈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믿음의 경주자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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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말하다 - 우리가 꿈꾸는 그 가정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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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은 말씀 안에 있다. 성도가 말씀을 읽는 주체가 되는 것이 종교개혁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비로소 말씀은 성도 안에 거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난 지금에는 제2의 종교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실제로 얼마나 살아내는가에 있다.

특히 코로나를 거치면서 기독교인의 민낯이 드러났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그간 얼마나 삶의 예배가 부족했었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어떤 프로그램이나 부서별 모임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의존하던 것이 무너지게 되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짚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가정’이다.

이 책은 결혼, 부부의 역할, 자녀 양육, 가정과 교회의 역할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모든 주제의 핵심에는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첫 번째 공동체’임에 있다. 오늘날 인본주의, 개인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이 부분이 얼마나 흐려졌는지 모른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이미 현대인의 선택지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이 세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충분한 진단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결혼제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명령하신 바임을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아주 중요하다.

‘결혼이란 무엇일까요? 결혼은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제도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문화나 사회적 관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성한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13쪽)

하나님께서 결혼을 허락하신 이유는 진정한 연합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셨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에 대해 한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리고 이것은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이어진다. 이것은 복음이 개별 가정만을 위한 ‘가족 이기주의’가 아님을 보여준다. 가정 안에서 복음이 제대로 채워질 때, 그것이 교회와 공동체로 흘러갈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부부의 진정한 연합과 상호 복종, 비판이 아닌 용납을 통해 가정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녀 양육 또한 가능함을 말한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자녀는 노여워한다. 그리고 자녀가 성장하면 교회를 떠나고 복음을 등지게 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는, ‘이것을 내가 모르는 건 아니다.’일 것이다. 가정의 회복은 지식의 여부에 있지 않다. 얼마나 그것을 위해 내 마음을 쏟고 기도하며 나를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죽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가정 안에서, 특히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부부 톡톡(talk talk)’이라는 코너를 매 과 끝에 두었다. 전체적인 구성도 4개 분야 16과로 나누어져 있어 결혼예비학교나 신혼부부를 포함한 부부 소그룹 사이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워크북의 형태를 띄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으셨다. 그래서 끊임없고 진실한 소통 가운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음 받았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듯이, 부부 간의 연합도 대화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가정으로는 모든 것이 채워질 수 없다. 복음은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열쇠이다. 건강한 가정이 교회 내에 세워질 때, 이 축복의 기름은 교회 공동체 전체로 저절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혹 가정에서 상처를 받거나 버림받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 회복되고, 또 그것이 새롭게 건강한 가정을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영적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삶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역이나 활동들보다 먼저 영적 가족으로 깊은 교감을 나눠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만 드리고 흩어지면 안 됩니다. 가족 공동체의 맛은 모여서 삶을 나눌 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공동체로 살아가야 합니다.’ (206쪽)

게리 토마스는 영성을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 정의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이 태초에 계획하신 가정 안에서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배우자를 열렬히 사랑함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맛볼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며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내의 교제를 통해 우리 몸 속에 흐르는 피보다 더 진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본질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에서부터 가정은 변화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역설한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사랑을’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어거스틴의 말은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와도 일치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이미 우리 가정에, 교회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모든 교회 공동체 구성원이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좋겠고, 특별히 예비부부나 신혼부부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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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에게 - 끝을 기억하는 삶, 진정한 오늘을 살다
토드 빌링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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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런데 이 죽음은 인간이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고, 경험한 사람에게 어떠한 증언도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미지의 세계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의도적으로 이 죽음의 영역을 우리 삶에서 격리시키고 있다. 그 결과 죽음은 이전보다 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청객이 되어 버렸다. 인류의 그 무엇보다 불편한 진실인 죽음,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신학자이자 선교사이면서, 다발성골수종이라는 불치성 암 말기 환자인 저자는 그에게 서서히 다가오는―그러나 실상은 인류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오고 있는―죽음에 대해 논하고 있다.

책의 내용 요약

죽음에 대한 첫 번째 고찰은 ‘스올’이라 불리는 히브리 전통에서 시작한다. 이는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자들에게도 스올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성전’의 정 반대 개념 즉, 하나님이 부재하시다 인식되는 장소나 상황이다. 유대교 학자 존 레븐슨은 이 대비를 이렇게 설명한다.

“스올에서 성전으로 이동하는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성전 바라보기를 갈망하는 것은 생명 자체를 갈망하는 일이다.” (45쪽)

그렇다면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학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죽음이란 하나님의 자비를 알아가게 하는 교훈적 성격이 있다는 이레나이우스의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은 죄의 결과로서 불합리한 참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인간의 삶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오히려 이러한 죽음에 대해 어떠한 관점으로 정의를 내리려는 발언권을 포기할 때, 우리 대신에 죽음을 맛보신 구원자가 필요함을 바라보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토록 우리 곁을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죽음을 인간 문화에서 의도적으로 격리시켜 버렸다. 이런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가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에도 아주 많이 퍼져 있다. 이것은 아주 큰 문제다. 죽음의 문 앞에서 의사가 목사를 대체했고, 인공호흡기가 기도서를 대신했다.

“죽음을 부정하는 예전에 맞추어 살다 보면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 매번 새롭게 호흡하는 일에서도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고 죽음 앞에서도 유일한 소망이신 생명의 주님을 철저히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진실을 회피하게 된다.” (178쪽)

저자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 즉 죽음의 기술로 알려진 기독교적 전통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아르스 모리엔디 전통을 회복하려면 제자도에서 일생의 특징인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지닌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죽어 가는 이들과 접촉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할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죽어가는 이들을 알게 되는 것을 환영하고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자녀들을 장례식에 데려가는 일을 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죽어 가는 이들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우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성경은 밝히 말하고 있지 않다. 신약의 여러 부분에 언급된 내용에 의하면 우리의 육신은 부패해도 개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를 통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암시하거나 분명히 가르치는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흥미로운 증언들이 현대 사회에 차고 넘친다. 1975년 레이먼드 무디가 그의 책 『다시 산다는 것』에서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신약학자 스캇 맥나이트는 그의 책 『천국의 약속』에서 임사체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임사체험에 근거하여) 천국에 대해 말하는 많은 내용에 회의적이다. (중략) 임사체험은 무덤 너머의 삶에 대한 안내문으로서 신뢰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체험이 아니라 죽음 ‘이전’ 또는 죽음에 ‘임박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277쪽)

결국 내세에 대한 소망 중 가장 신뢰할 만한 원천은 천국에서의 가족 상봉이나 임사체험이 아닌 성경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심과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이다.

죽음에 대한 고찰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진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천국은 영원히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다. 이것을 희미하게 구약 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으로 경험했다. 예수님은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의 상인들을 쫓아내신 후, 자신이 죽음과 부활 가운데 친히 성전이 되실 것을 선언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일까? 시편 주석가 피터 크레이기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극도로 짧다. 그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모든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의 목적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354쪽)

감상평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죽음을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100세 시대를 외치며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외침은 많지만,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 죽음의 기술, ‘아르스 모리엔디’를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소유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이것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슬픔을 상쇄시켜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삶과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를 우리 삶에서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깊은 슬픔과 좌절을 느낌과 동시에 소망을 품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얼마 전 교회 공동체의 사랑하는 집사님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삶과 죽음에 대해 내가 어떤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장례식의 과정을 통해 느낀 분명한 사실은 이 죽음의 문제를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경험해내느냐는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이 문제를 누구보다도 슬픔 가운데, 그러나 소망을 잃지 않고 함께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본인도 죽음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책을 집필하였다는 점에서 한 구절 한 구절이 와닿았다. 절대 쉽게 쓰여진 책이 아님을, 단순히 자신의 신학적, 지식적인 견해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제된 지식이나 교리로 죽음의 문제로 슬픔을 당한 이들의 감정을 재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좌절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줄 뿐이다. 질병과 죽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지만, 기독교의 본질은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있다. 그리고 그 삶을 함께 누릴 우리의 자세가 최종적인 결론이다. 그래서 ‘스올’에서 시작한 책의 주제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을 사모하는 예배자의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공동체성경읽기를 하며 시편의 진면목을 더욱 알아가고 있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이 이 스올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은 반드시 감사로 마무리되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여겨지는 그 스올에서조차 하나님의 역사는 그치지 않았음을 그들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가 죽는다. 그러나 믿는 자는 다시 살아난다. 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아르스 모리엔디’를 습득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그분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함께 즐거워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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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람을 찾으라 - 홀로 세상에서 깊고 친밀한 관계로
제니 앨런 지음, 이석열 옮김 / 두란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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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人間’이라는 한자어 표현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가장 큰 질환도 바로 이 관계 맺기에 실패함에서 비롯된다. 제니 앨런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전작 『당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라』를 통해 인간 내부의 ‘생각’을 점검할 것을 제안했는데, 『당신의 사람을 찾으라』에서는 외부적 요소인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책 역시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개인이 취해야 할 태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이전작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단지 개인의 생각과 태도를 취함을 넘어서서 보다 적극적으로 ‘친밀한 관계 맺기’에 나섬으로서 외로움이라는 문제에 맞설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이 외로움이라는 현대인의 지독한 문제가 인류 역사에서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이 산업 혁명기 이후인 아주 최근의 일이며, 현대인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사실은 아주 예외적인 삶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의 형성과 누림이 오늘날에는 잘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사회가 구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의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이를 실천하기를 요구하며 제안하는 저자 역시 이 외로움의 문제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음을 이 책에서는 고백하고 있다. 본인이 뼈저리게 겪은 아픔이기 때문에 이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더욱 공동체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회에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 책의 표현대로 현대 사회에서 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사람은 더 많은 자원이 생길수록 더 많은 벽을 쌓게 되요. 그리고 더 많이 외로워져요.” (73쪽)

이는 비단 미국 사회만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상은 더 외로움을 가중시킬 뿐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만이 이 공동체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천국이 이 완성된 공동체의 모델임에는 분명하다고 힘 주어 말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50명 이내의 소규모 공동체임을 말하면서, 이러한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로 5가지를 제시한다.

• 근접성 : 관계를 구축하려면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 투명성 : 마음을 절대로 다치지 않은 채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다.
• 책임감 : 골치 아프더라도 함께여야 한다.
• 공유된 목적 : 함께 살고 함께 일하면 유대감이 생긴다.
• 지속성 : 갈등은 건강한 관계의 일부이다.

바꿔 말하면, 이 5가지의 결핍이 현대 사회의 단면이다. 우리는 대부분 익명성이 보장된 대도시에 살면서, 자신의 정보를 철저히 숨기면서 살아간다. 책임보다는 권리를 내세우며, 개인의 만족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애쓴다. 관계는 필요에 따라 임시적이거나 일회적이다. 이러한 것을 ‘자유’롭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가치는 정반대이다.

“성경은 개인에게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함께 신앙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다.”(53쪽)

저자인 제니와 타샤가 나누는 이야기에서 공동체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러한 공동체를 살기를 꿈꾸는가? 이 책을 통해 그 답을 찾아 나가기를 원한다.

“제니, 우리는 공동체 안에 함께 있어. 삶, 패배, 승리, 슬픔, 코로나 바이러스 등 모조리 다 그 안에서 겪어.” (250쪽)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관계 속에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고 지내는 사람
• 새로운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 마땅한 곳을 찾고 있는 사람
• 누군가 나에게 연락을 주지 않을까 마냥 기다리고 있는 사람
• 주변에 관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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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승리 - 사랑은 절대 지지 않는다
이성조 지음 / 두란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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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 책은 로마서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는 1-8장의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복음이 삶에 끼치는 능력을 설명하고 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한 권사님의 고민과 기도, 그 응답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발달 장애가 있는 셋째가 늘 기도의 제목이었지만, 믿음으로 잘 양육된 줄 알았던 첫째, 둘째 아들의 방황으로 인해 믿음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권사님과의 상담 과정에 자연스럽게 로마서에 담긴 복음의 능력이 묻어나온다.

1부는 로마서 1-3장의 내용을 토대로 복음의 능력을 정의한다. 저자는 능력을 뜻하는 세 영어 단어로 의미를 분석한다. 타고나거나 습득된 개인의 능력인 Ability, 어떤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의지력, 끈기 등을 의미하는 Capacity, 이 둘은 제한적이며 무한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을 다 포함하고 초월하는 것이 바로 Power다. 사람들은 이 능력을 소유하고자 하지만, 진정한 힘의 근원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힘의 근원을 그리스도인들은 진리, 복음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복음의 능력을 소유하려는 ‘믿음’을 ‘마음 근력’으로 지칭한다.

“믿음은 자기 신념이나 자기 확신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한 자에게 주어지는 마음의 근력이다.” (92쪽)

2부는 로마서 4-6장의 내용으로, 마음 근력이라 불리는 이 믿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며 아직 보이지 않거나 흐릿하게 보이는 것을 붙잡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인내를 수반한다. 인내를 뜻하는 헬라어 ‘휘포모네’가 의미하는 바, 인내란 이것저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를 붙잡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 고뇌가 가득한 인간이 이것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이것이 ‘이미 끝난 싸움’이며, 우리는 이미 옛 사람이 십자가 아래 ‘장사된 자’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우리 인간의 가장 본질적 질문을 ‘Who are you?’에서 ‘Whose are you?’로 바꾸어 놓는다.” (145쪽)

3부는 로마서 7-8장의 내용을 근거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인이 풍성한 사랑의 능력으로 승리하라는 권면이다. 옛 율법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법 아래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라 말한다. 그러나 이 능력의 근원은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종종 인용하는 ‘합력하여 선을 이룸’의 의미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영어 성경(NIV)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를 ‘In all things God works for good’으로 번역한다. 주어는 하나님이다. God works, 즉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이루시는 선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 섭리라는 것이다.” (211-212쪽)
소감 및 비평
신약성경 중 가장 읽기 어려운 책을 두 권 꼽으라면 대부분 로마서와 요한계시록을 말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난해한 상징이 많고, 로마서는 교리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성경의 주제가 그렇겠지만 이 두 권의 성경 역시 공통점이 있다. 위로와 평안을 주기 위함이다.

로마서를 ‘상담’이라는 뼈대 아래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분명 로마서가 복음의 중요한 교리적인 부분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교리라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을 살리고 세우기 위한 복음적인 적용이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복음의 능력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뿐 아니라, 이미 믿고 있는 자에게도 동일하게 (어쩌면 계속해서 더욱) 발휘되어야 함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게 된다.

저자가 지칭한 ‘마음 근력’이라는 표현이 맘에 든다. 심리적, 정신적인 영역에서 병든 이가 어느 때보다 많은 이 시대에 필요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마음 근력의 근원이 결코 인간 내부에 있지 않음을 이 책은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증명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음 근력은 믿음의 또 다른 이름이며,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내 능력(ability or capacity)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power)을 힘입어 생긴다.

이것이 나 개인에게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절망의 수렁에 빠진 현대인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본문에서 인용된 에리히 프롬의 표현대로 ‘자기라는 감옥에 빠진’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결코 나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제거됨이 아니라 오히려 참 자유를 누리는 삶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내가 누구인가?’가 아닌 ‘나는 누구에게 소속되었는가?’라는 것이다.

부모님이 등 뒤에서 든든히 버티고 있는 자녀는 안정감을 느낀다.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운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그런 것이다. 이 책의 표현대로 사랑은 상황에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상황, 특정 인물에게만 미치는 편협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고백하고 그 분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은혜다.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평소 로마서를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교리적인 책이라고 생각했던 분
- 삶의 문제를 성경 안에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방안을 고민하는 분
- 복음의 능력이 삶에 실제로 미치는 과정을 알고 싶은 분

한탄을 감탄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삶의 문제 가운데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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