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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트랜스퍼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8
존 더스패서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미국 최대의 항구도시 뉴욕, 뉴욕의 중심지인 맨해튼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환승역 맨해튼 트랜스퍼는 존 더스패더스의 작품 속에서 묵직한 존재를 견고하게 드러낸다. 더스패더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동시대를 통과하며 교류했던 ‘잃어버린 세대’로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허무적ㆍ쾌락적 경향에 빠졌던 미국의 지식인들과 계급 청년들‘ 로 사전은 정의내리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적 암울함을 금주법, 이민증가와 배척감정, 물질주의와 허황한 꿈, 대공황시대의 불안, 도덕 등 기존 가치관 상실의 날들을 배경으로 수 많은 등장인물이 네온사인처럼 명멸하는 작품이다.
인물이 많기에 따라가며 읽기 위해 등장순서대로 매번 기록해 보니 A4용지 4장이다. 인물별 분량도 등장 시점도 제각각으로 예측할 수 없고, 한 인물이 어떻게 자기의 삶을 살아낼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쓰럽거나 안타깝다. 복잡한 인물의 미로를 뒤쫓아 정리된 감정을 느낄 새가 부족할 듯 함에도 불구하고 애처로움은 반복해서 읽기를 멈추게 만든다. 그럼에도 도입부 에서부터 가장 주목하게 한 인물은 지미 허프였다. 이미지만 남긴 채 서둘러 사라진 그의 어머니 릴리 허프의 여운을 간직한 채 어린 지미 허프가 혼자 남아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작품 전체를 통해 연결된다.
후견인이 된 제프 이모부가 ‘남자들의 세계에서 성공해보겠다는 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172쪽)’고 우려했던 지미. 그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대할 때 순수함, 자존심을 지키려는 열망과 될대로 되라는 식의 태도는 이중적이면서도 솔직하다. 타임스 기자로서의 글을 쓰며 느끼는 감정, 사랑을 이룸으로써 영원할 것 같은 행복도 한 순간처럼 흩어져 버리고 로스트제너레이션을 가장 많은 부분 대변하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 어디까지 가는데요? 라는 물음에 ‘글쌔······ 꽤 멀리요.(564쪽)’라 답하며 알지 못하는 현재, 부유하는 실존을 수용한다.
두 번째 인물 축은 에드 대처의 딸 엘런일 것이다. 재능과 미모를 비롯해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많은 것을 부여받은 그녀는 꿈을 추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데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그녀를 꿈의 실현처럼 곁에 두고 싶어한다. 그들만의 다른 이유로 그녀는 사랑스럽다. 그래서인지 엘런은 일레인, 엘리, 헬레나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첫 남편 존 오글소프(조조) 이후에도 스탠우드 에머리, 지미 허프, 해리 골드와이저, 조지 볼드윈 등의 열렬한 대상이 되며 이와 별개로 개인적 성취도 이루어낸다.
작품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일곱시 반,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어디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녀 안에 지칠 대로 지친 공백이 있었다.(558쪽)’,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으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무엇에 신경을 쓰는가, 무엇을 위해. 사람들의 시선, 돈, 성공, 호텔 로비, 건강, 우산, 유니다 비스킷, 내 머릿속에서는 늘 고장 난 태엽인형처럼 띵 소리가 울린다.(558쪽)’고 자각한다. ‘불쑥 뭔가 잊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화들짝 놀란다. (중략) 택시 안에다 뭘 두고 내렸나? 그러나 그녀는 이미 생글거리며 걷고 있다.(559쪽)’ 지친 공백과 마주쳤음에도 그녀가 살아가는 패턴은 앞으로도 매끄럽게 지속될 듯 보인다.
그 밖에 재즈시대 거대 톱니바퀴에서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간 사람들은 그 등장이 비록 짧더라도 때론 주요할 것 같았으나 허무하게 사라졌더라도 잊혀지지는 않는다. 엘런의 어머니 수지 대처나 지미의 어머니 릴리 허프, ‘어디도 갈 곳이 없다’며 브루클린 다리에서 추락사하며 1부의 마지막을 담당했던 25세의 버드, 알콜과 허무의 수렁에 빠져 결국 죽어간 스텐 말이다.
등장 순서에 따라 인물 맵을 그리며 읽어나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작품의 가장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맨해튼 트랜스퍼, 도시 자체의 매력을 그려낸 묘사 또한 눈여겨 보게 된다. ‘아연처럼 하얀 강물 저편에는 다운타운의 빌딩들이 자작나무 숲처럼 빽빽하다. 뿔나팔 소리가 초콜릿색 아지랑이 사이로 퍼지듯 그 높다란 담벼락 위로 분홍빛 아침노을이 번져간다.(355쪽)’, ‘그들은 툴툴거리며 리무진의 뒷좌석에 앉아 업타운의 포티스로 질주한다. 진처럼 희고, 위스키처럼 노랗고, 사과주처럼 거품이 나는 휘황한 번화가로.(432쪽)’, ‘레몬 그린색 레이스를 두른 듯 움트는 나무들 저편에는 허드슨 강이 저녁놀을 받아 은빛으로 흐르고 어퍼 맨해튼의 아파트들이 흰 암벽처럼 빛난다.(531쪽)’ 이처럼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거대도시 뉴욕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보게 한다. 연약함에 부질없어 보이는 또는 획득한 힘을 더욱 공고히 하려 고군분투하는 인간군상과 대조적으로 도시가 보여주는 빛과 색은 매혹적이다.
더스패서스는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때론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바뀌었음을 예고하기 위한 최소한의 줄바꿈조차 없이 진행되기에 나중에는 으레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된다. 예측은 빗나가고 해피엔딩도 없다. 삶에 당면한 채 나이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허무맹랑하지 않고 얼마든지 있을 법하고 오히려 현재의 면면이 시공간적 거리를 훌쩍 뛰어넘어 겹쳐보이기도 한다, 시간을 빠르게 돌려 인물들의 후대 이야기로 이어나가도 읽고 싶어질 것 같은데 지금의 뉴욕은 또 예기치 못한 감염병으로 완전히 다른 색을, 가슴아픈 색을 띄고 있다.
난해하리라는 예상에 흥미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생각외로 재미있었다.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물을 따라가느라 집중하고 몰입해 감정이입하곤 했다. 뉴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훨씬 더 생동감이 넘칠 것이고 어빙 벌린을 비롯해 작품 속에 종종 나오는 음악을 찾아 들어본다면 그 시대의 분위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올 것도 같다.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좇아 분주하게 시간을 채워가는지, 어긋남 없이 서로에게 소중하게 남을 ‘관계’란 무엇인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지, 지금 이곳은 어디를 향한 환승역인지 생각은 지속된다.
-2020.4.20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