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트랜스퍼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8
존 더스패서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최대의 항구도시 뉴욕, 뉴욕의 중심지인 맨해튼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환승역 맨해튼 트랜스퍼는 존 더스패더스의 작품 속에서 묵직한 존재를 견고하게 드러낸다. 더스패더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동시대를 통과하며 교류했던 잃어버린 세대로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1차 세계대전 후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허무적ㆍ쾌락적 경향에 빠졌던 미국의 지식인들과 계급 청년들로 사전은 정의내리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적 암울함을 금주법, 이민증가와 배척감정, 물질주의와 허황한 꿈, 대공황시대의 불안, 도덕 등 기존 가치관 상실의 날들을 배경으로 수 많은 등장인물이 네온사인처럼 명멸하는 작품이다.

인물이 많기에 따라가며 읽기 위해 등장순서대로 매번 기록해 보니 A4용지 4장이다. 인물별 분량도 등장 시점도 제각각으로 예측할 수 없고, 한 인물이 어떻게 자기의 삶을 살아낼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쓰럽거나 안타깝다. 복잡한 인물의 미로를 뒤쫓아 정리된 감정을 느낄 새가 부족할 듯 함에도 불구하고 애처로움은 반복해서 읽기를 멈추게 만든다. 그럼에도 도입부 에서부터 가장 주목하게 한 인물은 지미 허프였다. 이미지만 남긴 채 서둘러 사라진 그의 어머니 릴리 허프의 여운을 간직한 채 어린 지미 허프가 혼자 남아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작품 전체를 통해 연결된다.

후견인이 된 제프 이모부가 남자들의 세계에서 성공해보겠다는 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172)’고 우려했던 지미. 그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대할 때 순수함, 자존심을 지키려는 열망과 될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는 이중적이면서도 솔직하다. 타임스 기자로서의 글을 쓰며 느끼는 감정, 사랑을 이룸으로써 영원할 것 같은 행복도 한 순간처럼 흩어져 버리고 로스트제너레이션을 가장 많은 부분 대변하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어디까지 가는데요? 라는 물음에 글쌔······ 꽤 멀리요.(564)’라 답하며 알지 못하는 현재, 부유하는 실존을 수용한다.

두 번째 인물 축은 에드 대처의 딸 엘런일 것이다. 재능과 미모를 비롯해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많은 것을 부여받은 그녀는 꿈을 추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데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그녀를 꿈의 실현처럼 곁에 두고 싶어한다. 그들만의 다른 이유로 그녀는 사랑스럽다. 그래서인지 엘런은 일레인, 엘리, 헬레나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첫 남편 존 오글소프(조조) 이후에도 스탠우드 에머리, 지미 허프, 해리 골드와이저, 조지 볼드윈 등의 열렬한 대상이 되며 이와 별개로 개인적 성취도 이루어낸다.

작품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일곱시 반,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어디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녀 안에 지칠 대로 지친 공백이 있었다.(558쪽)’,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무엇에 신경을 쓰는가, 무엇을 위해. 사람들의 시선, 돈, 성공, 호텔 로비, 건강, 우산, 유니다 비스킷, 내 머릿속에서는 늘 고장 난 태엽인형처럼 띵 소리가 울린다.(558쪽)’고 자각한다. ‘불쑥 뭔가 잊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화들짝 놀란다. (중략) 택시 안에다 뭘 두고 내렸나? 그러나 그녀는 이미 생글거리며 걷고 있다.(559쪽)’ 지친 공백과 마주쳤음에도 그녀가 살아가는 패턴은 앞으로도 매끄럽게 지속될 듯 보인다.

그 밖에 재즈시대 거대 톱니바퀴에서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간 사람들은 그 등장이 비록 짧더라도 때론 주요할 것 같았으나 허무하게 사라졌더라도 잊혀지지는 않는다. 엘런의 어머니 수지 대처나 지미의 어머니 릴리 허프, ‘어디도 갈 곳이 없다며 브루클린 다리에서 추락사하며 1부의 마지막을 담당했던 25세의 버드, 알콜과 허무의 수렁에 빠져 결국 죽어간 스텐 말이다.

등장 순서에 따라 인물 맵을 그리며 읽어나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작품의 가장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맨해튼 트랜스퍼, 도시 자체의 매력을 그려낸 묘사 또한 눈여겨 보게 된다. ‘아연처럼 하얀 강물 저편에는 다운타운의 빌딩들이 자작나무 숲처럼 빽빽하다. 뿔나팔 소리가 초콜릿색 아지랑이 사이로 퍼지듯 그 높다란 담벼락 위로 분홍빛 아침노을이 번져간다.(355쪽)’, ‘그들은 툴툴거리며 리무진의 뒷좌석에 앉아 업타운의 포티스로 질주한다. 진처럼 희고, 위스키처럼 노랗고, 사과주처럼 거품이 나는 휘황한 번화가로.(432쪽)’, ‘레몬 그린색 레이스를 두른 듯 움트는 나무들 저편에는 허드슨 강이 저녁놀을 받아 은빛으로 흐르고 어퍼 맨해튼의 아파트들이 흰 암벽처럼 빛난다.(531쪽)’ 이처럼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거대도시 뉴욕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보게 한다. 연약함에 부질없어 보이는 또는 획득한 힘을 더욱 공고히 하려 고군분투하는 인간군상과 대조적으로 도시가 보여주는 빛과 색은 매혹적이다.

더스패서스는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때론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바뀌었음을 예고하기 위한 최소한의 줄바꿈조차 없이 진행되기에 나중에는 으레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된다. 예측은 빗나가고 해피엔딩도 없다. 삶에 당면한 채 나이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허무맹랑하지 않고 얼마든지 있을 법하고 오히려 현재의 면면이 시공간적 거리를 훌쩍 뛰어넘어 겹쳐보이기도 한다, 시간을 빠르게 돌려 인물들의 후대 이야기로 이어나가도 읽고 싶어질 것 같은데 지금의 뉴욕은 또 예기치 못한 감염병으로 완전히 다른 색을, 가슴아픈 색을 띄고 있다.

난해하리라는 예상에 흥미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생각외로 재미있었다.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물을 따라가느라 집중하고 몰입해 감정이입하곤 했다. 뉴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칠 것이고 어빙 벌린을 비롯해 작품 속에 종종 나오는 음악을 찾아 들어본다면 그 시대의 분위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것도 같다.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좇아 분주하게 시간을 채워가는지, 어긋남 없이 서로에게 소중하게 남을 관계란 무엇인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지, 지금 이곳은 어디를 향한 환승역인지 생각은 지속된다.

-2020.4.20 서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2012, Frankenstein, 1818, 324쪽 분량)』 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이름만으로 강한 상징성을 띄고 있는 아니코닉한 대상이다. 가장 먼저 연상되는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는 30년대 흑백 영화에 등장했던 배우 보리스 칼로프의 얼굴이고 여기에 만화적 캐릭터나 광고로 끊임없이 소환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을 비롯한 고전 과학소설이나 다양한 영화의 원형도 『프랑켄슈타인』에 있다. 메리 셸리는 영국의 소설가로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과 철학자이자 여권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부부의 딸이다. 작가는 서문을 쓴 시인이자 후에 남편이 되는 퍼시 비시 셸리, 그리고 친구들과 여행 중에 글을 써 들려주기로 한다. 셸리는 이렇게 썼던 글을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로 익명 출간하고 아버지에게 헌정한다. 이후 인류 멸망을 그린 소설 《최후의 인간》(1826), 모험담 《퍼킨 워벡의 행운》(1830)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1831년에는 《프랑켄슈타인》을 개작해 재출간했다.

소설은 항해 상황을 전하는 월턴의 편지로 시작한다. 북극 탐험이라는 원대한 목적 앞에 당장의 어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을 나눌 벗의 부재가 아쉽던 중 광활한 빙원에서 조난자를 발견한다. 월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자신을 거울삼기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과거의 행적이 소설의 중심으로 드러나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삶이다. 명문가의 아들이었던 그는 사촌 동생 엘리자베트, 벗인 클레르발과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한 권의 책에서 시작한 자연철학을 향한 열정은 독일의 대학에서 과학을 접하며 더욱 고취된다. 특히 생명이 발생하는 원리를 찾기 위해 귀향도 미루며 “인간 창조”(p.66)에 착수한 끝에 그토록 오래 자신에게 행복한 휴식이었던 꿈들이 “지옥”이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빅토르는 비통한 소식을 듣고 귀향한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아끼던 사람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한다. 괴물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결과로 볼 때 진정한 살인자는 자신이라고 여긴다. 평온을 되찾기 위하여 남은 가족과 알프스 샤모니 계곡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다. 빅토르는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만난 첫 대면에서 그를 “악마”라고 호명한다. 소설의 화자가 이번에는 괴물로 옮겨간다.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생명을 부여받은 괴물은 무방비로 세상의 위협을 감내하고, 본모습을 숨긴 채 학습하고, 생각하고, 애쓰고 소망한다. 절대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원하지만 거듭 거절당한다.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가족 중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과, 세상의 편견에 물들지 않았을 어린아이, 결정적으로는 자신의 창조자로부터. 그의 요구는 한가지다. 동류이기에 자신을 거부하지 않을 반려자의 창조다.

3부로 구성된 소설에는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탐험중인 선장 월턴과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부여한 피조물이다. 작가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점층적으로 진행하고 첫 번째 화자 월턴을 마지막에 다시 등장시켜 사건의 시작과 종말을 기록하게 한다. 소설은 기록물이자 증거로서 백 년이 몇 번 지나도록 독자에게 닿고 다채로운 이미지와 서사와 변용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소설의 한 가운데에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괴물의 이야기를 배치한다. 태어난 괴물은 세상을 혼자 깨우친다. 혼자 배운 것을 되새기고 더 알아야 할 사항을 꼽아본다.

그에게 의미심장한 발견은 말로 이루어지는 소통이었는데 “진정 신과 같은 과학이었기에 나도 터득하고 싶다는 열망”(p.148)을 부추긴다. 글을 읽게 되자 “경이로움과 기쁨의 벌판”을 보게 될 뿐 아니라 사회와 종교에 대한 통찰과 자기 자신을 향한 성찰에 이른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손을 내밀고 싶었던 괴물의 소원이 차례로 실패하자 분노는 복수의 열망으로, 거절당하지 않을 대상을 향한 갈구로 이어졌다. 이마저도 좌절하자 관계를 역전시켜 자신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에게 “노예여”라고 부른다. “네놈은 내 창조주지만, 나는 네 주인이다. 순종하라!”(p.227) 계속되는 대결은 더 많은 희생을 부른다.

소설은 입체적인 구조와 치밀한 심리묘사, 빠른 극적 전개로 시종일관 독자를 몰입시킨다. 특히 2권 2장에서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과 처음 대면하는 장면은 빼어나다. “당신은 나를 죽이려 하겠지. 감히 당신이 이렇게 생명을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 다하라. 그러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p.132) 괴물의 논리는 정연하다. 나아가 간곡하다. “내 말을 들어달라.”(p.134)는 호소는 몇 번이고 반복되어 적의로 가득 찬 빅토르의 생각을 바꾸었듯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낭만주의의 한가운데를 살았던 작가가 구축한 세계는 슬프고 안타깝다. 월터가 미지의 땅을 향해 항해를 계속했듯이 빅토르는 과학의 정점에서 열릴 신세계를 꿈꿨다. 피조물인 괴물은 언어라는 도구, 이야기의 힘으로 생태적으로 다르다는 극도의 취약함을 극복할 수 있기를 꿈꿨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도래하지 않았고 그들의 손에 들렸던 도구는 우리 손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발전은 고속으로 이루어지고 감정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며 소통은 일관되지 못하다. 그래서 현재적이다. 소설은 섬세한 묘사로 인간의 심리뿐 아니라 풍광도 부각시킨다. 망망대해, 극지방 유빙의 포위나 장엄한 몽블랑, 라인강의 절경 등이 고통받고 갈등하는 인간과 무심한 대비를 이룬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으로 잘못 여겨져 왔으나 그를 만든 과학자다. 괴물은 ‘악마’ 또는 ‘그 존재’로 불리기도 하지만 결국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어야 할 건 이름, 즉 실존이 아닐까. 철저히 내던져진 존재의 실존 가능성 또는 연대의지를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물을 때 독자는 방관하지 못한다. 절규와 다름없는 질문은 물론, 행간에 스민 침묵까지 사유의 장으로 이끄는 고전을 추천한다.

책속에서>

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아무리 애원해도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호의를 보일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당신의 선의와 연민을 갈구하는데도? 내 말을 믿어라,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p.133)

이런 말들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동포 인간들에게 가장 높이 평가받는 자산은 부와 결합한 귀하고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도 배웠다. 이들 중 하나만 갖고 있어도 존경받고 살 수 있지만, 둘 다 없으면 아주 희귀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선택된 소수를 위해 자기 힘을 무의미하게 소모해야 하는 방랑자나 노예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이었던가? 내 탄생과 창조주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흉악하게 일그러진 추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람과 같은 본성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중략) 그렇다면 나는 지상의 한 점 얼룩 같은 괴물일까? 모든 사람들이 도망치고, 모든 사람들이 내치는?(p.1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의 지도 -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강재영 외 지음 / 샘터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주공예비엔날레는 글로벌 공예문화의 중심인 청주시에서 2년마다 열리는 문화예술축제다.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 열세 번째로 개최중인 전시의 주제는 <사물의 지도_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다. 즐거운 예감의 예술교육 심화과정 첫 시간부터 임지영 대표님의 추천이 있었고 “재밌는 예술 사용법” 특강도 직접 진행하시기에 더욱 가을의 청주가 마음을 끈다. 그런 중에 주요 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먼저 책으로 만날 수 있어 반가왔다. 『사물의 지도(샘터, 2023, 348쪽 분량)』는 올해 전시의 예술 감독인 강재영을 비롯해 아홉 명의 공동 저자가 영감 가득한 작가들의 행적과 결과물을 소개한다. 먼저 예술의 갈래로 볼 때 문학이나 회화와 비교해 선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공예”의 개념과 특징을 살펴본다. “인류의 가장 근원적이고 오래된 지적 설계”, 가상의 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 문명의 신체성으로 돌려놓기에 공예는 “인류 문명의 뿌리이자 무의식”(p.10)임을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여섯 개의 주제로 공예의 과거와 현재, 역사의 반영과 미래의 방향성을 탐색한다. 각 장의 주제와 연결되는 작가들의 간략 소개, 작업 과정, 작가관, 작품 설명 등을 담는다. 분량은 4~10면 정도인데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여러 느낌, 다양한 여운이 쌓여간다. 첫 번째 작가는 “눈빛의 관점”, 다카시마 히데오다. 빈 항아리 형상을 한 얼굴이라니, 제목도 <텅 빔으로 채워지다>여서 역설의 공명, 의미와 무의미, 이질감과 자유로움에 한동안 사로잡힌다. 2장에서 문화적 기억과 맥락에 주목한다. 서도식의 어린 시절 할머니의 사랑은 하나쯤 곁에 두고 싶은, 시들지 않는 감<감·甘·感>으로 되살아나 시선을 붙잡는다. 제목까지 웅변하지 않는가.

주오밍순은 “사람과 기물 사이의 상호작용”(p.92)을 창작에서 가장 소중히 여긴다. 새로운 형태의 공생체가 “인간과 물체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유기물과 무기물 간의 격차를 넘어선다”(p.94) 찻주전자 작품은 무한 상상,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놀이와 같은 자유로움 이야말로 경계를 넘어 세계를 확장하겠다는 공감을 부른다. 안소니 아모아코-아타는 고향 가나를 향한 그리움을 가방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가방 론”을 읽으며 읊조렸다. “말이 된다”라고. 3D 도자의 세계에 머문 후, 금속공예가 이상협의 <달>에서 은덩어리가 달항아리로 치환되는 마술을 혼자 상상한다. 디지털 크래프트 작업으로 완성한 류종대의 <달항아리>는 탄성이 나온다. 김환기가 이름지어준 달항아리가 앞으로 또 어떻게 변신을 거듭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4부, 기록문화와 공예 편에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심체요절>을 이야기한다. 인류가 최초로 금속활자로 만든, 인류 문명의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으니 자부심이 넘친다. “공예는 문명을 만들고 문명은 사람을 만든다”(p.216)라며 <직지>의 진정한 주인공들 한지장과 필장, 먹장, 벼루장을 정성껏 이름 부른다. 『사물의 지도』는 다소곳이 정보를 간직할 수 있는 도록의 역할에서 나아간다. 와, 라는 감탄이 계속되면서 현장에서 직접 관람해야 하는 전시임을 확인시킨다. 얼마나 더 놀랍겠는가. 그곳에 사유하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실험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계 없는 상상을 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겪어낸 시간에 길이 나고 형태가 생긴다. 이미 시간을 탈출해 영속할 채비를 한다. 그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고 그 길을 따라갈 병아리 우리 아이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책을 읽었는데 삶이 기대된다. 삶의 모든 지문을 가치로 메운다.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한편 덴마크에서는 종교적 전통과 일찍이 분리된 종이공예의 전통이 오랫동안 계승되어 왔다. 동화 작가로 유명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종이공예가이기도 했는데, 1867년 친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르는 것은 시의 시작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안데르센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직접 쓴 동화를 읽어 주면서 즉흥적으로 가위를 움직여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안데르센은 덴마크 종이공예 전통의 확산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p.119)

<직지>의 제작과정 전체를 상상하고 복원하기 위해 기획한 이번 전시를 통해 인류문명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상호존중과 협업의 결과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전시는 <직지심체요절>을 탄생시킨 이 땅의 수많은 장인들에게 보내는 헌사와 오마주이다.(p.225)

덧> 새내기 아이의 첫 도예작품을 처음으로 다정히 만져보고 커피를 내린다.



<출판사 도서 제공_신간 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은 예술로 빛난다(다산초당, 2023, 336쪽 분량)』는 국민 미술 교양서로 일컬어지는 <방구석 미술관>의 저자 조원재의 새로운 책이다. 전작에서 서양미술사의 거장들과 한국 근현대 미술 거목들을 정리했다면 이번에는 조명을 우리 자신에게 옮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책 제목의 의미를 설명한다. 즉, “모든 아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우리가 어른이 된 후 ‘어떻게 예술가로 남을 것인가’이다.”(p.8)라고 했던 피카소의 화두에 대한 답이다. 저자는 천진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충분히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긍정과 낙관에 방점을 찍는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행로를 복기할 때 선택의 여러 순간이 되살아난다.

1부 <나를 깨우는 질문들>에서 던지는 여덟 개의 질문 앞에서 독자는 잠시 멈춘다. 반복되는 삶에 지쳤느냐는 첫 물음 앞에서 전혀요, 라고 답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반복’이 어떻게 변주하거나 승화될 때 새로운 의미 부여가 가능한지 욘 카와라의 ‘오늘’ 연작과 이우환에게서 살핀다. 반복은 더 이상 지루하거나 답답한 중압이 아니다. 보기를 스스로 결정하는가? 의식적 판단 이전에 반사적으로 작동한다. 미디어는 활자보다 가깝고 애쓰지 않아도 습관으로, 중독으로 달린다. 저자는 미술을 사랑하는 이유를 ‘보기의 결정권’(p.46)에서 찾는다. 볼 것의 범람 앞에서 미술 작품을 볼 때 최대치가 되는 자기 의지의 특별함을 때문이다.

2부 <삶을 예술로 만드는 비밀>은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비밀 항목을 열거한다. 마르셀 뒤샹의 말에서 ‘거대한 나태함’(p.108)에 주목한다. 탁월한 작품 <파리의 공기 50cc>에서 나태함의 역설을 이해하게 된다. 즐거운 루틴인 산책 이야기에서는 고흐와 장욱진, 이우환의 작품을 감상하고 산책이 지닌 다른 결들을 살핀다. 아이의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평범하거나 덮어두어도 되거나 관심을 끌지 못할 게 없다. 예술의 순간은 무한히 늘어나고 예술의 정의는 추가된다.

저자는 예술을 통해 감정을, 결국 자신을 알게 된다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보다 상쾌한 일은 없다.”(p.176)고 한다. 예술의 존재 이유가 “예술작품을 보며 결국 나를 본다.”(p.177)는 견해는 ‘즐거운 예감’의 임지영 대표가 전하는 예술 향유와도 맥을 같이한다. 작품은 우리 자신을 투영하는 창이며 매개가 된다. 당연하다고 여겨져 온 궤도를 이탈해 예술 순례의 길에 올랐던 저자는 3부에서 지도는 우리들 안에 있다 한다. 작품 감상은 사조와 작가, 배경 지식에 기반하지 않는다. 나아가 예술에 정답이 없듯이 삶에도 정답이 없고 각자가 정의하는 고유한 예술이 있을 뿐이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는 내 안의 예술가를 깨운다. 각자의 유일한 삶을 자신만의 캔버스로 치환한다. 저자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 온 순간들을 풀어놓는다. 선택의 순간에 만났던 예술 작품은 그다음 걸음을 이끌었고 독자는 그가 누렸던 예술을 함께 발견한다. 익숙했던 또는 놀라운 예술 작품을 새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데에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휘도 판 데어 베르베의 영상작품 <모든 것은 잘될 것이다>를 찾아보고 싶어진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사물을 포장하는’ 예술은 결과물은 물론 아이디어부터 구현까지 전 과정, 그러니까 삶 자체가 작품임을 드러낸다. 책은 마지막으로 ‘독학력’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닐지라도 마음이 가는 주제를 향해 몰입하고 애쓸 때 언제까지나 예술가로 남을 수 있다. 저자는 편안한 문장으로 손을 내민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유일한 예술을 살아내자고. 이제 그 손을 잡을 차례다.

책 속에서>

이우환의 돌은 영겁의 시간성을 품고 있는 신비한 존재자로, 지구 혹은 자연이라는 존재의 대변자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의미를 온전히 전해 받을 수 있는 것은 ‘의미를 발견해 내는 능력’을 가진 당신의 몫이다. 누군가가 설명해 주어 머리로 알았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예술의 참맛은 스스로의 힘으로 의미를 창조해 내는, 번개같이 일순간 번뜩이는 지적 순간에 있다. 그 일말의 순간! 그것이 바로 예술의 순간이며, 우리가 예술을 사랑한다 말하며 즐기는 진정한 이유다.(p.142)

무엇을 위해 미술작품을 봐야 할까? 나를 위해, 나의 감정을 만나기 위해, 나의 생각을 만나기 위해, 나의 관점을 만나기 위해, 나아가 나의 철학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예술의 존재 이유는 사실 그렇다. 예술작품을 보며 결국 나를 본다.(p.177)



(신간서평단_출판사 도서제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 예술 너머 1
임지영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에 참여했던 게 작년 4월이었으니 시간이 꽤 지났다. 예술교육 리더과정을 통해서였다. 그 후 신기수, 임지영 저자가 대표로 계시는 ‘즐거운 예감’의 100일 글쓰기를 했고 이제 예교리 심화과정이 6차시를 앞두고 있다. 각별한 성취라곤 없는 일상이지만 여전히 분주한데 충실히 해낼 수 있을까 염려했다. 그러던 중 리더 4기, 심화 4기라는 균형 잡힌 명찰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저자의 격려에도 힘을 받아 함께하는 중이다. 일 년 전 그 느낌이 곧바로 되살아난다. 땅에서 5센티 정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설렘의 일상화, 즐거운 부담, 피로가 에너지를 동반하는 카프카적 각성상태 말이다. 여기에 더해진 증폭된 기운은 현역 예술가와 교사, 전문가인 동기분들의 영향이다.

임지영의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학교도서관저널, 2022, 204쪽 분량)』은 예술 향유로의 적극적 초대다. 예술은 생활인의 일상과 다른 고도에 위치하리라는 편견을 거듭 지우는 책이다. 지울 뿐 아니라 증명하고, 증거들을 하나하나 전달한다. 임지영은 문학과 문화예술을 전공했고 10년간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예술 교육을 기획해왔다. 그림으로 글을 쓰는 프로그램은 현장의 호응을 받으며 예술 감성 교육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한국경제 아르테에서 예술 칼럼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에서 저자는 내가 해낸 걸 보라는 전시에서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살뜰하게 챙긴다. “우리 삶의 근사한 도구로 예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공유해 드리려고 해요.”(p.8) 매 강의를 채우는 저자의 열정이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은 먼저 “예술 감성”을 이야기한다. 예술 감성 교육이라고 명명하지만 예술은 교육이 아니라 환경이다. 그래서 가르치지 않고 ‘안내’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경청과 공감의 태도다. “예술에 다가가는 7가지 방법”은 어떻게 작품과 눈 맞추고 소통할지를 알려준다. 그 중 세 번째 항목인 “권리를 가지세요”에서는 다니엘 페나크의 독서 권리장전을 응용한 “예술 권리장전”이 기운을 북돋는다. 전시회 전체를 견인하는 “오늘의 단 한 점”은 감상의 주체를 선명히 하고, 과정의 핵심인 ‘응시와 기록’에서 그림은 더 이상 별개의 무엇이 아니게 된다.

3부, 15분 예술 에세이 쓰기에서는 그림으로 글을 쓰는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한다. 이대로 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은 놀랍다. 저자는 나 자신을 추앙해주어야 한다며 “글 못 써서 너무 부끄럽다고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쓴 사람이 제일 많이 읽거든요. 최고의 독자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p.80)라고 말한다. 저자의 목소리가 실시간 덧입혀지며 한결같고 강한, 이 끝없는 지지와 진심에 다시 한 번 사로잡힌다. 4부에서는 기획 방법을 다룬다. 수업 구성과 그림 선정의 팁이 담겼다. 그림 논제 만드는 법과 피드백의 요점, 대상별 프로그램 예시까지 생생한 현장을 간접 경험케 한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은 일대일로 진행되는 개인별 맞춤 가이드북 같다. 친절하고 상세하다. 그럼에도 간결해서 집중이 흩어지지 않는다. Q & A가 문장에 녹아있어 읽으면서 이해를 넘어 실천하고 싶어진다. 시선 끝에 놓여있던 예술작품은 스미듯 다가와 우리 안에 녹는다. 말을 걸고 대화하고 세포마다 스민다. 그림은 어느 사이 우리 삶의 궤적을 알아차렸고 꼭 필요한 강도로 악수를 건넨다. 웅시와 기록 이후 어떻게 해도 헤어질 수 없는 벗이 되었고 내내 동행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진행하는 즐거운 예감의 예술 교육 심화과정을 듣는 중에 읽게 되어 더욱 만족감은 크다. 계속 접하고 있는 내용을 각 잡고 새긴다고 할까.

책을 통해 좋은 그림을 소개받고, 풍부한 사례를 만나면서 감동하고 감탄했던 그들을 상상하게 된다. 논제를 통해 나의 에세이도 추가하고 싶어진다. 페이지 위에 밑줄이 그어지듯 목소리도, 이야기도 보태게 되기에 읽는 일이 독서보다는 대화로 느껴진다. 도서관에서 예술 감성 에세이쓰기 수업을 어린이와 성인 대상으로 몇 차시 진행했는데 우리 지역에서도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작지만 큰 책이다. 무엇보다 변화를 일으키는 ‘필요한’ 책이다. 많은 이들이 예술 향유로의 초대장을 기쁘게 개봉하기를.




책 속에서>

왜 15분이여야 하냐고요? 10분은 너무 짧게 느껴지고, 20분은 너무 부담스럽죠. 그림을 천천히 응시하며 생각도 떠올리고 글도 쓸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글에 치장하거나 멋을 낼 틈을 허락하지 않는 ‘마법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15분 동안 뭘 얼마나 잘 쓰겠습니까? 결국 15분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쓰게 되거든요. 열 살은 열 살의 생애로, 마흔 살은 마흔의 인생으로 나를 풀어놓습니다.(p.77)

그림 한 점을 응시하는 건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요. 때때로 어여쁘기도 하고 그늘지기도 하며 숨고 싶기도 하니까요. 모두 함께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새 거울은 창문으로 바뀝니다. 먼 데서 불어오는 바람과 푸른 하늘, 모두를 향해 열리는 느낌이지요. 거울과 창문으로 우리는 나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바라보며, 세상 속으로 가만가만 나아갑니다.(p.1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