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동아시아 역사 속의 류큐병합 - 중화세계질서에서 식민지 제국 일본으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 근현대사 총서 7
나미히라 쓰네오 지음, 윤경원 외 옮김 / 진인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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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교과서와 수많은 연구서적에서는 1879년에 있었던 일본 제국의 류큐 왕국 점령 사건을 “류큐 처분”이라고 표현한다. 한 나라의 주권을 빼앗은 사건을 ‘처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의아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1910년의 한국과 달리 1879년의 류큐는 전후에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고 지금도 일본국 오키나와 현으로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류큐 병합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 당시 병합 과정에 참여했던 일본 정치인, 외교관 등이 남긴 기록이기에, 류큐인들의 목소리는 잊혀진 상태다.
저자 나미히라 쓰네오는 일단 올바른 용어 사용이 역사를 제대로 기술하는데 중요한다고 말한다. 당시부터 썼던 ‘처분’ ‘번왕’ ‘류큐번’ 같은 용어들은 사실을 100% 반영하지 못하며, 오직 일본인들이 류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만 보여줄 뿐이다.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과 달리 류큐는 단순히 일본에 종속된 지방국가가 아니었다. 1609년 사쓰마의 시마즈씨가 류큐를 침공하여 사쓰마에 대한 독점적 무역(다른 영지와의 무역금지), 중국에로의 진공무역 통제 등 속국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중국과의 진공무역은 계속 이루어졌고 사쓰마도 그걸 눈감아주고 있었다. 중국과의 진공무역이란 단순한 무역을 넘어 류큐가 중화체제에 편입된 ‘국가’임을 의미하고 있으며, 중국도 류큐를 독립국가로 보았지 사쓰마의 지배를 받는 국가라고 보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간의 류큐에 대한 인식 차이는 후에 류큐병합 시 청과 일본이 충돌하게 된 원인이 된다. 청의 정치인 이홍장은 류큐병합이 이루어지면 곧이어 일본이 조선병합에 나설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막을려고 하였지만, 일본과의 충돌을 두려워했던 청은 군사적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하였다. 이홍장의 분석은 정확하였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이에 청나라를 패배시켜 전통적인 중화질서 내에서 조선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한다. 10년 뒤 일어난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을 완전히 자신의 세력권에 넣은데 성공한 일본은 1879년 류큐 병합 시와 마찬가지로 내정부터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 결국 전쟁 없이 한 나라를 침탈하는데 성공한다. 류큐 병합은 제국주의 일본이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류큐라는 국가가 어떻게 일본에 의해 무너졌는지를 알 수 있었고, 이 과정이 40년 뒤 한반도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잊혀진 타자의 목소리를 역사 서술에 있어서 어떻게 포함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역사란 과거와의 대화라고 흔히 말하지만, 우리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말 중에서 어떤 것을 현재의 역사기술에서 채용할 것인가는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적어도 ‘류큐 처분’ 개념과 같이, 역사의 일방적인 당사자가 사용한 언어를 그대로 현재의 역사학 개념에서도 채용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독자만이 아니라 연구자 자신도 처음부터 일정한 예단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류큐, 오키나와의 ‘폐번치현’이 ‘류큐 처분’을 해서 실시된 역시적 사실이며, 그 사실을 그러한 것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본래 객관적이어야 하는 역사기술의 용어라고 해서 오직 그 용어만이 반드시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처분’으로 칭한다 해도 거기에 반드시 명확한 처분권한과 충분한 처분 이유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또는 ‘폐번치현’으로 불렀다고 해서 당시 류큐에 ‘류큐번’이라는 실체가 반드시 있었다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처분’의 권한과 이유가 없고 ‘번’의 실체가 없는데도 그러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면, 객관적인 역사기술상의 개념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우리들이 ‘류큐 처분’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고자 할 때 최소한 이와 같은 의문과 유보를 연구의 출발점에 두고, 만일 역사의 한쪽 당사자가 사용한 말을 이용하는 것, 정확하게는 전용하는 것이 역사기술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적절한 개념으로 치환하려는 시도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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