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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양장)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22년 9월
평점 :
우리는 대도시에서 왔다. 밤새 여행한 것이다. 엄마는 눈이 빨개졌다. 엄마는 커다란 골판 상자를 들었고, 우리는 각자 작은 옷 가방을 하나씩 들었다. 아버지의 대사전은 너무 무거워서 우리 둘이 번갈아가며 들었다.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5년에 걸쳐 쓴 이 소설들의 원제목은 <커다란 노트(Le Grand Cahier)>(1986), <증거(La Preuve)>(1988), <세 번째 거짓말(Le Troisieme Mesonge)>(1991)이다.
이 세 작품은 각각 독립적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세 작품을 동시에 번역, 소개하면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하에 3부로 나누어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세 작품을 한 책으로 읽는 독자들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 퍼즐을 풀어 가면서 끊임없이 내가 잘 읽고 있는 거 맞나?라는 의구심으로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건 2014년도 발행본이다.
표지가 에곤 실레의 그림을 연상시키듯 굉장히 강렬했고 표지 느낌만큼이나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이름의 철자 순서만 다른 쌍둥이 형제 루카스(Lucas) 와 클라우스(Claus)의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처절한 인생에 대한 얘기로만 기억했다.
2022년 양장본으로 표지가 바뀐 까치 출판사의 책을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기억이란 알 수가 없구나. 이런 내용도 있었나?' 다소 황당한 느낌도 있고, 읽는 시점과 횟수에 따라 느낌도 많이 다를 수 있구나.'라고 또 한 번 경험한다.
소설 <나이팅게일>의 시대 배경과 일치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즉,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전쟁이 한창인 시대라는 것이다.
전쟁으로 쌍둥이 형제는 '마녀'라고 일컫는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진다. 할머니의 거침없은 욕설과 매질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에게 뺨 때리기와 혁대 매질을 행한다. 맷집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고작 5-6살 된 남자아이들이 벌이는 일이라니 충격이었다. 할머니를 골탕 먹이기 위해 황당하고 못된 짓도 서슴없이 하지만, 힘들게 일하는 할머니를 보고 불쌍함이나 연민이 아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온갖 일을 거둔다. 이것만 보더라도 둘의 캐릭터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전쟁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어디서도 배울 길이 없자 이 둘은 가져온 아빠의 사전과 성경 책, 문구점에서 거래해온(그렇다, 이 작은 아이들이 문구점 주인과 거래를 한 거다) 종이와 연필로 서로에게 가르치며 성경도 읽고 각자의 글을 써서 서로에게 첨삭지도도 해주며, 외국어 사전으로 공부한 몇 주 후 외국어를 술술 말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볼 수 없도록 쓰기를 계속해 나간다. 쓰는 행위를 통해 삶을 견디고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둘의 캐릭터는 독보적일 뿐 아니라 천재에 처세술도 뛰어난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 얘기들이 황당하게 들리는 게 아니다, 감탄하며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게 한다.
아이들한테 자백하라고 이가 부러지도록 매질을 하는 해방군, 몇 년 만에 돌아온 아빠는 고문으로 손톱이 다 빠졌고 여기선 살 수 없다며 국경을 넘으려고 한다. 그런 아빠를 제물로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고 루카스는 남는다.
한 몸과 같던 형제 클라우스를 국경으로 떠나보내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모를 겸비한 미소년으로 성장한 루카스 강강 약약의 대표적인 캐릭터라 할 만하다.
어린 소년이지만 충분히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간다. 본인의 삶을 훌륭히 끌어 나갈 뿐 아니라 안쓰러운 타인도 스스럼없이 돕는다. 야스민과 마티아스가 그러한데, 불구인 아이를 내가 원하는 걸 강압적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읽기를 좋아하는 루카스는 검열로 일반 책은 몰수가 되고 있는 암담한 현실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클라라를 알게 되는데 책을 좋아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루카스, 읽을 책이 없는 루카스는 도서관 여자에게서 책을 얻는다(들킨다면 여자는 수용소로 보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정치적인 이유로 교수형을 당한 터라 심신이 불안정하다. 그런 그녀를 루카스는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분신과도 같은 반쪽과 이별한 루카스와 클라라, 영혼이 닮아있는 둘은 서로 끌린다.
3부는 클라우스의 이야기이다.
정말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얘가 쟤인가? 아님 걔인가?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어라.
아빠가 사랑한 여인 안토니아로 인해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삶은 완전히 다른 길로 향하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고 착각한 아들 루카스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자신과 함께 있고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하는 아들 클라우스가 아니라... 비극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읽게 되는 흥미진진함. 재미있다. 그러나 불편한 묘사도 많다. 처음 읽고 난 후 기억에 전혀 없던 부분들이 마구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서 2011년 스위스에서 영면했다. 그녀의 이 3부작 발표로 인해 또 다른 동유럽의 작가 밀란 쿤데라에 비교되는 주목받는 작가가 된다. 단 시간 내 20여 개국에 출판되는 조용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네이버 작가 소개
전쟁통에 젖먹이 아기와 사전을 가방에 품고 탈출한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낮엔 프랑스어로 밤엔 헝가리어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각색해 흥미진진한 소설을 쓴 이야기꾼이다.
그 소리는 음악처럼 즐거웠고, 편안했다. 어머니의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정원의 티티새 노랫소리, 베란다의 포도넝쿨 잎사귀와 안마당에 있는 호두나무 가지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또한 그랬다. - P593
"당신은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에요. 나를 사랑해야 할 사람은 우리 엄마예요. 그런데 엄마는 루카스만 사랑해요. 당신이 잘못해서." - P614
"죽은 사람들하고 떠난 사람들하고는 한 가지 차이밖에 없어. 그렇지? 죽지 않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루카스가 말했다. - P339
그들은 살인을 하고, 복권을 시키고, 사과를 하고 있어. 토마스는 이미 죽었는데! 그들이 그를 되살려낼 수 있을까? 그들이 백발이 된 내 머리를 다시 까맣게 만들 수 있을까? 미쳐버릴 것 같은 불면의 밤들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 P348
"당신은 왜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소?"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로 결정했거든요. 완전히 분리되기로 했던 겁니다. 국경만으로는 부족해서, 침묵까지 지켰던 거지요." - P454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가장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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