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19C만큼 클래식 음악사에서 흥미로운 시대도 없다.

 이 시기는 낭만과 국민악적인 기반으로 음악을 작곡하고 활동을 해나갔지만 그 이전시대인 바로크나 고전시대처럼

그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몰기에는 그들의 음악적 추구나 방법이 너무나 다양하고 다원화되었기 때문이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들은 기시감(데자뷰)이 특징이기도 한데, 솔직히 유명하지 않은 곡 하나 틀어놓고 이 곡이

누구 것이냐라고 질문하면 맞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통주저음이나 합주형식, 론도 등 거의 모든

작곡가들의 작곡기법이나 형식이 대동소이하였고(J.S.바흐는 논외), 그냥 매너리즘의 끝장판이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터이다.

 뭐.. 물론 매너리즘이야 어느시대나 있긴 하지만..

 그런데 베토벤의 후기곡들을 시작으로 감성적인 부분이 들어가고 낭만주의가 꽃을 피우다보니 작곡가들의 개성이

강해지면서 곡으로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일종의 방법이 생기게 되었다(물론 일부만).

 그러다가 지나친 낭만을 거부하고 국민적요소를 첨가한 국민악파 음악이 싹을 틔게 되고...

 

 이러한 시대가 도래하다보니 19C중반~ 20C초의 작풍은 작곡가 숫자만큼 다원화되어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음악은 특별한 아우라를 풍긴다.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는 그런 경계가 많이 무너졌지만

19C~20C초까지는 고독과, 음산한 비장미(;;), 슬픔의 향취가 듬뿍 배어있는 이른바 '러시아적' 선율들의 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러시아적'이란 말은 그 후에도 통용되어서 '러시아 지휘자', 혹은 '러시아의 오케스트라'라고하면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해석에 있어서는 No.1이라는 일종의 공식이 성립되었다고나 할까.

 그들도 우리처럼 마음 속 깊이 혈통적인 뭔가가 뿌리를 잡고 있지 않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러시아 음악에서 바로크~고전시대는 서구화 되던 과도기이기 때문에 칸도쉬킨(Khandoshkin, 1747~1804), 보르트니안

스키(Bortnyansky, 1751~1825), 알랴베프(Alyab'ev, 1787~1851) 등을 제외하면 거론할만한 작곡가도 많지 않다.

 20C는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스트라빈스키, 카발레프스키, 슈니트케, 구바이둘리나 등을 제외하면

인지도는 솔직히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다. 그것도 약간 매니아틱한 음악들이 많다보니 일부의 청취층만이 존재한다.

 

 그러니 역시 가장 대중적인 곡들과 성공작들을 남긴 차이코프스키가 러시아의 원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라흐마니노프도 있긴 하지만, 일부 곡들이 사랑받는다 뿐이지 차이코프스키처럼 거의 모든 곡들이 지지를 받는 건

아니라는 점을 봤을 때 말이다.

 

 이러한 시기의 차이코프스키와 구별되는 대표적인 작곡가들의 모임인 '러시아 5인조'는 음악 역사에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클래식 음악 그룹(?)'이다. 지도적 인물인 발라키레프를 비롯해 관현악법의 대가인 림스키 코르사코프,

불세출의 실내악을 남긴 보로딘, 전람회의 그림이란 명작을 남긴 무소르그스키, 소곡 분야에서 수작을 남긴 큐이가

그들이다.

 

 역사에서, 유명인들의 에피소드는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흥미를 유발하는 것들이 많다.

 특히 당대 러시아 음악을 움직였던 두 양대산맥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의 관계가 어떠했을지는 대충 짐작이

가기도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고독하고 내성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주변의 평판을 신경쓰긴 했지만 역으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날선 비판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허나 러시아 5인조는 달랐는데...

 자신들의 음악적 활동이 '진리'라는 굳센 믿음(?)이 강했고, 지지세력도 확실했기 때문에 고독과 우수만 일삼는 차이코프

스키의 음악은 항상 그들에게 가위질당하는 하나의 대상이었다.

 어떠한 곡이든 초연이 끝나기 무섭게 비평가들(대부분 5인조 지지세력)의 혹평이 쏟아졌고, 나중에가선 작품의 좋고나쁨은

무시한 채, 그야말로 '혹평을 위한 혹평'만이 쏟아졌다(비평가로도 활약한 큐이가 선두이다).

 이러다보니 누군들 기가 안죽겠나. 차이코프스키는 점점 더 우울과 망상에 시달리며 한편으로는 그들의 평가는 무시한 채

자신만의 고독한 예술세계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추구하였던 음악이 그렇게 본질적으로 달랐던 것일까?

 현재 관점에서 보면 보로딘의 실내악이나 교향곡들은 차이코프스키와 흡사한 점도 많으며,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정작 자신의 작품은 그렇지 않았던 큐이의 몇몇 작품들도 그러하다.

 속된말로 '서로까는' 방식이 불을 피워 음악사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자명하긴 하지만...^^

 

 

 여튼 차이코프스키는 시대가 외면해 버린(인생의 후반기에 가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긴 했다) 안타까운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교향곡 6번 '비창' 초연 이후 혹평 속에서 사망한 것도 그렇고...(콜레라로 인한 사망설이니 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아무래도 동성애로 인한 '강요된 자살'쪽이 더 설득력을 얻는 것 같고 내 생각도 그렇다)

 대부분의 훌륭한 예술가는 사후에 이름을 남긴다. 당대에도 인정받고, 후세에도 이름이 번뜩이는 인물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당대에는 대부분 외면하였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클래식의 얼굴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차이코프스키...

 그런 그의 때이른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한다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지만 안타깝기는 하다.

 

 

 그리고 러시아 5인조...

 그들의 이름은 불멸이 되겠지만,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중적인 작품은 림스키 코르사코프 - 세헤라자데 / 왕벌의 비행, 보로딘 - 이고르공(플로베츠인의 춤),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뿐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발라키레프 - 이슬라메이는 유명하긴 하지만 대중적이진 않다).

 

 발라키레프는 초반엔 정력적으로 활동했지만 후반에는 창작력도 고갈되고 작곡속도도 상당히 둔화되어 피아노 소나타

한 곡을 작곡하는데 50년이 걸리기도 하고(;;), 솔직히 요즘에는 그다지 연주되는 것도 없긴하다.

 그래도 숨은 보석이야 있으니.. 교향곡은 상당히 다이내믹하며, 피아노 소품들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주르카나 왈츠 등이 그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보로딘이야 러시아 실내악에선 차이코프스키, 타네예프 등과 함께 거론 1순위이다.

 한마디로 정의해보자면 그야말로 '러시아적'이다. 러시아 작곡가가 아닌이상 이런 곡은 못 만들 것 같다.. 현악 4중주나

5중주, 첼로 소나타(사후 완성) 등은 그의 음악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오페라 이고르공을 그가 완성하였다면 더욱

뛰어난 걸작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보로딘에 대해서 일종의 경외심(?)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화학자란 직업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인간이 예술과 과학에서 양립하는 직업을 가졌는데 모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인 듯..

 

 무소르그스키는 '전람회의 그림', '민둥산의 하룻밤', '보리스 고두노프'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별로 연주되지도

않는다. 작품 수도 그다지 많지 않고...

 러시아 5인조 중 가장 빨리 세상을 떠나(1881년) 5인조가 해체 되었으며, 많은 유작들을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완성하였다.

 그러나 음악적 스타일은 이들 중 가장 독창적이다. '민둥산의 하룻밤'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시 중 하나가 아닐지?

 '전람회의 그림'은 원곡인 피아노 버전보다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 버전이 훨~씬 자주 연주되는 특이한 케이스다.

 실제로 관현악 버전이 곡의 묘미를 더 잘 살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큐이는 가장 안 알려져 있다. 아까 말한대로 언행일치가 안 됐기 때문일까?(;;)

 쇼팽을 가장 존경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그의 음악적 성향은 낭만주의와 맞닿아 있다. 혹은 혈통이 러시아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국민주의적 입장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의 음악은 분명 일정수준이상이다. 전주곡(Op.64)들은 그의 음악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며, 콘체르탄테는 이국적인 풍경을, 짧은 가곡들과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의 평가를 뒤집을 수 있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야 이들 중 가장 '대가'란 호칭이 어울린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관현악에 있어서는 당대의 누구도 범접 못할 인물이었다(그가 저술한 '관현악법의 원리'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작곡가로도 뛰어났지만 많은 선배 작곡가들의 유작을 완성시킨점(글라주노프 등과 함께), 엄청난

제자들을 양성한 점은 역시 높게 평가 받아야 할 부분이다.

 

 

 

 

 동시대로 보면 이들의 활약이 너무나 뛰어났기에 많은 인물들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들 외에 자주

회자되는 인물들이 있다하면 아렌스키, 스크리아빈, 글라주노프, 라흐마니노프 정도랄까..(라흐마니노프는 시기적으로

근대의 작곡가이지만 작풍상으로 낭만주의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가 차이코프스키

이기도 했고)

 그 외에는 글린카, 다르고미시스키, 카트와르, 칼리니코프, 타네예프, 나프라브니크, 루빈스타인 형제, 이폴리토프 이바노프,

리아도프, 레비코프 정도일까..

 굳이 좌파우파 나누어서 이쪽은 낭만적 경향, 저쪽은 국민적 경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간 작곡가

들도 꽤 되지만 시대가 그렇듯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도, 인정을 받지도 못 했다.

 '거성'이란 혼자 빛나서야 아름답지 않다. 주변에 흩뿌리듯 존재하는 작은 별들이 있기에 거성의 아름다움이 더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가져본다.

 

 

 제목을 단상이라하고 막 적다보니 두서없는 내용이 되었네...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글을 적은지 모르겠다..ㅡㅡ;

 뭐.. 처음부터 목적을 정하고 쓴 것은 아니니 주제가 없다고 봐도 될라나...;;

 역시 관련된 글을 쓰다보면 음악이 땡기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보로딘의 곡들을 들으며 잠을 청해 보아야겠다.

 

 

 음악추천 하나! 보로딘의 현악 5중주 중 2악장이다.

 (동영상에는 1악장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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