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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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로 대동단결하였던 추억이 엄마의 유년과 우리들의 유년의 공통점이다. 성탄절 연극과 예배, 새벽송도 축제 같았지만 산타 할아버지에게 쓰던 편지, 산타클로스의 방문은 늘 하이라이트였다. 이를 위해 숨은 노고와 애정과 헌신하는 약속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어른이 되고, 아니 부모가 되고 알게 된 결코 쉽지 않은 것들 중 하나다. 올해도 엄마의 화이트 철 대문은 크리스마스 전구로 반짝인다. 하지만 현실은 놀라운 괴리와 틈을 보인다. 뉴스는 무서운 소식들도 전했다.


크리스마스 소설 한 편이 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한별 옮김, 나무생각, 다산책방, 2023, 132쪽 분량)』은 침착하고 사려 깊게 구원의 첫발을 내딛는 과정을 따라간다. 크리스마스 대표격 고전인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보여주는 판타지와 극적 반전과는 결이 다른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작가가 세공한 보석같은 작품인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출간한 소설이다. 백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덜어낸 끝에 정수만을 남기는 작가의 작업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빌 펄롱은 딸들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걸 보며 조용히 기뻐한다. 그는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p.22) 안다. 뉴스에선 어려운 소식이 들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 역시 혹독하다. 그는 그럴수록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을 이곳에서 유일한 괜찮은 여학교에 보내 졸업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결심한다, 아니 ‘결심을 굳’(p.24)힌다.


날씨가, 추위가, 형편이 혹독해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온다. 아내 아일린은 딸들의 도움을 받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몰래 뜯어 올해의 산타 선물을 확인하며 으레 해야 할 일, 당연한 과제를 수행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공이 들어가고, 중단되고 이탈할 가능성은 곳곳에 숨어 도사린다.


펄롱은 유년을 회고한다. 가사 일꾼이었던 엄마는 시미즈 윌슨의 집에서 일했고, 어느 날 자신을 낳았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다. 아이가 없는 시미즈 윌슨은 펄롱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었으나 크리스마스 선물만큼은 지금까지 쓰라리다. 간곡히 원했던 두 가지 선물중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던 그날이 여전히 아쉽다. ‘빈주먹’으로 태어난 펄롱은 자신의 힘으로 석탄 목재상이 되었고, 이제는 소중한 다섯 딸을 잘 양육하리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하루를 잇댄다.

그래도 가끔은 답답하다. 늘,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p.29) 펄롱은 궁금하다. 생각은 과거보다는 하루 앞날을 산다. 계속해서 하루 앞날을 살아야만 나날들이 온전하고 안전할 가능성을 조금 더 확보한다. 몸과 마음은 각각 다른 좌표에 선다.


소설은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가 완전히 새로운 크리스마스가 되는 순간을 고요하면서도 뜨겁게 기록한다. 아내 아일린은 그를 염려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녀는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라고 말한 후 “그래야 계속 살지.”(p.56)라고 덧붙인다. 모른척하지 않을 경우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현실 인식은 경고를 내포한다. ‘우리 딸들’과 ‘거기 있는 애들’을 일대일로 두었을 때의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경고는 그가 이미 받은 사소한 것들을 외면하도록 하는데 실패한다. 그는 맨발인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나선다. 아내와 다섯 명의 딸들이 있는 집을 향한다. 두려움과 설렘, 무엇보다 기대를 안고. 크리스마스다.


소설은 역사 속 구체적 사건을 부각하기보다는 언제라도 발생 가능하고,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부조리를 보여준다. 이미 고착되었고 막강한 힘에 의해 가속하고 있는 일에 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렵다. 펄롱의 아내 아일린과 케호 식당의 여주인 미시즈 케호의 조언은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쉽지 않은 시기를 조심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선택의 여지 없는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펄롱은 “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p.106)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상주의자인가?


펄롱의 선택은 그가 받아온 사소한 것들의 축적으로 가능했다. 그는 잊지 않고 있다.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고 큰 사전을 건네던 미시즈 윌슨, 대회에서 상을 받자 자기 자식인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던 일, 그래서 자기가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는 오지 않았지만 일상의 은총처럼 곁에서 사소한 것들을 보태주었던 사람을 뒤늦게 알아본다. 사소한 친절은 사소하지 않다. 사소한 외면 또한 마찬가지다.


펄롱은 ‘평범한 마음’(p.71)을 누르고 자기만의 길을 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괴롭힌 실체가 외부 보다 내면에 있었음을 인식한 그는 마음이 이끄는 길을 걷는다. 작가는 등장인물이 정확히 목표를 수행하도록 배치한다. 서사의 길목마다 전조와 암시로 연결시키고 마침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첫 문단으로 돌아가 재독할 때,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단어와 문장을 발견케 된다. 다시 읽을 때마다 하나의 장면은 겹겹의 의미를 간직하고 풍성한 두께를 드러낸다. 고양이나 까마귀, 사소한 무엇 하나도 대상 자체만 의미하지 않는다. 키건 읽기의 특별함이 아닐까. 이제 새 신을 신게 될 소녀의 날들은 결코 위태롭지 않겠다. 언제 읽어도 좋겠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더욱 빛날 작품을 추천한다. 곧 개봉할 킬리언 머피 주연의 동명 영화도 놓칠 수 없겠다.




책 속에서>


“너희 지금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 쓰지 그러니?”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4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p.29)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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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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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시성으로 꼽히는 괴테의 시 100편을 감상하고 필사할 수 있는 책 나를 울게 두오!(배명자 옮김, 나무생각, 2024, 280면 분량)가 출간되었다. 책을 펴기 전, 만듦새에 우선 멈춘다. 오렌지빛 직물 느낌의 하드커버 표지에서 활자는 푸른 별처럼 빛난다. 상단의 필기체가 지금 막 괴테가 써내고 있는 시일 것만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인 장석주는 추천의 글에서 괴테의 시가 본질을 직시하고 세상 이치의 핵심을 꿰뚫는다고 평한다. 또한 생을 아끼고 제 안의 슬픔과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기어코 사랑과 행복을 찾으려는 자에게 읽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시가 손닿을 수 없는 별이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내가 서있는 현실에 스밀 수 있는 빛으로 온다. 걸음을 내딛도록 조명하는 길잡이로 서서히 인도해 간다.

 

첫 번째 시는 아름다운 노래로 기억하는 <들장미>. 제목을 보는 순간 귓가에는 멜로디가 흐른다. ‘거친 소년은 결국 장미를 꺽고 만다. 소년만일까, 성급하게 취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후회할 수도 언제까지나 모르는 채 무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아름다움을 헤아려본다. 극적인 음률로 깊은 가을부터 찾아 듣게 하는 <마왕> 전문은 읽는 자체로도 의미를 지닌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나,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무력한 상실을 시인은 속도감 있게 포착한다.

 

위트가 넘쳐 웃음 짓게 하는 시는 시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알려준다. 신랄하게 정곡을 찌르는 시가 통쾌함을 선사하는데 아마도 정점이 <한 사내가 손님으로 왔고> 이겠다. 다소 과격한 표현, 거침없는 언사가 눌려있던 감정을 들추는 것 아닌가. 한 편의 짧은 소동극을 연상케 하는 장시 <마법사의 제자>는 생생한 장면이 그려져 유쾌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시인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도 찬찬히 들여다본다. <희망>, <근심>, <용기>를 제목 삼아 연약한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준다. 동일한 제목으로 한 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시인은 인간의 내밀한 성정을 찬찬히 살피고 명확하게 지침을 선사한다.

 

괴테의 연작시 중에서 <로마의 비가><베니스 경구>는 몇 편을 정선하여 실었다. 첫 연작시인 <로마의 비가>를 비롯해 연작시 전체를 일관된 맥락에서 감상하는 기회가 기다려진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영단어가 상당량이었듯 괴테 역시 익숙한 관용구의 원저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라인강과 마인강> 31행의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의 첫 행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익숙하다. 시인은 후자의 결말을 모든 죄는 이 지상에서 죗값을 치러야 하기에!’라는 통찰로 맺는데 엄마의 말씀이 겹친다. 죽어서 천국 지옥이 있는 게 아니라 살아서 다 갚게 된다는 늘 하시던 말씀이. ‘우리는 요람과 무덤 사이의 삶이라는 긴 수로를 흔들흔들 떠내려간다<베니스 경구 6>도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은 경고 문구다.

 

<베니스 경구 18>에서 시인은 그러니 친구여, 그저 살며 계속 시를 써라!’하고 조언한다.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체험 그대로 쓰지 않았다.”고 했던 괴테는 살며 시를 쓰는 행위를 문자 그대로 실천한 시성이었다. 어떤 형태를 취하건 그의 시는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직설화법과 은유가 교차하여 등장하고 마냥 무겁게 가라앉다가도 한 호흡 숨 쉴 틈을 마련한다. 능숙하게, 동시에 유연하게 독자를 이끄는 시는 때로 노래이고 때로는 잠언이 되어 푯대로 선다.

 

감정의 무수한 갈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시인의 큰마음을 연과 행, 마침표와 쉼표로 전달해 준 역자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마지막 시는 표제작인 <나를 울게 두오!>. “나를 울게 두오!/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오/ 벌써 푸릇푸릇하구나로 맺는 시는 애달픈 눈물을 먼지에 생명을 부여하는 주체로 승격시킨다. 이십 대의 어느 1월에 <파우스트>를 읽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차가웠던 겨울과 두근거림은 그대로 기억한다. 내년 1월에 <파우스트>를 다시 읽는다. 기다리던 독서로 새로 구입한 책은 몇 해째 정렬한 채 꽂혀있다. 그 전에 시 필사집을 먼저 읽고 쓸 수 있어 기쁘다. 읽고 낭독하고 쓰면서 내 삶에 밀착해 오는 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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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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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 영화 베스트로 이동진 평론가가 꼽은 1위 작품이 오멸 감독의 지슬이었다. 첨부된 20자평은 어떤 영화는 그 자체로 숙연한 제의가 된다였다. 엊그제처럼 생생하지만 어느덧 십 년이 지났다. 처음 보는 단어는 낯설었고, 진심을 눌러 실은 추천이 영화를 찾아보게 하였다. 떨어진 섬 제주에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다. ‘시대의 진실, 영화의 진실이라는 부제를 단 지슬에서 청야까지2016년 출간된 윤중목 평론가의 영화평론집이다. 지슬이라는 낱말을 품고 있는 제목을 지나칠 수 없었다. 글로 다시 영화를, 섬과 사람들을 기억해야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332면 분량)는 노벨상 위원회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제 막 한강을 알게 된 독자가 가장 먼저 읽기를 바라는 작품으로 꼽은 최근작이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p.9)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생생한 꿈이 작품 전체를 견인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2014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소년이 온다)을 낸 이후 악몽은 시작되었다. 작품에서도 소설가로 등장하는 경하는 작가의 분신으로, 자전적인 경험을 기록하며 탈고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고통을 쓴다. 직접 <작별>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마지막 인사일 수는 없다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고 구체화된다.

 

화자인 는 프리랜서 사진가이자 다큐 영화를 찍고, 지금은 목공일을 하고 있는 이십년 지기 친구 인선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했었다. 반복되던 꿈처럼 검은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경하는 중지하겠다고 하였지만 인선은 어쨌든 난 계속하고 있을 거야.”(p.54)라고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인선의 부름이 도착한다.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있는 인선은 당장 제주 집에 가달라고 부탁한다. 지금 당장. “오늘 안에 가면 살릴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내일은 죽어 반드시.”(p.66) 혼자 남은 작은 새 아마를 살리기 위해 그 길로 떠난다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무리한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다. 대설주의보와 강풍경보가 동시에 발효된 섬으로, 중산간 마을이 고립되기 전에 반드시. 여정을 통과하고 집에 도착하고 아마를 보내며 울고 묶고 묻고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후, 경하는 인선이 살아온 날들로 비로소 들어가게 된다.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 그때 그곳에서 사라지던 사람들의 참혹한 시간으로. 인선의 공방에서 촬영했을 인터뷰들, 이 섬의 동굴 이야기를 듣고 전기가 끊긴 집에서 공방과 안채를 오가고, 찾아온 경하와 대화하며 프로젝트 이름도 전한다. “작별하지 않는다”(p.192)라고.

 

소설은 1<>, 2<>, 3<불꽃>으로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기록하고, 기록함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실행한다. 작고 가벼운 새, 아미의 죽음에도 눈물이 흐르는데 어쩌자고 그 많은 죽음을 의도하고 저질렀는지 절망한다. 그래서 소설은 고통을 낱낱이 기록한다. 독자는 활자로 기록된 통증과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독한 편두통과 위경련, 잘려나가고 찔리고 얼어붙은 형상, 덤불에 긁혀 흐르는 피와 작고 가냘픈 죽음을 받아든 손, 언 땅 파기, 밀물에 쫓겨 달리기, 옮기기 등 앉은 자리에서 책을 붙든 채 고되고 고되야 한다. 동시에 이 아픈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쓸 수 있나 놀란다.

 

작가는 서두르는 일 없이 도처에 일어났던 폭압을 증언하고 엇갈려 배치한다. 꿈과 현실과 영상과 인터뷰와 은유와 직설화법으로 말한다. 폭설과 폭우, 동굴과 구덩이, 삶과 죽음을 연달아 묶는다. 그때 그 눈은 지금 내가 맞는 눈으로 순환하고 그러므로 아픔은 무뎌지는 일 없는 예리함으로 서슬 퍼런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야하고 기꺼이 고통을 끌어안을 때에야 짧게 끊어 쉬는 호흡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가능성을 지닌다. 절단 부위를 바늘로 찌르는 행위, 3분마다 거듭 피를 내는 행위가 있어야, 통증을 느껴야만 잘린 신경 위쪽이 죽지 않는다는 것처럼.

 

인생들 위 허공에 모든 과거가 지금 이 순간에 겹쳐서 내려다보는 듯하다. 과거라는 단어를, 역사라는 자못 젠체하는 얼개를 비웃듯이 응시한다. 지금은 어떤가, 나아졌는가, 나아가고 있는가 묻는다. 작가는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 연하고 연해서 결코 굳은 살 배기지 못하는 정신으로, 무뎌질 수 없는 감각으로 기억의 집을 견고히 하는구나. 차디찬 바다와 얼어붙는 눈을 통과해 일으키는 불꽃은 지극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계속 읽어 보겠다.

 

 

 

책 속에서> 

두 개의 스웨터와 두 개의 코트로도 막을 수 없는 추위가 느껴진다. 바깥이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시작된 것 같은 한기다. 몸이 떨리고, 내 손과 함께 흔들린 불꽃의 음영에 방안의 모든 것이 술렁인 순간 나는 안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것인지 물었을 때 인선이 즉시 부인한 이유를.

피에 젖은 옷과 살이 함께 썩어가는 냄새, 수십 년 동안 삭은 뼈들의 인광이 지워질 거다. 악몽들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거다. 한계를 초과하는 폭력이 제거될 거다. 사 년 전 내가 썼던 책에서 누락되었던, 대로에 선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인들이 쏘았던 화염방사기처럼. 수포들이 끓어오른 얼굴과 몸에 흰 페인트가 끼얹어진 채 응급실로 실려온 사람들처럼.(p.287)



20241120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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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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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먼 과거가 아니다. 원시시대도 미개사회도 아니었고 소통불가 문맹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일어난 비극. 활자로 그날에 접근하는 일조차 조심스럽기에 독자 역시 탄식하고 숨죽인다. 추스르고 눈물 맺히며 다시 글을 쫓는다. 동시에 앞장서 걸으며 기록하고 있는 작가에게 순간마다 빚진다. 『소년이 온다(창비, 2014, 216면 분량)』는 한강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1980년 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배경이다. 배경이라는 낱말은 부적절해 보인다. 소설은 명백한 사건을, 역사의 뒤안길로 편입될 수 없는 고통을 지옥에서 죽음을 맞았거나, 살아서 지옥을 견디는 이들을 응시하기 위해 차례로 호명한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1장의 화자 동호는 집으로 돌아오라는 작은 형의 말을 뒤로하고 합동 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향한다. 겁에 질렸던 동호는 쓰러진 친구 정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찾아온 엄마도 돌려보낸다.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p.43)라는 엄마 말을 들으며 남았다. 2장은 정대의 혼이 죽은 자기 육신 곁에 머문채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p.52)라며 괴로워한다. 죽어서도 쉴 수 없는 그는 동호의 죽음을, 느닷없이 뛰쳐나오게 된 친구의 혼을 알아차린다.


3장 “일곱개의 뺨”은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당시 고등학생 은숙의 5년 후 시점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은숙은 번역자의 행방을 대라며 일곱 대의 뺨을 맞고 하루에 한 대씩 일주일만에 일곱 개의 뺨을 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허기를 느끼고 먹는다는 일 자체가 치욕스럽고, 출판할 수 없게 된 희곡집이 아프고, 물줄기를 뿜는 광장 앞 분수대를 견딜 수 없다. 그녀는 연극 무대에서 그날 데리고 나오지 못했던 동호를 본다. 환상처럼, 생생하게.


4장 “쇠와 피”는 생존한 대학생이자 시민군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상무관에서 지휘했던 대학생 진수와 수감생활과 석방 이후의 삶을 일정 부분 공유하나 둘은 다시 삶과 죽음으로 갈린다. 김진수의 죽음에 증언을 요청하는 ‘선생’에게 그가 혼자서 겪은 일들을 그 자신에게서 듣지 않는 한, 어떻게 그의 죽음이 부검될 수 있겠느냐고(p.108) 전한다.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 겪었던 일은 언어화의 한도를 넘어선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p.134)라는 물음만 그대로다.


5장 “밤의 눈동자”는 43세가 된 선주의 시점이다. 선주는 증언자가 되어달라는 ‘윤’의 요청에 연락처를 알려준 성희 언니를 오히려 용서할 수 없다. 성희 언니를 만나기 위해 병원에 들어선 선주, 동호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선주는 성희 언니에게 할 말이 있다. “죽지 마. 죽지 말아요.”(p.177) 이 말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다시 소환된다. 6장 “꽃 핀 쪽으로”에서는 동호 엄마의 애끓는 서술이 이어진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 살이었다.”(p.193)로 시작되는 7장 에필로그는 작가의 목소리다. 소년의 흔적을 찾아 그 도시로 돌아와 쓰기 시작하는 여정의 출발로 매듭짓는다.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p.89)고 은숙은 생각했다. 진수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아직 어린애 같은 동호를 보았을 때 부서졌다. 유월의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을 때 햇빛에 부딪힌 물방울의 파편이 눈동자를 찔렀듯이, 그날을 통과한 이들에게 상이한 각도로 흠집 내며 부서졌고 부서뜨렸다. 소설은 그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름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경호한다. 기억하도록 새긴다. 시공간을 달리해도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잔인함과 폭력의 역사는 계속되어 왔음을 상기시킨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p.207) 특정 명칭은 보편적 상징이 된다.


에필로그는 읽고 다시 읽었다. ‘너무 평범해 누구와도 혼동될 듯한 얼굴’을 가진 소년, 꽃 핀 쪽으로 가자고 엄마 손을 이끌던 소년은 어른들의 낮은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에게 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움직여 닿기 시작했고 저녁에 갇힌 이들을 생각하게 했다. 두려움에 떨며 깨어나게 하던 꿈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이어지고 고통은 가라앉는 일 없다. 소설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재차 묻는다. <Human Acts>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번역된 이 소설은 다음 문장으로 순순히 넘어가기 어렵다. 최소한의 말을 허락하는 압축과 부연을 덧대지 않는 여백으로 심정을 지키는 작품이기에 더 느리게 읽으며 행간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계속 읽어보겠다.




책 속에서>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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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극장 피카 그림책 17
아라이 료지 지음, 황진희 옮김 / FIKAJUNIOR(피카주니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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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기 시작하면 올해의 겨울 그림책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위한 선물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그림책을 혼자서 아끼고 모으기도 한다. <마법처럼 문이 열리고>, <101마리 달마시안>, <나홀로 집에>를 그렇게 읽었고 프랭크 바움의 <산타클로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내게로 온 첫 번째 겨울 그림책은 아라이 료지의 눈 극장(황진희 옮김, 피카주니어, 2024, 2022, 40면 분량)이다. 예술대 졸업 후 광고와 무대 미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재치 넘치는 이야기와 환상적 화풍으로 사랑받아온 작가는 21세기 일본 그림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눈 극장은 대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집이라는 공간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일상의 장소이지만 갈등과 불안이 잠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친구와 함께 따뜻한 방에서 책을 볼 때, 그 책이 화사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찬 나비 도감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비 도감은 아빠가 무척이나 아끼는, “소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책인데 아뿔싸, 이 책이 찢어졌다. 아이는 도감을 빌려주지 않았고 아빠를 생각하며 걱정한다. “아빠가 화를 내실까.” 아이는 더 이상 평온하지 못하다. 집을 나선 아이는 온통 눈으로 덮인 마을을 바람 날개 같은 스키를 타고 쌩쌩 미끄러진다. 나비를, 아빠를, 친구를 생각하다 아이는 그만 구덩이에 빠진다. 그 곳에서 아이는 불이 켜진 작은 극장”, “눈 극장을 발견한다. 현실 세계에서 판타지 세계로 이동한 아이가 눈을 감았다 뜨자 환상 세계는 다시 한 번 확대된다.

 

눈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라는 환상 자체가 이미 아이의 마음을 위로한다. 관객으로 머물지 않고 오늘의 무대에 초대되어 직접 공연에 참여함으로 내적인 힘을 강화하고 마음은 정화된다. 조용하게 시작된 노래는 점점 커지고 거대한 눈 팽이 형상을 갖춘다. 눈의 여왕도 노래를 듣고 있다고 할 때 화면 전체를 활용한 눈 팽이 위에 작지만 선명한 눈의 여왕이 지팡이를 짚은 채 내려다보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자연스럽고도 치밀한 연결이 독자의 상상을 기쁘게 채운다. 손톱만한 눈의 아이들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더 이상 이름 없는 눈송이, 생명 없는 결정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 나비와 친구를 다시 떠올릴 때 아빠의 커다란 손으로 상징하는 도움은 외부에서 오지만 내밀한 체험은 빼앗기지 않을 기억으로 동심에 박힌다. 책은 절정을 지나 안전한 귀가를 준비하고 마지막 장면은 더없이 안온하다.

 

서사는 단순하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이야기. 세상 근심은 꿈으로 위로받기도 하고, 꿈은 희망과 가능성으로 가득 찬다. 시기적절한 도움과 너그러운 허용은 좋은 기억의 창고를 넓힌다. 앞면지와 뒷면지는 단색 배경에 스키를 타는 소년만 등장한다. 집을 나서는 소년과 집으로 돌아오는 소년을 의미하겠지만 소년은 한 뼘 자랐을 것이다. 타이틀 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될 때 창으로 들여다보이는 두 아이가 궁금해진다. 이 그림책은 화려한 색의 향연이 압도적이다. 색색의 나비가 잔상으로 남아 하얀 일색의 눈 공연이 아닌 강렬한 원색의 폭죽을 터뜨린다. 누구나 한 번쯤 스노우 볼 안의 세상을 동경했을 것이다. 두꺼운 유리로 벽을 치고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공간에 초청받는 행복을 잠시 만끽한다.

 

함께 보고 싶은 책이 생각이 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존 로코의 <폭설>도 겨울이면 다시 꺼내보는 그림책이다. 말 그대로 폭설에서 살아남기를 사랑스러운 그림과 감동적인 이야기로 기록한다. 유리 슐레비츠의 <겨울 저녁>은 겨울 저녁의 빛이 얼마나 특별할 수 있는가 점진적인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겨울이 좋은 분명한 이유 하나는 그림책들 때문이다. 나를 꺼내세요, 다시 펼치세요. 서가에서 기지개 켠 책들이 겨울을 알린다. 올 겨울은 특별히 더 춥겠다는 반갑지 않은 예보가 들린다. <눈 극장>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뜨거운 코코아 한 잔과 빨간 스웨터, 그리고 겨울 그림책이면 슬기로운 한파 대비로 그만일 듯하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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