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이야기, 제22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우수상 수상작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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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화가의 출세작> 등 전작에서 화가와 그림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리 작가는 이번 책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에서 남성 캔버스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피카소, 고갱, 렘브란트, 자코메티 등 세기의 예술가들이 명작을 피워내기까지 그 뒤에서 큰 역할을 한 여성들을 비롯해 판위량, 매리 커샛, 베르트 모리조 등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내, 뮤즈, 예술가이기 전 이들 여성은 가부장 사회를 받치는 ‘밑돌’로서 늘 고통받아왔다. 작가는 남성 중심 사회가 모른 척했던 여성을 향한 폭력 역시 이 책을 통해 폭로하고자 한다.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은 여성의 고통을 예술로 둔갑시킨 시대에 대한 고발이자 그림 속 여성에 관한 작가의 해석이 ‘낯섦’과 ‘신선함’이 아닌 ‘옳음’이었음을 밝히는 과정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들으며 가부장제 밑돌로 살다가 원통하게 죽은 여자들. 한 줌 발언권도 없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 그들이 바로 한국판 잔소리꾼 굴레를 쓴 여자들, 헤이르티어와 캐서린이 아니겠는가. 처녀 귀신은 죽어서야 비로소 고을 사또의 방에 찾아와 말을 할 수 있었다. 전설과 설화에 등장하는 처녀 귀신의 모습에서 공포와 함께 진한 슬픔까지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p62


실제 대부분의 ‘진짜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수동적이지도, 무표정한 인형 같지도, 그리고 순진과 도발을 넘나드는 모습도 아니다. 미국의 유명 생활용품 브랜드의 캠페인 영상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어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여자아이처럼 달려보라”고 주문했더니 그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두 팔을 흐느적거리면서 뛰었다. 그렇다면 진짜 여자아이들에게 같은 주문을 했을 땐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편견과는 달리 그들은 ‘여자아이답게’ 씩씩하고 힘차게 뛰어다녔다. 우리 집 소녀에게 한번 주문해봤다. “어린이 모델이 됐다는 상상을 해보고, 포즈를 취해줄래?” 그랬더니 아이는 양손으로 허리를 힘차게 잡은 후,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함박웃음을 지었다. 현실 속 ‘진짜 여자아이’의 모습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p86~88


세상은 남편 돈 쓰는 아내에겐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하다. 반면 아내의 시간을 가로채는 남편에겐 너무나 관대하다. 아내의 삶과 시간을 많이 착취한 남편일수록 더 성공하게 되기에, 가부장 사회는 아내의 헌신을 더 독려하기도 한다. 가부장제 속 여성의 삶은 ‘뱀과 사다리 게임’과 같다. 열심히 인생의 사다리를 올라가도 아내가 되는 순간 뱀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갈 확률이 높다. 바로 이것이 비혼 여성에게 ‘이기적’이라고 결코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다. 어느 누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겠는가. p154


여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다룬 자료를 읽다가 이마를 여러 번 짚었다. 한참 그들의 재능에 대해 언급하다가 뜬금없이 외모 평가가 끼어드는 기록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Lee Krasner, 1908~1984)에 대해 미술사학자 게일 레빈(Gail Lev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크래스너가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녀의 사망 후 몇몇 지인과 작가들은 크래스너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았다고 강조하곤 했다. 크래스너의 학창 시절 동료는 그녀가 지독하게 못생겼지만 스타일은 우아했다고 말했다.” 크래스너의 남편이자 ‘액션 페인팅’의 대가였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을 언급할 때는 “탈모가 있었지만 야성적인 매력이 넘쳤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성 예술가의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p156



 

 

 <자화상> 판위량, 1936,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가장 어려운 건 아무래도 인물화가 아닐까 싶다.

얼굴의 눈, 코, 입과 귀의 크기나 기울기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전혀 다른 인물이 되는 까닭에

오드리 헵번이 오드리 될뻔이 되기도 하고

기껏 그려놓은 중년의 음악인 장사익이

젊은 배우 조승우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좌절을 느끼기도 했었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르다 눈에 들어온

책표지의 인물화 한점...


중국의 판위량이라는 화가가 그린 '자화상'이

왠지 모르게 내눈에 또 마음에 콕 박혀버렸다.


그렇게 내게 온 책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남성 캔버스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이 책은

책표지의 판위량뿐 아니라 베르트 모르조 등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거나

한때 르느아르, 드가의 뮤즈였다가 뒤늦게 화가가 된 수잔 발라동...


얼마전 포스팅 했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애덤 스미스 뒤에도 저녁 식탁을 기꺼이 차려냈던

그의 어머니가 계셨던 것처럼

자코메티도 그의 아내의 헌신속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조각작품들이 탄생했다는 등

그동안의 미술관련 책들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빅아이즈의 화가 마가렛 킨

남편의 유령작가로 살았던 콜레트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넘치게 가부장적인 우리집 김씨의 만행(?)까지 더해져

책 읽는 동안 자꾸 화가난다...


용감한 소방관이 되겠다며 치마입기를 싫어하는 꼬맹이에게

핑크색 원피스를 입히지 못해 속상해했던

오래전 내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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