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시대적 배경의 소설 참 오랜만에 읽어본다. 그동안 주로 여행기며 외국소설에 빠져 지내던 참에 오랜만에 조정래 작가님의 책이 눈에 띄니 참으로 반가울 따름이다. 사실 바로 전의 허수아비책도 아직 못 읽어봤지만 이 불놀이 책이 더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최근에 씌여진 신간이 아니라 82년도 문예지에 실린 네 편의 중편소설을 이번에 한권의 장편소설로 재출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시대적 배경을 주제로 씌여진 소설은 별로 손이 안간다. 읽으면 너무 우울해지고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비극의 역사소설이라 해도 외국소설은 아무래도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때문인지 국내소설보다는 그 심적아픔이 덜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이니 이번 작품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첫장부터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대규모의 기업을 운영하는 황복만 사장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의문의 전화. 그 한 통의 전화로 암울했던 역사적 사건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되고, 그동안 철저히 과거를 숨기고 겉모습뿐만 아니라 배점수라는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던 황복만 사장에게는 씻을래야 씻을수 없는 과거의 끔찍한 잘못에 대한 심판을 받기에 이른다. 착하기만 하던 배점수는 좌익사상에 물든 방선생에게 글을 배우게 되고 점차 그를 따라 활동을 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인민위원회의 부위원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는 어릴때 자신의 부모가 일하면서 핍박을 받았던 신씨지주집안에 대해 무차별 복수를 가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원한의 복수..이 복수로 인해 무고한 죽음을 당한 신씨가문의 자손 중 한명인 신찬규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배점수를 추적하게 되고 드디어 그의 행방을 찾게 된다. 배점수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에게까지 뻗치는 그의 복수는 분명 대를 잇는 복수이긴 하지만 거기서 끝내고자 한다.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과거를 알리고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배점수는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 또한 피의 복수를 하게끔 만든 시대적 상황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얼만큼 끔찍한 상황이었는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조정래 작가님의 손꼽히는 대하시리즈물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분량의 소설이라 상대적으로 조금 아쉬운 면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푹 빠져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