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비루하고, 지루하고, 또 견딜 수 없을만큼 지겹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 대개 정해져있다. 텔레비전을 무심코 켠다든지, 쓸데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든지, 인터넷을 이리저리 돌아다든지 하는 꽤 상투적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통 들어오지가 않고, 텔레비전을 봐도 무심하며, 인터넷을 뒤질정도로 기운이 넘쳐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해결은 이렇게 끄적거려보기로 한다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에 들어있는 시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았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누군가 한번쯤, 사랑하는 이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 이는 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문이 수없이 닫히고 열리기를 반복하면서 너를 생각하고, 이유없는 웃음이 나오고, 끝없이 너에게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마음만으로 그칠 때가 많다. 물론 사랑하는 이가 올 거라는 확신을 갖고 기다리는 이가 아닌 한에서 말이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먼저 가 기다리는 화자는 사랑을 하고 있는 화자이기도 하겠지만,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먼저 가 기다리는 짝사랑의 주체일 수 있으니 말이다. 먼 옛날 내가 그런 것처럼.

하지만 내 뼈아픈 후회는 그가 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황지우의 같은 시집에 있는 다음과 같은 시가 나를 뼈 아프게 후회하게 만드니까.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수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혀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내 가장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어 버린 것도, 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이유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걸, 그 누구를 진정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모든 나의 행동, 나의 생각들이, 모두 다 '자기 부정, 나를 위한 희생'이었던가 보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고백하지 못했다는 쓰라림이 아직도 남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래서 내 사랑하던 자리는 모두 폐허로 남아있다. 폐허.  

한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그 분은 자기는 불륜은 할 수 없을 거라 말씀하셨다. 불륜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에너지가 본인에게는 없기 때문이란다. 불륜도 사랑도 다 체력이 뒷받침되는 젊은 때나 가능하기 때문이라면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도 그와 상통하지 않을까?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거 같아   

어쩜 이 말은 사랑이 가진 처절한 열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쉰이 넘은 나이에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 젊은 날 피터지게 그리워했던 만큼 그 누군가를 또 그리워하게 되는 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건 육체적으로 오는 피로감이나 노쇄함보다는 젊은 날의 치기가 더 이상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집 앞에서 무심코 기다리던 시간들도, 미리 와 기다리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서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를 다시 반복하기란 꽤나 지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도 젊은 날에 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대학 때 많이 후회했던 것 중 하나, 학창시절 로맨스가 없다는 거였다. 사춘기 때의 풋풋한 사랑의 느낌이 무언지 도통 모른다는 게 참 슬펐다. 그렇다고 누군가 지금, 사랑을 다시 할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요, 라고 말할 거 같다. 그러기에 나는 많이 늙어버렸고,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으며, 너무 일찍 돈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나는 대단한 나르시시트인지 모르겠다. 난 내가 나에게 고통을 주며 쾌락을 얻는 인간인줄 알았는데, 난 엄청나게 나 자신을 사랑한 구제불능의 인간이었나보다. 그래서 곁을 내어줄 수도, 곁에 누가 온 줄도 몰랐던 건 아니었을까? 그에게 말을 걸어볼 걸. 오빠, 오빠는 유일하게 제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였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니. 라고 말이다.  

현실과 비현실은 이렇게 닮아있다. 만약 그와 결혼을 했더라도, 나는 불행했을 것이다.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에. 그래서 아주 아름다운 여인과는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움은 시이지만, 결혼은 산문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가슴에 묻기로했다. 그가 나에게는 아름다운 남자였으니 말이다. 그는 나에게 시였다. 아름다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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