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교양 - 한 권으로 세상을 꿰뚫는 현실 인문학 생각뿔 인문학 ‘교양’ 시리즈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오세림.엄인정 옮김 / 생각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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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니체의 교양(생각뿔/엄인정, 김형아 엮고 옮김)한 권으로 세상을 꿰뚫는 현실 인문학시리즈의 장을 연 첫 책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너무나 유명한 작품을 남겼으나 정작 펼치기 망설여질 수 있는, 그래서 여전히 필독서 목록에만 이름이 올라있다면 니체의 교양을 먼저 펴보는 것도 좋겠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신학대신 철학과 고전을 공부한 후 강의와 저술 활동을 했으나 자신의 가정은 이룬적이 없던 니체는 눈부신 저작들과 달리 질병으로 어려웠던 생의 후반이 안타까움을 남긴다. 이제 니체 시간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니체의 교양은 그의 작품 속 문장을 열 다섯 개의 주제로 분류, 발췌해 담고 있다. 파트별로 십여 개의 문장을 만날 수 있는데 번호로 매겨진 소제목과 발췌문의 핵심문장은 독일어 원문을 함께 표기했다. 각 파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주제 설명을 실어 니체의 삶과 작품을 조망하도록 돕는다. 오래전 읽으며 미소짓기도 감탄하기도 했던 문장들은 그 때로 돌아가 그 순간의 공기까지 상기시킨다. 직접 읽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오해는 사라지고 그의 긍정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칠 것이다. 인간이란 넘어서야 할 무언가다. 너희는 스스로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34p)", 생생히 기억나는 문장들 나는 모든 글 중에서 오직 자신의 피로 쓴 것만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당신은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9p)", "늘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품격 있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256p)" 그는 꿰뚫어 본 후, 예민하게 감지한 후 쉬운 문장으로 전하고 권한다.

 

열심히 읽던 청년기때는 작가의 모든 말을 모아야한다는 강박에 꾹꾹 눌러 베껴쓰기는 물론 작품 속 문장 발췌집 등도 아껴 간직했었다. 그러다 누군가에 의해 임의로 추려졌다는 이유로 잠시 피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근래 들어 감사하다는 마음이 커졌다. 완역본을 기본으로 모음집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새로운 시선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수고도 하지 않고 말이다. 정렬의 방식은 틀 안에서 혼자 재구성해볼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겁다. 충분한 여백과 시원한 활자 크기, 다양한 이미지들도 니체로 향하는 내내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니체의 작품들도 다시 읽어봐야 겠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꽤 적절할 시기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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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
한은형 지음 / 이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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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의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이봄)는 고전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상깊은 인물들을 향한 헌사에 가깝다. 책 속 인물임에도 실존 인물과 구별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 몰입하는 사람으로서 소중하게 다가왔고, 매일 한 편씩 만날 수 있었던 며칠은 책을 손에 받기까지 급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이었다. 다소 긴 제목을 되풀이 읽어보다 빙하라는 키워드를 곱씹게 된다. ‘흘러내리는 얼음인 빙하, 얼음이 많아지면 자체의 무게로 흘러내린다는데 그녀들의 순도 높은 얼음 심장은 오히려 뜨거움을 일으키는게 아닐까. 그런게 있는지 모르지만 마치 얼음 부싯돌처럼.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는 작가가 독서 여정에서 만났던 특별한 여성 캐릭터 29명을 불러낸다. 불멸하는 주인공들은 한은형 작가로 인해 이름 앞에 새로운 수식어를 얻는다. 읽었던 작품 속 캐릭터가 나오면 어떻게 그려낼지 두근거리고, 만나지 못한 그녀들이라면 오호, 통재라 이 책을 아직도 안 읽고 있었다니 한탄하며 책장을 넘겼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필독도서 목록이 꾸려지는데 책의 마지막 페이지 참고문헌에는 연도순으로 정렬한 주제도서를 출판사까지 실어 친절함에 또 한번 감동하게 만든다.

 

첫 번째 주인공은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다. 그녀에게는 다음 편까지 두 꼭지를 할애한다. 올해의 숙제로 담겨있는 작품인데 태어나서, 글을 알아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도 다행이라고(16p)"라는 말에 또다시 마음이 급해진다. ‘너무 많이 느끼는’, ‘죽음을 사랑하기로 한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랬기에 안나인 유일무이한 전형에 한 발 다가서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연결되는 책이 있고, 잊을세라 적었다가 바로 펼치게 만들곤 하는데 이런 연결이 한은형의 인물채집에 틀을 부여하고 독자를 단단히 이끈다. 유사하거나 대비되는 캐릭터가 떠오르는 순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는 내가 생각하는 다음 캐릭터와 비교하게도 하지만 무엇보다 캐릭터 연구에서 삶에대한 태도, 시간을 살아내는 다양한 힌트로 깊어진다. 개별 인물이 자신의 장을 넘어 다음 편으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하나의 맥락을 이루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넘어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생각만 해도 갑갑해서 읽지 않으려 했던 속죄도 읽어야 겠고, 이토록 근사한 메타포라니 싶은 검은 모자가 된 사비나’, ‘세련됨의 화두를 던지는 순수의 시대의 엘렌, 온통 넘실대는 히스 밭 한가운데로 밀어넣는 폭풍의 언덕속 인물들, 이 소설은, 그리고 페르미나 다사라는 인물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에 따라서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은 어떤 그 누군가를 만나지 못해서일 수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아면 그 누군가를 만나서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97p)" 하고 말해주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경이로웠던 만남 백년의 고독의 다음 작품으로 정하며 마음은 분주해진다. 내가 사랑해서 도서관 친구들에게 반복하는, 4차시 한 세트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깊이읽기(슬로리딩)를 고집하며 너희는 앨리스를 알아야 한다 강요하는 그녀를 저자도 꼽았기에 기쁘다.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백치의 나스따시야로 세상 모두에게 잔혹한 나스따시야로 칭하고 있다. 작년에 다시 만난 백치’, ‘죄와 벌보다 나은게 아닐까 고민했던 백치의 나스따시야가 다뤄졌다는 것 만으로도, 과연 그녀를 어떻게 말할지 두근거렸다. ‘성격 파괴형 조던 베이커(134p)', 상처받은 여자이며 조던 베이커와 달리 자존감이 망가졌던 사람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미쉬낀 공작으로 하여금 아글라야가 아닌 나스따시야를 선택하게 했던 파과적 절망. 나스따시야는 마지막까지 안타까왔다.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를 읽으며 오랜만에 읽는 기쁨, 설레임을 한껏 느꼈다. 팔에 기분좋게 감기는 실크처럼 마음에 찰지게 감기는 문장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전해져 시원하기도 했다. 적절한 인용과 통찰력있는 해석, 솔직한 의견은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하기도 했다. 책표지에 있는 문구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을 내내 생각했다. 아마도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 시간을 초월해 영원한 생명을 획득한 그토록 많은 책 속 인물들과 친구가 되어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일, 그것을 다시 전달하는 일, 새롭게 살아내는 일 일지도 모르겠다. 선물처럼 받은 작품 목록을 가지고 이제 직접 그녀들을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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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교양 - 한 권으로 세상을 꿰뚫는 현실 인문학 생각뿔 인문학 ‘교양’ 시리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엄인정.김형아 옮김 / 생각뿔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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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괴테의 교양(생각뿔/엄인정, 김형아 엮고 옮김)』은 시대를 앞서간 한 거장 괴테의 삶과 작품을 스케치하듯 포착하고 있다. 양과 깊이에 있어 재독을 거듭하고 시대적 배경에 충실할 때 비로소 행간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작품의 산 앞에서 주저하게 될 때가 많다. ‘한 권으로 세상을 꿰뚫는 현실 인문학은 본격적인 고전 읽기에 앞서 스케치하듯 저자와 작품을 만남으로써 기대와 감동을 더하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두 엮은이는 "이 책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빛나는 성취 중에 깊은 울림을 주는 주옥같은 잠언들을 간추려 모은 것이다.(9p)"라고 소개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반가운데 잠언집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잠언집이라면 욕심껏 많은 문장을 채워넣을 것 같은데 괴테의 교양현대인을 위한 괴테 입문서라는 문구에서 예상하듯 시각적인 배려를 많이 했다. 다양한 이미지 자료는 작가 본인은 물론, 작품의 삽화나 영감을 받아 완성한 그림, 깊이 교류했던 예술가들, 관련 건축물까지 다양해서 귀한 사진을 모아 볼 수 있게 해준다. 주제별로 여러 작품에서 발췌한 문장은 독자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여백을 확보한다. 상세한 주제 설명은 시야를 넓혀주고 지엽적인 부분보다 맥락을 살필 수 있도록 돕는다. 본문은 발췌문과 독일어 원문을 함께 실었는데 편역자의 단상을 곁들임으로써 독자 또한 주요 문장과 숨은 뜻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도록 안내한다.

 

 

 

올해는 스물 어느 해 겨울,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던 그때, 두꺼운 책을 들고 만감이 교차하며 활자를 읽어나가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온전한 파우스트재독을 예정하고 있기에 파우스트의 문장들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스물넷에 구상을 시작해 60여 년만인 죽기 일 년 전에 완성한 평생의 대작, 완결했기에 죽음을 허락받은 듯한 인상마저 드는 파우스트는 때론 시처럼 마음에 다가온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역시 이런 문장이 있었던가 싶은 비장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대문호 괴테를 만나기 앞서, 또는 그 여정의 추억으로도 곁에 두고 다시 펴보고 싶다.

 

                           

걱정이 마음속 깊이 둥지를 틀고 불안이 기쁨과 평온을 뒤흔들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고통이 생겨난다. 고통은 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아내와 아이, 들판과 집, 또는 물, 불, 칼날, 그리고 독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별것도 아닌 일에 두려움을 느끼며 벌벌 떨고, 잃을 것을 두려워해 울어 대는 것이다. -파우스트-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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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가 되는 토론의 기술 -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주장에 힘을 더하는 토론 연습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16
이강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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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휘의 무기가 되는 토론의 기술(자음과모음은 청소년인문 시리즈의 열 여섯 번쩨 도서다. 시리즈의 대상은 청소년이지만 성인 독자들도 편안하게 다양한 인문 분야를 탐색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현직 국어 교사이기에 현실에 근접한 교실의 분위기와 노하우가 잘 녹아있어 토론 길잡이 역할에 안성맞춤이다. 토론에는 여러가지 유익이 있지만 자기주도적인 지적 탐구와 경청과 소통을 통한 확산성과 유연성, 과정의 유익이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토론은 결국 세상을 향한 열린 태도를 지니게 해준다.

 

 

무기가 되는 토론의 기술은 이미 오래 전 없어진 하리 고등학교 토론 동아리 토론하리가 부활되면서 시작한다. 네 명의 친구들은 신비 선생님의 지도로 토론의 기본부터 차근히 알아가게 된다. 1장부터 5장까지 다섯 가지 논제를 가지고 용어 설명부터 기법을 경험하게 된다. 1장에서는 일상생활 주제로 접근할 수 있는 자유토론으로 주의해야 할 규칙을 배우면서도 재미있게 시작한다. PREP이라는 틀을 활용한 글쓰기는 머릿속 생각을 글로 구체화할 수 있고 자료 검색 방법도 세심하게 확인한다.

 

 

3장에서는 정제된 규칙을 지키며 진행하는 고전식 토론의 단계를 이해하고 상대편의 의견을 추측해 반론을 준비하는 등 자료수집 단계부터 더욱 깊이있는 토론장을 익힌다. 가장 흥미로운 기법은 4장의 토론 연극이었다. 연극의 형태로 논제를 관객과 공유하고 관객이 직접 참여함으로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 토론과 다양한 콘텐츠의 결합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이렇게 성장한 친구들이 교내 토론대회에 참여해 결승에 진출하기까지 독자도 토론의 세계를 부담없이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다. 신비 선생님의 보충수업 코너와 논제별 추천 도서 소개는 특히 도움이 된다. 한 권의 책으로 토론의 실제를 알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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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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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문학동네/정연희옮김)2008년 출간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으로 올리브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설레었다. “단속부터 친구까지 열 세 편의 연작은 메인주 크로스비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계속되는 일상을 그려낸다.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올리브 키터리지484p/문학동네)”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아련함, 내적 응원을 불러일으키던 장면 이후 올리브는 그녀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다시, 올리브를 읽는 일은 어째서 이런 일이!’싶을, 평범의 얼굴을 해서 더 혹독한 사건과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사이로 깨닫고 새삼 알아가는 진실, 짚어낸 의미를 소중하게 가려 담는 과정이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그러나 배짱은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거닐며 보내온 잭 케니슨(10p)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에 놀라워하고, 지금껏 저지른 모든 실수에 대해 벅찬 후회를 느끼는 일흔네 살의 남자,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16p)” 실수와 후회는 사고치는 단짝처럼 붙어다니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투의 환희는 영 만나기 어렵다. 여기에 나이가 얹히면 비장함에 가속도가 붙는다. 삶이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을 차분한 자부심, 의기양양한 성취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잭에게 공감한다. 놀랍고 놀라우니 놀라울 뿐이다.

 

청소에서는 관계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받는 인물을 만난다. 치료제가 없는 외로움의 악취(76p)”는 감돌고 스며든다. 전사한 오빠의 사진과 제비꽃만을 간직했던 미스 미니, 한 번도 잘해준 적 없는 아내 곁에서 내색없이 고통받고 일탈에 이르렀던 링로즈씨,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 엄마 때문에 힘겨웠던 케일리까지.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87p)”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세대간의 오해와 반목, 아쉬움과 서운함, 불쾌하게 입안에 퍼지는 쓴맛처럼 어긋나는 상황과 고착된 한 시기의 상처가 연이은 매듭처럼 꼬여있다. ,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127p)” 올리브는 크리스토프의 존재 하나면 족하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생 이대로 있고 싶었다. 아들이 알파벳을 암송한다 해도 이대로 앉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126p)” 부모에게 아이는 자라지 않고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에 멈추어 있다. 그러니 그 아이의 흰머리를 보고 놀랄 수 밖에. 크리스토프와 그의 아내 앤의 권력관계를 엿본 올리브는 충격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사람들 앞에서 헨리에게 소리 질렀던’, ‘그러고 싶을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냈던자신이 오버랩되며 아들은 엄마같은 여자와 결혼했다(150p)“고 깨닫는다. 회복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채울 수 있다면 그때는 잘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자문한다.

 

버니, 버니. 제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이제 아시겠어요? 아시겠죠? 맙소사. 그 사람들! 제가 어떻게 살아서 빠져나왔을까요? (중략) 부모님이, , 살인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고요, 버니. 그리고 제 동생은 정말 살인자죠. 오 맙소사.(183p)” 딸 수잰을 통해 라킨 씨 가정은 재조명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비난하는 일은 쉽지만 베일이 조금씩 걷히며 본질에 다가갈수록 비판의 화살표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보이는 것이,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드러난 면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고, 그럼에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도 수잰 곁의 좋은 어른, 선한 조력자 버니의 존재는 감사하다. 그녀는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가 할 일은······어쩌면 우리의 의무일 수도 있고요······-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한 어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신비의 무게를 가능한 한 우아하게 견디는 것이다. (187p)“ 암송해야 할 문장이다. 그녀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선사받아 마땅하다.

 

감동은 햇빛에 이르러 찌릿하게 증폭된다. 노년의 낯선 면면들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긍정적인 마무리로써의 죽음 수용은 생의 발달과업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찾아오는 죽음은 당황스럽다. 올리브는 신디에게 말한다.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207p)” 올리브는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며 말을 위한 말, 위로를 위한 위로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살갑지 않지만 신뢰할 수 있다.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는 올리브의 말, 단편의 마지막 문장에 숨을 멈추게 된다. 신디의 마음은 어땠을까. 잭이 너무나도 진짜 웃음을 웃었듯이 올리브가 건네는 것들은 온전히 참되기에 치료제가 된다.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얼마나 협소한지(308p)” 편견에 사로잡힌 마거릿과 살고 있는 밥. 그의 슬픔이 전해진다. 꼬리물기 같은 그는 형이-형이!-그리웠고, 형은 메인을 그리워했다.(308p)”로 시작되는 엇갈림을 따라가다 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퍼거스씨 딸 로리는 우리 가족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병적인 가족일 거예요.(367p)”라고 한탄한다. 퍼거스는 아내한테 우리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379p)” 묻는다. 너무 늦은, 그러나 역시 다행스런 각성의 순간이다. 인생이 나한테만 왜이럴까 하는 익숙한 감정들을 읽어나가게 된다.

 

마지막 제목은 친구. 취향이 분명하고 세상을 향해서나 자신의 감정에 늘 씩씩했던 올리브는 마지막 거처에서도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배우고 깨닫고 돕고 나눈다.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올리브. 그녀는 아들에게 타자기와 장미나무가 필요하다고 전화한다. 나는 나의 마지막 거처에서 그 시간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요청할까, 어떤 것을 곁에 남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고 배운 만큼 부단히 성장하는 그녀의 하루는 그래서 소중하다. 어떤 형태로든 어머니를 간직하고 있는 이자벨과 달리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서 다른 층위의 상실의 슬픔(456p)’을 느끼나 역시 , 됐다그래.” 올리브답게 쿨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올리브가 나이드는 동안 독자인 나도, 나의 부모님도 나이들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뵙고는 엄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마르고 키도 움츠러 들고, 얼굴은 하얗고 빛이 다 나네요, 했다. 예뻐진 것 같으면서도 무언지 모를 철렁함이 있었다. 돌아오면서 앞으로 엄마가 해달라는건 다 해줄거야, 결심했는데 노년으로 완전히 진입하는 부모님 역시 몸도 마음도 생소한 공기에 낯설어 하시는 듯하다. 상실감은 육체적 쇠약에 머물지 않고 올리브나 잭처럼 자신이 눈 먼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삶 전체가 허비되었다고 불현 듯 느낄 때,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음을, 내가 곁에 있을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다.

 

다시, 올리브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흔든다. 부모님의 이야기이고 나와 내 아이들의 이야기다. 메크로스비 바닷가 마을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마을이고 책 속의 이름들은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나의 이웃들이다. 우리는 베티처럼 말한다. 베티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또한 더 많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삶이에요, 올리브.-(420p)” 하지만 네 삶, 모든 삶은 중요하다 일깨우는 올리브. “다시, 올리브가 이렇게 황홀할 줄 알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기대했던 질량을 압축하고도 넘치도록 채워 건네주니 나는 활자 읽기 만으로 쉽고 편하게 충만한 시간을 살아낸다. 그리고 내 삶에, 불편할지도 모를 의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만 왜 이래 불평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성구가 생각난다. 태양 아래 모든 순간 배우고 감사할 것! 올리브와 함께 뒤돌아본 발자국도, 미리 걸어본 시간도 해 아래 반짝인다.

 

 

책 속에서>

-이맘때는 저녁 시간이 끝없이 길었고, 그녀는 긴 저녁 시간을 사랑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56p)

-자기 예찬? 올리브는 자신을 전혀 예찬하지 않았다. 성격장애? 인간의 감정이란 광범위하고 폭넓은 집합체인데 왜 그중 무언가에 성격장애라는 말을 붙이는 건가?(142p)

-머리 위에서 아주 큰 창문이 산산조각나-소방관들이 그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그렇게 부쉈을 것이다-이제 드넓은 세계 전체가 바로 거기, 그녀의 머리 위와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존재하며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선사하는 것만 같았다.(189p)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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