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중문화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쏟아지는 명화 이야기 

내가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대학 즈음일 것이다. 사춘기도 아니고, 20대의 치기 어린 반항도 아니고, 고작해야 학교 가기 싫어하는 초등학생처럼 나는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그래서 읽었던 책이 바로, 이주헌의 책들이었다. 로망으로만 간직했던 프랑스의 마네, 모네에 심취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 무렵이었던 거 같다. 

미술은 아니 미술관에 간다는 것, 그림을 볼 줄 안다는 건 그만큼의 교양과 취향이 필요하다. 물론 수용자의 감응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칸트가 말한 바대로 미학적 판단은 '무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간다, 라는 문장은 고급취향을 갖고 있다는, 그만큼의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고 있다는 자기 과시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미술 읽기, 명화 읽기, 그림 읽어주기는 고급문화, 고급취향을 보편화해준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하다. 물론 그 안의 깊이야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담론들이, 텍스트들이 많아진다는 건 독자 혹은 대중의 재귀적 판단을 촉구해, 담론의 재생산을 이루어준다는 면에서 일견 반가운 일이다.   

 

 

 

 

 

 

 

  

쉬레이의 예술 삼부작,  집, 맛, 몸.   

나는 고고학적 방법을 따른 책에 흥미를 느낀다.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에서도 그랬고, 푸코가 권력을 시대 구분별로 나누어 추적한 감시와 처벌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무지하게도 아직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 내용이 주는 숭고함이라까? 큰 바위 앞에 서면 쫄아든다는 느낌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면서 말이다.  

아동의 탄생은 아동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우연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을 받았을 때의 어마어마한 무게감에 비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은 어른이었던 인간이 갑자기 어머니의 보호와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라야 한다, 천사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순수하다, 라고 발명된 인간이 바로 어린이, 아동이기 때문이다.  

서양 학문의 매력은 여러가지의 사례들을 깊이있게 천착, 조사하여 하나의 이론을 새운다는 데에 있다. 중세에 보여주는 처벌적 권력에서, 근대의 훈육적 권력으로, 그리고 지금 내재적 권력으로 변화된 양상을 시대별로 천착해 들어가, 끝끝내 그런 권력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토대, 구조, 푸코의 말로는 에피스테메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위의 책들이 그런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양스가 하나의 주제인 예술을 집, 몸, 그리고 요리로 변주해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새빨간 표지도 마음에 든다. 왠지 에로틱하면서도 알게 되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거 같은 매혹을 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봐야 한다. 책의 내용이 보잘 것 없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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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비루하고, 지루하고, 또 견딜 수 없을만큼 지겹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 대개 정해져있다. 텔레비전을 무심코 켠다든지, 쓸데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든지, 인터넷을 이리저리 돌아다든지 하는 꽤 상투적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통 들어오지가 않고, 텔레비전을 봐도 무심하며, 인터넷을 뒤질정도로 기운이 넘쳐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해결은 이렇게 끄적거려보기로 한다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에 들어있는 시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았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누군가 한번쯤, 사랑하는 이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 이는 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문이 수없이 닫히고 열리기를 반복하면서 너를 생각하고, 이유없는 웃음이 나오고, 끝없이 너에게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마음만으로 그칠 때가 많다. 물론 사랑하는 이가 올 거라는 확신을 갖고 기다리는 이가 아닌 한에서 말이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먼저 가 기다리는 화자는 사랑을 하고 있는 화자이기도 하겠지만,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먼저 가 기다리는 짝사랑의 주체일 수 있으니 말이다. 먼 옛날 내가 그런 것처럼.

하지만 내 뼈아픈 후회는 그가 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황지우의 같은 시집에 있는 다음과 같은 시가 나를 뼈 아프게 후회하게 만드니까.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수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혀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내 가장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어 버린 것도, 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이유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걸, 그 누구를 진정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모든 나의 행동, 나의 생각들이, 모두 다 '자기 부정, 나를 위한 희생'이었던가 보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고백하지 못했다는 쓰라림이 아직도 남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래서 내 사랑하던 자리는 모두 폐허로 남아있다. 폐허.  

한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그 분은 자기는 불륜은 할 수 없을 거라 말씀하셨다. 불륜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에너지가 본인에게는 없기 때문이란다. 불륜도 사랑도 다 체력이 뒷받침되는 젊은 때나 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도 그와 상통하지 않을까?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거 같아   

어쩜 이 말은 사랑이 가진 처절한 열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쉰이 넘은 나이에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 젊은 날 피터지게 그리워했던 만큼 그 누군가를 또 그리워하게 되는 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건 육체적으로 오는 피로감이나 노쇄함보다는 젊은 날의 치기가 더 이상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집 앞에서 무심코 기다리던 시간들도, 미리 와 기다리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서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를 다시 반복하기란 꽤나 지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도 젊은 날에 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대학 때 많이 후회했던 것 중 하나, 학창시절 로맨스가 없다는 거였다. 사춘기 때의 풋풋한 사랑의 느낌이 무언지 도통 모른다는 게 참 슬펐다. 그렇다고 누군가 지금, 사랑을 다시 할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요, 라고 말할 거 같다. 그러기에 나는 많이 늙어버렸고,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으며, 너무 일찍 돈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나는 대단한 나르시시트인지 모르겠다. 난 내가 나에게 고통을 주며 쾌락을 얻는 인간인줄 알았는데, 난 엄청나게 나 자신을 사랑한 구제불능의 인간이었나보다. 그래서 곁을 내어줄 수도, 곁에 누가 온 줄도 몰랐던 건 아니었을까? 그에게 말을 걸어볼 걸. 오빠, 오빠는 유일하게 제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였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니. 라고 말이다.  

현실과 비현실은 이렇게 닮아있다. 만약 그와 결혼을 했더라도, 나는 불행했을 것이다.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에. 그래서 아주 아름다운 여인과는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움은 시이지만, 결혼은 산문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가슴에 묻기로했다. 그가 나에게는 아름다운 남자였으니 말이다. 그는 나에게 시였다. 아름다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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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녹록하지가 않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요즘 부쩍 많이 깨닫고 있다.  

내가 많이 외로워서 그런가? 아니면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이도저도 아니면, 아직껏 가을을 타고 있는 건가? 그냥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아니지, 나는 조금 생각이 많았지.  

나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건 꽤 야릇한 경험이다. 나는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내가 과자를 고르는 걸 쭉 보고 있었던 선배는 '너 초콜릿 좋아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고른 대개의 과자들이 초콜릿이 묻혀져 있는 과자인 걸 알았던 때도 그랬고, '너는 너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를 잘 모르는 거 같아, 그냥 네 비위를 맞추어주는 그런 아첨쟁이들만 좋아하는 걸 보면'라고 말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내가 사람의 속보다 겉모습을 더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던 때도 그랬다.  

그리고, 부탁이 있어 전화를 건, 아주 오랜만에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저, 전화를 드리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한 30분동안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했었어요. 그래서'이라는 내 말을 듣고 저 멀리서 '응, 그럴 줄 알았어, 너는 생각이 너무 많은 아이였잖니'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내가 생각이 아주 많은 그것도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는 걸 불현듯 깨닫게 된 그 때도 그랬었다.  

인생이 뭔지, 사는 게 뭔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알았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11월, 샤걀의 눈 내리는 마을이 생각나고, 11월의 가을비가 생각나고,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그가 생각나고,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참 많이 좋아했던 선생님도 생각나고, 많이 유치하다. 나란 인간.  

해놓은 건 하나도 없고, 쌓인 건 우울과 냉소뿐인 그래서 더 짜증나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나란 인간이 말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봐도, 내가 2010년을 살아내고 있다는, 진짜 2010년이 있을까? 그렇게만 치부했던 어린 날의 그 날들을 지금의 내가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오늘 밤도 나에게는 참 힘들다.  

거울 속 늙어가는 내 얼굴도, 작년 사진, 재작년 사진과 달라진 내 표정도, 자꾸 커가는 다섯살 조카를 보면서도, 나는 늙음을 체험하고 있다. 늙음이란 진행 중인데, 그걸 모르고 사는 게 인간이라니. 그걸 체험이란 말로 쓸 수밖에 없는 삶이라니. 그것도 참 슬프다.  

오늘은 그 날인가 보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슬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에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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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다. 상대방에게 함부로 말을 하고,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무례할만큼, 말대답을 하는, 좋은 말로 하면, 정의로운 사람이고, 나쁜 말로 하면, 참 재수없는 인간이다.  

약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야지, 강자앞에서는 할말을 당당히 하는 아주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이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고등학교까지 12년, 나는 할 말을 다 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못난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대학을 가면서부터 정말로 할 말을 조금씩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그게 강자 앞이 아니라 한없이 약한 약자 앞이라는 게 문제가 되긴 하였지만 말이다.  

지금은, 힘있는 사람 앞에서도 조금씩 말을 할 줄 되었다. 심각한 건, 그게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상처를 주는 말이라는 거다.  

그리고 오늘 아주 신경쓰이는 전화를 받았다. 실은 별 거 아니지만, 계속 생각나는 걸 보면, 난 참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가 보다.  

나는 직장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학창시절 왕따 아닌 왕따를 너무 심하게 겪은 탓인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몸에 배여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했는데, 어느 날, 직원들이 모두 모여 연수를 가게 된 바로 그 날,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별로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실은 내가 먼저 그들을 피한 거였는데, 지금은 모든 직원들이 기피하게 된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그 때 얼마나 마음이 휑했는지, 그 때 얼마나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피맺히게 느꼈는지 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런 감정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직원 회의를 할 때마다, 이리저리 지나치면서 보는 직원들의 눈빛을 마주칠 때마다, 아 나를 싫어하는구나, 라는 격한 감정을 매일 느끼고 있다. 별 거 아니야,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아, 그렇게 말을 해봐도, 가슴이 쓰린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좋은 선생도 되어있지 못했다.  

오늘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재작년 우리반 아이 엄마의 전화였다. 아이가 담임샘 때문에 너무 피곤해 하고, 학교도 가기 싫어한다는, 근데 그 전화를 받고, 혹 우리반에도 그런 아이가 있을까? 하는 무서움이 들었다. 내 입에서 나온 숱한 상처많은 말들이 아이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힌 건 아니였을까?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심한 말들을 내가 했던 건 아니였을까?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데, 내가 학교를 가기 싫어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나 때문에 학교 오는 걸 싫어하지는 않을까? 하는 묘한 공포감이 들었던 거다.  

난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좋은 선생은 되고자 했다. 수많은 동료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가면서까지, 아이들을 위해서 시간을 쪼개고 아이들을 위해 수업을 열심히 하는 선생이 되고자 했는데,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괴물이 되어버린 건 아니였을까? 동료직원들에게도 보이지 않고,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는 그런 괴물이 되어있는 건 아닌가? 하는.  

죄많은 인간이구나, 죄가 많아 인간으로 태어난 무자비한 사람이구나, 내일 아이들의 얼굴을 어찌 볼까? 괴물처럼 변해버린 나와, 이미 나에게서 등돌린 아이들과 어찌 또 하루를 보내야 할까? 사는 게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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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삼순이에서 참 마음에 들었던 대사가 있다. 바로 

심장이 아주 많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라는 말.  

한 때 아니 지금까지도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서른 조금 넘는 시간동안 겪었던 일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참 불행하고 역겹고, 그래서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의 상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난 가슴이 딱딱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졌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도 하등의 마음의 상채기가 나지 않았으니까. 내 말을 듣고 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독설가이기도 했다. 어쩌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가 스스로 되어갔던 건가 보다. 

그렇게 서서히, 좋게 말하면 참으로 이성적인, 나쁘게 말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그런 목적이 아니었지만, 과거를 추억을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외려 일부러 타인의 감정, 나의 감정을 읽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처참한 인간이라고 할까? 나는 그런 괴물이 되어버렸다.

늘, 인간은 외로운 거야, 혼자 태어나고 혼자 떠나고, 죽을 때도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외로움, 그건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니 유한한 생명을 지닌 유기체로 태어난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인 거지, 그렇게 스스로 체념하고, 스스로 단념하고 살았다. 어쩌면 난 스스로 외로움을 찾아다녔던 건지 모르겠다. 나에게 인간들은 스트레스만 던져주는 쓰잘데기 없는 생명체 뿐이라고 잘난 척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같이 사는 사람들이 서서히 결혼을 하고, 결혼할 준비를 하는 걸 보면서 이 집에 나와 엄마밖에 남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니, 외로움이란 건 이런 거구나 를 생각하게 되었다. 서서히 내 곁을 떠나는 게 아니라, 아주 급작스럽게 그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주 갑자기 찾아오는 게 외로움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깨닫는 거다.  

어쩌면 나는 고독하다고 아니, 고독은 인간의 태생적 운명이라고 유식한 척 한, 아주 뜨거운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사랑을 아주 많이 받은 사람. 애정결핍이 아니라 나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주었던 옆의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았던 고집불통 꼬마 아이였구나 라고 말이다.  

내 곁에는 항상 나를 생각하고 나를 아껴주었던 날 아주 많이 사랑한 사람들이 항상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애정결핍이네 인생은 외로운 거네 라며, 쇼를 하고 있었던 거란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참  슬프다. 정말 외로운 인생이 시작될 거 같아서,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 방에 혼자 울고 있어도 아무도 내 곁에 없으리란 심각한 외로움이 내 앞날에 창창히 펼쳐진 거 같아, 무섭다. 정말 무섭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정말 유치한 인간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항상 날 염려해준 사람이 항상 내 눈 앞에 내 등 뒤에 있었는데, 그 소중한 사람들을 그동안 못 보고 살았다니, 나는 참 유치한 꼬마였다. 난 어른이 되어서도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이었던 거다. 미안하다, 그 사람들한테,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내가 눈을 돌리면 내 옆에 언제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그럴 수 없겠지만.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알아보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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