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으로 접어드는 지금, 인생에서 무엇보다 큰 행운은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 P90

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지혜로움을 갖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누군가를 견딘다는 것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그를 완벽하지 않은 채로받아들이며, 그의 성장과 함께 ‘우리‘가 더 나아지리라는 것을 믿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기에 가능한 삶의 기적이 아닐까

십년, 우리는 이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 그것은 기적이다. 그것은 그의 덕분이고, 그를 포함한 모두의 덕분이다. 긴 시간을 함께지나온 그와 내 삶 속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 P91

이는 우리의 지각 방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반복되는 자극에 대해서는 둔감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늘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이죠. 하지만 의식적으로 그들을 ‘깊이‘ 보려 노력할때, 우리는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동료와의 십 년을 돌아보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제가 그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의 열정만 보였다면, 이제는 그의 인내심을, 그의 배려심을, 그의 성장하는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알아봄‘의 기적입니다. 같은 사람을 보면서 - P93

도 매번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 발견들이 누적되어 더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발전해 가는 것 말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지만 ‘알아봄‘
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 P94

"사람은 변하지만, 그 사람 안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가 가진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기억입니다.

그리움이란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려는 욕망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과거의 어떤 순간이 현재의 나에게 여전히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있다는 확인이겠지요. 그 시절 우리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의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때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에게로 이어진 길을 음악을 통해 확인합니다. 세월이 지나도석이는 석이라는 사실을요. 그가 여전히 내 인생의 중요한 의미라는 사실을요." - P111

얼굴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역사서입니다. 다른 누구도쓸 수 없는, 오직 그 사람만이 써내려간 삶의 기록이죠.
그래서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모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 전체와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137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어느 때보다 외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혼자‘가편안해진 사람 중 하나였고, 그 편안함이 어느 순간 관계를 막는 벽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고독과 고립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고독은 선택하는 것이지만, 고립은 방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선택된 혼자임‘이지 ‘버려진 혼자임‘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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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형이잖아요‘라고 말하며 돌아서던 6학년 아이의뒷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 한마디에는 책임감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링 위에서 벌어진 일은 관계의 아름다운 일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상대를 아프게 한 미안함을 몸으로 표현하는 법,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지 않고 오히려약한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나이를 먹는 것도, 몸이 커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보호하려는 마음,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날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거기서 인간만의 소중한 미덕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 절제,
약해도 끝까지 해내려는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을배려하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 P59

사람은 물이어서 담는 대로 형태가 잡힌다. 아름다운 곳에 담으면 아름다워진다. 제주에 담기면, 사람은 그냥 제주가 되는 것이다. 인색했던 말의 빗장이 풀리고 느닷없이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 마음 이해해요, 괜찮아요, 힘내요‘라는 말을 퍼붓고 싶다. 누군가에게라도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은 물이니까 사람은 원래 착하니까

내다버린 물그릇을 찾으러 온 그 밤, 한경면 용수리 포구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나는 달과 별을 담은 그릇 아래로 첨벙 뛰어들었다. - P71

책을 만드는 일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책을 만드는 일은 내면의세계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달리기가 육체에 각인되는 경험이라면, 책을 만드는 일은 정신에 형태를 부여하는 경험이다. 이둘은 추상을 구체로, 관념을 실체로 만드는 일이며, 밤하늘의 별들이 저마다의 빛으로 어둠을 가로지르듯, 타인이 대신할 수는 여정이다. 달리면서, 또 책을 만들면서 나는 이 고독한 여정의의미를 정직하게 알아가고 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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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는 물론이고, 무슨 일을 당하는 차분하게 행동할 수 있어야말이 있다. 달리 말하자면 ‘방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소순한다. 마음가짐이 이미 혼란스러워졌다는 뜻의 ‘방촌이란(方寸已亂)‘는이 말한 ‘마음을 다스리는‘ 핵심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을 통해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을
‘종용‘이라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조용하다‘는 말은 바로 종용이란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종용이란 본래 어떤 상황에서도얼굴색이나 행동거지가 변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특히 공자는 군자란 희로애락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지도자는 항상 종용하면서 법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음으로써 백성의충성심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교화하여야 한다고 했다. 변함없는 언행,
즉 조용함은 지도자의 미덕이자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명나라 말기의 유학자 여곤은 "천지만물의 이치는 종용에서 시작하고, 급하게 함으로써 망한다"고 했다. ‘조용하게 일을 하면 여유가 생기고, 조용한 사람이 오래 산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용함은 올바른 처세와 건강장수의 비결이라 하겠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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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받아들이며 살 것인가‘
결국, 살아지는 게 삶이니,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매 순간을어떤 식으로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예측 불가능하고, 뒤죽박죽인 채로 흘러갑니다. 하지만그 점이 오히려 우리 삶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수필을 잡서‘라고하나 봅니다. 잡동사니가 오히려 보편적이고, 그것이 어쩌면 삶의 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체계보다는불완전한 조각들이, 거창한 철학보다는 소소한 일상이 우리를 울고 웃게 하니까요.

지금부터 저라는 이름의 불완전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꺼지는 감정에 사로잡힐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 P11

깊은 위로는 결국 시간이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당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흘러 그의 삶이안정되고 나면 비로소 건넬 수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 시차 속에서 상처는 아물어가고, 상처의 언어는 새롭게 돋아난 긍정의 의미를 획득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그날 밤 제가 한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들어주고, 함께 있어 주고, 택시에 태워 보낸 것이 전부였지요. 하지만 그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
이 어쩌면 가장 적절한 위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P21

그 무력함을 깨달은 순간, 나는 내 슬픔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슬픔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을, 내 슬픔은 뒤로 밀려나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감정의 위계를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첫 번째 조건이 자신을 지우는일이라는 것을, 그 무렵부터 알게 되었다. - P35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룬다고해서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감정들은 마음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언젠가는그 감정들과도 마주해야 할 때가 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감정의 위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감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배려하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이지요. 그 균형을찾아가는 것이 성숙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 P39

부모라는 자리에 서면 언제나 양 갈래 길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한쪽 길은 아이 곁에 바짝 붙어서 걷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조금씩 거리를 두며 뒤따라가는 길입니다.
마음은 늘 첫 번째 길을 택하고 싶어 하지만, 머리는 두번째 길이 옳다고 속삭입니다.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달려가서 일으켜 세우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 일어날 때까 - P53

지 기다려야 한다는 마음. 이 두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지않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겁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사랑하니까 곁에 있고 싶지만, 사랑하니까 떠날 준비를 시켜야 하고, 보호하고 싶은 만큼 홀로 설 수 있게 해야 하고. 어쩌면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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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인간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필요한 건상상력이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세상엔 나와 내 가족만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면 그때부터 세상이 달라 보이고 더 넓어진다. 오랜 시간을 살며 경험을 쌓아온어른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의 시야를터주는 것 아닐까. - P75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란 책에 팩트 폭력에 대해 이런 구절이나온다. "힘들더라도 변화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팩트를 봐야만 한다. (…) 가학적인 의도로 팩트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면 팩트 제시는 ‘괜찮을 거야‘라는 대책없는 위로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질 때도 많다." - P93

요즘처럼 각박하고 살기 힘든 세상에 위로와 공감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없어선 안 될 필수 요소가 됐다. 하지만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때로는 위로와 공감에 앞서 쓴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후배들, 젊은이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비위를 맞추겠다고 좋은 말만 하는 어른보다는 어렵지만 그 사람이 성장하는 데 절실하게 필요한 직언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그런 어른도 필요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후배가 먼저 조언을 청했을 때에 한해서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비판을 날리는 것이야말로 꼰대가 되는 지름길이므로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조심하자. 어른과 꼰대 사이의 선은 생각보다 구분하기 쉽지 않다. - P94

아이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면서 정작 상처는 항상 내가 먼저받고 그걸 위로해주는 건 딸이었다. 자라면서 세상의 무수한 편견 - P100

에 시달리며 한없이 위축돼 있던 나에게 용기와 힘을 준 사람도 어리고 힘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딸이었다.
아이를 보면서 알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순수한 존재라는 걸. 그래서 비겁한 어른들보다 더용감할 수 있다는 걸.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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