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초판 출간 80주년 기념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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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엔 레베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읽고난 후 주인공은 ‘나‘ 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제목도 ‘맨덜리 대저택‘이라고 해도 무방할것이다. 레베카는 책 내내 살아있는 상태로 나오지 않는다. 책 중반이 넘어가면서 남편 맥심이 범인이 아닐까 했지만 역시나였다. 레베카를 죽일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때는 좀 껄끄러운 구성이다. 레베카가 그런 인성을 가졌음에도 댄버스부인이 우상으로 여기고 맹목적인 충성을 다할만큼의 대단한 여자로 그려지고 또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할수밖에 없는 역으로 그려진게 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에 만족스러운 것이, 1938년에 쓰여진 책임에도 ‘나‘의 생각의 전개가 만족스럽고 노트에 적고 곱씹고 감상하고 싶은 공감가는 문장이 많았다.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대프니같이 쓰고 싶었다. 게다가 돈을 받고 맨호퍼 부인의 허드레일을 도와주는 동반자 역활의 초라하고 애송이같은 ‘나‘에게서 20대초반의 서투르고 용기없고 두렵기만 했던 나의 이십대를 떠올리기도 했다.

10페이지 : 우리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과거는 아직도 너무나 가깝다. 뒤로 밀쳐놓고 잊어버리려 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른다. 두려움, 근거 없는 공포를 가라앉히려 안간힘을 쓰면서 느끼는 내밀한 불안감 같은 것이 어느새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56페이지 ; 첫사랑의 열병이 두 번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은 참 다행이다. 시인들이어떻게 찬양하든 그건 분명 열병이고 고통이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의 나이는 용감하지 못하다. 겁이 많고 근거없는 두려움도 많다. 쉽게 까지고 상처를 입어 가시 돋친 말 한마디를 견디지 못한다. 중년을 바라보면서 탄탄한 갑옷을 입은 지금에야 가시에 찔린 사소한 상처 같은 것을 가볍게 넘기고 곧 잊어버릴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남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오래도록 남아 고통스러운 낙인이 되고 어깨 너머 뒤돌아 본 눈길 하나가 영원히 기억에 꽂히고 마는 것이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이십대를 회상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말을 대프니는 했을까)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대저택의 안주인, 하지만 낯선시선와 새로운 환경앞에서 서투르고 초라하기만 하는 ‘나‘‘. 살아있어도 화려하고 강했던 죽은 ‘레베카‘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용기를 잃고 맥심의 사랑을 갈구한 ‘나‘. 맥심의 살인의 고백을 듣고도 그를 사랑하고 스물네시간만에 완전히 성숙한 어른이 되어버린‘나‘.

466페이지 : 레베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내가 그걸 없애버린 셈이지..겨우 스물네시간 만에 당신은 완전히 어른이 되어버린 거요...

47페이지 : 나는 마침내 어른이 되었고 중요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15페이지 : 달콤한 시럽이 뚝뚝 듣는 핫케이크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59페이지 : 내게는 책에서 읽었던 번민이나 잔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도전과 추구뿐이엇다. 기 싸움, 빠른 눈짓, 가슴 뛰게 하는 미소, 상대를 약 오르게 하는 기술은 몰랐다.

103페이지 : 나도 함께 미소 짓고 즐거워하게 될 때까지는 함참 시간이 걸릴것 같았다. 그런 날이 어서 왔으면, 나이를 먹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그래서 지금처럼 스스로를 잔뜩 겁에 질린 바보 같은 존재로만 여기지 않게 되었으면 (정말 나도 이십대초반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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