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형이잖아요‘라고 말하며 돌아서던 6학년 아이의뒷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 한마디에는 책임감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링 위에서 벌어진 일은 관계의 아름다운 일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상대를 아프게 한 미안함을 몸으로 표현하는 법,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지 않고 오히려약한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나이를 먹는 것도, 몸이 커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보호하려는 마음,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상대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날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거기서 인간만의 소중한 미덕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 절제,
약해도 끝까지 해내려는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을배려하는 마음이 그렇습니다. - P59

사람은 물이어서 담는 대로 형태가 잡힌다. 아름다운 곳에 담으면 아름다워진다. 제주에 담기면, 사람은 그냥 제주가 되는 것이다. 인색했던 말의 빗장이 풀리고 느닷없이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 마음 이해해요, 괜찮아요, 힘내요‘라는 말을 퍼붓고 싶다. 누군가에게라도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은 물이니까 사람은 원래 착하니까

내다버린 물그릇을 찾으러 온 그 밤, 한경면 용수리 포구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나는 달과 별을 담은 그릇 아래로 첨벙 뛰어들었다. - P71

책을 만드는 일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책을 만드는 일은 내면의세계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달리기가 육체에 각인되는 경험이라면, 책을 만드는 일은 정신에 형태를 부여하는 경험이다. 이둘은 추상을 구체로, 관념을 실체로 만드는 일이며, 밤하늘의 별들이 저마다의 빛으로 어둠을 가로지르듯, 타인이 대신할 수는 여정이다. 달리면서, 또 책을 만들면서 나는 이 고독한 여정의의미를 정직하게 알아가고 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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