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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문학동네/김진준 옮김)』은 1939년, 그의 나이 51세때 발표한 데뷔작이다. 이전에 대중잡지인 펄프 메거진에 꾸준히 단편을 발표했던 경험이그에게는 학교 역할을 했고 “빅 슬립”이후 탐정 필립 말로의 세계는 공고해진다. 하드보일드(hard-boiled)의 사전적 정의대로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수법’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스타일리쉬한 과거의 시공간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페이지마다 영상이 지나가는데, 때로는 빗소리, 차 소리, 총소리나 번쩍이는 섬광까지 더해지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사설 탐정 말로가 스턴우드 저택을 방문해 병중인 노장군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는다. 후끈한 온실에서 주고 받는 대화는 의뢰자의 상황은 물론 두 인물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병들고 노쇠한 아버지가 딸들에 대해 “둘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따로따로 파멸의 길을 걷는 듯싶소. 비비언은 버릇없고 모질고 똑똑하고 인정머리라곤 없는 편이지. 카멘은 파리 날개를 뜯어내기 좋아하는 어린애고. 둘 다 도덕관념 따위는 고양이만큼도 없고. 나도 마찬가지지만 스턴우드 집안은 다 그렇지.(중략) 둘 다 일반적인 비행은 다 저질렀을 테고 아마 지금도 그러겠지.(19p)”라고 평하는 장면은 지금와서 어쩌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절망과 두려움을 냉소와 체념으로 담아낸다. 협박자 가이거 관련 문제 해결과 사라진 큰 사위 러스티 리건에 심적 의존에 가까운 순수한 애정을 보이며 찾아줄 것을 요청한다.
협박자의 명함을 가지고 뒤를 밟아가나 곧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두 자매와도 엇갈리며 조우하게 된다. 제도권 밖에서 움직이는 말로는 추적하는 범인에게, 다른 차원이지만 크론재거와 같은 공권력에게 이중의 견제를 받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태연히 자신의 일을 소화해 나간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핵심을 간파하는 직설적인 문장들과 표현, 우아한 비유들이다. 일촉 즉발의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유머까지 더해 자신의 태도를 유지하는 말로는 스스로도 “하늘이 내려주신 보잘것없는 배짱과 지능, 이래저래 들볶이면서도 의뢰인을 보호하겠다는 마음가짐(138p)”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긴다. “영화에 나오는 건달처럼 애써 느긋한 체하는 목소리였다. 영화가 사람들을 저렇게 망쳐놓는다.(96p)”, “총은 남아도는데 머리가 못 따라가니 우리 동네도 참 큰일이야. 총만 잡으면 온 세상을 틀어쥐었다고 착각하는 인간을 몇 시간 사이에 둘이나 만나다니. 조, 멍청한 짓 하지 말고 총 내려놔.(97p)” 현장감이 넘친다.
“아빠가 당신 핏줄을 경멸하면서 돌아가시게 하긴 싫어요. 원래 자유분방한 핏줄이지만 늘 타락한 핏줄은 아니었거든요.(179p)”, “아빠가 돌아가실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돌아가시기 직전에 무슨 생각을 하실까 걱정하는 거죠.(277p)” 때론 폭풍전야의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애를 쓸 때 옳고 그름을 떠나 감정이입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침착하게 독이 든 술을 받아 마시는 사람과 그 사실을 후에 알게 된 말로는 안타깝다. “그렇다고 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닫집침대 위에서 핏기 없는 손을 이불 위에 포갠 체 조용히 누워 있도록 내버려두자.(279p)” 말로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지녔다. 그는 지키고 보호하려는 자가 맞다.
우연처럼 자연스러운 사건들이 꼬리를 물 때에도 완벽히 이해하면서 따라가기가 힘에 붙이곤 했다. 그럴때면 ‘사건의 전말’을 말로 스스로 정리하는 장면이 한 두 번 반복될 때 도움받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사건 전개의 증거나 범죄의 내막, 진범이 누구인가보다는 죽음의 여러 형태를 객관적이고 인간적인 말로의 시선으로 살피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죽음을 살핀다는 것은 결국 삶을 포함해서 이루어진다. “빅 슬립”이 ‘죽음’의 속어라는데 챈들러는 독자에게 죽음의 여러 모양을 보여준다. 어리석은 죽음, 안타까운 죽음, 죽이는 자와 죽음을 이용하고 다루는 자, 공허한 눈으로 임박한 죽음을 앞둔 자와 살아있지만 죽음과 다를게 없는 삶을 살며 죽도록 삶을 해치고 낭비하고 파괴하는 자들을 볼 수 있다. 무기력을 넘어 희망을 바랄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나니 로스엔젤레스의 네온사인은 흐릿해지고 스턴우드 대저택의 반짝이던 아우라는 스산함을 남긴다. 마치 서늘하고 쓸쓸한 흑백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것만 같다.
책 속에서>
- “스턴우드 집안은 돈이 많아요. 그 돈으로 사들이는 건 실망뿐이지만.(73p)”
-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욕을 하든, 남들이 무슨 욕을 하든 상관없다. 그러나 이 방은 내가 살아가는 곳이다. 내가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여기뿐이다. 내 소유물은 모두 이곳에 있다.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물건들, 내 과거와 얽힌 물건들, 내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물건들이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책 몇 권, 사진 몇 장, 라디오, 체스 말, 오래된 편지, 그런 것들이 전부다. 보잘것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모두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다. 그런 방에 그녀가 들어왔다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의 욕지거리는 그 사실을 상기시킬 뿐이었다.(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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