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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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5-06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칼로 사과 조각 찍어먹을때 많은데...

루피닷 2023-05-07 18:17   좋아요 0 | URL
시 내용이니 hnine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듯해요
칼로 드시면 조심해서 드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