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럼 - 시로 만나는 윤동주, 2013 서울문화재단 발간지원사업 선정작
김응교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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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교의 『처럼』은 윤동주의 시와 삶을 온전히 엮어낸 ‘윤동주 전문가’의 평전으로 부제로 “시로 만나는 윤동주”를 택한다. 저자에 앞서 “요절한 천재 평론가”로 불리는 고석규가 윤동주 시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로 주목받기도 했으며 윤동주 평전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이 기본서로 알려져 있다. 저자가 “평생 잊지 못할 은사”(p.514)라며 감사를 표한 오무라 마스오는 2016년 출간 당시 『처럼』에 대해 “여기 보란 듯한 각주 하나 없이, 읽기 쉬운 표현을 쓰고 있지만 ‘윤동주’에 깊이 박혀 있지 않고서는 결코 쓸 수 없는 책”이라 평했다. 친근하게 많이 읽히는 시와 시인 윤동주의 삶에 독자는 어느 만큼 닿고 있는지 자문케 하는 책이다. 기획을 달리하는 시집과 필사집을 비롯해 유행하는 문화상품만큼이나 풍성한 윤동주 관련서 읽기를 잠시 멈추고 『처럼』을 펴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는 차례에 앞서 ‘제사’격으로 책의 제목을 언급한다. “‘처럼’이란 조사만 한 행으로 쓰여있는 시를 본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후, ‘처럼’의 의미는 책장을 넘길수록 인장을 남긴다. 시인을 만나기 위해 먼저 들를 곳은 백여 년 전 만주 땅이다.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란 광활한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가족의 이주배경, 교육공동체로서의 하나 된 마음, 김약연 이라는 스승이자 외삼촌인 어른인 존재, 벗들과 어린 시절을 따라간다. 윤동주에 대한 소개가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은 저자의 집필 동기이기도 한데 1941년 대학 사학년 때 쓴 시(십자가, 서시, 별 헤는 밤, 간 등)에 조명이 집중되는 현실과 대비해 “윤동주 시의 광맥은 초기 시에 있”(p.66)음을 말한다. 숭실 중학교 시절에는 약 칠개월 동안 17편의 시를 써낸다. 저자가 제목과 날짜, 장소를 나열할 때 그 자체로 윤동주의 시간이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이입된다. 고흐, 릴케 등을 비롯해 그에게 영향을 끼친 예술가들 중에서도 백석과 정지용은 중요하며 저자의 시 해설은 시험 없는 국어시간 같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또한 정몽규와 동주 곁 소중한 인물들을 글로나마 만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윤동주가 남긴 시 119편을 구분하면, 운문시 74편, 산문시 8편, 동시 30여 편입니다.(중략) 화려한 수식이 없고 토속적인 느낌이 드는 윤동주의 동시는 그가 쓴 모든 작품 중 30퍼센트에 이르고 있습니다.”(p.153) 『처럼』은 윤동주 동시를 발견케 하지만 정감어린 동시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황은 곧 다가온다. 연희전문에서 쓴 첫 시 “새로운 길”은 설렘과 희망이 가득하다. 하지만 한 편의 글도 남기지 않는 침묵기를 거쳐 사학년때 쓴 “길”은 “좌절과 제약의 나날”(p.180)을 암시한다. 저자는 윤동주의 삶과 시가 맺는 긴밀한 연결, 마치 일대일 조응과도 같은 순수하고 정직한 살아내기와 그 결과로써의 쓰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익히 알려진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이름 윤동주는 마치 처음 본 이름처럼 새로이 각인된다. “윤동주의 시 세계는 동시에서 시작해 동시로 끝납니다. 그의 삶과 시는 마치 누군가 짜놓은 듯 신화적입니다. ‘봄’으로 자신의 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까지도.”(p.431)

『처럼』은 덜 알려진 시의 전문을 읽을 수 있고 친필 원고를 곁들여 볼 수 있다는 점, 세심하고 친절한 해설로 독자가 최대한 시와 시가 쓰여진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직강을 듣는 듯한 구어체 글은 독자를 더 집중케 하고 다양한 도표 활용은 직관적으로 핵심을 이해시킨다. 다양한 문헌 인용과 예시도 풍성하고 첫째, 둘째 순서를 명하며 근거를 정리함으로 필요한 내용을 한 번 더 기억하게 해준다. “누군가의 시를 읽을 대 되도록 그 시를 썼던 시기에 쓰인 다른 시와 함께 이해하면 좋습니다. 시집을 만들 때 어느 시인이든 시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목차를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시집이 없다면 그 시가 탄생한 무렵의 다른 시와 함께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 분석은 독자의 의식으로 시를 재단하기보다는 시인의 시가 스스로 말하도록 시의 혼잣말을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팔복』에 숨겨진 거대한 슬픔을 단순한 냉소적 패러디로 볼 수는 없습니다.”(p.268), “모든 시는 정전을 통해 읽어야 합니다.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에 실린 원래 원고대로 정확히 읽으면,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했는지 알 수 있지요.”(p.314) 와 같이 곳곳에서 시를 읽는 방법론을 전하기도 한다. “일본인이 기억하는 윤동주”는 또 다른 생각의 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어제 『시인 동주』(안소영/창비)로 만났던 저녁 토론에서 여섯 분 중 네 분이 별점 만점을 주었다. 동주의 때로부터 지나오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간이다. “큰 고요 곁으로”(p.502)에 담긴 윤동주 시의 다섯 가지 특징을 옮기며 많이, 깊이 읽고 기억하겠다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윤동주와 그의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보물이 될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사실 ‘처럼’만 이렇게 한 행으로 써 있는 시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시가 아니더라도 영어 시, 일어 시, 중국어 시에서 ‘처럼’만 한 행으로 된 시를 본 적이 있나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윤동주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길이 ‘행복한’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타인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의 고통을 나누는 순간, 개인은 ‘행복한’ 하나의 주체가 됩니다. 그러나 ‘처럼’이라는 직유법처럼 그 길은 도달하기 힘든 삶이지요. 그것을 짊어지고 가는 삶, 윤동주는 그 길을 선택합니다.(p.305)

이제까지 만난 윤동주의 시에는 어떤 매혹이 있기에 이렇게 독자들 마음에서 회감되고 있는지요.

첫째, 윤동주의 시는 자기와 존재를 투시하는 ‘성찰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p.503)

둘째, 윤동주의 시는 기억해야 할 것을 ‘한글’로 기록한 ‘기억의 집’이라는 사실입니다.(p.504)

셋째, 윤동주가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곁의 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p.505)

넷째, 윤동주의 사랑은 낮지만 ‘거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p.506)

다섯째, 윤동주의 시는 실천을 자극하는 ‘다짐의 시’이기 때문입니다.(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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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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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바퀴벌레THE COCKROACH(민승남 옮김/문학동네)』는 카프카의 “변신” 모티프를 새롭게 변주한 작품으로 2021년 출간되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과정을 지켜보던 작가는 자국의 “우스꽝스러운 포퓰리즘 정치”에 절망을 표하며 “『바퀴벌레』를 쓰는 동안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전한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유머와 풍자라고 여긴 그는 글로 구축한 세계에서 답답한 호흡을 풀고 독자를 초대한다. 1975년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데뷔, 수상한 이언 매큐언은 “어톤먼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베스트셀러 “속죄”를 비롯해 “넛셀”, “솔라”, “칠드런 액트”등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가 환기하는 카프카의 『변신』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p.7 문학동네) 매큐언이 차린 무대도 막이 오른다.

“그날 아침 영리하지만 전혀 심오하지는 않은 짐 샘스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거대 생물체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바닥에 등을 댄 자세(좋아하는 자세는 아니었다.)를 유지하며 아연실색하여 멀리 있는 발들과 부족한 다리들을 바라보았다.”(p.13) 인간 본성을 간직한 채 완결된 탈바꿈 현장에서 눈 뜬 “변신”과 달리 총리 짐 샘스의 본체는 인간이 아니다. 그를 장악한 바퀴벌레는 인간 육신을 “거대 생물체”로 인식한다. 끔찍하지만 빨리 배우는 그는 몸을 조정하는 요령을 익히고 기억을 더듬는다. 어젯 밤 기억과 오늘 아침 현실 사이를 오가며 입장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한다. 각료회의에 참석한 짐 샘스는 랭커스터 공국 장관, 내무장관, 법무장관, 원내대표, 통상부장관, 교통부장관, 정무장관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들이 모두 한편, 같은 ‘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단 하나 “망막이라는 철벽”을 치고 있는 외무장관만 제외하면 그들은 이미 목표 달성에 일치단결 상태다.

돈의 방향을 돌리라는 슬로건 아래 역방향주의는 새로운 노선이다. 외무장관 베네딕트가 우려섞인 반론을 제시하지만 총리는 웃음으로 응대한다. “외무장관의 불가해한 죽음뿐 아니라 장례식까지 내다본 진짜 웃음”(p.54)은 섬뜩한데 그는 일관되게 지금은 소심한 시계방향주의적 사고를 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계방향주의와 대척점에 있으며 브렉시트를 상징하는 역방향주의는 사례와 효과를 나열하며 디스토피아 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책 속 갈등은 낯설지 않은 현대사회의 얼굴을 그려낸다. 이는 소설의 본래 시공간적 배경에 제한받지 않고 ‘지금, 여기’라는 거의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 보편성을 띤다. 정치적 계산, 목적을 가진 설계, 정체 숨기기, “신문 지면이라는 틀에 갇혀 진실을 생성”(p.100) 해내는 언론의 작동 메커니즘을 간단 요약하고 원칙과 불법의 줄타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작가가 벼려낸 단어, 감탄사나 리드미컬한 호흡을 보이는 문장은 은유와 상징을 압축함으로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고 여러 층위에서 풍성하게 읽힌다. “하나하나의 글자를 통제해 창조해낸 작고 정밀한 걸작이 언어적 기량을 맛보는 기쁨을 안긴다.”(오프라 매거진)는 평에 백번 공감한다. 삼 억년 역사를 가진 ‘빛을 피하는 생물’인 그들은 결국 목표를 이룬다.

본문에 앞서 작가는 이 소설이 허구임을 굳이 밝힌다. 등장인물들은 상상의 결과물이고 “현존하거나 세상을 떠난 실제 바퀴벌레와 유사점이 있다면 전적으로 우연”이라는 첨언이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이리라는 확신을 부추긴다. 경쾌한 톤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몰입을 높이는 중에도 많은 밑줄을 뚫고 웅변처럼 별을 다는 주제문들은 여기저기서 빛을 낸다. “베를린에는 독특한 회색이 있었다.”(p.111)로 시작하며 짐 샘스가 생각을 좇는 부분은 자기 확신에 안착하는 사고과정을 서술하는데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이다.”(p.92)라든지 단연 압권인 “다리가 여섯?"(p.82) 등 장면은 감탄을 유발한다. 우연히 대선 다음날 읽은 “바퀴벌레”는 묘하게도 현실을 복기하고 요약하고 증폭시킨다. 완전체인 바퀴벌레 시점에서 보는 인간은 욕망이 빈번히 지성과 충돌하는 구제 못할 하등 종이다. 전 세계적 행복의 총량은 줄지 않는다, 정의는 불변한다고 합리화하며 자신들의 번성을 위해 “역방향주의라는 광기”(p.123)를 실현시킴으로 이언 매큐언 표 블랙 코미디는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지금, 누가 역방향주의자인가? 누군가는 자신의 방향을 애초에 잘못 인식하고 있거나 방향을 잃었거나 방향이라는 개념 자체와 무관한 무지 또는 무관심에 닻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방향, 색, 상식, 가치, 선 등 여러 기준을 들어 이분법적 잣대를 공고히 하는 일은 위험하다. 만만한 분량이지만 만만치 않은 의미를 전하는 작품으로 자발적 재독 굴레로 독자를 이끈다.

책속에서>

그는 두 시간을 들여 아마도 <가디언>에 실리게 될 기사를 썼는데, 글쓴이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재주(그의 성격엔 도무지 맞지 않는)가 필요한 종류의 고백이었다. 끈기 있게 버텼지만 세 단락을 쓰기도 전에 이미 자신이, 꼬드기거나 협박해야 하는 자신이 애처로워지기 시작했다. 결말이 열려 있는 계획이었다. 글로 써야만 발견할 수 있었다. 다 쓰고 나서, 그는 환희에 차 좁은 다락방 안을 서성였다. 촘촘히 짜인 연속적인 거짓말보다 더 큰 해방감을 주는 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것이다 .(p.92)

하지만 어둠이 그들을 지배할 때마다 우리는 번성했습니다. 그들이 가난, 오물, 불결함을 포용하는 곳에서 우리는 힘을 키웠습니다. 우리는 우회적인 수단을 통해, 그리고 많은 실험과 실패 끝에, 인간의 파멸에 필요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지구온난화는 확실한 전제조건이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고착화된 계급, 부의 집중, 뿌리 깊은 미신, 루머, 분열, 과학과 지성과 낯선 이들과 사회적 협력에 대한 불신을 꼽을 수 있지요. 그 목록은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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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섬 비룡소의 그림동화 301
바버러 쿠니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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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쿠니의 『나의 작은 섬(이상희 옮김/비룡소)2021』은 작가 자신이 가장 아낀다고 말했던 1988년 작품이다. 화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던 바바라 쿠니는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 회화와 판화를 공부한 이후 평생 100여권의 책을 그렸다. “어른과 아이 모두를 감동시키는, 더 이상 아름답고 조화로운 그림책은 상상하기 어렵다”(출판사인용)는 평을 듣는 작가는 1959년 『챈티클리어와 여우』로, 1979년에 『달구지를 끌고』로 칼데콧 상을 두 번 수상했으며 『미스 럼피우스』는 전미도서상을 받는다. 표지는 푸른 빛이 감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 멀리 보이는 섬이 바로 제목인 『나의 작은 섬』이고 작품의 주요 무대일 것이다. 좌우로 책을 펼치면 바다의 시원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새를 안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소년에게서 소중한 것을 소개하는 듯한 자부심이 비친다. 앞 뒤면지는 동일한 지도로 채워져 있는데 “모기곶”, “손도끼만”, “숫양섬”, “할머니 언덕”, “할아버지 암초”등 독특한 지명은 소년의 작품은 아닐까 짐작케 한다. 타이틀 표지에서 작은 섬은 조금 더 다가와 중앙에 자리하고 제목 역시 가운데에서 시선을 붙잡으며 독자를 한 발 더 가까이 이끈다.

“처음에 그 섬은 그저 그랬어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빠는 항구 마을을 떠나 외딴섬에서 샘을 파고 집을 지은 후 아내와 세 아이들과 암소를 데려온다. 이후 섬은 가족의 성을 따 “티베츠 섬”이라고 불린다. 시간이 흘러 남자아이 여섯, 여자아이 여섯, 모두 열 두명의 아이들은 부모님께 배우고 익히며 놀고 성장한다. 작고 어려서 도움이 안된다는 형들 이야기에 막내 마타이스는 엄마가 심은 언덕 위 사과나무 아래서 “나는 왜 작을까?” 생각하지만 곧 자라서 형들과 함께 삼촌 배의 선원으로 항해한다. 이후 선장이 되었지만 멋진 도시에서도 마타이스는 섬을 잊지 못하고 돌아갈 결심을 한다. 티베츠 섬에 다시 정착한 마타이스는 커서 멋진 선장이 되겠다는 손자, 꼬마 마타이스에게 말한다. “만 너머 바깥세상을 보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러면 네 마음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될 거야.”라고.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 순간까지 마타이스는 묵묵히 움직이고 사람들 마음 속에서 언제까지나 잘 사셨던 좋은 분으로 남는다.

바바라 쿠니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곳인 미국의 메인주를 배경이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삼아 마타이스 티베츠의 부모님으로부터 꼬마 마타이스까지 4대에 걸친 연대기를 완성한다. 집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던 마타이스가 “티베츠 섬의 꿋꿋한 노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고유하면서도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가는 유산이 된다. 소중한 것을 잊지 않고 지켜냈던 마타이스의 선택들과 정직한 손의 수고는 매일의 감사와 만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잔잔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은 섬세하게 빛나는 그림을 통해 배가된다. 작가가 새들이 쉬는 바위나 묘목 곁의 홍합 껍질 처럼 아주 작은 것들까지, 그곳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는 딸, 바바라 포터의 후기를 읽고 나면 바위나 틈새 한 군데조차 허투루 볼 수 없다. 빼곡이 스친 붓을 따라가며 변주되는 바다 색처럼 초첨을 정해 감상하게 된다면 『나의 작은 섬』 읽기는 수없이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나온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간직하는 기록물로써의 가치도 지닌다. 다만 역동적인 영상물에 익숙한 어린 독자에게는 자칫 비교적 많은 텍스트 분량과 평명적인 그림이 몰입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읽힐 책임은 분명하기에 그림책 대가의 기념비적인 마지막 작품이 전하는 감동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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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인형 미운오리 그림동화 2
라리사 튤 지음, 레베카 그린 그림, 서현정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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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사 튤의 『카프카와 인형Kafka and the Doll(레베카 그린 그림/미운오리새끼/2022)』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제목으로 등장하는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먼저 주목을 끈다. ‘부조리하고 암울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카프카적인(Kafkaesque)’을 사전에 등재시킨 주인공으로 대표작인 “변신”이나 미완성 장편 “성”에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 출세와 결혼 등의 부담으로 힘겨웠던 카프카는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생을 마친 천재 문학가다. 그런 카프카에게 이토록 다정한 조합이 가능할까 놀라왔는데 “카프카와 인형”이 온전한 창작이 아닌 실화를 엮었다는 사실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카프카와 도라는 베를린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쓰고 있는 소설 결말과 도시락 먹을 장소를 생각하며 걷던 중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수지가 자기 인형 숩시를 잃어버리고 슬퍼한다는 사실에 카프카는 말을 건넨다. 인형들은 여행을 좋아하는데 숩시도 여행을 가서는 소녀에게 편지를 썼다며 “나는 인형들의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배달부란다.”라고 덧붙힌다. 카프카는 숩시 대신 편지를 쓰고는 직접 수지에게 전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편지를 통해 둘은 상상 속 세계여행을 즐기지만 예정된 결말은 다가오고 만다.

책은 카프카와 소녀 수지, 도라와 수지가 나누는 대화체 문장으로 생생함을 더한다. 카프카가 대필한 숩시의 편지는 또다른 즐거움을 전한다. 카프카 곁을 지켰던 도라 디아만트 덕분에 알게 된 편지를 실제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작가가 써내려간 문장임에도 기념사진처럼 여행지에서 도착하는 편지가 어쩌면 카프카의 버킷리스트는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동글동글한 그림체는 차분한 색감에도 경쾌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모자를 쓰고 성큼성큼 걷는, 호리호리한 외모에 큰 귀가 눈에 띄는 카프카와 재회하는 시간은 책 속일지언정 소중하다. 그의 마지막 날들이 배려와 진심으로 채워졌으리라 안도하게 된다.

카프카와 이별한 후 성장한 수지는직접 여행길에 오른다. 가방에 꽂혀있는 책 『METAMORPHOSIS』, “변신” 한 권이 독자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카프카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세 번째로 “변신”을 읽고, 얼마 전 이언 메큐언의 “바퀴벌레”를 만났는데 우연히 “카프카와 인형”까지 연결되어 의미있었다. 예견된 슬픔이 마음을 아프게 할지언정 주인공 소녀는 물론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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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A Year of Quotes 시리즈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로라 대소 월스 엮음, 부희령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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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The Daily Henry David Thoreau)로라 대소 월스 엮음, 부희령 옮김, 니케북스, 2020, 2022는 소로의 명문장을 365일간 매일 읽을 수 있도록 묶은 책이다. ‘세계 문학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책이라고 불리는 월든과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시민불복종으로 유명한 소로는 에머슨과 함께 초월주의자이기도 했다. 미국 초월주의 사상의 전문가인 로라 대소 월스는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21세기에 소로를 통해 멈추고 성찰할 것을 권한다. 소로의 여러 저서를 부분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지만 인용문의 출처 대부분은 자신의 상상을 관찰한 글인 일기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 ‘옥수수와 풀과 대기를 기록하는 모든 자연의 필경사가 되기로 맹세했다(p.11)는 소로의 글은 무뎌진 마음을 벼리는, 그럼에도 부드럽기 그지없는 숫돌과 같다.

 

책은 날짜별로 매일의 문장을 싣고 있다.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글은 계절 중에서도 이 달이 어떠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매일 읽거나 쓸 분량은 많지 않고 오히려 간결한 편이다. 하지만 읽을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곱씹어 보게 하고, 어떤 묘사, 표현, 비유, 낱말에 감탄하게 만든다. 소로의 시선에 의지해서 보는 자연은 독자의 감각을 깨우고 일상적으로 흘려보냈던 대상은 발견에 가까워진다. “날씨가 어떻든, 밤과 낮의 어느 때든, 나는 짧은 틈에 불과한 시간조차 잘 쓰기를, 그리고 그것이 내 지팡이에 눈금으로 표시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순간인 현재에 서 있기 위해, 그 눈금 위에 서 있기 위해.”(생활의 경제, 월든 1854)(p.29) 기꺼이 재독하겠다 싶은 월든의 문장임에도 선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문장의 재발견은 다시 책꽂이의 책을 꺼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아직 읽지 못한 저서의 인용문은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연이어 올린다. 번역서가 나와 있는지도 찾아보게 한다. 1800년대의 일기를 백 년이 더 지나 읽는 느낌은 또 다른 성찰의 고리를 만든다. 그때도 3월이 있었고, 시간이 흘렀고, 계절의 변화에 기뻐했던 누군가의 흔적은 급격한 동지의식을 부른다. “사소한 일에 정신이 팔리면 그 습관에 영원히 사로잡히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생각이 사소함으로 물들게 된다. 우리의 지성에 자갈이 깔리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바퀴가 굴러갈 수 있는 토대가 무너지고 만다는 의미다.”(원칙 없는 삶 1863)(p.83)라는 33일자 문장이다. 사소한 일에 정신 많이 팔렸던 오늘, 스스로를 향해 되뇌인다. 그나마 미약한 지성에 자갈이 깔리고 싶지 않으면 그러지 말자, 결심도 한다. 이 책은 만듦새마저 완벽하다. 소로는 초록이어야 마땅하다. 초록을 기본으로 자연을 단순화한 표지 패턴, 면지부터 종이의 느낌, 글의 배치까지 마음에 든다. 당연히 필사집으로 활용해도 좋겠다. 나의 편애하는 소로를 조금씩 아껴가며 매일 만나보자.

 

 

책속에서>

숲속에서 망사 모양의 털사철난 잎사귀를 보았다. 매우 싱싱한 초록빛이다. 연녹색 다른 식물들도 있었다. 이제 막 돋아난 덕분인지 눈에 덮이거나 추위에 시달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쌓인 눈 아래에서 여름이 주먹을 꼭 쥐고 있다.(1852310일의 일기)(p.90)

 

산책할 때는 감각을 더 자유롭게 풀어 주어야 한다. 꽃과 돌, 별과 구름을 유심히 보는 것도 좋지 않다. 생각을 풀어놓듯 감각도 그냥 두어야 한다. 일부러 들여다보지 말고 그냥 보아야 한다. 잘 보려면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칼라일Carlyle은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무심히 보라고 말하고 싶다. 들여다볼수록 잘 못 보게 된다. 나는 지나치게 주의를 집중하는 습관이 있어서 감각이 쉬지 못한다. 항상 긴장에 시달린다. 들여다보는 일에 집착하지 말라. 대상에게 다가가지 말고 그것이 다가오도록 하라. 유심히 보지 말고 눈이 산책할 수 있게 두어야 한다.

(1852913일의 일기)(p.293)




<출판사 도서제공/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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