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때문에 ㅣ I LOVE 그림책
모 윌렘스 지음, 앰버 렌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12월
평점 :
모 윌렘스의 『때문에(BECAUSE)/보물창고/앰버 렌 그림』는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선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매니아 독자층을 거느린 모 윌렘스의 최신작이라 “때문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가장 아끼는 그림책으로 내 토끼 시리즈나 “정말 정말 한심한 괴물, 레오나르도”를 꼽는 분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축복임을 느낀다.
덕분에 챌린지도 떠오르고 왠지 ‘덕분에’는 긍정적, ‘때문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지만 역자는 단순하게 ‘때문에’로 번역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훨씬 직관적 의미전달이 가능할 것 같다. 표지 속 작은 소녀는 눈을 감은 채 지휘를 하고 있다. 선율은 따스한 색을 띄고 주위를 감싸고 배경처럼 그림자 오케스트라가 보인다. 이토록 특별한 면지라니! “교향곡 제 8번 B단조” 편곡 악보가 실려 있다. 어느 겨울이었을까,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에 한동안 심취했던 과거의 나를 소환하며 급하게 찾아서 들어본다. 감동을 오래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며 이 시간 자체가 선물이 된다.
속표지 옆 장, 작가의 헌사가 시선을 끈다. 그의 ‘때문에’였던 찰스 M. 슐츠, 전설적인 피너츠의 작가 아닌가. 슐츠를 선망하며 자랐을 어린 모 윌렘스를 그리며 뭉클해진다. 베토벤으로 시작해서 슈베르트의 교향곡이 탄생하게 되고 이 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케스트라를 결성한다. 특별한 우연으로 어린 주인공은 공연을 볼 수 있었고, 그 순간은 아이의 인생에 결정적 순간이 된다. 힘있는 변화는 창조를 가능케 하고 마지막 문장 “그렇게, 일은 일어나는 거란다.”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뒷면지는 예상대로 어린 소녀에게 결정적 순간을 선사했던 분께 헌정되는 악보가 담겨있다. 앞으로도 근사하고 단단한 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것이다.
낮은 채도의 톤 다운된 색조가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악보와 음표들은 주황과 노랑의 밝은 색을 띄고, 오케스트라의 연주 장면은 분수처럼 폭발한다.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은 생동감이 넘치는데 각 개인이 바로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정적 순간 이후 아이가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하며 자라가는 4컷, 한 면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내적, 외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독자 역시 함께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한 권의 그림책이 일으킬 미래의 변화 또한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