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니트케 (Alfred Schnittke, 1934~1998) - Concerto Grosso No. 1 V : Rondo. Agitato (1977)
근대 소련, 혹은 러시아의 작곡가라면 레닌과 스탈린의 압제하에 있던 공산주의의 그늘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보다는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일부는 라흐마니노프처럼 망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쥐 죽은 듯이 보내든지, 아니면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음악들을 작곡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런 시대니만큼 그들의 음악을 현재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평가해야하는지는 항상 시비가 엇갈린다.
쇼스타코비치는 20C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지만, 대표적으로 그의 교향곡들은 찬반양론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라모폰(영국의 클래식 잡지)의 필진인 마이클 태너는 '쇼스타코비치는 과대 평가되었다. 삶과 작품, 명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신격화 되었으며 공허한 제스처와 자기반복, 느린 악장에서의 유사 허세를 부리는 능력에 우리는 집착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쎄.. 이런 관점도 있겠다 싶겠지만, 나는 음악 그 자체로서 듣는 경우가 많지, 굳이 그 작곡가의 일면이나 시대상황
을 고려해가며 감상을 하지는 않는다. 외려 작곡가의 일생을 자세히 들여다 봤을 때는 음악을 듣기 싫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나는 아직 바그너의 음악들은 익숙하지 않고, 그의 인생을 알게 되고부터는 음악을 듣기가 더 싫어졌다).
작곡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허나 인간이기 때문에 해당 인물의 일생이나 시대상황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궁금한 것이, 프랑스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감상할까?'
라는 거다. 감상할 수야 있겠지만, 러시아 군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던 내용을 담고 있는 음악을 곧이곧대로 즐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몇 백년이 지나면 이런 음악들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그리 큰 이유를 갖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귀족의 취향을 맞추던 BGM들을 우리는 충분히 즐기고 있고,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를 들으면서 '이 음악은 단순히
야유회에서 귀족들의 여흥을 돋구기 위한 음악들이야. 질이 너무 낮아'라고 생각할 사람도 없다.
평가란 것은 시대에 따라 항상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평가한다고해서 반드시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니.. 슈니트케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왜이리 산으로 왔담.. 다시 돌아가보도록 하겠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러시아도 근대/현대 작곡가 중 대표적으로 꼽을 만한 작곡가들이 있다. 특히 그 수가 꽤 되는 편인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한 인물들은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쇼스타코비치이다.
추가하자면 스비리도프, 스트라빈스키, 구바이둘리나, 우스트볼스카야, 슈니트케, 체레프닌(父子 모두), 바인베르크,
카발레프스키, 미야스코프스키 등이다.
슈니트케는 이미 '대작곡가'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뇌줄중으로 인해 심신이 허약해지지만 않았다면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슈니트케도 젊은 시절에는 시대를 원망하며, 자신의 예술을 그리기보다는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가 맡은 영화 음악만해도 60편이 넘을 정도다.
1970년대부터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다수 작곡했는데, 명작이자 대표작으로 알려진 것이 상기의 '콘체르토 그로소 1번'
이다.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는 '합주협주곡'과 같은 말인데, 바로크 시대에만 성행했지 그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소멸된 장르다. 즉, 이 양식을 청취하는 대중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슈니트케도 6곡의 콘체르토 그로소를 남겼고, 다른 작곡가
들도 일정 수 이상의 작품들을 남기고 있지만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앞으로도 이 장르가 성행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여튼 바로크에 대한 오마주 격으로 작곡된 이 작품은 합주협주곡의 대표격인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정도로 명작으로 손꼽힌다.
폴리스타일리즘(Polystylism)이라는, 인용과 차용이란 그만의 개성적 양식의 음악풍이 가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의 음악을 열렬히 지지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b.1947) 덕에 빛을 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독특하면서도 합주협주곡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보리스 차이코프스키(1925~1996)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을 때처럼 강렬한 충격에
빠졌는데, 얼이 빠진 상태로 계속 반복청취를 했었다. 지금이야 조금 덜하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에 젖게 만든다.
음반은 역시 기돈 크레머가 연주한 DG의 1986년 녹음을 추천한다.
기돈 크레머만큼 20C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잘 소화하는 인물도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음반이며, 그만큼 명반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한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음악들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그 시작으로
적절한 것이 이 음반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다보니 음악이 또 땡긴다. 오늘의 감상은 이 음반으로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