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시작]은 내가 두번째로 만난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이다. 첫번째 책 [남아있는 나날]처럼 이번 책도 매우 모던하고 정적인 분위기의 소설이다. 인생이란 무엇일까..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고민 좀 해본다. 인생은 예측할 수도 없고 연습할 수도 없다. 내가 만들고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수없이 많은 굴곡과 변화를 거쳐 완성된다. 그러나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들에는 살면서 우연이라고 여겨왔던 수많은 인연과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만들어진다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인생을 가장 정확히 정의해주는 그러한 내용들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매우 서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큐레이터로 일하는 데이비드라는 한 남자가 우연히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자신의 과거를 보여줄 수 있는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각 장의 제목은 이러한 물건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쉰다섯이 되던 해에 친모를 찾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 여행에 있어서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부딪치게 된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 데이비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 어릴때부터 조그만 실수에도 하루식사를 굶는 벌과 무수한 매를 맞으며 자란 아내 엘리너는 자신이 엄마가 된 후에는 자신이 겪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신경을 쓴 결과 딸에게는 너무도 소극적이고 멀게만 느껴지는 엄마가 되고 만다. 우울증까지 겹쳐 하루하루 매우 힘든 생활을 해 나간다. 그의 딸 케이트의 존재는 이 책에서는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작가의 전작에는 이 케이트가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그 작품도 매우 궁금해진다. 엄마만큼 데이비드에게 소중한 존재인 엄마의 친구 줄리아 아줌마. 데이비드를 진정 이해하고 아껴준 사람이 아닌가 싶다. 결코 쉬운 소설은 아니지만 매우 인상깊은 소설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소설중간중간 깔려 있는 복선도 찾아보고 싶고 각 이야기의 연관성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이 책에서 마지막 부분의 데이비드의 누나 수전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들은 너무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맞춰 생활해 온 탓에 그들이 존재하기 전의 생활이 어땠는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들이 자라 부모곁을 떠나면 그 부재의 공간이 너무 크게 느껴짐을.. 주인공 데이비드와 엘리너도 딸 케이트가 떠난 후 갑자기 비어버린 생활의 허전함을 느끼지만 다시 둘만의 생활을 시작하고자 노력한다. 인생이란 결국 이런 것이겠지. 두 사람이 만나 여럿이 되지만 결국은 다시 둘만 남고 그리고 마지막엔 나 홀로인 것. 아 웬지 센티멘탈해지는 느낌. 그러나 이런 느낌 오랜만에 가져본다. 가끔 이런식의 자각이 살아가면서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둥글둥글 시리즈. 역시 이번 편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특히나 세계 여러나라의 다양한 음식소개와 그에 관련된 역사이야기는 다른 시리즈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다른 시리즈와 같은 구성으로, 각 대륙별로 음식문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5대륙 가운데 아무래도 아프리카의 음식과 문화가 우리에게는 가장 생소한 느낌이다. 갖은 동물 꼬치구이 나마쵸마, 옥수수죽 우갈리, 모로코 요리 꾸스꾸스 등은 이름도 생소하고 맛도 도대체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옥수수죽이야 대충 짐작이 가긴 하지만) 풍부하고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유럽. 유럽의 음식이야 주변에서 하도 많이 접해서 그냥 친숙한 느낌이다. 같은 유럽이라도 프랑스와 독일의 음식은 모양부터 식생활습관까지 정반대라는 사실이 새롭다. 흔히 영국음식은 먹을 게 없다. 대표할 음식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나마 먹을 만한 음식으로 꼽을 수 있는 ' 피시 앤 칩스'가 패스트푸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패스트푸드와는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 생선과 감자, 그리고 삶은 콩이 곁들여져 있어 만드는 시간면에서는 Fast 지만 영양면에서는 일반 패스트푸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영국음식에 새삼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유럽음식의 대표적 재료인 토마토가 그 색깔와 모양 탓에 옛날에는 독이 있는 악마의 열매로 무시되어졌다는 사실이 재밌다.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의 유럽음식의 기본재료가 될 수 있었는지 사뭇 궁금하기만 하다. 식품첨가물,화학조미료.패스트푸드 같은 단어는 아무래도 미국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생산에 얽힌 카카오 농장의 어린 노예들의 이야기는 항상 맘이 아프다. 아시아의 나라가운데 젓가락을 쓰는 대표적인 세 나라. 한국,일본,중국의 젓가락의 모양이 용도의 차이에 의해 그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말 "우리는 그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먹지 않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아주 강하게 다가온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나 환경의 파괴같은 문제만 없다면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모든것이 세계화가 되어가는 요즘. 일식과 중식에 비해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지 않는 한식이 하루빨리 세계화되었으면 좋겠다. 채소쌈싸먹는 음식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하는데 김치나 된장같은 대표적인 음식에 더해 이런 음식을 좀 더 연구하고 개발해서 세계에 널리 알려졌음 하는 바램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의 소설 참 오랜만에 읽어본다. 그동안 주로 여행기며 외국소설에 빠져 지내던 참에 오랜만에 조정래 작가님의 책이 눈에 띄니 참으로 반가울 따름이다. 사실 바로 전의 허수아비책도 아직 못 읽어봤지만 이 불놀이 책이 더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근에 씌여진 신간이 아니라 82년도 문예지에 실린 네 편의 중편소설을 이번에 한권의 장편소설로 재출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시대적 배경을 주제로 씌여진 소설은 별로 손이 안간다. 읽으면 너무 우울해지고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비극의 역사소설이라 해도 외국소설은 아무래도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때문인지 국내소설보다는 그 심적아픔이 덜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이니 이번 작품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첫장부터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대규모의 기업을 운영하는 황복만 사장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의문의 전화. 그 한 통의 전화로 암울했던 역사적 사건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되고, 그동안 철저히 과거를 숨기고 겉모습뿐만 아니라 배점수라는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던 황복만 사장에게는 씻을래야 씻을수 없는 과거의 끔찍한 잘못에 대한 심판을 받기에 이른다. 착하기만 하던 배점수는 좌익사상에 물든 방선생에게 글을 배우게 되고 점차 그를 따라 활동을 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는 어릴때 자신의 부모가 일하면서 핍박을 받았던 신씨지주집안에 대해 무차별 복수를 가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원한의 복수..이 복수로 인해 무고한 죽음을 당한 신씨가문의 자손 중 한명인 신찬규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배점수를 추적하게 되고 드디어 그의 행방을 찾게 된다. 배점수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에게까지 뻗치는 그의 복수는 분명 대를 잇는 복수이긴 하지만 거기서 끝내고자 한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과거를 알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배점수는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 또한 피의 복수를 하게끔 만든 시대적 상황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얼만큼 끔찍한 상황이었는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조정래 작가님의 손꼽히는 대하시리즈물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분량의 소설이라 상대적으로 조금 아쉬운 면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푹 빠져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나다.
나는 이런 분위기의 영화가 참 좋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일단 인물이나 역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이 좋고 고전적인 분위기의 작품이 좋다. 특히 금년 12월에는 이러한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그 중 이번에 만난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그동안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톨스토이에 대해, 특히 악처로 알려진 그의 아내 소피아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 좋았던 것 같다. 48여년간 톨스토이의 곁에서 그의 작품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다툼도 많았지만 진정 한 남편으로서의 톨스토이를 사랑했던 소피아.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그의 작품의 저작권과 재산을 지키고 싶었던 소피아는 그런 문제로 인하여 톨스토이를 신봉하고 그의 철학을 전세계와 후대에게 전해주려고 움직이는 블라디미르 체르코프와 매번 부딪치게 된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개인비서로 고용된 문학청년 발렌틴의 눈으로 바라본 톨스토이와 그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의 진행인 듯 싶다.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존재감보다는 소피아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톨스토이의 사상에 흠뻑 빠진 만큼 톨스토이를 존경하는 발렌틴은 대립관계의 소피아와 체르코프의 양쪽 입장을 다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쪽에 서지도 못하는 애매한 입장이 되지만 외로운 소피아는 그에게 많이 의지를 한 듯 하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발렌틴과 같은 맘이 생긴다. 48년간 톨스토이의 아내자리를 지킨 소피아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의 확고한 의지대로 밀고 나가려는 체르코프지만 그런 그의 행동도 다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자신이 꿈꿔왔던 목표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톨스토이의 희망도 막으려는 그를 보면서는 도대체 어떤 권한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소원을 막을 수 있는지..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런 그가 한없이 미워지고 화까지 난다. 톨스토이가 가장 신뢰했던 그녀의 딸 사샤만큼 소피아가 조금만 더 침착하고 생각이 깊었다면 조금 더 그녀의 위치가 존중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소피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웬지 가슴이 찡해지는것이 세계적인 대문호의 마지막 모습과 그가 마지막까지 원했던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아내 소피아였다는 사실이(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웬지 너무 감동적이다.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이다. 제목도 웬지 센티멘털한 느낌이 나는 것이 무척 근사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너무 쓸쓸한 느낌이 드는데 그 쓸쓸함이 결코 싫지 않은 느낌이랄까. 바로 전에 책으로 북유럽 핀란드의 겨울여행을 다녀왔는데 핀란드의 겨울과는 또 다른 느낌이 나는 일본 홋카이도의 겨울이야기. 홋카이도는 일본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외국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는 곳인데 사진을 보니 정말 눈도 엄청 오고 이국적인 풍경이 일본의 한 도시라고는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겨울에 홀로 떠나는 여행은 특히 더 외로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외로움이 있기에 조금의 따스한 베품도 감동이 되고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에 눈물도 나고 그러나보다. 저자가 홋카이도에서 만난 몇 안되는 사람들. 보통 일본 사람들에 비해 더 쿨하고 개방적인 그들과의 만남이 그래서 저자의 기억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듯 하다. 저자가 이 여행기간동안 자주 먹었던 일본라멘이 너무 그립고 꼭 한번 떠나보고 싶은 료칸온천여행이야기에 또다시 가슴이 설렌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대도시보다 소도시가 더 맘에 드는데 우리나라의 시골과는 또 다른 느낌의 일본의 시골마을..소박하고 깔끔한 그 분위기를 느낄 때마다 알록달록 간판과 우후죽순 생겨나는 음식들로 즐비한 우리나라 시골의 분위기가 많이 아쉽기만 하다. 너무 좋았던 핀란드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 차거움은 이번 홋카이도 겨울여행기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도 따스한 온천과 라멘, 녹차 그리고 일본특유의 소소한 느낌이 한데 어우러진 덕분에 읽는 내내 전혀 추위를 느낄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