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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예술, 그 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아마추어에게 권하는 로버트 헨리의 강의록이라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로버트 헨리는 필라델피아 여자디자인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선생이었다. 하지만 이 선생은 그림을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예술가, 곧 화가의 삶이 오롯이 담긴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하였다. 아마 그는 그림이 세계관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얼마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가였던가보다. 그가 말하는 예술의 정신이란 바로 처음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그 희열을 화가인 지금에 와서도 느껴야한다고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무슨무슨 회화전에서 입상을 하는 걸 큰 기쁨으로 알고, 명예로 치부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하지만 상이라는 것 자체가 심사위원이라는 주관적 객체가 있고, 상을 수여하는 기관, 곧 상급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했을 때, 상을 받았다는 게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닌 듯 싶다. 

저자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가 출품했던 그림이 입선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그래서 입선하지 못한 화가들끼리 8인의 기획전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 것이 여우가 포도를 먹지 못해, 신포도라고 치부해버리는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저자의 말에 주의가 끌리는 것은 그가 내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고독한 예술가, 인간관계에서는 0점이 되더라도 그의 작품, 그의 그림에서만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기실, 예술가, 그것도 한 시대를 역행한 수많은 예술가들은 고독했고, 이단아였으며, 입선의 영광도 없었다. 잭슨 폴록은 열광적인 찬사를 받기는 했지만 그의 곁에서 묵묵히 그의 병을 인내하고 그의 광기를 인내한 아내는 결국 그를 떠나고 말았으며, 마네는 외설적인 그림을 그렸다하여 당시 예술계에서 몹쓸 소리도 들어야 했고, 고흐 역시 고갱의 등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다 예술가의 눈이 있다. 그걸 저자는 seeing 라고 했다. 따라서 열심히 농사를 짓는 농민도, 물고기를 잡으며 환희를 느끼는 어민도 모두 다 예술가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건 지리하지 않다. 매순간 순간순간마다 희열의 감각과 황홀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있다. 이를 간파할 수 있는 자가 예술가이다. 그리고 이러한 seeing 을 갖추기 위해 기존의 관념, 내 온 몸을 휘감고 있는 관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꾸준한 연습, 그리고 고독 속에서의 관조, 이것이 예술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럼 한 번 도전해볼까? 예술가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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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똑똑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미술은 똑똑하다 -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 카툰 클래식 13
댄 스터지스.리차드 오스본 지음, 나탈리 터너 그림, 신성림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만화가 주는 가벼움과 미술사라는 (단어에서조차 거대한) 듯한 무거움을 잘 뒤섞어 놓은 책이다. 그러기에 미술에 입문하는 사람이 읽기에는 제격이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만화책이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사자의 꼬리를 만지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책이 주는 지식은 둔중하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인물들은 왜 하나같이 몸은 옆으로, 얼굴은 정면을 보고 있는 것일까? 칸트는 미의 취향으로 왜 무관심을 선택했을까? 숭고란 무엇인가? 등등 하나같이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내용들로 차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리부터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독자와 비슷한 수준의 캐릭터가 독자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절한 저자는 미리부터 메모에서 중요 어휘에 색칠까지 우리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미술사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술이라기 보다는 철학서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과연 철학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철학의 주된 영역이 진, 선, 미라고 하였을 때, 이 책은 그 중 미의 영역에 초점을 맞춘 철학이라고 하는 편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자포니즘이라고 하는 새로운 어휘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재팬이라는 일본의 영향이 깃든 미술용어라고 짐작하는 이들이 많을 테지만 말이다. 모네는 일본식 정원에 깊이 심취해, 그의 정원에 일본식 다리를 세워놓았다는 것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네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의 정서에 심취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온 어휘가 자포니즘, 처음에는 이게 뭐지? 조금 생소했지만, 모네와 연결짓다보니, 조금 이해가 됐다.  

미술에 입문하는 이들, 특히 미학, 철학에 관심이 있는 초심자에게 한번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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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 고형욱의 영화음악 오디세이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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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상당하게 많이 저자 취향이 포함된 영화에 관한 책이다. 물론 영화보다는 그 영화의 중심으로 작용하는 영화음악에 관한 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지 않거나, 고전영화를 많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흥미가 떨어지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영화 중 한 편이라도 본 사람에게는 소소한 떨림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 음악이 바로 라붐의 주제가였던, Reality였다. 

라붐은 몇 년 전 ebs에서 방송되었던 영화였다. 물론 소피마르소의 어릴 때 모습을 보여준다는 광고와 함께. 학창시절 소피마르소를 동경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소피마르소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일요일 오후를 라붐에 할애했다. 하지만 영화는 청소년의 다소 발랄할 사랑을 말하고 있을 뿐, 별다른 감흥은 주지 못했다.  

물론 소피마르소는 참 아름다웠지만.  

그래도 영화를 계속 보게 나를 붙잡았던 건 가끔 흘려나오는 주제가 때문이었다. 아련하고, 몽글몽글하며, 때로는 스산하기도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나에게 라붐은 곧 Reality였던 거 같다. 하지만 Reality보다 더 영화음악이구나, 했던 건 바로, porrgue te vas였다. 

까마귀기르기의 주제가. 지금은 영화를 본지 10년도 더 지나, 어떤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에 남지 않지만, 그 노래는 가끔 귓가를 간질인다. 어린 소녀의 세상을 다 산 눈빛과 함께 '왜 당신은 떠나지요?'라고 끊임없이 물어보는 노래 pourgue te vas. 

음악이 없는 영화는 연료는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 같아요. 음악은 우리를 날아오르게 만들지요. 라는 오드리 햅번의 말처럼. 영화는 음악보다 순간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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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 - 당신을 속여왔던 대중문화 속 주인공들의 엉큼한 비밀, 개정판
마크 슈미트 지음, 김지양 옮김 / 인간희극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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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라는 제목보다는 원제인 secret of popular culture 에서의 secret 을 살리는 편이 더 좋았을 정도로 이 책은 대중문화 그 중 영상매체가 숨기고 있는 의미를 징후적 독해의 방법으로 풀고 있다.  

하지만 '이상한' 이라는 어휘가 주는 호기심어린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대중문화에 비해 은폐된 대중문화의 이야기는 참으로 이상하니까.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상은 모두 9가지이다. 스머프로부터 시작해서 브랏츠 인형으로 마무리되는. 그 중에 한국 영화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 친구 같은 작품도 있으니 읽을 때 재미와 함께 한국 사회가 분단 국가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무릇 대중문화, 그것이 popular 로 표현되는 건, 우매한 대중, 이리저리 휩쓸리는 어리석은 군중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지배계급 아니 우리조차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그토록 많은 재벌 2세, 3세들이 나오고, 그들은 자기들이 민중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드라마에서 재벌가의 사모님의 말처럼 말이다. 

'설마 회장님을 감옥에 넣겠어요? 회장님이 먹여살리는 사람이 몇인데요, 회장님 없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느냐고요.' 

그리고 이 논리는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chaebol: a large business conglomerate, a family-owned one  

라고 명시되어 있다. 바로 재벌로 말이다.  

주도권을 많이 가진 다수, majority는 스포츠, 섹스, 스크린을 통해 민중의 자발적인 봉기, 자발적인 연대를 스스로 억제시키는 기법을 만들었다. 열심히 일해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열심히 일했으니, 집에서는 스트레스를 이것들로 풀어라 라는 정언명령처럼 말이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소득이 낮은 계층이 오락거리로 여기는 문화라는 외면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중은 어리석지 않고, 대중문화 역시 말초적 감각만 자극하는 욕망의 산물이나, 소비에의 찬사만으로 기울어져있지는 않다. 그것이 스머프, 해리포터가 그럼에도 놓치고 있지 않은 면이기도 하다.  

한 번쯤 왜? 요즘 한국 드라마에는 재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지, 재벌 혹은 공주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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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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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함, 황당함은 다른 이들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것이 기존의 제도, 기존의 통념과 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황당한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을 이끈 건 바로 그 황당함에 있었지 않나 싶다. 모두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말할 때,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한 갈릴레오도 황당했었고,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고 말한 리카도의 주장을 다시 고개들게 한 마르크스도 당시로서는 꽤 황당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황당함이 황당하지 않게 된 사회에서, 그런만큼 조금 더 민주적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기득권자들이 가진 '황당함은 이제 그만' 엉뚱한 건 용납하지 못해, 아니 용납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웃어넘겨줄게, 라고 너스레를 떠는 건 참 꼴같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는 책의 내용을 쓰려고 했는데, 그럼 다시 각설하고 이야기 속으로. 

그랜드 펜윅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그리고 책에서도 아주 작은 나라로 그려져 있다. 수출을 하긴 하지만 그게 전 세계를 향한 거시적인 무언가라기 보다, 이 쪽과 저 쪽의 교환으로만 치부되는 아주 작은 중세적 마인드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그네들의 무기도 갑옷과 활이다. 세계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꼬맹이 약소국. 그 나라가 그랜드 펜윅이다. 그런데 바로 그 나라가 뉴욕을 침공해서, 아니 미국과 전쟁을 해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 이유는...... 

그랜드 펜윅이 가진 소규모성에 있다. 미국을 향해 전쟁을 하면서도 20명 남짓이 탈 수 있는 범선으로 항구에 정박한다거나,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뉴욕 한복판에서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갑옷과 활시위로 경찰을 사로잡았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물론 그네들의 성공을 도와준 내부 고발자들도 있다. 바로, 예전 무기라서 겁먹을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경찰들, 그랜드 펜윅의 사람들을 보고 외계인이 왔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언론들, 그 언론을 가감없이 수용하는 미국의 속물적인 중산층과 관료들.  

첨단 과학기술이 전지구적으로 해결할 것만 같았던 전쟁의 염려는 오히려 첨단 과학기술로 그 염려가 더 커지고 있다. 핵이 있으면 전쟁은 없어질 거야, 라는 생각은 안일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니 말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보아도, 이라크 전쟁을 보아도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조차 알 수 없는 전쟁이 지금껏 자행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중계되는 전쟁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처럼 실감은 나지만, 그게 그저 화면 속의 일일 뿐이야 라고 속단하게 만들며, 적을 살상하려는 무기는 적이 아닌 민간인 그것도 어린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랜드 펜윅이 성공하게 된 건, 그들의 무지라기 보다 그들의 엉뚱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끝내 마음 속에 내내 남아 껄끄러운 건, 그 성공이 바로 핵무기를 전제로 한 성공, 핵무기가 그랜드 펜윅에 있다는 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비관적이지 않다. 끝까지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바로 모든 나라가 그랜드 펜윅의 말을 듣게 만든 그 핵무기가 실은 잘못 끼워진 머리핀 하나로 대량살상무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건 말, 그 수소폭탄이 거기에 있으니 그 나라 말을 잘 들어야지 하는 여기저기 알려진 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언론 장악이 정권에 필요했었나?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두려움에 떨게도 만드는 게 실상 있지도 않은 사람들의 말말들 때문이니 말이다.  

정작 무서운 건 믿음,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 누구나 그렇다고 치부하는 생각들이라니,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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