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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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문학동네/정연희옮김)2008년 출간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으로 올리브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설레었다. “단속부터 친구까지 열 세 편의 연작은 메인주 크로스비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계속되는 일상을 그려낸다.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올리브 키터리지484p/문학동네)”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아련함, 내적 응원을 불러일으키던 장면 이후 올리브는 그녀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다시, 올리브를 읽는 일은 어째서 이런 일이!’싶을, 평범의 얼굴을 해서 더 혹독한 사건과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사이로 깨닫고 새삼 알아가는 진실, 짚어낸 의미를 소중하게 가려 담는 과정이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그러나 배짱은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거닐며 보내온 잭 케니슨(10p)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에 놀라워하고, 지금껏 저지른 모든 실수에 대해 벅찬 후회를 느끼는 일흔네 살의 남자,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16p)” 실수와 후회는 사고치는 단짝처럼 붙어다니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투의 환희는 영 만나기 어렵다. 여기에 나이가 얹히면 비장함에 가속도가 붙는다. 삶이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을 차분한 자부심, 의기양양한 성취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잭에게 공감한다. 놀랍고 놀라우니 놀라울 뿐이다.

 

청소에서는 관계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받는 인물을 만난다. 치료제가 없는 외로움의 악취(76p)”는 감돌고 스며든다. 전사한 오빠의 사진과 제비꽃만을 간직했던 미스 미니, 한 번도 잘해준 적 없는 아내 곁에서 내색없이 고통받고 일탈에 이르렀던 링로즈씨,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 엄마 때문에 힘겨웠던 케일리까지.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87p)”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세대간의 오해와 반목, 아쉬움과 서운함, 불쾌하게 입안에 퍼지는 쓴맛처럼 어긋나는 상황과 고착된 한 시기의 상처가 연이은 매듭처럼 꼬여있다. ,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127p)” 올리브는 크리스토프의 존재 하나면 족하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생 이대로 있고 싶었다. 아들이 알파벳을 암송한다 해도 이대로 앉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126p)” 부모에게 아이는 자라지 않고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에 멈추어 있다. 그러니 그 아이의 흰머리를 보고 놀랄 수 밖에. 크리스토프와 그의 아내 앤의 권력관계를 엿본 올리브는 충격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사람들 앞에서 헨리에게 소리 질렀던’, ‘그러고 싶을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냈던자신이 오버랩되며 아들은 엄마같은 여자와 결혼했다(150p)“고 깨닫는다. 회복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채울 수 있다면 그때는 잘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자문한다.

 

버니, 버니. 제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이제 아시겠어요? 아시겠죠? 맙소사. 그 사람들! 제가 어떻게 살아서 빠져나왔을까요? (중략) 부모님이, , 살인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고요, 버니. 그리고 제 동생은 정말 살인자죠. 오 맙소사.(183p)” 딸 수잰을 통해 라킨 씨 가정은 재조명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비난하는 일은 쉽지만 베일이 조금씩 걷히며 본질에 다가갈수록 비판의 화살표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보이는 것이,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드러난 면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고, 그럼에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도 수잰 곁의 좋은 어른, 선한 조력자 버니의 존재는 감사하다. 그녀는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가 할 일은······어쩌면 우리의 의무일 수도 있고요······-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한 어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신비의 무게를 가능한 한 우아하게 견디는 것이다. (187p)“ 암송해야 할 문장이다. 그녀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선사받아 마땅하다.

 

감동은 햇빛에 이르러 찌릿하게 증폭된다. 노년의 낯선 면면들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긍정적인 마무리로써의 죽음 수용은 생의 발달과업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찾아오는 죽음은 당황스럽다. 올리브는 신디에게 말한다.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207p)” 올리브는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며 말을 위한 말, 위로를 위한 위로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살갑지 않지만 신뢰할 수 있다.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는 올리브의 말, 단편의 마지막 문장에 숨을 멈추게 된다. 신디의 마음은 어땠을까. 잭이 너무나도 진짜 웃음을 웃었듯이 올리브가 건네는 것들은 온전히 참되기에 치료제가 된다.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얼마나 협소한지(308p)” 편견에 사로잡힌 마거릿과 살고 있는 밥. 그의 슬픔이 전해진다. 꼬리물기 같은 그는 형이-형이!-그리웠고, 형은 메인을 그리워했다.(308p)”로 시작되는 엇갈림을 따라가다 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퍼거스씨 딸 로리는 우리 가족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병적인 가족일 거예요.(367p)”라고 한탄한다. 퍼거스는 아내한테 우리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379p)” 묻는다. 너무 늦은, 그러나 역시 다행스런 각성의 순간이다. 인생이 나한테만 왜이럴까 하는 익숙한 감정들을 읽어나가게 된다.

 

마지막 제목은 친구. 취향이 분명하고 세상을 향해서나 자신의 감정에 늘 씩씩했던 올리브는 마지막 거처에서도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배우고 깨닫고 돕고 나눈다.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올리브. 그녀는 아들에게 타자기와 장미나무가 필요하다고 전화한다. 나는 나의 마지막 거처에서 그 시간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요청할까, 어떤 것을 곁에 남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고 배운 만큼 부단히 성장하는 그녀의 하루는 그래서 소중하다. 어떤 형태로든 어머니를 간직하고 있는 이자벨과 달리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서 다른 층위의 상실의 슬픔(456p)’을 느끼나 역시 , 됐다그래.” 올리브답게 쿨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올리브가 나이드는 동안 독자인 나도, 나의 부모님도 나이들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뵙고는 엄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마르고 키도 움츠러 들고, 얼굴은 하얗고 빛이 다 나네요, 했다. 예뻐진 것 같으면서도 무언지 모를 철렁함이 있었다. 돌아오면서 앞으로 엄마가 해달라는건 다 해줄거야, 결심했는데 노년으로 완전히 진입하는 부모님 역시 몸도 마음도 생소한 공기에 낯설어 하시는 듯하다. 상실감은 육체적 쇠약에 머물지 않고 올리브나 잭처럼 자신이 눈 먼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삶 전체가 허비되었다고 불현 듯 느낄 때,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음을, 내가 곁에 있을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다.

 

다시, 올리브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흔든다. 부모님의 이야기이고 나와 내 아이들의 이야기다. 메크로스비 바닷가 마을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마을이고 책 속의 이름들은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나의 이웃들이다. 우리는 베티처럼 말한다. 베티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또한 더 많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삶이에요, 올리브.-(420p)” 하지만 네 삶, 모든 삶은 중요하다 일깨우는 올리브. “다시, 올리브가 이렇게 황홀할 줄 알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기대했던 질량을 압축하고도 넘치도록 채워 건네주니 나는 활자 읽기 만으로 쉽고 편하게 충만한 시간을 살아낸다. 그리고 내 삶에, 불편할지도 모를 의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만 왜 이래 불평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성구가 생각난다. 태양 아래 모든 순간 배우고 감사할 것! 올리브와 함께 뒤돌아본 발자국도, 미리 걸어본 시간도 해 아래 반짝인다.

 

 

책 속에서>

-이맘때는 저녁 시간이 끝없이 길었고, 그녀는 긴 저녁 시간을 사랑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56p)

-자기 예찬? 올리브는 자신을 전혀 예찬하지 않았다. 성격장애? 인간의 감정이란 광범위하고 폭넓은 집합체인데 왜 그중 무언가에 성격장애라는 말을 붙이는 건가?(142p)

-머리 위에서 아주 큰 창문이 산산조각나-소방관들이 그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그렇게 부쉈을 것이다-이제 드넓은 세계 전체가 바로 거기, 그녀의 머리 위와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존재하며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선사하는 것만 같았다.(189p)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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