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공예비엔날레는 글로벌 공예문화의 중심인 청주시에서 2년마다 열리는 문화예술축제다.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 열세 번째로 개최중인 전시의 주제는 <사물의 지도_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다. 즐거운 예감의 예술교육 심화과정 첫 시간부터 임지영 대표님의 추천이 있었고 “재밌는 예술 사용법” 특강도 직접 진행하시기에 더욱 가을의 청주가 마음을 끈다. 그런 중에 주요 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먼저 책으로 만날 수 있어 반가왔다. 『사물의 지도(샘터, 2023, 348쪽 분량)』는 올해 전시의 예술 감독인 강재영을 비롯해 아홉 명의 공동 저자가 영감 가득한 작가들의 행적과 결과물을 소개한다. 먼저 예술의 갈래로 볼 때 문학이나 회화와 비교해 선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공예”의 개념과 특징을 살펴본다. “인류의 가장 근원적이고 오래된 지적 설계”, 가상의 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 문명의 신체성으로 돌려놓기에 공예는 “인류 문명의 뿌리이자 무의식”(p.10)임을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여섯 개의 주제로 공예의 과거와 현재, 역사의 반영과 미래의 방향성을 탐색한다. 각 장의 주제와 연결되는 작가들의 간략 소개, 작업 과정, 작가관, 작품 설명 등을 담는다. 분량은 4~10면 정도인데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여러 느낌, 다양한 여운이 쌓여간다. 첫 번째 작가는 “눈빛의 관점”, 다카시마 히데오다. 빈 항아리 형상을 한 얼굴이라니, 제목도 <텅 빔으로 채워지다>여서 역설의 공명, 의미와 무의미, 이질감과 자유로움에 한동안 사로잡힌다. 2장에서 문화적 기억과 맥락에 주목한다. 서도식의 어린 시절 할머니의 사랑은 하나쯤 곁에 두고 싶은, 시들지 않는 감<감·甘·感>으로 되살아나 시선을 붙잡는다. 제목까지 웅변하지 않는가.
주오밍순은 “사람과 기물 사이의 상호작용”(p.92)을 창작에서 가장 소중히 여긴다. 새로운 형태의 공생체가 “인간과 물체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유기물과 무기물 간의 격차를 넘어선다”(p.94) 찻주전자 작품은 무한 상상,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놀이와 같은 자유로움 이야말로 경계를 넘어 세계를 확장하겠다는 공감을 부른다. 안소니 아모아코-아타는 고향 가나를 향한 그리움을 가방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가방 론”을 읽으며 읊조렸다. “말이 된다”라고. 3D 도자의 세계에 머문 후, 금속공예가 이상협의 <달>에서 은덩어리가 달항아리로 치환되는 마술을 혼자 상상한다. 디지털 크래프트 작업으로 완성한 류종대의 <달항아리>는 탄성이 나온다. 김환기가 이름지어준 달항아리가 앞으로 또 어떻게 변신을 거듭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4부, 기록문화와 공예 편에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심체요절>을 이야기한다. 인류가 최초로 금속활자로 만든, 인류 문명의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으니 자부심이 넘친다. “공예는 문명을 만들고 문명은 사람을 만든다”(p.216)라며 <직지>의 진정한 주인공들 한지장과 필장, 먹장, 벼루장을 정성껏 이름 부른다. 『사물의 지도』는 다소곳이 정보를 간직할 수 있는 도록의 역할에서 나아간다. 와, 라는 감탄이 계속되면서 현장에서 직접 관람해야 하는 전시임을 확인시킨다. 얼마나 더 놀랍겠는가. 그곳에 사유하고 질문하고 성찰하고 실험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계 없는 상상을 하고 구체적으로 실현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겪어낸 시간에 길이 나고 형태가 생긴다. 이미 시간을 탈출해 영속할 채비를 한다. 그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고 그 길을 따라갈 병아리 우리 아이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책을 읽었는데 삶이 기대된다. 삶의 모든 지문을 가치로 메운다.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