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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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는 퍼즐로 완성한 아버지의 초상, 딸이 부르는 사부곡이다. 작가는 1990년 첫 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낸 후 신춘문예 당선 및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32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로 리얼리스트의 완벽한 귀환을 알린다. 정지아는 후기에서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p.267)라고 말한다.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는 독자를 흠뻑 빠져들게 했는데 허구가 아닌 자전적 색채를 덧입자 감동은 배가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남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던 깊은 여운과 예기치 못했던 ‘과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도와 카타르시스, 그리고 약한 체증을 동시에 경험케 하는 책이다. 소설의 시간이 끝나면 비켜갈 수 없는 독자 개인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p.7)라는 첫 문장이 강렬하다. 내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하는 딸의 회상이 영정 속 빼뚜름한 아버지의 시선을 받으며 그려진다.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대학 강사인 딸 고아리는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고상욱의 또 다른 모습과 만난다. 사회주의자였고 전 빨치산, 합리주의자였던 아버지의 꼿꼿한 선택과 행동이 현실주의자인 딸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나됨은 내 선택이 아니었기에 그로 인한 원망도 세월만큼이나 쌓였던 딸.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해 선 보증으로 거푸 빚을 떠안으면서도 필시 사정이 있었으리라 원망하지 않았던,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다는 아니었다.

아버지를 찾은 사람들이 내민 조각들은 노란 머리 염색하고 할아버지를 애달프게 그리는 소녀처럼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에게도 원수처럼 여겨졌으나 그 원망을 무심히 받아내다 그대로 떠났기에 더 마음 아픈 아버지지만 작은아버지의 ‘사정’처럼 비로소 알게 된 것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청춘의 빛나는 시선을 가진 소년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사시였던 게 아니었다. 질게 뻔한 전쟁에 젊은 목숨을 살리고자 따르는 청년을 만류하는 아버지도 있었다. 그런 싸움을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리는 시간, 조금 더 일찍 알 수 없었기에 슬픈 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읽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었나 싶을 만큼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고상욱이라는 인물의 삶을 엿보며 해방 이후 70년의 혼란과 비극을 살피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아픔은 깊지만 마냥 어둡지 않았다. 이는 대화와 서술의 균형, 맛깔나는 사투리(때론 노래 같은), 유머의 일상화, 타고난 재치가 곳곳에 반짝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공감하게 되는 진지한 사유는 독자를 머물게 한다. 작가는 아리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아버지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 맺는 법, 삶을 대하는 태도, 소중한 것을 묵묵히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내 부모님의 해방일지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몇 해 전 이00 교수님의 자서전 쓰기 수업에 참여한 이후로 마음속 어느 구석엔가 가라앉아 있다. 혹여 흔들리기라도 하면 깔린 진흙이 금새 흙탕물로 일어날까 싶어 살금살금 걷고 있는 중이다. 소설은『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재미있었나? 그렇다면 이제 당신 차례요!’라고 독자를 환기시킨다. ‘저는 독자일 뿐이요!’라는 말은 궁색한 변명이다. 탓은 쉽고 감사는 어려웠던 날들, 오늘만 날인가 외면하던 순간들이 너무 늦었다고 아우성치기 전에 직시해야 할 것이다. 자유는 또는 해방은, 불편하게 옥죄는 굴레를 날 선 칼로 끊어낼 때가 아니라 이해함으로 화해할 때 목울음처럼 뜨겁게 안겨오는 게 아닐까. 한달음에 읽어내고 오래 붙잡힐 소설이 이 겨울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는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p.33)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p.181)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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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 철학자의 탄생
아먼드 단거 지음, 장미성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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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Socrates In Love, 장미성 옮김, 글항아리),2022』는 고전학자 아먼드 단거가 복원해낸 젊은 시절의 소크라테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소크라테스를 소개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방점은 사랑에 찍혀있고 이 사랑이 부제인 “철학자의 탄생 The Making of a Philosopher”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의 상징처럼 단단히 고착된 소크라테스의 이미지를 저자가 수집한 자료들을 도구 삼아 흔들어 대는 책이다. 뿌옇게 이는 먼지 틈새에서 저자는 교정해야 할 부분을 짚어내고 합리적 근거와 설득적 추론으로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인류 최고의 철학자에 대해서 지금껏 베일에 가려져 있었지만 만일 이를 걷어내고 조명을 드리울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분명 호기심과 매혹으로 가득 찰 이 여정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서둘러 동참토록 이끌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전기의 주된 출처인 플라톤과 크세노폰 뿐만 아니라 후대의 전기 작가들 역시 동일한 시각으로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을 간과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이미 알려진 연대기와 여러 문헌을 참고해 중년기 이전 어린 시절까지 철학자의 삶을 재구성한다. 책은 지도와 연표를 첨부하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서 그려진 과장되고 희화화된 소크라테스를 선보이며 시작한다. 저자는 플라톤이 자신이 사랑하는 스승의 삶과 활동에 대해 독자들이 취하기를 바랐던 어떤 시각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하며 희곡이건 저작들이건 그 안에 잠재해 있을지 모르는 “왜곡”을 넘어서고자 한다.(p.40) 키케로의 말처럼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린 철학자이기 때문이다.(p.41)

책은 소크라테스가 스승부터 동시대인들, 제자들과 맺었던 관계를 다각도로 살피며 아테네 전성기와 굴곡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은 아르켈라오스, 알키비아데스, 아스파시아다. 아르켈라오스는 사모스의 철학자 멜리소스의 사상을 배우기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10대 소크라테스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멘토와 함께 했던 이 방문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 고귀한 지혜에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불편함을 가지고 돌아온다. 곧 “인간의 일상적 경험에 대한 절박한 질문에 답해줄 수 없다면 이런 종류의 철학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p.146)라는 질문들을 간직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어려서부터 아꼈던 알키비아데스를 저자는 ‘젊은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자아’로 여겼으리라고 보는데 결국 '폭주하는 젊은이'에서 반역자가 되고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부정적 여론의 단초를 만든다. 아스파시아는 『향연』에 나오는 ‘디오티마’ 의 실제 모델로 본다. 책 속에서 “그녀 나이대의 여성 중 가장 특출나고, 유창하며, 문제적이었고, 아마도 모든 고전고대를 통틀어 가장 특별한 여성일 것이다.”(p.209)라는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으며 철학자의 탄생을 이끈 장본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실만 제대로 이해하기에도 나의 뇌는 용적이 부족한 형편인데 가능성의 영역까지 굳이 추론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도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소크라테스가 가엾은 처지로 물질적으로 어려웠던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다는 주장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철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이전에 경험했던 숙련되고 헌신적인 군인을 비롯한 다양한 행동가적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시민으로서 누렸던 정서들이, 그리고 아스파시아라는 사랑이 일으킨 변화나 크산티페라는 악명 높은 상징의 온건한 수정까지도 만족스럽다.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공인받지 못한 가설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본문 이후 지금껏 다루었던 논의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동원한 재창조’라는 단서를 달면서 “소크라테스의 인생”이라는 15쪽 분량의 새로운 전기를 완성한다. 이제 독자는 플라톤에 의존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사랑의 현현 아스파시아로 인해 서양철학에 방향 전환을 가져온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 채워진 빈틈에 동의되는 폭은 각자 다르겠지만 대화편을 다시 읽을 때 또 하나의 지도, 또 다른 각주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에 관한 증거가 왜 중요한가? 그의 젊을 적 경험과 지인들과의 관계는 소크라테스가 중년의 어느 순간 서양철학의 방향을 결정한 철학 활동의 창시자로 변한 이유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가 말했듯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p.41)

고전학자 메리 레프코위츠의 예리한 지적처럼 그 역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웅적인 죽음이 그에게 불멸을 가져다줄 것이다. 어떤 그리스인도 파트로클로스와 헥토르, 아킬레우스의 이름이나 행동을 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을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일대기를 통제할 수 있었다.(p.132)

소크라테스 이전의 시인과 사상가도 윤리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그들과 다른 점은 그 자신을 개별자로부터 보편적 정의로 나아가게 만든 그 발견의 과정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생각의 진보가 없었다면 플라톤은 결코 그의 이데아 이론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 관한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p.219, 메리 레프코위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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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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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까치)2015, What Is History(1961)』는 질문하고 치열하게 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를 자극하고 깨어있게 만드는 E.H.카의 주요 저서다. 러시아 주재 외교관이기도 했던 카의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저작은 14권 분량의 소련사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로 이 책은 “탁월한 역사적 업적”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69세였던 카가 196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연을 묶은 책이다. 강연의 이유를 제 2판을 위한 서문에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가 엘리트 주의의 한 형태”(p.12)라 진단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전쟁과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던 20세기 전반기, 진영 간 갈등이 두드러졌던 냉전기를 몸소 경험했던 저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긴밀히 연결함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로 시작한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하며 어떤 사실에 발언권을 주고 순서나 전후관계를 결정하는 사람 역시 역사가(p.21)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여러 학자가 갖고 있는 견해를 소급해 그들이 놓치고 있는 면을 짚기도 한다. 결국 인간과 그의 환경의 관계를 역사가와 그의 연구주제의 관계와 동일하게 보고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로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고 동시에 이와 반대로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드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카의 유명한 명제인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2장 “사회와 개인”에서는 역사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하므로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정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사고를 혼란시키는 미끼일 뿐이라고 말한다.(p.79) 이를 위해 살펴보는 가정들과 역사 위인설 등 여러 사례는 무척 흥미롭다. 


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에서는 역사가를 역사적 사실의 수집가와 구별해주는 것을 일반화로 본다. 일반화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 역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즉. 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다른 사건들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p.96)는 인상 깊은 주장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키며 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래를 조망하게끔 이끈다. 역사가와 자연과학자가 동일 선상에 있는 이유와 근거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서는 역사에서의 우연의 문제를 다루는데 저자의 선명한 주장을 볼 수 있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를 넘어 마지막으로 “지평선의 확대”에서는 세계 중심의 이동을 확인한다. 그는 “나 자신으로 말하면, 나는 여전히 낙관론자이다.”라고 전하며 앞서 살폈던 이론가들의 동의하기 어려운 역사관을 소환하고 결론 내린다. 


부록으로 실린 제 ‘2판을 위한 노트’는 방대하고 꼼꼼하게 모은 자료철을 통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판본을 잠시 상상하게 만든다. ‘역사이론에 공헌한 가장 소중한 인물들 중 한 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카는 묻기를 멈추지 않은 학자였고 자신이 먼저 답하고자 한계를 두지 않고 시간의 밀도를 높였음을 알 수 있다. 오래 전 읽었을 때 지적 거인의 논리에 감탄해마지 않았는데 마치 초독 같은 재독을 했던 이번에는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강연이었던 만큼 더욱 자신의 뜻을 오해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두드러졌다. 즉, 논지를 요약하기 위해 거듭 서수를 사용하면서 사례를 대고 다양한 예시로 설명을 보충하기에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다만, 엄청난 분량의 인용이 미덕이자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인용이 매끄러운 자갈길을 걷는 느낌을 주었다. 돌 하나하나를 주워들고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러다가는 너무 지체되고 혹시 들어섰던 이 길이 애초에 어디를 향했었는지 놓칠 것 같아 일단은 계속 통과하는 여정이었다. 시대와 조류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면 책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고 이는 독자의 몫인 것 같다. 용이한 독서는 아닐지라도 『역사란 무엇인가』 읽기는 선택보다 필수에 가깝다. 곱씹어 반복해 읽을 필요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역사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시선을 거두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역사의 범위와 초점을 조정했을 때 답은 달라질 것이고 정해진 정답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묻는 일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또렷한 자극으로서도 카의 저서는 멈추지 않고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책 속에서>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p.46)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에 있다.(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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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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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김연수 옮김, 민음사),1974』는 조작과 거짓이 한 인간을 어떤 식으로 몰아가 끝내 추락시킬 수 있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제목에 덧붙여진 부제는 주인공이 겪어낼 기승전결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견한다. 작가가 ‘모토’라 칭한 서두의 단서에는 구체적인 이름(빌트지)이 등장하는데 이 세 가지 전제조건을 통해서 작품을 읽어내고 통찰하고, 문제 해결은 다른 차원에 놓더라도 진실에 닿기를 요청한다. 언제나 동시대인의 문제와 현실 인식을 화두로 삼았던 하인리히 뵐은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라며 모순과 부조리를 향해 목소리를 냈고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학교에서 교재로 읽히며 영화화되기도 했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그렇다면 지금 현실은 어떤가, 미래를 낙관하거나 가늠해 볼 때 하나의 씁쓸한 표본을 제시한다.

“그자들이 이 아가씨를 끝장내고 말 거야. 경찰이 안 그러면 <차이퉁>이 그럴 거예요. <차이퉁>이 그녀에 대한 흥미를 잃으면, 사람들이 그럴 거고요.”(p.45)라는 문장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블룸을 알고 있는 블로르나 부부는 신문 1면을 장식한 그녀의 기사에 분노를 표하는 동시에 정확히 간파한다. 카타리나 블룸이 지키고, 이루어내고 싶었던 꿈과 희망은 물론 살아있는 자가 마땅히 보장받을 ‘시간’ 또한 빼앗긴 게 현실이다. 카니발 시즌, 댄스 파티에 참석했던 카타리나 블룸은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난 이후 강도 용의자였던 그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언론에 완전히 노출된다. 경찰과 신문이 카타리나에게 가하는 태도와 행동과 말은 의도된 오류를 증폭시키는 일방향으로만 속도를 낸다.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결국 한계에 이르고 만다. “내내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닐 거야.’ 하고요. 그렇지만 난 잘 알고 있었어요.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요.”(p.151) 누가 비상(飛上) 하고 싶었던 카타리나, 유년의 불행과 매정했던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용기 내었던 그녀에게서 갑자기 날개를 빼앗고 끝내 추락하게 만들었나.

소설은 스물일곱 살의 이혼녀 카타리나 블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잃어버리는 과정에 만연했던 폭력과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했던 고통, 이 고통이 불러일으킨 폭력의 귀결까지 부조리한 연쇄 과정을 그린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듯 보이지만 단어는 본래의 의미를 쉽게 왜곡하고 필요에 맞게 변조하며(p.32), 오히려 직업인으로서 도우려는 선의였다 포장(p.114)하면서도 문제의식이라고는 없다. 말이 내포한 진실이 곧이곧대로 수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침묵을 택하기도 한다.(p.120) 소설은 이처럼 언어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일어나는 문제를 때론 위트 있게, 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미 작가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53)>에서 반쪽 진리를 담은 주교의 어휘나 고위 장교들의 빈약한 어휘에 주목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뵐이 독일의 죄의식을 작품으로 구현한 작가였으나 절망에 유쾌함을, 처절한 자기반성과 애교를, 신랄함과 장난기를 함께 묶은 작가였다고 평했다. 또한 그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가 되었으나, 언제까지나 여전히 약자들의 형제요, 그들 중 하나였다며 ‘보통사람’이라는 명칭을 추가한다.(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문학동네 p.300)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이름을 대체할 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전속력으로 질주해오는 이름들이, 사건들이 있기에 1974년 출간된 이 “소설” 또는 작가의 주장대로 “이야기”는 다분히 현재적이며 첨예한 쟁점으로 독자를 각성시킨다.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하인리히 뵐의 작지만 강렬한 소설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이 순간에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이틀 치 <차이퉁>을 핸드백에서 꺼내 보고, 국가가(이렇게 그녀는 표현했다.) 이런 오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지 물었다.(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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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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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헨릭의 『위어드(유강은 옮김/21세기북스)』는 인간 사회의 진화에 대한 인류학적 관심에 깊이 천착해 얻은 최대치의 수확을 꼼꼼하게 펼쳐 보이는 묵직한 저서다.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위어드(원제: WEIRDest People in the World)”를 위한 연구 중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을 먼저 출간하고 10여 년을 지속해온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제목인 “위어드”는 인간 심리의 주요측면을 대상으로 한 비교문화 연구 전체를 검토해 도달한 결론에서 만들어진다. 즉, 인간 심리에 관해 아는 거의 모든 내용이 “여러 가지 중요한 심리적, 행동적 차원에서 다소 이례적으로 보이는 인구 집단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에 “위어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인구 집단은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 출신이기 때문이다.”(p.18)

책은 네 개 파트, 열 네 개 챕터로 “우리의 심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왜 변화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지”(p.57) 거인의 보폭만큼 넓게, 동시에 촘촘하고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본론의 첫 질문은 “당신은 누구인가?”(p.45)로 어쩌면 위어드일지 모른다고 추정한다. 위어드와 대다수의 비위어드를 나눌 때 위어드가 현대인이 지닌 보편적 특징을 더 잘 함축한다. 수치심이 삶을 지배하는 비위어드와 대비해 위어드들은 헬스장에 가는 대신 낮잠을 자면 죄책감을 느낀다는 항목에서, 이어 계속되는 지점에서 공감을 부른다. 개인의 기준과 자기 평가에 좌우되는 죄책감과 “사회적 기준과 일반적 판단에 좌우”되는 수치심은 심리가 발달하게 된 근저까지 찾아들어갈 때 문화-제도-심리 간 역동, 친족과 가족의 결속, 그리고 종교의 역할을 재정립하도록 이끈다. 책은 인간이 문화적 종이고 여러 세대를 거쳐 발전해온 “누적적인 문화적 진리”(p.100)를 기꺼이 수용하는 지혜를 지녔음을 보여주고 인간 종의 성공 핵심에 신뢰 본능이 자리함을 말한다. 이에 더해 인간의 사회성을 살피기 위해 친족과 결혼에 기반한 제도를 분석한다.

전근대 국가로부터 근대의 위어드 사회로 이행하는 직선 경로는 없으며 위어드 사회는 전혀 다른 제도적 토대 위에서, 밑바닥부터 재건된다. 친족에 기반한 조직을 포기하고 문화적 진화를 이루어낸 토대를 이제 종교에서 발견한다. 가설을 검증하고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저자는 기존의 심리 실험을 끌어오거나 새로 설계한다. 책은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등장한 보편 종교들의 세 가지 특징을 추리고 축적된 데이터를 통계 분석해서 경제 속도와의 연관성,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보여준다. 종교적 배경은 위어드 심리가 등장하는 무대를 마련한다. 책은 질문과 답, 가정과 추적을 반복하며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만족스러운 증명 이후 등장하는 필연적 의문에 또다시 답하는 방식을 되풀이한다. 빼곡한 실험과 축적된 연구 소개는 결론의 증거가 되고 이때 한계와 미진한 점을 밝힘으로 거대한 여정은 독자의 호기심과 지적 추진력을 지속적으로 끌어낸다.

인간의 심리가 집단 간 경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기 위해 전쟁의 영향을 확인하는데 전쟁 경험 참가자들 인터뷰와 전투 및 포위전 분포도 등을 활용한다. 전쟁은 도시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창출했음이 드러난다. 또한 길들여진 형태의 집단 간 경쟁이 위어드 체제에서 경제, 정치, 사회 영역에 길드로부터 합자회사의 출발점으로, 정당 결성으로, 스포츠 연맹으로 발전한다. 저자는 집단적 경쟁이 “종종 이기심과 제로섬적 사고, 공모, 족벌주의를 선호하는 집단 내부의 문화적 진화의 힘을 밀어낸다.”(p.458)며 위어드한 제도적 틀이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로 꼽는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것”의 등장과 확산을 다룬 장이다. “그것”은 “최초의 기계식 시계”, “시계”(p.460)다. 저자는 공중 시계의 확산을 WEIRD시간 심리의 등장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시간 절약에 대한 강박”(P.461)이 위어드 시간 심리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며 저자 역시 항상 ‘시간을 아끼거나’, ‘시간을 내거나’, ‘시간을 찾으려고’ 애쓴다고 적는다. 이 강박은 흔들리는 예민한 추를 장착하고 잠들지 않는 눈으로 지켜보다 즉결심판하거나 심판을 지연시킴으로 더 옥죄는 효과를 낳기에 시간 측정의 근거이자 도구의 발전사는 매력적이다. 시간에 대한 심리적 인식 변화도 그 기원을 추적하고 통합한다. 마지막 챕터에서 <총, 균, 쇠>와 비교해 이 책은 "전 지구적 불평등"(P.596)과 관련하여 다이아몬드가 설명하지 않는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서 제도와 심리의 공진화에 집중했으며 이 불평등의 양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교회가 가족 제도를 재편하면서 시작된 사회적, 심리적 변화를 검토할 때만”(P.597)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최재천 교수는 추천사를 “놀라운 책이다.”로 시작한다. 수 많은 찬사들 중 “담대한 시각으로 밀어붙인 기념비적 저서는 근대의 기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필독서가 될 만하다.”(발터 샤이델)는 평가처럼 저자는 종횡무진 인류의 시공간을 누비며 흩어진 금맥을 정연하게 추려낸다. 독자는 책 속에서 이제는 익숙하고도 평균적으로 감지되는 위어드의 마인드부터 섬의 외딴 지역 씨족사회의 흔적을 간직한 소수의 공동체까지 만나며 실로 축지법과 타임머신 여행에 동참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물론이고 흥미진진하다. “위어드”는 책장을 넘기는 동시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와, 정말? 대단해···오오! 등의 추임새가 이어지는 이유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구 분량과 이론을 정립해갈 때의 밀도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이 만들어내는 균형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위어드”는 독자를 끝까지 여행에 동참시키려는 친절한 책이기도 하다. 이토록 수많은 심리 실험, 이토록 현란한 통계 분석, 투명한 한계 명시 및 제언을 따라갈때 중심 주제를 놓쳤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요점을 정리해보면” 등의 청유형 정리문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또한 저자가 “궁금해요? 궁금하면 다음장으로!” 라는 깃발을 들고 전진할 때 발췌독은 불가능하다. 그저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낱말과 숫자, 그림과 각종 그래프, 지도의 영역과 경계선을 ‘알고 싶다, 알아야 한다’며 간절해진 눈으로 응시케 된다. “위어드”는 지금 이 순간까지 도달케 한 인류의 흔적과 그 안에 숨은 의미를 거시적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사하는 책이다. 헌신하는 거인들 어깨 위에서 인류를 조망하게 하는 지적 안내서를 추천한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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