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이해인)

내가 번호를 잘못 눌러
수신된 문자 메시지에

누구세요?
누구?
라는 답이 돌아온다.

미안하다 사과하고
내가 나에게 묻는다

누구세요?
누구?
무어라고 선뜻
답을 할지 몰라
일단 꿈길로
답을 찾아
떠나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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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편지

(이해인)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들
그리고 나를 돌보아주는
친절한 친구들이시여
나를 마다 않고 살펴주는 정성
나는 늘 고맙게 생각해요

허지만 그대들이 나를
자꾸만 치매노인 취급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교육시키려 할 적마다
마음 한구석에선
꼭 그런 것은 아닌데.
그냥 조금 기억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없어진 것뿐인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려본다오
제발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나를 갓난아기 취급하는
언행은 좀 안 했으면 합니다

아직은 귀가 밝아 다 듣고 있는데
공적으로 망신을 줄 적엔
정말 울고 싶답니다
그리고 물론
악의 없는 질문임을 나도 알지만
생에 대한 집착이 있는지 없는지
은근슬쩍 떠보는 듯한 그런 질문은
삼가주면 좋겠구려
어려운 시험을 당하는 것 같아
내 맘이 편칠 않으니....…

어차피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하고 떠나갈 나에게
떠날 준비는 되어 있느냐
아직도 살고 싶으냐
빙빙 돌려 물어본다면
내가 무어라고 답을 하면 좋을지?

더 살고 싶다고 하면
욕심 많은 늙은이라 할 테고
어서 죽고 싶다면
우울하고 궁상맞은 푸념쟁이라 할 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나의 숨은 비애를
살짝 감추고 사는 지혜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여
내가 가끔은 그대들이 원치 않는
이기적인 추한 모습
생에 집착하는 모습 보일지라도
아주 조금만 용서를 받고 싶은 마음이지요

하늘이 준
복과 수를 다 누리라 축원하고
오래 살라 덕담하면
좋다고 고맙다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나도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가능하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평온한 죽음을 맞게 해달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오늘은 내 입으로
꼭 한 번 말하고 싶었다오

그러니 부디 지상에서의
나의 떠남을 너무 재촉하지는 말고
좀 더 기다려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나를 짐이 아닌 축복으로
여겨달란 말은 않을 테니
시간 속의 섭리에 맡겨두고
조금 더 인내해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빚진
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뜻으로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어설픈 편지라도 쓸 수 있으니
쓸쓸한 중에도 행복하네요
어쨌든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나의 처지에
오늘도 미안한 마음 감출 수가 없지만
아직은 이렇게 살아 있음이
그래도 행복해서
가만히 혼자 웃어봅니다
이 웃음을 또 치매라고 하진 않을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웃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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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이해인)

슬픈 사람 곁에 가면
나도 슬퍼지고
기쁜 사람 곁에 가면
나도 기뻐지고
아픈 사람 곁에 가면
나도 잠시 아프지만
이것이
얼마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 약속하고도
잊고 살아 미안하다
건망증은 때로
오해의 이유가 되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을 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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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오려면 생각의 화학 작용이 필요하다. 그 촉매제가 바로 책이다. 밀가루가 부풀어빵이 되려면 이스트가 필요하듯, 내 생각이 부푸는 데에는 책(남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산책은 이를 반죽하고 숙성하는 역할을 한다. 걸을 때 엉켜있던 생각이 하나하나 풀리며 정리가 된다. ‘아하, 그런 거였군!‘ 오랫동안 물음표로 남았던 의문이 느낌표로 바뀌기도한다. 산책은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글쓰기에도 꼭필요하다.
오늘의 필사 문장에 따르면, 산책은 글쓰기 촉매제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도 글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걷기는 ‘가없이넓은 도서관‘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일, 산책은 두 발만 준비하면 되는 간편한 운동이다. 육체에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정신을 잠시나마 해방시켜 준다. - P62

삶으로 들어온 책은나를 구성하는 생각 세포가 되어 결국에는 글로 표현된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해야 한다(多量)는 송나라 구양수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여기에 많이 말하기까지 보태어 본다(多讀話).
독서는 작가와 독자 한 사람의 1:1 밀회이다. 독자의 경험과 배경지식에 따라 만남의 내용과 깊이가 달라진다. 똑같은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애틋한 사이로 발전하기도 하고,
이전 애인만 못하다며 내팽개쳐지기도 한다. 그 책을 왜 좋아하는 걸까? 내가 발견하지 못한 매력이 뭘까? 생각의 차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 P79

애초에 완벽한 글이 가능할까. 헤밍웨이라고, 하루키라고본인의 글이 완벽하다며 만족했을까. 글은 완성되는 것이지완벽함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뿐이다. ‘완벽한 글‘은 ‘완벽한 사람‘처럼 실재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글과 친하게 지내려면 관대함과 엄격함의 밀고당기기를 잘해야 한다. 더 나은 단어와 표현을 찾는 집착은질기고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탈고를 마친 글에는 관대함도필요하다. 마침내 놓아 주어야 하는 글까지 인상을 찌푸리며도끼눈을 뜨고 볼 필요는 없다.
‘오늘 내 글은 이런 모습이구나, 이정도면 괜찮아, 충분해.‘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자. 미련을 버려야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나듯, 글도 그러하다. - P87

나에게 몰두할 때 공감을 얻는 원리를 알려주는오늘의 필사 문장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경험과 비밀, 글로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있는가? 지금 펼쳐보자.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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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공자는 사람의 올바른 도리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말했지만, 개인에 대한 평가는 자주 말하지 않았다. 드물게 사람을 칭찬하거나비판하는 일이 있었지만, 반드시 그 이유를 함께 말해주었다. <공야장〉에서는 두 사람에 대해 칭찬하고 있는데, 정나라의 재상 자산과 제나라의 재상 안자이다.
"자산는 군자의 도 네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처신에는 공손하고, 윗사람을 섬김에는 공경스럽고, 백성에게는 은혜롭고, 부릴 때는 의리에맞게 했다." "안평중은 사람과의 교제를 잘하였으니, 사귄 지 오래되어도 변함없이 공경스러웠다." - P238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칭찬은 사람을 움직이게하는 동력이 되므로, 리더는 격려하고 응원하고 기쁘게 하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 공정하지 못한 칭찬은 그 사람은 물론 듣는 사람까지흔들리게 할 수 있다. 대상이 되는 사람은 교만에 빠지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실망과 좌절을 느끼게 된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사라졌다는절망감에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이다.
칭찬은 리더십의 요체다. 하지만 양면의 날이 있는 검과 같다. 잘 쓰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나는 물론 전체를 흔드는 약점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 P241

내가 했던 약속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큰 것이 아니더라도 지켜나가는 것이 나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하지만 때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생이 다리 난간을 붙잡고 죽었던 것처럼 꼭붙잡고 놓지 않는 것은 무모함이다. 강압에 의한 불의한 약속을 지키는것은 어리석음이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예전의 것을 고집하는것은 헛된 집착이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정도에 맞는 것인가?‘, ‘대의에 맞는 것인가?‘, ‘지금 상황에 시의적절한가?‘, ‘나의 감정이나 욕심을 신념으로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예전에 정했던 신념을 무조건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신념이다. - P246

"같음과 어울림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요?"
안자가 대답했다. "잘 어울린다는 것은 양념이 조화를 이뤄야 맛있는 탕을 끓여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싱겁지도 않고, 짜지도 않으면서 적절하게 재료들이 어우러져야 제맛이 나는 것입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 - P248

다. 임금이 옳다고 한 것도 그것이 잘못되었으면 신하가 그 잘못을 말씀드려틀린 것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또 임금이 그르다고 한 것도 그것이 옳으면 신하가 그 옳은 것을 말씀드려 틀린 것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정치가 공평해져서 서로 충돌이 없고, 백성도 다투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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