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본 베네치아 (Anna Bon di Venezia, c.1739~1767)

하프시코드 소나타 G단조 (Harpsichord Sonata in G minor, Op. 2 No. 1)

 

 

 작곡연도로 보아 이 곡은 베네치아가 18세 무렵쯤에 작곡한 작품이다. 동시대 이탈리아의 거장인 스카를라티,

스페인의 솔레르의 소나타 등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품과 우아한 기교가 넘친다.

   

'마리안느(마르티네스)'의 작품에 대한 음악학적 수용은 여성 작곡가의 업적을 경시하는 문제에 관한 한 얼마

나 의식적인 역사의 왜곡이 수십 년 동안 진행되어 왔고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는가에 대해 매우 흥미로

예를 보여준다' 

아르놀트 베르너-옌젠, '음악의 역사' p. 421 

 

 위 인용문은 여성 작곡가 마르티네스(Marianne von Martinez, 1744~1812)를 통해 '여성 작곡가'란 것이 얼마

나 무시ㆍ외면 당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클라라 슈만 외에는 잊혀지다시피 한 이전 여성 작곡가들의 음악들이 나름 활기를 띠고 녹음되고 있는데, 이는

여성의 권위신장(페미니즘)과 새로운 레퍼토리 발굴이라는 점, 신진 연주자들에게 녹음 기회 부여 등 여러 요소

가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또한 왜곡된 인식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작곡

이란 남성의 전유물이며, 여성은 창작된 것을 재현하는 능력만을 지녔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즉, 음악사에 주로

등장하는 여성 음악가들이 가수나 연주자라는 점을 들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점은 분명 오해이다. 작곡가였

던 인물들은 그릇된 편견이 가미된 역사 의식에 의해 수없이 지워졌으며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이 뛰어나다/아니다는 문제가 아니고 단지 '여성'이라는 점만이 부각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20C 이후 여성의 음악활동은 그 범위가 넓어졌고, 요즘은 여러 여성 작곡가들이 다양한 창조적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권위적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과거의 인물들도 덩달아 재조명을 받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다양하게 논의와 재평가가 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바로크나 고전시대로 되돌아가보면, 오페라, 협주곡, 오라토리오 등의 큰 규모 작품들을 남긴 인물들도 있으나,

그 당시 여성이 작곡을 한다는 것은 일부 '특권층'의 지적활동 정도로 비춰졌기 때문에 대다수의 풍족하지 못한

인물들이 대규모의 작품을 남긴다는 것은 어려웠다. 즉, 먹고 살기도 어려운 통에 직업으로 작곡을 해봤자 여성

이라는 이유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취미로 작곡을 하자니 지나친 사치였던 것이다(연주자를 겸하는 인물들은

그나마 나았다).

 그 당시는 하프시코드(쳄발로, 클라브생)가 음악을 하는 집안 입장에서야 집에 무조건 있을 정도로 흔했다. 집에

서 취미로 연주하기도 하고, 작곡가들에게는 필수적인 악기였다. 또한 여성들도 문화와 교양을 위해서라면 기본

적인 연주정도는 해야했기 때문에 이 악기는 자연스레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재 새로이 발굴되는 여성 인물

들의 곡들을 보면 건반악기 작품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크와 고전시대 중 괄목할만한 건반(하

프시코드 / 피아노) 작품을 남긴 여성 작곡가들을 거론해보면 다음과 같다.

    

밑줄은 성(姓) 

 

엘리자베스 클로드 자케 드 라 게르 (Élisabeth-Claude Jacquet de la Guerre, 1665~1729)

엘리자베타 드 감바리니 (Elisabetta de Gambarini, 1731~1765)

안나 본 베네치아 (Anna Bon di Venezia, c.1739~1767)

마리안느 마르티네스 (Marianne von Martinez, 1744~1812)

예카테리나 시냐비냐 (Yekaterina Sinyavina, d.1784)

율리아네 라이하르트 (Juliane Reichardt, 1752~1783)

아멜리 줄리 캉데이유 (Amélie-Julie Candeille, 1767~1834)

 

 

    

 이들이 남긴 건반 작품들은 적고 많고는 상관없이 아직 그 개수가 정확히 파악이 안 되고, 음악도 대다수가 녹음

이 되어있지 않다. 녹음이 된 것 중에 국내에 수입이 되어있는 것도 소수여서 그녀들의 음악을 접하기란 더욱 어

렵다. 일부 알라딘에 있는 상품만 추가해보면 아래와 같다(건반 음악이 포함되어 있는).

   

 

 

 

 

 

 

 

 

 

 

 

 

 

 

 

   

   

 마지막 2개 음반은 드라게르 / 바로크 여성 작곡가의 곡만 실려 있으나(건반이 아닌) 그냥 추가했다.

 거의 드 라 게르에 편중되어 있고, 음반 수도 매우 빈약하다. 분명히 몇 년전과 비교해보면 꽤 많은 레퍼토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으나 아직도 명함을 내밀만한 수준은 아니다. 더구나 유명 하프시코디스트, 다

악기의 연주자들도 이런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더욱더 보기가 힘들다.

 유명 하프시코디스트인 스킵 상페(Skip Sempé, b.1958)는 르네상스나 초기 바로크 음악에 자신이 매혹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레이블을 설립, 여러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으나 적극적인 판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안타까울 뿐이다.

  

 

엘리자베스 클로드 자케 드 라 게르 (Élisabeth-Claude Jacquet de la Guerre, 1665~1729)

하프시코드 모음곡 5번 (Harpsichord Suite No. 5 in D minor,

1. La Flamande / 2. Double / 3. Courante / 4. Double / 5. Sarabande / 6. Gigue / 7. Double

/ 8. Gigue II / 9. Rigaudon / 10. Rigaudon II / 11. Chaconne)

 

 프랑스의 대표적인 바로크 여성 작곡가인 드 라 게르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5번이다. 40분이 넘어가는 대작으로

흡사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68~1733)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선율, 섬세

한 장식음이 정말 최고다.

 

 

 

마리안느 마르티네스 (Marianne von Martinez, 1744~1812)

피아노 소나타 3번 1악장 (Piano Sonata No. 3 in A major 1st Movement : Moderato)

 

 마르티네스의 피아노 소나타 3번 1악장이다.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경우도 있어 추가해 놓는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 마르티네스의 음반은 정식 수입이 된 것이 없다. 나도 해외로 구매하였다. 맨 위에 인용문에 대한 증거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부당히 무시되어온 작곡가의 대한 생각을 뒤집는 뛰어난 걸작이다.

 

 

 

예카테리나 시냐비냐 (Yekaterina Sinyavina, d.1784)

(하프시코드) 소나타 1번 1악장 (Harpsichord Sonata, 1st Movement)

 

 이전에 음반 추천했던 도리안 레이블의 '러시아 여류 작곡가들의 걸작들' 중 시냐비냐의 소나타이다. 바이올린

이 협주하고 있어 엄밀히 하프시코드 소나타라고 하기는 어렵다. 안 알려진 음악가의 숨겨진 곡 중에 이만한 것

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표현미가 두드러진다. 그녀의 다른 곡들이 심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만 감상해보아도 바로 알 수 있듯이 여성 작곡가들의 작곡력이란 동시대 남성들에 비해 비등하거나 넘어서

면 넘어섰지 결코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당히 무시되어 온 그녀들의 작품들이 조금씩 빛을 받고 있어 반가운

일이긴하나 아직까지는 정당히 대우 받기엔 길이 멀다.

  

 

 

 

 바로크 / 고전시대 여러 여성 음악가들의 초상화는 생각보다 남아있는 수가 꽤 있다. 시대가 그랬던 탓에, 주변

에 유명한 남성 음악가가 없다면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파니 헨젤(멘델스존)이나 클라라 슈만은 주변에 남편

이나 동생이 있었고, 브람스와의 염문설 등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기에 타인들에 관심이 몰려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은 주변에 그런 이들이 없어서였을까? 안타까운 발언이지만, 확실히 그런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려 여성 음악가들의 새로운 곡들이 발굴 / 재조명되고 있는 요즘, 패러다임을 뒤흔들만한 새로운 발견이 그녀

들의 업적을 통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앞으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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