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클래식에 입문하게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사람, 잠 잘 때 듣다가 좋아진 사람, 공부하려고 음악들으며 했는데 듣게 된 사람 등...
나도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샀는데 부록CD가 '집중력 향상', '스트레스 해소', '수면 유도' 등의
목적을 가지고 고른 음악트랙들이 있었고 절반은 뉴에이지, 절반은 클래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왜이리 음악들이 좋았던지...^_^;
그 전까지 들었던 가요나 팝송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심오한 뭔가가 느껴졌고, 순수히 기악으로만 이루어진 음악들이
생경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나름의 신비적인 체험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찾아보게 되지 않던가.
다른 음악들을 들어보고 싶어서 인터넷을 이리저리 들쑤셨고, 인터넷에서 추천해주는 곡들을 찾아서 들어보기에
열중했다. 당시(2003~2004년)에는 벅X뮤직에서 모든 음악들을 공짜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좀 알려졌다 싶은 것은
사이트에 접속해서 들었다.
그런데 어떤 곡을 찾든지간에 항상 나오는 앨범이 이요원을 모델로 기용한 '순수'였다.
찾아보던 음악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CD도 10장이나 되었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연주자나 지휘자는 신경안쓰던 시절이었고, 맨날 컴퓨터로 듣는 것도 한계가 있어 결국 CD를 주문했다.
10장의 박스CD가 도착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정말이지 CD가 닳을(?) 정도로 마구 혹사시켜가며 들었다. 초기에 들었을 때의 몇가지 이미지를 요약하자면..
1. 이게 이 음악이었구나!
2. 아니, 이렇게 긴 곡을 어떻게 듣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은 거의 18분에 가까웠다)
3. 음악사가 상당히 재미있어! (순수 해설집이 나름 설명을 잘 해 놓았다)
등...=_=; 1번이야 많은 분들이 느끼셨을 생각이고, 2번은 나만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맨날 3~4분 정도의 음악만을 듣던 내게 음악의 플레이 타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수십분동안 한 음악만 집중하며 듣는다는 것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나마도 1악장 뿐이긴 했지만...
이 때의 영향이었던지, 그 후로도 교향곡은 가장 꺼려하는 분야가 되었다. 거의 모든 곡들의 길이가 길었기 때문이다.
길이가 길다보니 영 산만한게 집중도 되질 않았고, 뭔가 느끼기도 어려웠다.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은 '어렵고, 따분하며, 지루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대중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긴 감상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10~20분 정도의 곡들, 이런 악장들이 여러 개 합쳐지면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을 한 음악을
듣기 위해 투자한다는 것은 입문자에게 큰 걸림돌이고, 쉽게 질려버리게 하는 요인이다.
그래서 대중적이면서도 짧은 클래식 소품들이 입문용으로 주로 추천되고, 그 유명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
'클래식 컴필레이션 앨범'이며, 이 앨범들이 훌륭하게 안내 역할을 한다.
지금이야 이런 앨범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고, '클래식을 좋아하세요?'도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어느순간부터는 이런 컴필레이션은 딱히 구매하지도 않고, 듣는 횟수도 줄어들었지만, 오랜만에 듣게되면 그 감흥이
새롭다. 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상, 어떤 곡에 대해서 자신이 처음듣게 되는 연주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 같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은 이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후에 어떤 연주를 들었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는 것이고..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래야 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지극히 중용적인 맛이 있어야지' 등등..
개개인의 취향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취향을 만들어주는 것의 시작이 컴필레이션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동곡연주 중에 '최상의 연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의 상당수가 순수 및 다른 클래식 컴필레이션 앨범에
있으며, 이와 비슷한 연주라도 만나지 않는 한 그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굳이 이름난 연주자의 풀프라이스 가격이라해서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얼마나 자신에게 맞는가'이다. 하이페츠의 연주보다 이런 컴필레이션의 무명 바이올리니스트 연주가 더
자신에게 좋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맞는 음악, 혹은 해석을 찾아가는 것이 클래식 감상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여튼 클래식 컴필레이션 앨범들은 입문자들부터, 오래 감상한 사람들까지 아우르고 즐길 수
있는 매력이 가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Classic Adagio'음반에 있는 유명한 곡을 하나 올려볼까 한다.
(마침 유튜브에 있다..^^)
리스트 - 라 캄파넬라인데, 일단 얘기하자면 곡이 상당히 느리다.
라 캄파넬라는 대부분의 연주자가 4분~5분 정도의 시간대에 연주를 마친다. 그러니 별로 유명하지 않은 피아니스트인
'도나텔라 파일로니(Donatella Failoni)'의 5분 50초 연주는 매우 느리다고 할 수 있다(실제 연주는 5분 40초에 끝난다).
그러나 이 곡을 듣고 나서부터는 '지나치게 빠른' 라 캄파넬라는 너무 여유미가 없고, 곡을 뭉그러뜨려 해석한다는 생각만
이 들게 되었다고나 할까?
라 캄파넬라는 확실히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큰 곡이다. 그러나 모두가 '얼마나 빨리 연주할 수 있는가'에만
집착할 때 파일로니는 이 곡에서 새로운 것을 찾은 듯 하다.
파일로니의 연주는 표정이 풍부하고, 곡을 즐기며 때로는 익살스러운 면도 보여준다. 기교면에서 떨어지는 일 없이
이 곡에 새로운 우아함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동곡 연주 중에서는 '내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최고의 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