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아래서

(나태주)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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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9-25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좋은 시와 글, 감사합니다.
나태주 시인이 저 시 <대숲 아래서> 로 시인으로 데뷔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루피닷 2023-09-28 13:25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제서야 봤네요...추석연휴 시작이네요~즐겁고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