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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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문학동네, 1851)』 은 포경선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과 흰 고래 ‘모비 딕’ 사이의 대결을 그린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폭풍의 언덕』, 『리어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에 포함된다. 일등항해사 출신의 오웬 체이스가 쓴 <포경선 에섹스 호의 놀랍고도 비참한 침몰기>와 원양 포경선에서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모비 딕』에 영감을 주고 31세의 멜빌은 『모비 딕』을 십팔 개월 동안 완성한다. 그러나 절친했던 너새니얼 호손에게 헌정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평단과 대중의 혹평을 듣게되고 사후에야 평론가 레이먼드 위버의 극찬을 계기로 재평가가 시작된다. 현재 『모비 딕』은 완역도 여러 판본이 나와 있어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일러스트 모비딕은 『모비 딕』을 질투했던 윌리엄 포크너가 거실에 켄트가 그린 삽화를 걸어놓고 있었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하찮은 자기표현은 원치 않는다. 나는 근원적이고 무한한 것을 원한다. 영원의 리듬을 그려내길 원한다.”고 했던 록웰 켄트, “‘멜빌 부흥’이 대중에게까지 전파된 데는 1930년에 출간된 『일러스트 모비 딕』의 공이 크다.”(p.909)는 설명은 영감 가득한 작품에 걸맞는 또 하나의 예술을 기대케한다.

본문에 앞서 어원과 발췌문이 먼저 독자를 맞는다. 발췌문을 읽을때 작가의 진지함이 전해지며 이 책이 “고래 완결판”이 되겠구나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총 135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책은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p.35)는 유명한 첫문장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화자로 하나의 축을 담당하는 그는 울화증을 떨쳐버리는 방법으로 서둘러 바다로 떠나곤 해왔다. 권총과 총알을 대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선 선원으로써가 아니라 포경 항해를 선택하고 결정적인 동기로 “거대한 고래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p.41)을 든다. 이슈미얼은 앞으로 우정을 나누게 되는 작살잡이 퀴퀘그를 조금씩 알게 되고 함께 삼 년 예정으로 출항을 준비중인 세 척의 배 중 ‘피쿼드’호를 타기로 결정한다. 피쿼드호의 선장을 궁금해하는 이슈미얼에게 선주이자 관리인인 두 선장은 에이헤브 선장에 대해 “위엄이 있고, 신앙심은 없어도 신 같은 사람”이라는 설명 끝에 “에이헤브는 보통 사람이 아니야.”(p.149)라고 경고한다. “그대도 알다시피 옛날에 에이해브는 왕관을 쓴 왕이 아니었겠나!”(p.149) 구약의 인물 아합왕(왕상16~22장)으로 연상되는 이미지가 겹친다.

28장(p.210)에 이르러서야 ‘에이해브’ 제목으로 주인공은 처음 등장한다. 에이해브가 이 항해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는 장면은 더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그는 강박에 사로잡힌 표정을 감추지 않고 모비 딕을 향한 증오를 드러낸다. 자신의 돛대를 꺽어버리고 죽은 다리를 선물해준 “그 망할 놈의 흰 고래”(p.268)를 위해 세상을 모두 돌고 “지옥의 불길을 돌아서라도” 쫓아가겠다고 선포한다. 이를 드러내 반대하는 유일한 인물이 스타벅이다. 머스킷 총을 들고 고뇌하고 배를 내리는 에이해브를 만류하지만 끝내 막지 못하고 떠나보낸다. 모비 딕과 겨루는 사투, 처참한 추격전은 몇 번이고 반복된 끝에 바다는 태초의 모습 그대로,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듯 고요할 뿐이다. 유일한 생존자 이슈미얼은 “나만 홀로 피한 고로 당신께 고하러 왔나이다.(욥1:16)”라는 욥기의 적확한 요절로 인사를 고한다. “연극은 끝났다”(p.883)고.

“이 점에서 미국 포경업계는 미국의 육군과 해군과 상선, 미국의 운하와 철도 건설을 위해 고용된 토목 기술자들의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경우에서 미국 토박이들은 관대하게 머리를 제공하고, 나머지 나라 사람들은 아낌없이 근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p.209) 『모비 딕』은 19세기, 아직 석유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기계를 돌리기 위해 고래기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팽창을 시작하던 때에 분열적으로 혼재되어있던 대립과 갈등, 억압과 착취, 극단적 광기 등이 포경선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그려진다. 소설은 우선 자신의 절대적인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선장 에이해브의 여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같은 단선적 행로는 화자인 이슈미얼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건과 상황, 현상과 관계, 그로부터 비롯한 심리 등을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전달함으로 풍성해진다. 또 하나는 백과사전적, 박물학적 포경 지식의 보고 역할이다. 도서관의 문학 코너가 아닌 수산업 코너에 책이 배치되어서 더 독자의 눈에 띄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이해되는 지점이다.

『모비 딕』은 오래 음미하며 읽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고픈 작품이다. 물론 바로 돌아가기는 어려울지라도 빼곡한 밑줄을 추려 읽다보면 아마도 다시 읽자 싶어질 것이다.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등장 인물이 생기를 간직하고 있어 독자적 삶과 그들의 선택에 주목하게 만든다. 문체는 다양하게 변조되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반복되는 각운이 시적 울림을 주고 때론 연극 장면이 삽입된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읽는 듯 많은 의미를 내포하기도, 절제의 여운을 전하기도 한다. 풍성한 비유와 상징, 통찰이 돋보이는 장면에서는 한참을 숙고하며 멈추게 된다. 서정적 표현, 경구와 같은 문장, 직선적으로 질문하는 목소리, 활자로 읽는다기보다 갑판에서 체험하는 듯한 생생함,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인간성의 보편적 성찰도 끌어낸다.

『모비 딕』은 대립되는 두 개의 항이 벌이는 대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터브와 스타벅을 동전의 양면, 인류 전체로 봤을 때 대척점에 홀로 선 에이해브는 멸망할지언정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함께했던 자들은 서른명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화해하고 수용하고 끝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며 합력하는 자유의지를 증명한다. 원망없이 비극을 대면한다. 『모비 딕』을 완독해서 다행이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미주를 찾아보느라 읽는 동시에 팔 운동, 고개 운동을 무한 반복해야 했던 일이다. 주석 분량이 많아서였겠지만 읽기 전 매번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다른 판본으로 읽는 일, 축역이나 편역을 찾아보는 일 뿐 아니라 그래픽 노블이나 『모비 딕』에서 파생된 작품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 무엇보다 빼곡한 밑줄을 눈으로 목소리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멜빌의 『모비 딕』은 읽는 행위 하나만으로 경이로운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특정한 시대가 아닌 도래하는 모든 현재에 속하는 작품이다. 잔잔하고 때론 묵직한 감동을 만나고 또 모을 수 있기를.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가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모든 인간의 정신과 의견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의 말을 훔쳐 허세를 부리는 웅변가에게사상가들의 사상이 ’놓친 고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독자여, 당신 또한 ’놓친 고래‘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p.614)

“하, 하, 나의 배여! 이제 너를 태양을 끄는 바다의 전차라 불러도 되겠구나. 어이, 어이! 나의 뱃머리 앞에 있는 모든 나라들아, 내가 너희에게 태양을 끌고 가노라! 저기 저 파도에 멍에를 씌워라. 이랴! 파도가 일렬로 달리는구나. 내가 바다를 몬다!”(p.788)

“스타벅! 어떤 배들은 항구를 떠난 뒤로 영영 종적을 감춰버린다네!“

“그럼요, 선장님 더없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썰물 때 죽고, 어떤 사람은 물의 수위가 낮을 때 죽고, 어던 사람은 물이 가득 차올랐을 때 죽지. 스타벅, 나는 지금 파도의 가장 높은 물마루에 올라선 심정이네. 나는 늙었어. 자, 나랑 악수하세.”(p.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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