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큼 감동을 잘 전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음악은 듣는 그대로 느끼면 그만이지 복잡한 사유를 거치는 무언가를 우리

에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순수 기악음악은 언어의 장벽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충분하다.

 클래식을 처음 들었던 시절, 여러 친숙한 곡들을 듣고 알아가며 즐거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던가. 불이 꺼진 방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던 중 마음 속에서 알 수 없는 뭔가가 울컥 솟아오르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다.

 그 눈물의 정체가 뭐였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 전까지 가요나 팝송 등 다른 장르의 음악들을 듣긴 했지만

귀로만 듣고 마음으로는 듣지 않았었는지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음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여튼 생경한 경험이었으니...

 이 때의 일로 하나 깨달을 것이 있다면 음악은 듣는 장소, 청취자의 마음, 주변 환경 등에 따라 음악을 받아들이는 감정이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였다. 라흐마니노프 2번은 그 전부터 여러번 들었던 음악인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일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그 후부터가 문제였나보다. 이 때의 감격을 잊지 못 하고 나는 '클래식 음악에서 내가 감동을 받아야 한다'란 명제가

무의식 중에 성립되어 버렸던 듯 하다. 어떠한 음악을 들어보아도 눈물이 흘렀던 그 때의 기분에 비슷하지 못 했으며, 점점

공허만 더해갈 뿐이었다. 쉽게 말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뛰어넘는, 혹은 감동을 주는 음악을 찾기 힘들자

점점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해 회의가 더해져 갔다.

 뭘 들어도 그냥 '좋다..'란 느낌만 있고 그 이상의 뭔가를 느끼기가 힘들었다.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감상을 중단했는데,

더 들어봤자 아무 의미와 목적도 없는 곳을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이란 것을 너무 진지하게 대하고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락도, 일렉트로니카도 음악이고,

클래식도 음악인데 자기가 좋아서 들으면 그만이지 맨날 감동을 찾는 내가 참 어리석었다. 시작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가면

목적지도 멀어지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듯이, 내가 딱 그 꼴이었던 거다. 굳이 음악에 감동을 요하지 않고, 내가 들어서 기분이

나아진다면 감상의 목적은 다 이룬 셈인데 무얼 더 바란 단 말인가.. 이게 내가 내린 답이었다.

 마음을 그렇게 먹자 음악을 듣는 기분이 편했다. 이전까지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 음악에서 뭔가를 내가 느끼고 찾아야만 해'

란 강박관념이 자리하고 있어서 세부에만 치중하다보니 음악 그 자체를 소홀히 했었는데.. 마음 하나 먹기로서니 기존에 듣던

음악들도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지금도 그렇다. 음악에서 뭔가 크게 기대를 가지고 듣는다기 보다는 물 흐르듯이 편하게 듣고, 내가 느낀 감정을 쓰다듬어 볼

뿐이다. 이것이 옳은 음악 감상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미 나는 이에 적응해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무의식 중에 듣다가도 이전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몇 번씩 느끼기도 한다.

 Rockwell - Knife를 들었을 때도, Secret Garden - Serenade To Spring을 처음 들었을 때도 이러 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은

채 이러는 걸 보니 내가 감수성 과잉인 것 같기도 하고..  

 

 

 특히 클래식을 주로 듣는 분들에게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 같은데, 혹여 나와 같은 경험을 하시는 분이 있을까해서 글

을 남긴다. 음악은 감동을 찾기위해 듣는 것이 아니라, 들음으로해서 내 기분이 나아졌다면 감상의 목적은 다 이룬셈이라고..

 허나 음악 감상의 목적은 내 나름의 답을 내렸을지 몰라도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단순히 '누군가가

작곡한 것을 가수나 연주자들이 공연, 혹은 녹음한 것을 듣는 것'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는걸까..?

 이에 대한 답은 모른다. 혹시 모르지.. 세월이 더 지나서 답 근처에 갈 수는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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