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는 좋은 음악들이 정말 많다. 즐겨 듣지 않더라도, 제목은 모르더라도 들어보면 알 만한 곡들이 상당수 있으며,
우리가 흔히 즐기는 가요나 팝송에서 느낄 수 없는 고유의 뭔가가 내재되어 있는 느낌이다.
클래식을 들은지는 올해로 11년이 됐지만(매니아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그리 오래 된 것도 아니에요..) 아직도 들으면
들을수록 새롭고, 엄청난 세계란 것을 절감하고 있다.
물론 취향이 모두 같을 수는 없는 법. '클래식은 지루하고 재미 없어'라고 느끼시는 분들도 많다.
예전에 모델하우스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입주자들의 취향을 맞추려고(?) 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 근무지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었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등의 음악들이 두둥~
아마 관계자가 CD로 구워서 반복재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 간격 정도로 같은 음악이 흘러나왔으니..
근데 그 아파트가 인기가 없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바쁘질 않으니 다들 따분해하는 표정이었는데,
나는 뭐 좋아하는 음악들이라도 흘러나오니 나름 즐겁게(?) 서 있었다.
다른 분이 '뭐 이런 음악을 틀어놨어..' 하길래 내가 '어? 그래도 나름 괜찮지 않아요?' 했더니 가사 없는 음악은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단다.
음.. 역시 취향이란 건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 일이었다.
뭐.. 나는 클래식을 지루하고 싫어한다고해서 뭐라 할 말은 없다. 지루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짧은 곡들도 있지만,
몇 십분, 혹은 몇 시간짜리 음악을 곧이곧대로 집중하며 듣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음악들을 들음으로써 얼마나 내면화시키며 자신이 뭔가를 느끼느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말하고자 하는 요지로 돌아가보면, 이전에도 언급했었던 부분이다.
내가 시작이 잘못된건지, 아니면 도중에 방향을 잘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클래식을 들으면서 너무나 한정된 레퍼토
리에 싫증을 느꼈다. 어딜가도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뿐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도 많이 듣고 좋아하는 작곡가들이다. 외려 이들의 음악을 싫어한다고 하는 분은 본 적이 없다.
허나 왜이리 이들의 음악들만이 그토록 자주 회자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동시대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뛰어난 곡들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데.
어디 클래식으로 유명한 사이트 등에서도 누구의 모차르트 연주는 어떻고, 누구의 베토벤 해석은 힘이 부족하다느니,
강렬한 느낌이 없다느니 등의 말뿐이었다. 어쩌다가 비인기 작곡가의 곡에 대한 글이라도 올라오면 모두가 반응이
뚱했다. 아니, 아예 무시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런 곡들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는 듯 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작곡가나 곡이면 시쳇말로 얕잡아보는, 아류정도로 보는 경향들이었다.
계속 그런 식의 이미지들을 보다보니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뒤로 '클래식은 좋아하지만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은 싫다'란 어이없는 생각이 내 안에 굳어져 버린 것 같다.
말 자체가 어폐가 있지만.. 뭐 대강의 느낌은 그랬다.
어차피 눈팅이나 하는 사이트였으니 미련도 없었고 다시 방문하고 싶은 느낌도 나지 않았다.
그냥 나혼자 잡다한 음악들이나 들으며 즐거움을 느껴보자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나도 개개인의 취향이 존재하는 부류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내 의견이 옳은 것이 아니다.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위와 같은 취향을 가지신 분들이 계신다해도 할 말도 없다. 취향이 다른사람끼리 언쟁을 벌여봤자 무슨 결론이
날 수 있을까.
어떠한 음악을 들을 때나, 새로 나온 음반을 감상할 때, 우리는 평가를 내리기에 바쁘다.
'재닌 얀센의 이 카덴차는 별로군..', '안젤라 휴이트의 골드베르크는 좋긴 한데 이 부분은 좀..'이런식으로 좋고 나쁨을
따지기에만 급급하다. 사실 연주에 있어 정해진 규칙이란 것도 없는데, 왜 음악을 듣고 있지 못하고, 세부에만 신경써서
아름다움을 놓치고들 있을까?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해, 본질적인 것을 흐리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하다.
물론 평가가 있어야 모든 것이 활성화 되겠지만, 요즘은 지나치게 '해석'에만 비중을 두고 음악이 돌아가는 느낌이다.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 그토록 어려운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취지가 많이 어긋나긴 했는데.. 한가지 경험삼아 얘기할 수 있는 건, '해석'도 중요하지만 '음악' 자체에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보물같은 음악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파를 예로 들면 파이시엘로의 피아노 협주곡
이니, 네페나 치마로사의 피아노 소나타 등..
아직도 인정을 받지 못해 연주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음악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좋음'과 '안타까움'이다. 멋진 곡을 알게되어 기쁘지만, 인지도가 바닥이라
전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부분인가..
모든 인물들이 동등한 대접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과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허나 무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수준이 낮기에 거론조차 안 되야만 하는건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나는 비주류(마이너) 위주의 클래식 음악들을 계속 감상할 것 같다. 마이너라해서 그들의
음악까지 마이너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주 애청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다양한 레퍼토리들이 나오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은 시기이지만.. 앞으로도 많은 작곡가의 곡들이 다양한
연주자에 의해 활발한 연주나 녹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랑세 Jean René Désiré Françaix (1912~1997) - Piano Concerto : 2nd Mov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