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녹록하지가 않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요즘 부쩍 많이 깨닫고 있다.  

내가 많이 외로워서 그런가? 아니면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이도저도 아니면, 아직껏 가을을 타고 있는 건가? 그냥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아니지, 나는 조금 생각이 많았지.  

나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건 꽤 야릇한 경험이다. 나는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초콜릿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내가 과자를 고르는 걸 쭉 보고 있었던 선배는 '너 초콜릿 좋아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고른 대개의 과자들이 초콜릿이 묻혀져 있는 과자인 걸 알았던 때도 그랬고, '너는 너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를 잘 모르는 거 같아, 그냥 네 비위를 맞추어주는 그런 아첨쟁이들만 좋아하는 걸 보면'라고 말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내가 사람의 속보다 겉모습을 더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던 때도 그랬다.  

그리고, 부탁이 있어 전화를 건, 아주 오랜만에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저, 전화를 드리지 않으려고 했었어요. 한 30분동안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했었어요. 그래서'이라는 내 말을 듣고 저 멀리서 '응, 그럴 줄 알았어, 너는 생각이 너무 많은 아이였잖니'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내가 생각이 아주 많은 그것도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는 걸 불현듯 깨닫게 된 그 때도 그랬었다.  

인생이 뭔지, 사는 게 뭔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알았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11월, 샤걀의 눈 내리는 마을이 생각나고, 11월의 가을비가 생각나고,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그가 생각나고,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참 많이 좋아했던 선생님도 생각나고, 많이 유치하다. 나란 인간.  

해놓은 건 하나도 없고, 쌓인 건 우울과 냉소뿐인 그래서 더 짜증나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나란 인간이 말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봐도, 내가 2010년을 살아내고 있다는, 진짜 2010년이 있을까? 그렇게만 치부했던 어린 날의 그 날들을 지금의 내가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오늘 밤도 나에게는 참 힘들다.  

거울 속 늙어가는 내 얼굴도, 작년 사진, 재작년 사진과 달라진 내 표정도, 자꾸 커가는 다섯살 조카를 보면서도, 나는 늙음을 체험하고 있다. 늙음이란 진행 중인데, 그걸 모르고 사는 게 인간이라니. 그걸 체험이란 말로 쓸 수밖에 없는 삶이라니. 그것도 참 슬프다.  

오늘은 그 날인가 보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슬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에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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