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악파를 얘기 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러시아 5인조이지만 그들의 피아노 음악을 거론할 것이 뭐가 있을까?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Islamey)'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 외에는 이렇다 할 만
한 게 없을 것이다. 그나마도 '전람회의 그림'은 관현악 편곡이 더 자주 연주되는 형편이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 '왕벌의 비행'은 라흐마니노프에 의해 편곡된 버전만이 유명하다)
250년이 넘어가는 피아노 독주곡 역사에서 이들의 거적은 미미하다. 허나 '명작'에는 못 미칠지언정 '수작'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상당수 있으며, 꼭 국민악적인 기질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아니더라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이들 중 가장 많은 피아노 작품을 남긴 인물은 세자르 큐이이며,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인 쇼팽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러시아적인 우수보다는 낭만적인 시정이 짙게 베어있다. 마찬가지로 쇼팽 흉내를 내던(?) 발라키레프도 왈츠나 마주르카,
녹턴 등의 곡들을 다수 작곡했다. 보로딘은 남긴 작품이 얼마 되지 않지만(피아노 음악을 다 합쳐도 CD한 장에 담을 수
있다) 그만의 기질은 어디가질 않는다. 피아노 음악에도 자신만의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실내악에 버금가는 걸작들이
존재한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무소르그스키도 남긴 작품은 많지 않지만 친숙한 선율미가 느껴지는 작품들은 자주
연주되지 않는 것이 애석할 정도이다.
피아노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발라키레프는 젊은 시절 피아니스트로 활동할만큼 연주실력이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큐이와 무소르그스키가 그에게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의 피아노 음악들이 빛을 못 보는 이유는 그들을 감싸고 있는 '국민악파', '러시아적 기질'이란 테두리 때문에 상대적
으로 덜 알려진 이런 음악들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굳이 앵콜 곡으로 '왕벌의 비행'만을 칠 것이 아니다. 리사이틀,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의 정식 프로그램으로 이들의
곡들이 올려질 가치는 충분하며,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흠뻑 빠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항상 연주회에 올라오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프로코피예프의 '새로운 해석'이 아닌, '새로운 음악'이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단적인 예로 러시아 5인조를 거론했을 뿐, 뛰어난 음악은 무수하다.
이들의 피아노 음악들을 연주회에서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Cui - 25 Preludes, Op. 64 : No. 8 in C sharp minor - Allegro
Balakirev - Mazurka No. 2 in C sharp minor
Borodin - Petite Suite, No. 2 Intermezzo : Tempo di menuet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