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교양 - 한 권으로 세상을 꿰뚫는 현실 인문학 생각뿔 인문학 ‘교양’ 시리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엄인정.김형아 옮김 / 생각뿔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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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괴테의 교양(생각뿔/엄인정, 김형아 엮고 옮김)』은 시대를 앞서간 한 거장 괴테의 삶과 작품을 스케치하듯 포착하고 있다. 양과 깊이에 있어 재독을 거듭하고 시대적 배경에 충실할 때 비로소 행간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작품의 산 앞에서 주저하게 될 때가 많다. ‘한 권으로 세상을 꿰뚫는 현실 인문학은 본격적인 고전 읽기에 앞서 스케치하듯 저자와 작품을 만남으로써 기대와 감동을 더하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두 엮은이는 "이 책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빛나는 성취 중에 깊은 울림을 주는 주옥같은 잠언들을 간추려 모은 것이다.(9p)"라고 소개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반가운데 잠언집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잠언집이라면 욕심껏 많은 문장을 채워넣을 것 같은데 괴테의 교양현대인을 위한 괴테 입문서라는 문구에서 예상하듯 시각적인 배려를 많이 했다. 다양한 이미지 자료는 작가 본인은 물론, 작품의 삽화나 영감을 받아 완성한 그림, 깊이 교류했던 예술가들, 관련 건축물까지 다양해서 귀한 사진을 모아 볼 수 있게 해준다. 주제별로 여러 작품에서 발췌한 문장은 독자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여백을 확보한다. 상세한 주제 설명은 시야를 넓혀주고 지엽적인 부분보다 맥락을 살필 수 있도록 돕는다. 본문은 발췌문과 독일어 원문을 함께 실었는데 편역자의 단상을 곁들임으로써 독자 또한 주요 문장과 숨은 뜻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도록 안내한다.

 

 

 

올해는 스물 어느 해 겨울, 12월에서 1월로 넘어가던 그때, 두꺼운 책을 들고 만감이 교차하며 활자를 읽어나가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온전한 파우스트재독을 예정하고 있기에 파우스트의 문장들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스물넷에 구상을 시작해 60여 년만인 죽기 일 년 전에 완성한 평생의 대작, 완결했기에 죽음을 허락받은 듯한 인상마저 드는 파우스트는 때론 시처럼 마음에 다가온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역시 이런 문장이 있었던가 싶은 비장함과 아름다움을 전한다. 대문호 괴테를 만나기 앞서, 또는 그 여정의 추억으로도 곁에 두고 다시 펴보고 싶다.

 

                           

걱정이 마음속 깊이 둥지를 틀고 불안이 기쁨과 평온을 뒤흔들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고통이 생겨난다. 고통은 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아내와 아이, 들판과 집, 또는 물, 불, 칼날, 그리고 독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별것도 아닌 일에 두려움을 느끼며 벌벌 떨고, 잃을 것을 두려워해 울어 대는 것이다. -파우스트- (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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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가 되는 토론의 기술 -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주장에 힘을 더하는 토론 연습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16
이강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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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휘의 무기가 되는 토론의 기술(자음과모음은 청소년인문 시리즈의 열 여섯 번쩨 도서다. 시리즈의 대상은 청소년이지만 성인 독자들도 편안하게 다양한 인문 분야를 탐색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현직 국어 교사이기에 현실에 근접한 교실의 분위기와 노하우가 잘 녹아있어 토론 길잡이 역할에 안성맞춤이다. 토론에는 여러가지 유익이 있지만 자기주도적인 지적 탐구와 경청과 소통을 통한 확산성과 유연성, 과정의 유익이 결국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토론은 결국 세상을 향한 열린 태도를 지니게 해준다.

 

 

무기가 되는 토론의 기술은 이미 오래 전 없어진 하리 고등학교 토론 동아리 토론하리가 부활되면서 시작한다. 네 명의 친구들은 신비 선생님의 지도로 토론의 기본부터 차근히 알아가게 된다. 1장부터 5장까지 다섯 가지 논제를 가지고 용어 설명부터 기법을 경험하게 된다. 1장에서는 일상생활 주제로 접근할 수 있는 자유토론으로 주의해야 할 규칙을 배우면서도 재미있게 시작한다. PREP이라는 틀을 활용한 글쓰기는 머릿속 생각을 글로 구체화할 수 있고 자료 검색 방법도 세심하게 확인한다.

 

 

3장에서는 정제된 규칙을 지키며 진행하는 고전식 토론의 단계를 이해하고 상대편의 의견을 추측해 반론을 준비하는 등 자료수집 단계부터 더욱 깊이있는 토론장을 익힌다. 가장 흥미로운 기법은 4장의 토론 연극이었다. 연극의 형태로 논제를 관객과 공유하고 관객이 직접 참여함으로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 토론과 다양한 콘텐츠의 결합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이렇게 성장한 친구들이 교내 토론대회에 참여해 결승에 진출하기까지 독자도 토론의 세계를 부담없이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다. 신비 선생님의 보충수업 코너와 논제별 추천 도서 소개는 특히 도움이 된다. 한 권의 책으로 토론의 실제를 알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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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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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문학동네/정연희옮김)2008년 출간한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으로 올리브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설레었다. “단속부터 친구까지 열 세 편의 연작은 메인주 크로스비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계속되는 일상을 그려낸다.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올리브 키터리지484p/문학동네)”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아련함, 내적 응원을 불러일으키던 장면 이후 올리브는 그녀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다시, 올리브를 읽는 일은 어째서 이런 일이!’싶을, 평범의 얼굴을 해서 더 혹독한 사건과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 사이로 깨닫고 새삼 알아가는 진실, 짚어낸 의미를 소중하게 가려 담는 과정이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그러나 배짱은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거닐며 보내온 잭 케니슨(10p)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에 놀라워하고, 지금껏 저지른 모든 실수에 대해 벅찬 후회를 느끼는 일흔네 살의 남자,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는 깨달았다.(16p)” 실수와 후회는 사고치는 단짝처럼 붙어다니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투의 환희는 영 만나기 어렵다. 여기에 나이가 얹히면 비장함에 가속도가 붙는다. 삶이 지금의 모습으로 전개된 양상을 차분한 자부심, 의기양양한 성취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잭에게 공감한다. 놀랍고 놀라우니 놀라울 뿐이다.

 

청소에서는 관계의 단절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받는 인물을 만난다. 치료제가 없는 외로움의 악취(76p)”는 감돌고 스며든다. 전사한 오빠의 사진과 제비꽃만을 간직했던 미스 미니, 한 번도 잘해준 적 없는 아내 곁에서 내색없이 고통받고 일탈에 이르렀던 링로즈씨,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 엄마 때문에 힘겨웠던 케일리까지. 이따금 케일리는 실제로 아픔이 작은 파도처럼 가슴에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상처를 말하는 거라고.(87p)”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세대간의 오해와 반목, 아쉬움과 서운함, 불쾌하게 입안에 퍼지는 쓴맛처럼 어긋나는 상황과 고착된 한 시기의 상처가 연이은 매듭처럼 꼬여있다. ,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127p)” 올리브는 크리스토프의 존재 하나면 족하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생 이대로 있고 싶었다. 아들이 알파벳을 암송한다 해도 이대로 앉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126p)” 부모에게 아이는 자라지 않고 가장 사랑스러웠던 순간에 멈추어 있다. 그러니 그 아이의 흰머리를 보고 놀랄 수 밖에. 크리스토프와 그의 아내 앤의 권력관계를 엿본 올리브는 충격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사람들 앞에서 헨리에게 소리 질렀던’, ‘그러고 싶을 때마다 격한 감정을 드러냈던자신이 오버랩되며 아들은 엄마같은 여자와 결혼했다(150p)“고 깨닫는다. 회복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돌아가 그 시간을 다시 채울 수 있다면 그때는 잘 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자문한다.

 

버니, 버니. 제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이제 아시겠어요? 아시겠죠? 맙소사. 그 사람들! 제가 어떻게 살아서 빠져나왔을까요? (중략) 부모님이, , 살인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고요, 버니. 그리고 제 동생은 정말 살인자죠. 오 맙소사.(183p)” 딸 수잰을 통해 라킨 씨 가정은 재조명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비난하는 일은 쉽지만 베일이 조금씩 걷히며 본질에 다가갈수록 비판의 화살표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보이는 것이,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드러난 면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고, 그럼에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도 수잰 곁의 좋은 어른, 선한 조력자 버니의 존재는 감사하다. 그녀는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가 할 일은······어쩌면 우리의 의무일 수도 있고요······-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한 어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신비의 무게를 가능한 한 우아하게 견디는 것이다. (187p)“ 암송해야 할 문장이다. 그녀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선사받아 마땅하다.

 

감동은 햇빛에 이르러 찌릿하게 증폭된다. 노년의 낯선 면면들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긍정적인 마무리로써의 죽음 수용은 생의 발달과업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찾아오는 죽음은 당황스럽다. 올리브는 신디에게 말한다. 네가 정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진실은······우리 모두 그저 몇 걸음 뒤에 있다는 거야. 이십 분 뒤, 그게 진실이야.(207p)” 올리브는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며 말을 위한 말, 위로를 위한 위로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살갑지 않지만 신뢰할 수 있다. 2월의 햇빛을 사랑했다는 올리브의 말, 단편의 마지막 문장에 숨을 멈추게 된다. 신디의 마음은 어땠을까. 잭이 너무나도 진짜 웃음을 웃었듯이 올리브가 건네는 것들은 온전히 참되기에 치료제가 된다.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얼마나 협소한지(308p)” 편견에 사로잡힌 마거릿과 살고 있는 밥. 그의 슬픔이 전해진다. 꼬리물기 같은 그는 형이-형이!-그리웠고, 형은 메인을 그리워했다.(308p)”로 시작되는 엇갈림을 따라가다 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퍼거스씨 딸 로리는 우리 가족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병적인 가족일 거예요.(367p)”라고 한탄한다. 퍼거스는 아내한테 우리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379p)” 묻는다. 너무 늦은, 그러나 역시 다행스런 각성의 순간이다. 인생이 나한테만 왜이럴까 하는 익숙한 감정들을 읽어나가게 된다.

 

마지막 제목은 친구. 취향이 분명하고 세상을 향해서나 자신의 감정에 늘 씩씩했던 올리브는 마지막 거처에서도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배우고 깨닫고 돕고 나눈다. 기억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올리브. 그녀는 아들에게 타자기와 장미나무가 필요하다고 전화한다. 나는 나의 마지막 거처에서 그 시간을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요청할까, 어떤 것을 곁에 남길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고 배운 만큼 부단히 성장하는 그녀의 하루는 그래서 소중하다. 어떤 형태로든 어머니를 간직하고 있는 이자벨과 달리 그렇지 못한 자신에게서 다른 층위의 상실의 슬픔(456p)’을 느끼나 역시 , 됐다그래.” 올리브답게 쿨한 한 마디를 내뱉는다.

 

올리브가 나이드는 동안 독자인 나도, 나의 부모님도 나이들었다. 오랜만에 엄마를 뵙고는 엄마,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마르고 키도 움츠러 들고, 얼굴은 하얗고 빛이 다 나네요, 했다. 예뻐진 것 같으면서도 무언지 모를 철렁함이 있었다. 돌아오면서 앞으로 엄마가 해달라는건 다 해줄거야, 결심했는데 노년으로 완전히 진입하는 부모님 역시 몸도 마음도 생소한 공기에 낯설어 하시는 듯하다. 상실감은 육체적 쇠약에 머물지 않고 올리브나 잭처럼 자신이 눈 먼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삶 전체가 허비되었다고 불현 듯 느낄 때, 그럼에도 나아갈 수 있음을, 내가 곁에 있을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다.

 

다시, 올리브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처럼 마음을 흔든다. 부모님의 이야기이고 나와 내 아이들의 이야기다. 메크로스비 바닷가 마을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마을이고 책 속의 이름들은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나의 이웃들이다. 우리는 베티처럼 말한다. 베티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또한 더 많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삶이에요, 올리브.-(420p)” 하지만 네 삶, 모든 삶은 중요하다 일깨우는 올리브. “다시, 올리브가 이렇게 황홀할 줄 알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에게 기대했던 질량을 압축하고도 넘치도록 채워 건네주니 나는 활자 읽기 만으로 쉽고 편하게 충만한 시간을 살아낸다. 그리고 내 삶에, 불편할지도 모를 의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만 왜 이래 불평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성구가 생각난다. 태양 아래 모든 순간 배우고 감사할 것! 올리브와 함께 뒤돌아본 발자국도, 미리 걸어본 시간도 해 아래 반짝인다.

 

 

책 속에서>

-이맘때는 저녁 시간이 끝없이 길었고, 그녀는 긴 저녁 시간을 사랑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56p)

-자기 예찬? 올리브는 자신을 전혀 예찬하지 않았다. 성격장애? 인간의 감정이란 광범위하고 폭넓은 집합체인데 왜 그중 무언가에 성격장애라는 말을 붙이는 건가?(142p)

-머리 위에서 아주 큰 창문이 산산조각나-소방관들이 그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그렇게 부쉈을 것이다-이제 드넓은 세계 전체가 바로 거기, 그녀의 머리 위와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존재하며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선사하는 것만 같았다.(189p)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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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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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의 여명(문학동네/송기정 옮김)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읽을수록 초대받은 자리에서 경청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콜레트는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콜레트라 불릴 만큼 인기를 누린 작가였고(181p) 작품 속에서도 그려지듯이 대중 뿐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과도 깊이 소통했으며, 대외활동이나 수상 등 생전에 프랑스에서 공식적인 명예를 얻었던 최초의 여성작가(182p)”이기도 했다. 깨어있는 의식의 재능 넘치는 작가로서, 삶이 곧 예술에 근접했던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여명은 어머니 시도의 편지로 시작된다. 딸의 집에 초대받았으나 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선인장 꽃의 개화를 보기 위함을 든다. 이제는 세상에 안계시는 어머니,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에게 여전히 현재인 어머니를 기억하고 기리며 나아가 스스로 어머니의 모습을 자신에게 재현한다. 본격적인 소설의 첫 문장은 이곳이 나의 마지막 집일까?(13p)"하는 반복되는 질문이다. 책들로 가득 찬 찬장들, 소파들, 서랍장들은 십오 년 동안 나와 함께 두세 군데의 프랑스 시골 지역들을 돌아다녔다.(19p)" 그 후 정착한 프로방스의 해안가 마을에서 그녀는 친구들의 방문을 받고 마음을 나누고 태양과 달과 별의 움직임을 벗삼는데 안식을 향한 기대가 느껴진다. 어머니 시도의 회상, 동 식물을 비롯한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인상적이고 주요 테마는 비알과의 예기치 못했던 사랑이다.

 

거리낌 없고 독립적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했던 어머니 시도는 그녀의 인도자이며 거울이고 다다르고 싶은 별이다. 편지로 추억으로 내면의 목소리로 어머니는 내내 출현한다. 어머니가 했음직한 말들을 생각해내려고 애쓰다보면, 항상 나로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볍고도 느리게 나의 속내를 건드리고, 부드럽게 내려앉았다가도 천천히 다시 솟아오르는 단어들, 특히 주요 논거, 비난, 예상치 못했던 만큼 더욱 매력적인 관대함이 내게는 부족하다.(36p)" 예리한 동반자인 어머니를 향한 연가와도 같은 기록은 마음을 울린다.

 

그녀에게 들르는 친구들 중에서도 특별한 청년 비알을 중심으로 한다. 이미 많은 것을 겪고 누렸기에 웬만한 것들은 그저 넘기려던 시기에 비알은 일종의 때아닌 열매(81p)"였다. 그러나 분명한 열매, 후일에도 계속 생각날 열매다. 자신을 향하는 비알의 감정과 비알을 사랑하는 엘렌, 떠나보낸 비알과 자신의 감정을 조금 늦게 깨닫는 주인공, 그리고 기다림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각별한 세기의 사랑이라는 생각은 안든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삼각관계를 흔치 않게 만들고 품위있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서술자의 통찰력, 예민한 지성에 빚진다. 심리상태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충분히 표현해 살뜰히 전달하는 능력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진부한 것 중 하나인 사랑, 그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간다. 모성애는 또하나의 진부함이다. 그 둘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즐겁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25p)“

 

여명은 반복해서 읽으려 모은 잠언집과 같이 명문장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노쇠란 무엇인가?(43p)"처럼 노쇠, 나이, 여름(82p), , (99p) 등을 비롯해 단어 또한 새로움을 입는다. 모으다, 준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주제를 안기기도 한다. 나는 종종 부모들에 의해 뼛속까지 피폐해진 자식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중략) 그런 자식들은 하도 많아서 골라잡기만 하면 될 정도이다.(53p)” 글쓰기에 대해서는 늘 종이와 씨름하는 사람들, 글을 읽을 자유는 없고 오로지 쓰는 자유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글을 읽고 가구를 디자인하는 사치를 누린다.(53p)"말하니 독서가 호사임을 깨닫고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자연의 묘사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 부분만 들어내어 삽화와 함께 예쁜 소책자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감각적 서술은 복숭아 향기를 맡게도 종소리를 듣게도 춤추는 댄스홀을 보게도 한다. 동식물을 글로써 채집하는 그녀의 산책길에 서둘러 따라 나서게 된다. 진정어린 교감을 하며 키우는 동물들은 물론 산책길의 생명체들까지 살아 숨쉰다. 언젠가 그에게 줄과 목걸이를 매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결국, 내게도!“ 라 말하며 한숨짓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략) 그에게는 완벽한 연인이 갖출 법한 정숙함이 있어, 내가 억지로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질겁하곤 한다.(56p)" 그녀는 함께 했던 세 번째 고양이를 추억한다. 그녀가 교류했던 예술가들을 엿보는 것도 즐거운 여정이다. 어떤 화가는 여명의 표지 삽화를 그렸다.

 

작가는 누구든 가까이 다가서고 싶게 하는, 자의식이 빛나는, 일종의 숨만 쉬어도 멋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루 살로메를 비롯한 천재적 그녀들이 빠르게 스친다. 생각과 감정, 행동이 기계적으로 연속되는 생각의 틀을 작동시키지 않고 감정과 생각을 분리시키는 것이 일상화된 깨어있는 의식을 지녔기에 작품도 삶도 가능했을 것이다. 글쓰는 자, 기록하는 자이니 이부자리적 요소(오래전 도스토옙스키 번역본에서 읽었던 표현)에 빠져 침몰하는 일 따위는 없다.

 

시 공간적 배경 뿐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공통분모가 없어 적절한 비교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직전에 읽은 작품의 짙은 잔상은 다음 독서에 영향을 끼친다.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의 작품에서(시간은 밤/문학동네) 몸부림치는 여성들과 콜레트의 여성들은 너무도 다른 곳에 있다.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가림막도 커튼도 잡아뗀 생경한 글로 우리의 오감을 단련시키며 , 같이 한 번 내려가 봅시다, 지옥으로라고 이끄는 페트루솁스카야의 세계와, 계절의 추이를 가늠하고 오수 이후 하루의 때 조차도 미려하기 그지 없이 포착해 보석으로 테를 두른 일기 같기도 한 콜레트의 나른한 세계는 너무도 멀다. "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은 다 싫어한다.(109p)" 사례를 나열하며 확고하게 반복하는 콜레트와 달리 살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만 있다면 무엇이든 참아보겠다는 페트루솁스카야의 여자들은 다른 차원의 공기를 마신다.

 

콜레트는 사랑받았던 만큼 빼어난 감수성으로 맘껏 기록하고 창조했던 작가이며,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 많은 것을 증명했기에 독자에게 용기를 주고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심 가득한 글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에 시처럼, 노래처럼 아름답다. 점점 더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는 그녀의 어머니 시도는 콜레트에게서 다시 이어진다.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그것은 숲이 되었고, 물보라가 되었고, 별똥별이 되었고, 무한히 펼쳐지는 책이, 포도송이가, 배가, 오아시스가 되었다······(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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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놀라운 건축 이야기
옌스 한세고드 지음, 안데슈 뉘베리 그림, 이유진 옮김 / 지양어린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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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한세고드의 건축이야기(안데슈 뉘베리 그림/지양어린이)지구에서 가장 놀라운이라는 수식어를 곁들인 제목으로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작가인 옌스 한세고드는 이미 지구에서가장 굉장한 동물, 사라진 보물들, 가장 무서운 생명체 등을 발표하며 눈에 띄는 논픽션 작품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건축이야기의 표지에는 몇 번 쯤 봐왔을 유명한 건축물들이 모여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면지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표지에서 보았던 건축물들 이름과 위치가 적혀있어 한 번 더 눈여겨 보게 됩니다.

 

속표지를 지나 본문이 바로 시작됩니다. “건축이야기는 하나의 건축물을 좌 우 양면을 할애해 그림과 글로 설명해줍니다. 건축물의 이름과 위치는 제목이 되는 셈입니다. 역시 시작은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로 시작되는군요. 피라미드에 얽힌 무수한 정보들 중에서 무엇을 추려 정리했을지 살피는 것 또한 즐겁습니다. 언젠가는 직접 피라미드를 볼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바래봅니다. 콜로세움과 그레이트 짐바브웨가 뒤이으며 총 18가지 건축물을 만나보고 마천루들, 국제 우주정거장,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한 기발한 건축물까지 꼭 알아야 할 특별한 건축물을 탐험하게 됩니다.

 

콜로세움은 거대함 뿐만 아니라 모의 해전을 위해 경기장 안을 물로 채우기도 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노트르담대성당이 철거 위기에 있을 때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분위기를 반전시켜 모금운동과 복원을 가능케 했다는 것은 문학의 힘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성바실리대성당의 아름다운 종들을 녹여 없애버린 인간의 비뚤어진 생각은 안타깝고 다행히 하나 남은 종이 여전히 16세기와 똑같은 소리를 낸다는 사실 또한 경이롭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캘리포니아주 샌호제이의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입니다. 이 집에는 40개의 침실과 2개의 무도회장을 포함해서 160개의 방과 17개의 굴뚝, 3개의 엘리베이터, 10000개의 창문이 있습니다.(28p)"라니, 유령이 길을 잃도록 계획없이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가이드가 없으면 방문객 역시 길을 잃기 쉽다는 이 집은 정말 궁금합니다. 간결하기도 아름답기도 한 만화체의 그림을 감상하는 내내 생각은 꼬리를 뭅니다. 점점 시간을 지나 건축물이 진화하는 모습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입니다. 펼치면 언제든 시작되는 흥미롭고 알찬 책 속 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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