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거 사전 -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사물들의 이야기
홍성윤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평점 :
모든 사물은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따라 꽤나 떠들썩하고 야심차게 태어난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며 너무 흔하고 하찮아진 사물들은 이름 대신 ‘그거’라고 불린다. “그거 알지? 그거 있잖아, 그거.”
매일경제 홍성윤 기자의 첫 책 《그거 사전》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매일 사용하고 있지만, 이름을 몰라 부르지 못했던 ‘그거’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사물의 역사와 세계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 피자 한가운데에 꽂혀 있는 삼발이, 중화요릿집의 회전하는 식탁, 가방끈 길이를 조절하는 네모난 플라스틱 등 우리가 ‘그거’라고 부르는 것들이 가진 특별한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의 해상도를 높여준다.
몰라도 문제없지만 ‘그거’라는 말로 맞바꾸어진 사물의 진짜 이름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찾는 과정은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며 때로는 놀랍기까지 하다. 부르지 못했던 사물의 이름과 그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이 책은 우리의 언어 세계를 확장시킬 뿐 아니라 지금껏 알지 못했던 작은 세상을 만나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이 책의 시작은 샴푸 용기의 펌프가 눌리지 않도록 고정해두는 플라스틱 부품 '그거'였다. 위에서 보면 C자형으로 생긴 이 부품은 펌프를 누를 때 함께 움직이는 지지대를 감싸 펌프가 임의로 눌리지 않게 한다. 샴푸 등 펌펑 용기의 펌프 부분이 유통과정에서 멋대로 눌려 내용물이 새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몇가지 방법 중 하나다. p4
감귤류 열매의 중과피는 껍질 안쪽 하얀 부분, 즉 귤락이다. 귤락의 영문명인 알베도는 주로 물체가 빛을 반사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지만, 감귤류에서는 이와 무관하게 '백색'을 뜻하는 라틴어 albedo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 귤락의 영문명은 언론 기사나 건강 정보 등을 통해 알베도라는 용어로 알려졌지만, 영어권에서는 는'피스'라는 단어가 더 일반적이다. 피스라는 단어에는 ‘골자’, ‘핵심’이란 뜻도 있다. 식감과 맛을 해치는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 떼 버리는 귤락에 귤의 영양소가 꽤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과 귤락을 버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p25
메이슨은 메이슨자를 발명한 그해에 구멍 뚫린 스크루 캡이 달린 소금 통을 세계 최초로 발명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주방을 차지한 필수품을 만든 인물이다 보니 굉장한 부자가 됐을 듯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스스로 집에 불을 질렀다는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결국 뉴욕 빈민가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단한 업적에 걸맞은 평가를 생전에 누리지 지못한 발명가를 위해 메이슨자를 쓸 때마다 그를 기리도록 하자. 아, 아니다 음료수 잔으로 쓰다보면 너무 자주 기려야 하니 하루에 한 번만 애도를 표하는 것으로 하자. p90~91
혁신은 등장과 동시에 그 빛을 잃어간다.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도 이내 닳고 퇴색돼 흔한 일상의 일부가 된다. 위대했던 출발점을 기억하는 이들도 점차 사라진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모양의 저장 아이콘처럼, 다이얼 전화기의 수화기를 닮은 통화 버튼처럼, 그리고 아이 방구석에 후줄근하게 구겨진 책가방 속 탐험가의 기억을 간직한 래시 탭처럼. 영광의 시대를 살아내고 이윽고 일상이 된 늙은 혁신은 그 자체로 존중 받고 기억될 자격이 있다. p126
플런저다. 하지만 이는 영미권에서의 호칭일 뿐 한국에서는 사전에 등재된 표준어가 없다. 정말로 ‘그거’인 셈이다. 보통은 뚫어뻥이라고 부른다. p204
체크아웃 디바이더다. 한국에서는 상품분리바라고 부른다. 마트 계산대 컨베이어 벨트에서 앞사람의 물건과 내가 고른 물건이 섞이지 지않도록 그 사이에 놓는다. 주로 고무 소재로 만들지만, 플라스틱이나 나가벼운 금속재질도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돌아다니지 않도록 대부분 삼각기둥이나 사각기둥 형태로 제작한다. p236
일상생활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것은 이메일 덕분이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이 막 개화하던 1971년 최초의 전자우편을 '발명'한 프로그래머 레이 톰린슨 덕이다. 그는 이메일 주소 체계를 만들면서 사용자 이름과 컴퓨터 네트워크 주소를 구분해 주는 기호로 @를 택했다. 이유는 아무도 쓰지 않는 기호라서 용도가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쁜데 슬프다. p332
이메일의 참조 기능처럼 종종 쓸모를 다해서 사라진 것들이 남긴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언가의 흔적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p353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사물들의 이야기
그거 사전
잠안오던 어느날 밤,
인터넷 서점에서 아주 신박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거 사전'
피자 한가운데에 꽂혀 있는 삼발이 그거?
빵 봉지를 묶는 데 쓰는 그거?
귤 알맹이에 붙은 하얀 실 같은 그거?
.
.
.
.
피자 세이버
트위스트 타이, 브레드 클립
귤락, 피스, 알베도
'그거'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물건은 없을터인데
왜 사물을 보고도 그동안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먹고, 마시고, 걸치고, 쓰고, 일하며 만나는 사물의 이름이야기...
책은 분명 끝까지 다 읽었지만
그동안 행적을 볼때
책을 덮으면 절반 이상은 곧 다 잊어버릴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책에 실린 사물과 마주하면
또 '그 이름이 뭐였었지?'라고 할테지....
몰라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지만
알아서 나쁠것은 없으니
혹시 기억에 나지 않으면 또 한 번
끝까지 위트가 넘쳤던 이 책을 다시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