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서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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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05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자는 힘을 쓰고 소인은 힘을 쓴다‘는 문장이 참 와닿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루피닷 2023-05-06 11:12   좋아요 1 | URL
잘읽어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