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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 ㅣ 퓨처클래식 2
바데이 라트너 지음, 황보석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7월
평점 :
언젠가, 캄보디아 킬링 필드 라는 영화 포스터를 본 기억이 난다.
한 국가의 정권, 그 정권이 갖고 있는 이념이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 과정, 혁명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향해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은 차라리 진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있는 그 현장에 한 소녀가 앉아 있던 그 장면은, 진정 이것이 현실인 것인가, 우리가 관념적으로만 생각해 오던 지옥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 비슷하지나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했었다.
왕가의 후손, 왕비 할머니와 아빠, 엄마, 고모와 아직 아기인 동생.
유모와 늙은 총각 같은, 소녀를 보살펴 주는 손길이 여기 저기에 있고, 어렸을 적 부터 소아마비로 금속 보행기를 끼고 걷는 소녀, 7살, 라미 라는 이름의 소녀이다.
평화롭다. 아침 햇살 눈부시고, 하인들이 뭔가를 하며 움직이는 아침의 분주한 모습. 한 가족이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전형적인 평화와 안정.
크메르 루주, 공산주의자는 그 평화와 안정을 깨부수는 괴물이다. 느닷없이 밀고 들어온 혁명군, 집에서 모두 나가라, 허둥지둥, 뭘 가지고 가야 할 지 생각이 헝클어지는 상황, 급하게 쫓기듯이 거리로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 중이다. 아빠는 라미에게, 라미 라는 이름이 가지는 뜻, 작은 사원의 뜰 이라는 의미를 새겨주며, 절룩거리며 걸어야 하는 딸에게 언젠가 날 수 있을 거라며 용기와 격려를 북돋운다. 아빠가 딸에게 줄 수 있는, 넘치는 사랑이 느껴졌던 대목이기도 했다.
사람들 무리 중에서 혁명군이 라미를 지적하고, 너 아빠 이름이 뭐냐, 질문을 한다. 당당한 자부심을 가진 라미는 아빠의 이름을 말하게 되고, 가족들 사이에서 한 바탕 논쟁이 벌어진다. 이름을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다...라는..
결국 아빠는 스스로 자신을 밝히게 되고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로 보내진다.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가족 앞에서 선택의 순간, 어느 쪽으로 가야 했는가 라미는. 마지막 순간에 엄마 품을 선택한다.
7살 소녀가 해야 했던 강압적인 선택 치고 가혹했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빠 이름을 말함으로써 아빠가 어디론가 끌려가 버렸다는 죄책감, 7살 소녀에게 주어진 갈등은 그 범위를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끌려가기 전 날 밤의 아빠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할 수 있는, 아빠가 땅에 누워버림으로써 딸은 날 수 있다는, 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말을 남긴다. 이 말이 라미가 그 지옥같은 현실에서 살아서 버텨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라미가 끝내는 살아남는 원동력이 되었지 싶다.
혁명군 치하에서의 삶, 굶주림, 고통, 그 모든 것을 딛고 견뎌 낼 수 있었던 것도 아빠의 사랑이었던 것 같다.
크메르 루주 군과 베트남 간의 전쟁은 이들에게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한다.
사느냐 죽느냐 갈림길에서 아빠가 남겼던 수첩 속의 글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어디선가 나타난 프랑스어를 하는 구조 헬기에 극적으로 올라탄다.
평화로운 때에 왕비 할머니가 말했었던, 우리 중에 반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꼭 그만큼만 남게 되겠지, 라던 그 말처럼 그녀와 어머니, 단 둘 만이 살아 남았다.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을 소설로 엮으면 책 한 권은 충분히 나올거야, 라는 말이 있다.
저자는 인구의 1/3 에 해당하는 대량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가족의 이야기를 써 냈다. 감동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