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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ㅣ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굉장히 맛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책이다.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처음부터 진행되는 이야기 또한 일반사람들은 출입하기도 힘든 고급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요리와 함께 한다.
차기 수상이 거의 확실시 되어 있는 세르게 형부부의 연락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된 파울부부.
만나기 전부터 형 세르게에 대한 파울의 감정은 여실히 드러난다.
형이 아프리카아이를 입양한 것도 겉으로 보이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고급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서빙을 받으며, 알지도 못하는 와인에 대해 시음까지 해보이는 겉멋들인 모습에 대한 불쾌감도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러한 형과의 식사시간이 유쾌할 리가 없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이 유쾌하지 않은 만남에 또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여느 소설에 비해 이러한 본격적인 사건이 아주 느리게 나타난다. 거의 1/3 쯤 까지는 식당에서 형내외에 대한 생각, 형의 태도, 그리고 아들과 아내에 대한 파울의 생각..뭐 대충 이러한 분위기로만 봐서는 이 소설을 스릴러라고 생각하기에는 웬지 부족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보다는 맛잇는 요리를 앞에 두고 가정사 내지는 형제와의 불화 같은 내용을 다룬 소설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
게다가 사춘기 아들을 둔 아빠 입장에서, 방을 들어가는 것부터 아들의 핸드폰, 컴퓨터 등 사적인 생활에 대해 철저히 인정해주고자 하는 파울의 모습은 여느 아빠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고 자상한 아빠의 모습이다. 아내에 대한 파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파울의 아내는 굉장히 현명하고, 아들과의 관계도 아주 돈독한...현명하기 그지 없는 여성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뒤로 갈수록 굉장히 흥미롭게 연결된다.
드디어, 반정도 지나면서 문제의 그 사건이 터지게 된다. 사실 터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앞의 파울의 행동들이 다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지만..
노숙자 폭행살해사건..단어만 들어도 웬지 섬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범인은 바로 파울과 세르게의 아들들이다.
충동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사건의 진행과정을 동영상으로 찍고 그 순간까지도 잘못된 행동임을 깨닫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그 동영상은 유트브에 실리면서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각종 뉴스에서 이 사건을 다루지만 다행히 깊숙히 모자를 쓴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긴 힘들다.
그러나...아무리 많은 아이들이 끼어 있어도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마련이다.
파울부부도 TV에서의 모습을 보고 바로 자신의 아들과 조카임을 알게 되고, 그 순간부터 부모로써의 맹목적인 행동이 드러나게 되는데..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과연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정말 많이 생각해보았다.
열다섯 살 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이 사건을 덮어둬야 하는걸까..
그렇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죄를 받고 당당하게 미래를 살게 해야 하는걸까..
정말로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이 소설이 참 재미있는 것이, 사건 이후 전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과 함께, 보통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주인공들의 성향이 완전 뒤집어진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스릴러라는 성격에는 약간 부족할 수도 있겠는데, 일반적인 소설에서 느끼기 힘든 묘한 반전이 새롭고, 무거운 소재를 결코 무겁게 다루지 않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