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에 참여했던 게 작년 4월이었으니 시간이 꽤 지났다. 예술교육 리더과정을 통해서였다. 그 후 신기수, 임지영 저자가 대표로 계시는 ‘즐거운 예감’의 100일 글쓰기를 했고 이제 예교리 심화과정이 6차시를 앞두고 있다. 각별한 성취라곤 없는 일상이지만 여전히 분주한데 충실히 해낼 수 있을까 염려했다. 그러던 중 리더 4기, 심화 4기라는 균형 잡힌 명찰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저자의 격려에도 힘을 받아 함께하는 중이다. 일 년 전 그 느낌이 곧바로 되살아난다. 땅에서 5센티 정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설렘의 일상화, 즐거운 부담, 피로가 에너지를 동반하는 카프카적 각성상태 말이다. 여기에 더해진 증폭된 기운은 현역 예술가와 교사, 전문가인 동기분들의 영향이다.
임지영의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학교도서관저널, 2022, 204쪽 분량)』은 예술 향유로의 적극적 초대다. 예술은 생활인의 일상과 다른 고도에 위치하리라는 편견을 거듭 지우는 책이다. 지울 뿐 아니라 증명하고, 증거들을 하나하나 전달한다. 임지영은 문학과 문화예술을 전공했고 10년간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예술 교육을 기획해왔다. 그림으로 글을 쓰는 프로그램은 현장의 호응을 받으며 예술 감성 교육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한국경제 아르테에서 예술 칼럼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에서 저자는 내가 해낸 걸 보라는 전시에서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살뜰하게 챙긴다. “우리 삶의 근사한 도구로 예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공유해 드리려고 해요.”(p.8) 매 강의를 채우는 저자의 열정이 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은 먼저 “예술 감성”을 이야기한다. 예술 감성 교육이라고 명명하지만 예술은 교육이 아니라 환경이다. 그래서 가르치지 않고 ‘안내’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경청과 공감의 태도다. “예술에 다가가는 7가지 방법”은 어떻게 작품과 눈 맞추고 소통할지를 알려준다. 그 중 세 번째 항목인 “권리를 가지세요”에서는 다니엘 페나크의 독서 권리장전을 응용한 “예술 권리장전”이 기운을 북돋는다. 전시회 전체를 견인하는 “오늘의 단 한 점”은 감상의 주체를 선명히 하고, 과정의 핵심인 ‘응시와 기록’에서 그림은 더 이상 별개의 무엇이 아니게 된다.
3부, 15분 예술 에세이 쓰기에서는 그림으로 글을 쓰는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한다. 이대로 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은 놀랍다. 저자는 나 자신을 추앙해주어야 한다며 “글 못 써서 너무 부끄럽다고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쓴 사람이 제일 많이 읽거든요. 최고의 독자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p.80)라고 말한다. 저자의 목소리가 실시간 덧입혀지며 한결같고 강한, 이 끝없는 지지와 진심에 다시 한 번 사로잡힌다. 4부에서는 기획 방법을 다룬다. 수업 구성과 그림 선정의 팁이 담겼다. 그림 논제 만드는 법과 피드백의 요점, 대상별 프로그램 예시까지 생생한 현장을 간접 경험케 한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은 일대일로 진행되는 개인별 맞춤 가이드북 같다. 친절하고 상세하다. 그럼에도 간결해서 집중이 흩어지지 않는다. Q & A가 문장에 녹아있어 읽으면서 이해를 넘어 실천하고 싶어진다. 시선 끝에 놓여있던 예술작품은 스미듯 다가와 우리 안에 녹는다. 말을 걸고 대화하고 세포마다 스민다. 그림은 어느 사이 우리 삶의 궤적을 알아차렸고 꼭 필요한 강도로 악수를 건넨다. 웅시와 기록 이후 어떻게 해도 헤어질 수 없는 벗이 되었고 내내 동행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진행하는 즐거운 예감의 예술 교육 심화과정을 듣는 중에 읽게 되어 더욱 만족감은 크다. 계속 접하고 있는 내용을 각 잡고 새긴다고 할까.
책을 통해 좋은 그림을 소개받고, 풍부한 사례를 만나면서 감동하고 감탄했던 그들을 상상하게 된다. 논제를 통해 나의 에세이도 추가하고 싶어진다. 페이지 위에 밑줄이 그어지듯 목소리도, 이야기도 보태게 되기에 읽는 일이 독서보다는 대화로 느껴진다. 도서관에서 예술 감성 에세이쓰기 수업을 어린이와 성인 대상으로 몇 차시 진행했는데 우리 지역에서도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작지만 큰 책이다. 무엇보다 변화를 일으키는 ‘필요한’ 책이다. 많은 이들이 예술 향유로의 초대장을 기쁘게 개봉하기를.
책 속에서>
왜 15분이여야 하냐고요? 10분은 너무 짧게 느껴지고, 20분은 너무 부담스럽죠. 그림을 천천히 응시하며 생각도 떠올리고 글도 쓸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글에 치장하거나 멋을 낼 틈을 허락하지 않는 ‘마법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15분 동안 뭘 얼마나 잘 쓰겠습니까? 결국 15분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쓰게 되거든요. 열 살은 열 살의 생애로, 마흔 살은 마흔의 인생으로 나를 풀어놓습니다.(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