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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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1851)』 은 포경선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과 흰 고래 ‘모비 딕’ 사이의 대결을 그린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폭풍의 언덕』, 『리어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에 포함된다. 일등항해사 출신의 오웬 체이스가 쓴 <포경선 에섹스 호의 놀랍고도 비참한 침몰기>와 원양 포경선에서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모비 딕』에 영감을 주고 31세의 멜빌은 『모비 딕』을 십팔 개월 동안 완성한다. 그러나 절친했던 너새니얼 호손에게 헌정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평단과 대중의 혹평을 듣게되고 사후에야 평론가 레이먼드 위버의 극찬을 계기로 재평가가 시작된다. 현재 『모비 딕』은 완역도 여러 판본이 나와 있어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일러스트 모비딕은 『모비 딕』을 질투했던 윌리엄 포크너가 거실에 켄트가 그린 삽화를 걸어놓고 있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하찮은 자기표현은 원치 않는다. 나는 근원적이고 무한한 것을 원한다. 영원의 리듬을 그려내길 원한다.”고 했던 록웰 켄트, “‘멜빌 부흥’이 대중에게까지 전파된 데는 1930년에 출간된 『일러스트 모비 딕』의 공이 크다.”(p.909)는 설명은 영감 가득한 작품에 걸맞는 또 하나의 예술을 기대케한다.

본문에 앞서 어원과 발췌문이 먼저 독자를 맞는다. 발췌문을 읽을때 작가의 진지함이 전해지며 이 책이 “고래 완결판”이 되겠구나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총 135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책은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p.35)는 유명한 첫문장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화자로 하나의 축을 담당하는 그는 울화증을 떨쳐버리는 방법으로 서둘러 바다로 떠나곤 해왔다. 권총과 총알을 대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선 선원으로써가 아니라 포경 항해를 선택하고 결정적인 동기로 “거대한 고래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p.41)을 든다. 이슈미얼은 앞으로 우정을 나누게 되는 작살잡이 퀴퀘그를 조금씩 알게 되고 함께 삼 년 예정으로 출항을 준비중인 세 척의 배 중 ‘피쿼드’호를 타기로 결정한다. 피쿼드호의 선장을 궁금해하는 이슈미얼에게 선주이자 관리인인 두 선장은 에이헤브 선장에 대해 “위엄이 있고, 신앙심은 없어도 신 같은 사람”이라는 설명 끝에 “에이헤브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p.149)라고 경고한다. “그대도 알다시피 옛날에 에이해브는 왕관을 쓴 왕이 아니었겠나!”(p.149) 구약의 인물 아합왕(왕상16~22장)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겹친다.

28장(p.210)에 이르러서야 ‘에이해브’ 제목으로 주인공은 처음 등장한다. 에이해브가 이 항해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는 장면은 더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그는 강박에 사로잡힌 표정을 감추지 않고 모비 딕을 향한 증오를 드러낸다. 자신의 돛대를 꺽어버리고 죽은 다리를 선물해준 “그 망할 놈의 흰 고래”(p.268)를 위해 세상을 모두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쫓아가겠다고 선포한다. 이를 드러내 반대하는 유일한 인물이 스타벅이다. 머스킷 총을 들고 고뇌하고 배를 내리는 에이해브를 만류하지만 끝내 막지 못하고 떠나보낸다. 모비 딕과 겨루는 사투, 처참한 추격전은 몇 번이고 반복된 끝에 바다는 태초의 모습 그대로,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듯 고요할 뿐이다. 유일한 생존자 이슈미얼은 “나만 홀로 피한 고로 당신께 고하러 왔나이다.(욥1:16)”라는 욥기의 적확한 요절로 인사를 고한다. “연극은 끝났다”(p.883)고.

“이 점에서 미국 포경업계는 미국의 육군과 해군과 상선, 미국의 운하와 철도 건설을 위해 고용된 토목 기술자들의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경우에서 미국 토박이들은 관대하게 머리를 제공하고, 나머지 나라 사람들은 아낌없이 근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p.209) 『모비 딕』은 19세기, 아직 석유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기계를 돌리기 위해 고래기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팽창을 시작하던 때에 분열적으로 혼재되어있던 대립과 갈등, 억압과 착취, 극단적 광기 등이 포경선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그려진다. 소설은 우선 자신의 절대적인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선장 에이해브의 여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같은 단선적 행로는 화자인 이슈미얼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건과 상황, 현상과 관계, 그로부터 비롯한 심리 등을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전달함으로 풍성해진다. 또 하나는 백과사전적, 박물학적 포경 지식의 보고 역할이다. 도서관의 문학 코너가 아닌 수산업 코너에 책이 배치되어서 더 독자의 눈에 띄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이해되는 지점이다.

『모비 딕』은 오래 음미하며 읽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고픈 작품이다. 물론 바로 돌아가기는 어려울지라도 빼곡한 밑줄을 추려 읽다보면 아마도 다시 읽자 싶어질 것이다.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이 생기를 간직하고 있어 독자적 삶과 그들의 선택에 주목하게 만든다. 문체는 다양하게 변조되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반복되는 각운이 시적 울림을 주고 때론 연극 장면이 삽입된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읽는 듯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도, 절제의 여운을 전하기도 한다. 풍성한 비유와 상징, 통찰이 돋보이는 장면에서는 한참을 숙고하며 멈추게 된다. 서정적 표현, 경구와 같은 문장, 직선적으로 질문하는 목소리, 활자로 읽는다기보다 갑판에서 체험하는 듯한 생생함,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인간성의 보편적 성찰도 끌어낸다.

『모비 딕』은 대립되는 두 개의 항이 벌이는 대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터브와 스타벅을 동전의 양면, 인류 전체로 봤을 때 대척점에 홀로 선 에이해브는 멸망할지언정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함께했던 자들은 서른명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화해하고 수용하고 끝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합력하는 자유의지를 증명한다. 원망없이 비극을 대면한다. 『모비 딕』을 완독해서 다행이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미주를 찾아보느라 읽는 동시에 팔 운동, 고개 운동을 무한 반복해야 했던 일이다. 주석 분량이 많아서였겠지만 읽기 전 매번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다른 판본으로 읽는 일, 축역이나 편역을 찾아보는 일 뿐 아니라 그래픽 노블이나 『모비 딕』에서 파생된 작품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 무엇보다 빼곡한 밑줄을 눈으로 목소리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멜빌의 『모비 딕』은 읽는 행위 하나만으로 경이로운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특정한 시대가 아닌 도래하는 모든 현재에 속하는 작품이다. 잔잔하고 때론 묵직한 감동을 만나고 또 모을 수 있기를.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모든 인간의 정신과 의견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의 말을 훔쳐 허세를 부리는 웅변가에게사상가들의 사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독자여, 당신 또한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p.614)

“하, 하, 나의 배여! 이제 너를 태양을 끄는 바다의 전차라 불러도 되겠구나. 어이, 어이! 나의 뱃머리 앞에 있는 모든 나라들아, 내가 너희에게 태양을 끌고 가노라! 저기 저 파도에 멍에를 씌워라. 이랴! 파도가 일렬로 달리는구나. 내가 바다를 몬다!”(p.788)

“스타벅! 어떤 배들은 항구를 떠난 뒤로 영영 종적을 감춰버린다네!“

“그럼요, 선장님 더없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썰물 때 죽고, 어떤 사람은 물의 수위가 낮을 때 죽고, 어던 사람은 물이 가득 차올랐을 때 죽지. 스타벅, 나는 지금 파도의 가장 높은 물마루에 올라선 심정이네. 나는 늙었어. 자, 나랑 악수하세.”(p.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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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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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쥐The Complete Maus(권희섭, 권희종 옮김/아름드리미디어)』는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장편 만화로 부제는 “한 생존자의 이야기”다. 작가의 부모님이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책은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전적 이야기와 부모님의 생존담을 전한다. 작가는 유태인을 쥐로, 다른 등장인물들도 동물로 묘사한다. 잡지에 연재되던 『쥐 1』이 1986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8년이 걸렸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991년에 『쥐 2』가 출간된다. 합본판은 발간 20주년을 기념해 2010년에 나오게 된다. 슈피겔만은 창작 예술가이자 만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영상 예술 학교에서 “만화사”를 강의한다.(p.314) 또한 그는 만화라는 대중문화를 예술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끌어올린 ‘그래픽 노블’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쥐』는 1992년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 부록(p.246)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쥐』는 만화를 하나의 정점에 달하게 했고, 새 지평을 열도록 문을 열어주었다는 극찬을 받아 마땅한 자타가 공인하는 걸작이다.”

아들 아티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어머니 아냐의 삶, 그들이 겪었던 전쟁에 대해 쓰고 싶어한다. 부자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지만 그는 아버지 얘기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쥐는 아버지의 회상 속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결혼 후 행복했던 시간은 잠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징병통지서를 받은 아버지는 어머니, 어렸던 형과 헤어져 입대하게 된다. 전쟁 포로가 된 블라덱이 내뱉는 “난 죽지 않을 거야. 여기 있지도 않겠어! 난 인간 대접을 받고 싶다구!”(p.60)라는 말은 그를 지탱하는 주요 동기다. 블라덱의 고객이자 재단사였던 일체키씨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고 목숨을 구하지만 도움을 준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다행히 그들의 아들은 살지만 블라덱의 큰아들, 아타가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형 리슈는 살아남지 못한다. 죽음은 자기 그림자처럼 가까웠고 예측가능성이란 없는 시간이다. “독일놈들에게 유태인 소수를 넘겨주면 나머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태인 경찰, 독일인이 아닌 유태인 경찰에게 아냐의 조부모님은 이끌려 희생당한다. 또한 작가는 단 두 지면을 할애해 스타디움 선별작업 당시 딸을 위해 담을 넘고 죽음의 편에 기꺼이 섰던 블란덱의 아버지를 그린다. 오래전부터 되풀이 들어왔던 이야기의 실재를 보여준다.

책 속의 책 “지옥 혹성의 죄수-하나의 일화”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어떻게 서서히 삶을 망가뜨렸는지, 고통의 대물림을 압축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는 장면 회상으로 1부가 끝날 때 아티는 아버지가 어머니 아냐의 노트를 태워버렸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너무 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브란덱의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 했던 무수한 선택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항상 아꼈지···만약을 위해 말이다!”(p.69)에서도 생존 본능이 그의 성격으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전쟁 이후 현재를 갉아먹는 불화의 단초가 된다. 2부에서는 『쥐1』이 성공해 조명 받던 당시 작가의 심정도 드러난다. “제가 바라는 건···사면입니다. 아니···아니에요···제가 원하는 건···제 어머니라구요.”(p.206), “인생은 늘 산 사람편이죠. 그래서 무슨 이유인지 희생자들은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최선의 인간은 아니었듯이 죽은 사람들도 최선은 아니었죠. 무작위였으니까요!”(p.209)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명징하다. 브란덱과 아냐의 행적은 전쟁 종식과 이후 재회로 계속된다.

흑백의 빽빽한 그림, 진하고 거친 질감이 “한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더 심연으로 끌어내릴것 같았다. 가슴 아프고 잔혹한 장면은 속수무책으로 독자를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아타는 책 속에서 현실이 만화로 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며 누락과 왜곡을 고민한다. 아타의 아내는 “그냥 솔직하게만 그려요.”(p.180)라고 답하는데 『쥐』는 이를 충실히 따른다. 책은 감정이 개입될 여지 없이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의인화와 상징은 독자를 좀더 가까이 초청하고 어느새 숨을 죽이며 실제 일어났던 전장, 숨죽여야 했던 날카로운 공간에 함께 세운다. 『쥐』는 후반에 실린 작품해설까지도 또 하나의 작품 역할을 한다. “소호에 있는 천정이 높은 아트 슈피겔만의 저택 다락에는 한쪽 벽 전체가 전쟁 전의 폴란드와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는 책자로 가득 쌓여 있다”(p.314)는 설명으로 짐작할수 있듯 여러 곳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드러낸다. 그림 칸의 배열과 시점의 변화를 반영한 원근법 적용 등 다양한 시도는 알고 읽으면 더 감탄을 부른다.

형식적으로 최초의 그래픽노블로 획을 그었다면 내용적으로, 주제에 있어 반드시 쓰여져야 할 이야기다. 일정한 시기에 갇힐 수 없으며 계속 반복해서 다루어져야 할 아픔이다. 이 책의 빼어난 점은 과거와 현재,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 전쟁과 전쟁 이후, 상처와 치유가능성 등 대응하는 두 개 축이 이루는 균형에 있다. 아버지 블라덱의 과거 회상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페이지를 정독하게 하는 일과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세대 갈등, 부자간 감정의 마찰과 애틋함은 또다른 결로 생생하게 닿는다. 놀랍게도 유머까지 만나게된다. 읽고 나면 먹먹함에 질문을 던지게 되는 지점, 안타까운 면면들이 여전히 남는다. 정답이 없을지언정 충분히 묻고 숙고하고 경청할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은 기억될 것이다. 여전히 이기심이 촉발한 참혹한 전쟁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쥐』는 결코 과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읽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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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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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의 『파친코(문학사상,2018)』는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에 맨몸으로 맞서며 사라지고 만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기록한다. 작가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 대부분이 경시당하고 부인당하고 지워진다는 이야기를 글로 써야한다”(p.384)는 믿음이 확고했기에 30년에 걸쳐 소설을 완성해낸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 ‘자이니치(재일동포)’는 속지주의를 택하는 미국의 재미교포와는 다른 조건을 부여한다. “문제는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은 일본이 고향이고 일본어가 모국어인데, 왜 자신이 외국인 취급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p.392,2권) 소설은 떨칠 수 없는 인생의 굴레와 옥죄는 고통에 맞서는 인물들을 담아낸다. 유년 시절 가족 이민으로 뉴욕에 정착한 이민진은 한국 이름을 고수하며 2004년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2008년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을 발표, 여러 상을 수상한다. “파친코”는 올해 웹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주목을 끌고 재출간되는 등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p.11, 1권) 여운을 남기는 도전적 선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기형이 있지만 “분별있는 부모”(p.13)밑에서 자란 덕분에 훈이는 양진을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자녀 선자는 정상으로 태어나 부모를 기쁘게 하지만 딸에게 애틋했던 아버지는 일찍 병사한다. 아기때부터 엎혀 드나들던 남포동 시장에 이제는 홀로 장보기를 도맡아야 하는 선자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새로온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난다. 이삭을 만나기 6개월 전이다. 이미 결혼한 고한수의 아이를 가지고 그의 제안은 거절한 채 선자는 이삭을 받아들이고 함께 이삭의 형, 요셉이 있는 일본으로 향한다. 선자는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처음 장사를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여성, 또는 모성으로서의 마땅한 삶, 희생이자 고생이라고 일컬어지는 길로 들어선다.

요셉은 일본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이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싶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p.267)고 되뇌인다.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 역시 나름의 싸움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의연하고 차분하고 영리했던 큰 아들, “엄마가 걱정할 게 없네.”(p.277)라고 말할 수 있었던 노아는 모든 규칙을 지키고 최고가 되면 “적대적인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p.282, 2권) 믿었다. 아들의 마지막 선택 앞에서 “그런 잔인한 이상”을 방기했다고 어머니는 자책한다. 모자수와 그 아들 솔로몬의 선택까지 확인하고 나면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다. 부산 영도의 훈이와 양진부터 그의 딸 선자,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4대에 걸친 가족사가 펼쳐진다. 그들과 관계하는 인물들의 서사도 등장과 맺음마다 고유한 의미와 흔적을 선명히 남긴다. 선악을 떠나서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 이입해 보고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며 실패와 좌절, 실수나 후회에 가슴 아파하게 된다. 이는 작가가 지난한 취재를 꼼꼼히 다지고 탄탄하게 서사와 배경을 구축한 덕분일 것이다. 묘사와 대화의 균형, 간결한 문체, 담백한 서술, 속도감 있는 진행은 가독성을 높이고 몰입케한다. 반면 다양한 측면의 나열식 정보 전달이 오히려 주요 사건과 인물에 한껏 침잠하는 데는 저해요소가 아니었나 아쉬웠다.

<파친코>가 아니었다면 자이니치와 그들이 겪어온 시간에 여전히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를 망각과 몰이해에서 빛으로 끌어오고 목도케 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적 질문이 도처에 흩어져있다. 다분히 현대적인 시대극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명멸은 분량과 관계없이 무게를 간직한다. 작가는 1권 고향(1910~1949)의 제사에 찰스 디킨스를, 2권 조국(1953~1989)의 제사로는 박완서의 문장을 선택한다. 『파친코』는 고향을 떠나 조국을 그리며 불모의 삶일지언정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도전에 응전해온, 여전히 진행중일지도 모르는 인생들에게 바치는 찬가로 읽힌다. 이제 영상으로 만나볼 차례다. 아껴둔 선물이 가슴 뛰게 한다.

책 속에서>

선자는 인생을 살면서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끔씩 선자는 자신이 언젠가는 쓸모없어질 튼튼한 농장의 가축이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자신이 떠나고 없어도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준비해주어야 했다.(p.330, 1권)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p.22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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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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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현의 『그림의 힘(세계사)』이 리커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2015년, 곁에 두고 바라보기만 해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그림을 소개하며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와 “합격을 부르는 최적의 효과”로 시리즈를 선보였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그림의 힘”까지 연령대를 넓혀 어린이 독자들이 예술에 다가서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초판 출간 이후 이번 개정판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임상 연구 현장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명화 가운데 78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가의 그림을 표지 전면에 가득 채워 소개하는 작가 에디션의 시작은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월>로 표지 가득 싱그러움이 넘친다. 알리는 말에서 저자는 “책장을 덮은 채 가까이만 두어도 휴식과 함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힌트를 준다. 책은 “삶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또 가장 향상시키고픈 다섯 가지 영역”(p.6)으로 “일, 사람 관계, 부와 재물, 시간관리, 나 자신”을 선택하고 주제별로 도움받을 수 있는 명화를 소개한다.

“저는 그림의 힘을 믿습니다.” 목차에 앞서 실린 짧은 문장은 저자가 20년 넘게 이어진 현장 경험으로부터 얻은 확신이다. 주제마다 어려움과 고민, 갈등과 욕구를 부르는 상황들이 있는데 저자는 이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맞춤 그림을 제공한다. 임상 사례들도 풍성해서 독자가 쉽게 이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이가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감각적으로는 청량감을, 정서적으로는 사랑의 설렘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p.139)라는 문장은 페이지 하단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소제목 아래 작가와 작품명이 있지만 그럼에도 짧은 시간 상상하고 기대하게 된다. 과연 다음 페이지에 어떤 그림이 있을까 설레는 순간이 반복될 때마다 책의 진행과 구성에도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장 조프루아의 <교실, 공부하는 아이들>은 폴로이드 올포트의 ‘사회적 촉진’과 연결했을 때 시선을 붙잡는 이유에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남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압도적인 풍경 자체가 의욕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p.48)이라고 심리를 설명한다. 이 여름 공부하느라 후덜덜, 후줄근할 두 딸에게 이 그림을 추천했다. 보거라, 능률이 높아지리라! 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책들아, 다 덤벼라!”하고 기운을 낼 수 있었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는 엄마에게 선물 받았던 그림이다. 아장아장한 딸 둘과 씨름이 일상이던 오래 전 우리 딸들 같다고 보내주셔서 벽 한 켠에 걸었었다. “벽에 걸어놓을 그림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환희의 선물이 되어야 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p.87) 저자는 ‘르누아르의 명쾌한 모토’를 전한다.

『그림의 힘』,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은 저자의 권유처럼 ‘지금’ 필요한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게 한다. 한 작품도 놓치기 아까워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밑줄과 눈맞춤을 이어갔지만 더 오래, 더 자주 눈길을 빼앗는 작품에 하염없이 머물러도 좋다. 감상에 최적하도록 전문 보정 과정인 '프린트디렉션'을 거쳐 최상의 상태로 리뉴얼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설명대로 선명한 작품들이 책 속 미술관 탐방처럼 빛을 발한다. 텍스트는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독자가 느낄 감정의 여백을 넉넉히 확보한다. 에세이를 쓰고 싶은 그림들이 말을 거는 것 같다. 혹시 개정판 2권도 나오지 않을까 기다려진다. 인간이 거쳐 갈 생의 모든 순간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낙관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그림의 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도서제공/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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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처음 만나는 세계 - 메타버스, 블록체인, 암호화폐로 펼쳐지는 새로운 예술의 장 서울대학교미술관×시공아트 현대 미술 ing 시리즈 1
심상용 외 지음 / 시공아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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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처음 만나는 세계(시공아트)』는 대한민국 현대 미술계의 뜨겁고 새로운 주제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현대미술 ing시리즈”를 여는 책으로 심상용, 디사이퍼, 캐슬린 김, 이민하, 김성혜, 정현이 공저했다. 2021년 이루어진 크리스티 뉴욕 지사의 경매는 현재 생존 작가들의 작품 경매가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고 NFT미술은 바로 뜨거운 이슈가 된다. 이 책은 NFT의 기술적 이해와 “NFT가 미술(예술)에 접목되면서 비롯된 현상들의 짧은 역사,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성찰”(p.9)을 나눈다. 들어가는 말에서 주 저자이자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심상용은 NFT 미술 현상이 우리에게 도래할 장밋빛 미래일지 스쳐가는 태풍일지 판단을 보류한다. 또한 독자가 취할 가장 현명한 태도를 제안하며 적확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불현듯 “어서와, 방탄은 처음이지?” 하며 역사를 시작했던 9년 전의 소년들이 떠오르면서 “어서와, NFT는 처음이지?”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따라가본다.

『NFT, 처음 만나는 세계(시공아트)』는 총 6장에서 여섯 개의 주제를 저자별로 살핀다. 1장은 블록체인에 대해 연구하는 ‘디사이퍼’ 네 저자가 “NFT와 현대 미술”을 다룬다. NFT시장에서알아야 할 근간 기술 블록체인은 쓰기 전용 구조의 데이터베이스와 비슷해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못한다. 이는 데이터의 위조와 변조를 방지할 수 있어 디지털 자산을 구현하고 거래하기에 적합한 플랫폼이다.(P.18) 1장은 가장 대표적인 블록체인인 이더리움과 NFT시장과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책 제목을 부연하는 “메타버스, 블록체인, 암호화폐로 펼쳐지는 새로운 예술의 장”에 포함된 각 요소를 정리해준다. 특히 오픈씨를 통해 내 작품을 NFT로 발행 및 거래하는 과정은 예술과 일상이 얼마나 가깝고 실현가능한지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

2장 “역사와 현장:NFT 미술의 출발부터 현재까지”에서는 비플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마이크 윈켈만의 <매일:첫 5000일> 경매 현장을 소환한다.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생존 작가 작품 중 가장 높은 낙찰가 3위를 차지했”(P.74)던 이 순간은 책 전체를 통해 반복해 등장하고 의미를 열거하며 질문을 던진다. 최종 낙찰자인 메타고반의 변론과 데이비드 호크니의 ‘거품’이라는 반론은 팽팽한 긴장을 일으킨다. 4장 “NFT 미술의 시장가치”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가 디지털로의 대전환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반강제적으로 마주하게”(P.164)되었던 배경이었음을 말한다. 5장 “예술, 기술, 존재”는 원본과 복제의 의미를 탐색하고 메타버스에 입장하거나 실제 전시장에서도 디지털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전시 관람의 달라진 개념을 숙고하게 한다. “오로지 모방만 된 상태, 따라서 보증서로서의 NFT는 작품의 표피를 복제할 뿐 작품이 생성되는 과정의 심리적 갈등, 연금술적 작용, 우연의 발견, 변덕, 실망과 환희와 같이 켜켜이 쌓인 정동의 순간들을 복제할 수는 없다.”(p.197)

6장, “NFT, 기게스의 반지”는 주 저자 심상용이 대체 불가 토큰인 NFT가 단시간만에 예술 관련 가장 뜨거운 주제로 부각된 현실을 진단한다. NFT 미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검토할 때 비플의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은 다시 소환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최신의 정보를 제공받고 그로 인해 우려하거나 기대하게 될 것이다. 저자들은 치우침 없이 새로운 예술의 장, 단점을 소개하고 미래에 실현가능한 장을 내다보았다. 6장은 단독으로 읽어도 상당히 매력적인 논리와 근거, 사유의 진행, 인문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속도감 있는 문장이 주저 없이 미심쩍음의 속내를 들춘다. 이 장을 따로 떼어내서 반복해서 읽고 싶은 이유는 애매모호함이라고는 던져버린 강력하게 질주하는 문장 때문이다. 물론 ‘나는 반대요’도 허용한다. 서울대학교미술관과 시공아트가 시작한 “작은 모험”(p.10)이 어떤 결과물들을 앞으로 선보이게 될지 "현대 미술 ing 시리즈“의 다음 저서를 기다리게 된다. 현대 미술 입문자와 향유자 모두에게 훌륭한 지적 안내자가 될 것이다.

전통적 매체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장르 간 경계를 무너뜨리며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구현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 이를 펼칠 메타버스라는 초월적 가상 공간, 그리고 NFT라는 증명 수단 또는 새롭게 규정된 예술의 개념은 예술 창작자들에게 물감을 담아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 준 투브가 개발되었을 때, 그리고 카메라가 개발되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P.118)

예술가나 구매자 모두 스스로 자신들이 ‘회색의 인간’임을 부지런히 증명하는 중이다. 시인들은 매스 미디어의 조명 아래 잠시 우상이 되었다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파티 초대객 목록에 끼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화가와 조각가는 매력적인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으로 크게 만족한다. 악마의 유혹은 영혼 없는 시인과 기도하지 않는 화가, 수익성을 예찬하는 감상자의 양산으로 이어진다. 예술은 산화되고 예술가는 빠르게 증발되는 중이다. 예술가 없는 예술의 다음 단계는 인공 지능으로 대체된 예술일 것이다. 지금 뱅크시와 ‘인스펙티브 프로토콜’의 주장 사이의 차이가 무의미하듯, 머지않아 인간의 예술과 인공 지능의 예술 사이의 차이도 문제 될 게 없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중심은 이미 텅 비어 가는 중이다.(p.228)



<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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