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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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은 1900년대 초반, 기차가 들어서고 깊숙한 숲에서 벌목 일을 하며 살아가는 로버트 그레이어는

거대한 역사의 중심을 지나간 인물은 아니다. 대형 산불로 인해 아내와 딸을 잃게 되는 상실을 경험한 평범한 철도 노동자이다. 주인공의 슬픔을 설명하며 감정을 크게 흔들기보단, 상실 이후에도 계속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줄 뿐이다.

중간까지는 이 소설이 왜 이리 유명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혐오하는(혐오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소아 성범죄자에게는 쓰겠다.) 소아 성범죄자의 이야기가 나와서 덮을까? 잠깐 생각도 했지만 참고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라져 가는 미국 개척 시대의 끝자락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이 독특한 이유는 현실과 환상이 희미하게 섞여있다는 점이다.

읽다 보면 분명 현실 이야기인데도 어딘가 꿈속 같고, 전설 같기도 하고, 기억처럼 흐릿하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기차의 꿈'인 걸까?

늑대 소녀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상실이 만들어낸 환영인지 끝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레이니어는 그 늑대소녀에게서 잃어버린 딸의 흔적을 본다. 그래서 이 장면은 현실이라기보다, 상실이 만들어낸 기억의 잔상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기차의 꿈>이라는 제목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대와 사람들을 향한 희미한 기억의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큰 사건으로 독자를 흔드는 소설이 아닌 한 인간의 희미한 생애와, 사라져 가는 시대의 풍경을 꿈처럼 흘려보낸다. 그리고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천천히 바라보게 된다.

증기기관차, 벌목 노동, 황량한 자연, 외딴 숲속에서의 삶, 근대화가 밀려오며 이런 풍경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데, 그레이니어는 그 흐름 속에 남겨진 채 시대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본 사람이다.

늑대와 코요테가 밤새 쉬지 않고 울어댔다. 수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으니, 그레이니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많은 짐승들이 내는 소리였다. 어쩌면 올빼미, 독수리 같은 다른 짐승도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 어떤 동물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틀림없이 산 꼭대기와 능선에서 모이강을 내려다보는 동물 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녀석들이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울어대는 것 같았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짐승들이 그 무엇도 달랠 수 없다는 듯이. 그레이니어는 감히 잠을 자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징조 같아서였다. 어쩌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경보일 수도 있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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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 ★★★★★










악마가 찾아왔을 때, 나는 세상을 발아래에 두고 있었다. 겨우 손바닥 한 뼘 너비 난간 위에 맨발로 올라서서 까마득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머리카락을 흩어 놓는 살벌한 바람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쿵! 쿵! 쿵!

문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내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


강력한 프롤로그만으로도 단숨에 깊게 몰입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심리상담사인 지수는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무너진 마음이 다시 보통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자부심로 살았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결코 예상 못했기에 그 이후의 삶 또한 전혀 염두해 둔 적이 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철저히 파괴시키는 범죄자들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단하는 일은 과연 정당한가?

현대인은 살면서 무수히 많은 안타까운 범죄와 사건들을 접한다. 그러나 모든 사건의 범죄가자 피해자와 대중이 흡족할 만한 처벌을 받는것은 아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타인에게 일어난 사건조차 분노하게 되는데, 만일 그 사건의 희생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면 어떨까?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이 맴돌았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정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묻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극단적 사건 앞에서 인간의 관념과 윤리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 따라 정의의 기준조차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간만에 굉장히 잘 짜인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재미나게 읽었다.

윤미주의 말이 맞았다. 세이프 타운은 정말 천국이었다. 너무 은밀하고 아늑해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천국. - P177

"그래도 이건....... 이러면 안되잖아요!"

"왜 안 되는데?" - P144

원망이나 증오도 중독과 같다. 굳은 의지가 없다면 용서나 망각으로는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 P155

결국 의도가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선의의 정의조차 상대적이며 악인들도 자기가 옳은 일을 한다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이야기의 방향이 뒤바뀌었다
- P332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선과 악은 경계가 모호하며, 어느편에 설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악마가 찾아왔을 때, 도망갈 것인지,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악마 그 자체가 되어버릴 것인지도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다만 그런 선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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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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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건 장편이건 재미있다면 다 좋아한다.

어떤 단편집들은 가끔 도대체 이 소설이 무얼 말하려고 하는 거지? 애매하고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기호의 이 단편 소설집은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잘 써주셨으니 걱정은 No No ~~

삶의 편린들을 예리하게 잘 잡아내 어떤 편에서는 공감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느 편은 또 폭소가 터져 나와 얼굴에 붙이고 있던 스킨 시트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ㅋㅋㅋ


**우리에겐 일 년 누군가에겐 칠 년**

딸이 엄마에게 선물한 봉순이. 먼저 떠난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반려견.

친구처럼 가족처럼 든든히 의지하던 봉순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법규에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처리하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딸.

결국, 봉순이를 묻을 구덩이를 파내는데, 이때 나누는 둘의 대화가 울컥하게 한다.


** 한밤의 뜀박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흔히 겪는 층간 소음. 혹시 무서운 일이라도 일어날까? 했는데 다행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너는 카프카, 나는 야누흐**

살다 보면 별의별 황당한 일이 일어나기 마련. ㅎㅎ

지하철 수사대에 끌려오게 된 주인공, 맞은편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손에 든 책이 낯익다.

헤어진 옛 연인을 생각나게 하는 책표지.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켜고 최대한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몇 장의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Black comedy?

그 외 귀촌 한 아버지가 보내준 토마토에 얽힌 <두고 봐라>, 깜찍한 꼬마 아이들의 거짓말 <개골개골>, 아내의 출산 과정을 그린 <아아아아>는 정말 너무 재미있어 한 밤중 책 읽다 박장대소가 얼마 만인지.

이런 얘기 계속 써주세요. 작가님~~

웃픈 이야기 <5월 8일생> 과거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소용없다는 말> 어쩜 이렇게 재미나게 잘 쓰시는지 그래서 이기호 작가의 팬들이 많은가 보다.

** 이런 분께 추천(★★★★★)

- 유머속에 담긴 날카로움이나 진솔함을 찾는 분

- 일상에 담긴 작지만 깊은 공감을 원하는 분

- 재미난 책 찾으시는 분 누구나


민수는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할머니 앞에서 최선을 다해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1302호 남자의 아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밝은 표정이었다. 민수는 말없이 그 아이의 표정을 따라 지으며 자신의 딸 또한 저런 표정으로 자라나길 속으로 바라보았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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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고양이
이성민 지음 / 풍백미디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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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책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20통의 편지를 엮어 만든 책이다. 그동안 읽어 왔던 책들 중 감명받았던 문학작품을 삶과 연결해 사유하는 글을 편지 형식으로 썼는데, 젊은 시절의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써 내려간 말들엔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저자는 대학시절 야학을 시작으로 논술강사, 대안학교 및 초등학교 교사, 대학 강사를 하며 지도를 하다 보니 말하기보다 잘 들어주던 어른의 이미지와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았고, 그 과정에서 어린 영혼들과 대화 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문학작품 속 인물과 사건을 오늘의 현실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설명하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거론한다. 

그러나 단순 책 소개가 아닌, 문학을 통해 삶과 사회의 결을 천천히 들여다 보며 깊은 사유를 전한다.

이미 읽어 본 작품도 다수 있어서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고,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은 새롭게 읽어 보고 싶은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목차를 보면 어떤 작품들이 다루어지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이 있다. 바로, 박경리와 박완서를 비교한 부분과 백석 시인의 후반부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백석 시인하면 광화문 거리를 활보하던 청년기 시절의 잘생긴 모던보이를 흔히 떠올린다. 짧지만 가장 빛나던 시절이다.

이후 그는 고향인 평안도 정주로 돌아 가서 삶을 이어가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선 어쩔 수 없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 체제 하에서 그의 삶을 크게 달라졌다.

백석은 아동은 아동답게 순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 그 당시는 천리마 운동이 한창이던 시대의 사회주의 혁명 앞에서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결국 그는 터무니없는 검열에 걸려 한반도에서 제일 높고 추운 삼수갑산으로 귀향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양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했다.

그는 84세로 세상을 떠날 때 무려 37년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그의 시에 대대 가해졌던 비판을 보자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체 그 당시엔 어떤 시를 써야 했던 걸까?

메'돼지

곤히 잠든 나를
깨우지 말라.
하루 온 종일
산'비탈을 감자밭을
다 쑤셔 놓았다.
소 없는 어느 집에서
보습 없는 어느 집에서
나를 데려다가
밭을 갈지나 않나!

비판 : "남의 감자밭을 쑤셔 놓고도 그것을 장한 일이나 한 줄 생각하여 이러쿵저러쿵하는 자를 조소하는 자를 강하게 역점을 찍어주지 못한 데 그 결함"(리원우 작가동맹 아동문학분과 위원장)

시인으로 시집을 내고 잡지 창간하고 편집에 힘쓰던 사람, 러시아 통역과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던 사람을 서투른 농사일에 양을 키우게 하다니 게다가 그는 굉장히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했다고 하는데 죽을 때까지 삶이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무척 가슴 아픈 일이다.

또, <삼국지>,<수호지>,<서유기>에 대한 부분도 독특한 해석이 있어 신선했는데,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저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해석을 덧붙인다. 이 부분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는 편이 좋겠다.

왜 제목이 <문학 고양이>일까? 궁금했는데 그 의미도 인상적이다. 고양이는 호기심과 탐구를 상징하고, 편지를 쓰는 고양이는 어린시절 책을 통해 세계를 탐험하던 저자 자이며, 편지를 받는 고양이는 그 세계로 초대 받은 아들이라고 한다.

문학 작품을 편지 형식으로 풀어 설명하기 때문에 학술적 해설서보다 훨씬 읽기 편하다는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독서가
 - 독서 방향을 넓히고 싶은 사람
 - 문학을 좋아하지만 어렵게 느끼는 사람
 - 문학적 사고를 키우고 싶은 10~20대
 -자녀와 독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부모
 -문학을 삶과 연결해 읽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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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2026-03-28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자 이성민입니다~^^ 여름정원님의 글을 읽으니 그 편지를 썼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감사드립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양장)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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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도시에서 왔다. 밤새 여행한 것이다. 엄마는 눈이 빨개졌다. 엄마는 커다란 골판 상자를 들었고, 우리는 각자 작은 옷 가방을 하나씩 들었다. 아버지의 대사전은 너무 무거워서 우리 둘이 번갈아가며 들었다.

비밀노트 첫 문장 (P9)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5년에 걸쳐 쓴 이 소설들의 원제목은 <커다란 노트(Le Grand Cahier)>(1986), <증거(La Preuve)>(1988), <세 번째 거짓말(Le Troisieme Mesonge)>(1991)이다.

이 세 작품은 각각 독립적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세 작품을 동시에 번역, 소개하면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하에 3부로 나누어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세 작품을 한 책으로 읽는 독자들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 퍼즐을 풀어 가면서 끊임없이 내가 잘 읽고 있는 거 맞나?라는 의구심으로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건 2014년도 발행본이다.

표지가 에곤 실레의 그림을 연상시키듯 굉장히 강렬했고 표지 느낌만큼이나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이름의 철자 순서만 다른 쌍둥이 형제 루카스(Lucas) 와 클라우스(Claus)의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처절한 인생에 대한 얘기로만 기억했다.


2022년 양장본으로 표지가 바뀐 까치 출판사의 책을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기억이란 알 수가 없구나. 이런 내용도 있었나?' 다소 황당한 느낌도 있고, 읽는 시점과 횟수에 따라 느낌도 많이 다를 수 있구나.'라고 또 한 번 경험한다.


1부 <비밀노트>

소설 <나이팅게일>의 시대 배경과 일치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즉,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 전쟁이 한창인 시대라는 것이다.

전쟁으로 쌍둥이 형제는 '마녀'라고 일컫는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진다. 할머니의 거침없은 욕설과 매질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에게 뺨 때리기와 혁대 매질을 행한다. 맷집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고작 5-6살 된 남자아이들이 벌이는 일이라니 충격이었다. 할머니를 골탕 먹이기 위해 황당하고 못된 짓도 서슴없이 하지만, 힘들게 일하는 할머니를 보고 불쌍함이나 연민이 아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온갖 일을 거둔다. 이것만 보더라도 둘의 캐릭터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전쟁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어디서도 배울 길이 없자 이 둘은 가져온 아빠의 사전과 성경 책, 문구점에서 거래해온(그렇다, 이 작은 아이들이 문구점 주인과 거래를 한 거다) 종이와 연필로 서로에게 가르치며 성경도 읽고 각자의 글을 써서 서로에게 첨삭지도도 해주며, 외국어 사전으로 공부한 몇 주 후 외국어를 술술 말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볼 수 없도록 쓰기를 계속해 나간다. 쓰는 행위를 통해 삶을 견디고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둘의 캐릭터는 독보적일 뿐 아니라 천재에 처세술도 뛰어난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 얘기들이 황당하게 들리는 게 아니다, 감탄하며 뒷이야기가 궁금해지게 한다.

아이들한테 자백하라고 이가 부러지도록 매질을 하는 해방군, 몇 년 만에 돌아온 아빠는 고문으로 손톱이 다 빠졌고 여기선 살 수 없다며 국경을 넘으려고 한다. 그런 아빠를 제물로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고 루카스는 남는다.


2부 <타인의 증거>

한 몸과 같던 형제 클라우스를 국경으로 떠나보내고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모를 겸비한 미소년으로 성장한 루카스 강강 약약의 대표적인 캐릭터라 할 만하다.

어린 소년이지만 충분히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간다. 본인의 삶을 훌륭히 끌어 나갈 뿐 아니라 안쓰러운 타인도 스스럼없이 돕는다. 야스민과 마티아스가 그러한데, 불구인 아이를 내가 원하는 걸 강압적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읽기를 좋아하는 루카스는 검열로 일반 책은 몰수가 되고 있는 암담한 현실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클라라를 알게 되는데 책을 좋아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루카스, 읽을 책이 없는 루카스는 도서관 여자에게서 책을 얻는다(들킨다면 여자는 수용소로 보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정치적인 이유로 교수형을 당한 터라 심신이 불안정하다. 그런 그녀를 루카스는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분신과도 같은 반쪽과 이별한 루카스와 클라라, 영혼이 닮아있는 둘은 서로 끌린다.


3부 <50년간의 고독>

3부는 클라우스의 이야기이다.

정말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얘가 쟤인가? 아님 걔인가?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어라.

아빠가 사랑한 여인 안토니아로 인해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삶은 완전히 다른 길로 향하게 된다.

엄마는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고 착각한 아들 루카스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자신과 함께 있고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하는 아들 클라우스가 아니라... 비극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읽게 되는 흥미진진함. 재미있다. 그러나 불편한 묘사도 많다. 처음 읽고 난 후 기억에 전혀 없던 부분들이 마구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서 2011년 스위스에서 영면했다. 그녀의 이 3부작 발표로 인해 또 다른 동유럽의 작가 밀란 쿤데라에 비교되는 주목받는 작가가 된다. 단 시간 내 20여 개국에 출판되는 조용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네이버 작가 소개


전쟁통에 젖먹이 아기와 사전을 가방에 품고 탈출한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낮엔 프랑스어로 밤엔 헝가리어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각색해 흥미진진한 소설을 쓴 이야기꾼이다.


그 소리는 음악처럼 즐거웠고, 편안했다. 어머니의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 정원의 티티새 노랫소리, 베란다의 포도넝쿨 잎사귀와 안마당에 있는 호두나무 가지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또한 그랬다. - P593

"당신은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에요. 나를 사랑해야 할 사람은 우리 엄마예요. 그런데 엄마는 루카스만 사랑해요. 당신이 잘못해서." - P614

"죽은 사람들하고 떠난 사람들하고는 한 가지 차이밖에 없어. 그렇지? 죽지 않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루카스가 말했다. - P339

그들은 살인을 하고, 복권을 시키고, 사과를 하고 있어. 토마스는 이미 죽었는데! 그들이 그를 되살려낼 수 있을까? 그들이 백발이 된 내 머리를 다시 까맣게 만들 수 있을까? 미쳐버릴 것 같은 불면의 밤들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 P348

"당신은 왜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소?"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로 결정했거든요. 완전히 분리되기로 했던 겁니다. 국경만으로는 부족해서, 침묵까지 지켰던 거지요." - P454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가장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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